벼락과 책읽기


 벼락이 치면 셈틀을 꺼야 한다. 아니, 벼락이 치기 앞서 셈틀을 꺼야 한다. 벼락이 치면 저녁이든 밤이든 불을 꺼야 한다. 전깃줄을 뽑아 놓아야 한다.

 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쏟아진다. 비가 쏟아지면서 벼락이 친다. 지붕을 뚫을 듯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깜깜한 시골집 바깥이 반짝반짝하면서 벼락이 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텃밭을 바라본다. 어린 살구나무도 토마토도 고이 잘 있다. 지난주에 심은 이십일무는 새싹이 돋는다. 곧 당근도 싹이 돋겠지.

 벼락이 치니까 전화줄을 뽑는다. 셈틀과 이어진 전기줄 또한 뽑는다. 비가 쏟아지니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니 집에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아이는 바깥에서 뛰어놀 수 없다. 집에서 뛰어야 한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몇 권 읽는다. 아이한테 그림책 글을 읽어 주면서 그림책에 적힌 글월을 자꾸 고친다. 아이한테 걸맞지 않을 뿐더러,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읽을 때에 썩 올바르지 못한 말마디가 자꾸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책 번역은 그냥 번역이어서는 안 된다. 어른문학 번역도 그냥 번역이어서는 안 되지만, 아이가 그림책을 읽으면서 ‘글뿐 아니라 말을 배운다’는 대목을 잊으면 안 된다. 모든 그림책과 어린이책은 번역을 마친 다음에 ‘문학다운 문학인가’하고 ‘말다운 말인가’를 찬찬히 짚어야 한다. 그림책과 어린이책은 글이 많이 안 실린다지만, 얼마 안 되는 글줄을 ‘훨씬 길고 많은 어른책 글줄’보다 더 깊고 오래 들여다보면서 다루어야 한다.

 이를테면, 야시마 타로 님 그림책 《우산》에서는 이런 대목을 고친다.

 1. 선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
 → 선물이 참 마음에 들어
 → 선물이 매우 마음에 들어
 2. 모모는 매일 아침
 → 모모는 아침마다
 3.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 엄마한테 여쭈었습니다
 4. 햇빛이 반사되는 것을 본 순간
 → 햇빛이 비치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으로, 나카야 미와 님 그림책 《그루터기의 새 친구》에서는 이 같은 대목을 바로잡는다.

 1. 지금은 들판밖에 보이질 않아
 → 이제는 들판밖에 보이질 않아
 2. 그루터기는 너무나 반가웠어요
 → 그루터기는 참으로 반가웠어요
 3. 민들레에게 당장 말을 걸었지요
 → 민들레한테 곧장 말을 걸었지요
 4. 하지만 민들레는 쌀쌀맞게 말했어요
 → 그렇지만 민들레는 쌀쌀맞게 말했어요


 그림책을 다 읽어 주고는 벼락소리를 듣는다. 벼락소리를 듣다가는 아버지는 아버지 책을 읽고 어머니는 어머니 책을 읽는다. 아이는 아버지 등을 타고 오르내리며 논다. 어머니가 아이보고 아버지 등에서 내려오라고 말한다. 아이는 책읽기보다 놀기를 바라겠지.

 아이가 아버지나 어머니 등을 타며 놀고 싶어하듯, 나도 아이만 한 나이에 이렇게 놀려고 하지 않았나 떠올린다. 등을 타면, 타는 사람은 재미있겠지. 업어야 하는 사람은 힘들겠지. 나이를 먹은 나는 이런 줄 뻔히 아니까 다른 사람 등에 업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는 업어야 하는 사람이 힘들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리라. 아이는 아이이니까. 돌이켜보면 아이는 아이인 만큼 어른과 달리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는데, 어버이답지 못하게 아이한테 지나치게 바라곤 한다. 아이가 아이답게 놀고 뛰며 웃을 수 있게끔 더 기운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가 등을 타며 놀 때에, 나이 먹은 어른으로서 생각한다. 이제 제법 무거울 뿐 아니라 제법 힘을 쓸 줄 아는 아이가 올라타면 퍽 아프다. 그렇지만, 내가 내 굳거나 쑤시는 몸을 내 손으로 주무르기 힘들 때에 아이가 이렇게 올라타서 꿈지럭거리거나 걷거나 방방 뛸 때에 굳거나 쑤시는 내 몸을 주물러 주는 셈이 되기도 한다고 느낀다. 옆구리가 결리면 옆으로 누워 아이가 옆구리 쪽으로 올라서도록 한다. 등이 굳으면 아이가 등 쪽으로 올라서도록 한다. 아이가 제 아버지한테만 이렇게 올라타고 둘째 밴 어머니한테는 함부로 올라타지 않아야 하지만, 아이는 잘 가리지 못한다. 아이가 못 알아들을는지 몰라도, 아버지 등이나 허리나 옆구리에 올라탈 때에 조곤조곤 말해야겠다. 아버지는 몸이 힘드니까 주무르는 셈치고 밟아도 되지만, 어머니는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기 때문에 함부로 올라타면 안 된다고. (4344.4.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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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책


 여기 두 가지 책이 있다. 하나는 1961년부터 1962년 사이에 나온 자그마한 책이고, 다른 하나는 2011년에 나온 도톰한 책이다. 1961년에 나온 책은 깨알같은 글씨로 세로쓰기이다. 2011년에 나온 책은 글꼴이 커지고 가로쓰기이다. 1961년에 나온 책은 1961년에 젊은 나날을 보내던 이 가운데 이 나라 참배움과 참사람에 눈길을 두던 사람이 읽던 책이고, 2011년에 나온 책은 2011년을 살아가며 내 보금자리 참배움과 참사람에 눈길을 둘 사람이 읽을 책이다.

 1961년에 나온 이 책을 읽던 사람이 스무 살이었고 아직 살았다면 일흔 나이가 되겠지. 일흔 나이가 되었을 나이든 이는 2011년에 다시 나온 이 책을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이 될까. 2011년에 다시 나온 이 책은 앞으로 2061년까지 꾸준하게 새책방 책꽂이를 지키면서 2061년에 젊은 나날을 보낼 사람한테까지 마음밭 일구는 쟁기와 같은 선물을 베풀 수 있을까. 쉰 해에 걸쳐 두 차례(사이에 한 차례 ‘간추림판’이 나온 적 있음) 나온 이 책은 《인간의 벽》(이시카와 다쓰조 씀)이다. (4344.4.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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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꽃과 책읽기


 단풍꽃을 본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 보고는 단풍꽃을 아주 오랜만에 본다. 단풍꽃이 지고 단풍씨가 맺으면 팔랑팔랑 팔랑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땅으로 내려온다. 단풍씨가 저절로 떨어지기를 나무 밑에서 기다리기도 하지만, 손으로 단풍씨를 똑 따서는 위로 던져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제 이 단풍꽃 봉오리가 흐드러지게 터지고 나면 단풍씨가 알알이 맺힐 테고, 이 단풍꽃이며 단풍씨이며 아이와 함께 가만히 바라보면서 멧자락 나무살이를 껴안으리라 본다.

 내가 이름을 아는 나무를 바라본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나무를 바라본다. 내가 이름을 아는 나무는 이름을 아는 대로 반가이 줄기를 쓰다듬으면서 바라본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나무는 이름을 모르는 대로 살가이 잎사귀를 어루만지면서 바라본다. 새로 돋은 잎을 하나 골라 똑 뜯어서는 입에 넣는다. 살살 씹는다.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 먹을거리가 없던 시골사람은 느티나무 잎을 뜯어서 떡으로 쪄서 먹기도 했다고 들었다. 느티나무잎을 뜯어서 먹어 보면 퍽 먹을 만하다. 다른 나뭇잎도 뜯고 풀잎을 함께 뜯어 먹으면 꽤 괜찮다. 그러나 나무도감이나 식물도감에는 나뭇잎을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 나뭇잎마다 맛이 어떻게 다른지는 안 적힌다. 단풍잎을 먹어 보면 어떨까. 아직 활짝 펼쳐지지 않은 여린 단풍잎이라면 살짝 뜯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햇살을 듬뿍 받는 단풍꽃을 바라보았고, 오늘은 빗물을 흠뻑 머금는 단풍꽃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가을날 단풍잎이 바알갛게 물든 모습이 곱다며 ‘잎사귀 구경’을 다니는데, 단풍꽃이 감붉은 빛깔로 어여삐 봉오리를 터뜨릴 때에 ‘꽃 구경’을 다니는 일이 없다. 어쩌면, 단풍나무에 단풍꽃이 피는 줄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감나무에는 감꽃이 피고, 느티나무에는 느티꽃이 피며, 오얏나무에는 오얏꽃이 핀다. (4344.4.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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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못 읽는 책들을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4.15.



 날이 제법 따뜻해진데다가 집에서 물을 쓸 수 있는 터라 모처럼 서너 시간 도서관에서 책 갈무리를 합니다. 아이는 이오덕학교 언니 오빠 들을 따라 조잘조잘 혼자서 노래하면서 학교로 올라갑니다. 널찍한 데에 자리를 얻어 넉넉하게 꽂아 놓는 책들인데, 집일과 학교일과 책 내는 일에 얽히다 보니 막상 도서관 책들을 찬찬히 꽂은 다음 자질구레한 짐을 치워 문간에 간판 하나 달고는 두루 알리는 일은 하나도 못합니다. 곧 둘째가 태어나면 아기 돌보랴 집일 하랴 하면서 도서관 살림 돌보기는 더 못할 텐데, 겨울이 지나갔기에 이불 빨래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만큼, 도무지 어느 하나 갈피를 못 잡는구나 싶습니다.

 그저 쌓인 채 겨울을 보낸 책을 뒤늦게 끌릅니다. 아직 못 끌른 책이 좀 있습니다. 끌렀으나 제자리에 못 꽂은 책이 꽤 됩니다. 책꽂이 바닥에 신문지를 한 장 깔고 책을 차곡차곡 얹거나 세우거나 눕힙니다. 오래도록 둘 책이라면 세우지 말고 눕히라는데, 눕히면 꺼내어 읽기가 좀 번거롭습니다.

 첫째가 조금 더 크고, 둘째가 곧 태어나서 첫째만큼 나이를 먹어야 이 도서관을 제대로 꾸린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늘 하루부터 제대로 꾸리지 못하면 앞으로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셈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무엇일까요. 집일을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이 읽는 책은 무엇일까요. 애써 내 도서관까지 찾아올 사람들은 무슨 책을 집거나 살피거나 돌아볼까요. 사람들은 무슨 책으로 마음밥을 삼을까요. 사람들은 딱히 마음밥으로 삼을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나부터 내 삶에 마음밥 하나 살포시 놓는지 헤아려야지요. 나부터 바쁘거나 고되다는 삶 탓이나 투정만 하지 말고, 이렇게 바쁘거나 고된 나날에 어떠한 책을 손에 쥐면서 내 마음밥으로 삼는지 살펴야지요. 심심풀이 책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마음밥 책도 어김없이 있습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를 모두 보살피면서 살아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까지 손에 쥐려 한다면, 집식구들 사람책 아닌 뭇사람 종이책에서 무엇을 느끼거나 얻거나 받아들일 만한가를 깨달아야지요.

 오늘 읽을 수 있으면 오늘 읽을 수 있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못 읽고 나중에 아이들이 대여섯 살 열대여섯 살 스물대여섯 살 즈음 될 때에 읽을 수 있다면, 그때에는 그때대로 내 마음도 한결 자라면서 더 깊이 읽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는 어느 새책방이나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도 만나기 힘들 책을 이렇게 일찌감치 장만해서 시골마을 도서관을 꾸렸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자고 고개를 끄덕이며 봄날 한 자락 땀을 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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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하나 건사하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9.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태어나는 책입니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기에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이야기를 담아 책 하나쯤 될 만한 부피로 빚습니다. 모든 책마을 일꾼이 알아보지는 못하나, 누군가 한 사람 알아보아 주기 때문에 종이에 이야기 하나 얹고, 이 종이얘기꽃은 책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우리 앞에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라밖 그림책이나 사진책은 누군가 나라밖 마실을 다녀온 다음 즐거이 사서 읽고 나서 어느 때인가 스스럼없이 내놓은 책입니다. 또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학교나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입니다. 어느 책이건 누군가 기꺼이 ‘좋은 책이라 여기며 장만’했기 때문에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만들고, 알아보는 사람이 읽으며, 알아보는 사람이 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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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24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사람만큼이나 책들도 많잖아요.
사람과의 만남에도 인연이 있듯이, 책과의 만남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1-04-24 08:34   좋아요 0 | URL
모두들 좋게 만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책이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