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기와 책읽기


 통계청이 다섯 해마다 한다는 생활시간조사(2009)에서 혼인한 두 어른이 집에서 집일을 얼마나 나누어 맡는가를 들여다본다. 맞벌이 부부가 하루에 집일을 하는 시간은 여성은 2시간 38분, 남성은 24분이란다. 홀벌이 부부일 때에 여성은 4시간 11분, 남성은 19분이란다. 나는 집에서 날마다 집일을 몇 시간쯤 하는지 어림해 본다. 얼추 어림해도 예닐곱 시간이 훌쩍 넘는다. 가만히 따지니 일고여덟 시간은 넉넉히 된다. 제대로 집일을 하자면 하루 여덟아홉 시간이나 열 시간쯤은 들여야 한다.

 홀벌이 집안에서 여성이 맡는 4시간 11분이란 ‘줄잡은’ 시간이다. 그러니까, 참말 집에서 집일과 집살림만 하는 어머니라 할 때에는 나처럼 일고여덟 시간을 들이든지, 나보다 훨씬 품을 들여 열 시간 남짓 들인다 할 테지.

 아침을 차리고 낮밥을 차리며 저녁을 차리기만 하더라도 세 시간은 가볍게 든다. 푸성귀를 손질하고 나물을 무치며 김치를 담근다든지, 이것저것 한다면 밥먹기에 바치는 하루 품만 너덧 시간은 가뿐하다.

 예부터 집안에서 어머니는 책을 읽지 못했다. 예부터 집안에서 여자한테 책을 읽히지 않았다. 집안에서 어머니는 수많은 일을 떠안도록 했고, 집안에서 여자가 책에 마음을 사로잡히면 집일을 누가 해야 했을까. 어린 날부터 집일을 안 하거나 모르는 남자가 했을까.

 집일이란 참 대단하다. 그런데 이 대단한 집일을 거뜬히 해내는 남자란 없다. 어느 누구도 집일에 온삶을 바치지 못한다. 여느 여자라도 힘들고 슬프다 말하면서 집일을 짊어지지만, 대단한 남자라도 웃거나 노래하며 집일을 짊어지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한다. 허난설헌도 신사임당도 집일이나 집살림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집일이나 집살림 이야기를 글로 쓰는 여자도 남자도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없겠지. 집일 하는 사람은 책도 못 읽고 책도 못 쓴다. (4344.6.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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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07-03 09: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살림을 하다보면 책을 잡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전 살림보다 "책읽기"가 먼저예요. 제 살림살이가 어떨지 아시겠지요? ㅋㅋㅋ

숲노래 2011-07-03 16:26   좋아요 0 | URL
오... 다른 집식구가 맡아서 하면 되지요 ^^;;
 



 빗소리 책읽기


 첫째가 오줌그릇에 눈 똥을 치우려고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 가장자리에 놓은 거름통에 아기 똥오줌을 붓는다. 도랑 뒤쪽 숲에 하얀나비 하나 팔랑거린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졌지만 엿새째 이어지는 날씨에 어디에서 어디로 날아가는 나비일까. 빗방울을 맞으며 한동안 바라보니, 하얀나비는 텃밭 감자꽃에 살짝 앉으려다가 다시 팔랑거리며 다른 곳으로 간다.

 집으로 들어온다. 쇠수세미로 아이 오줌그릇을 씻는다. 물기를 털어 제자리에 놓는다. 집 안쪽에서 바깥쪽에서나 빗소리만 들린다. 바람소리도 새소리도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나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 또한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논마다 찾아 날아드는 왜가리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빗줄기가 스무 날 서른 날 이어지지는 않겠지. 머잖아 똑 끊기고 쨍쨍 눈부신 날이 찾아오겠지. 쨍쨍 눈부신 날이 찾아오면 비로소 빗소리에 잠기거나 숨죽이는 모든 소리가 깨어나겠지.

 아침 낮 저녁 밤 새벽 내내 빗소리만 들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토록 빗소리만 들으면서 지낼 수 있는 나날이 좋다. 첫째하고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보다가는, 아버지 혼자 문학책 《하이디》를 읽는다. (4344.6.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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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치구이와 책읽기


 갈치를 굽는다. 스텐팬에 불을 아주 작게 넣고 천천히 굽는다. 어머니가 하셨듯 접시에 구운 갈치를 얹고, 어머니가 하셨듯 갈치 살을 발라 아이 밥그릇에 얹는다. 어머니가 하셨듯 몸통을 아이랑 옆지기한테 주고, 어머니가 하셨듯 가장자리 가시 있는 데를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4344.6.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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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07-03 09:24   좋아요 0 | URL
하하하 !!! 종규님은 저랑 똑같네요~~

숲노래 2011-07-03 16:26   좋아요 0 | URL
아, 네. ^_^
 



 30분 책읽기


 새벽 두 시 반에 번쩍 깬다. 저녁 열 시쯤 쓰러질 듯 가까스로 잠들었다. 첫째는 더 놀고 싶다며 앙앙 울고, 둘째는 토닥토닥 안아도 어머니가 젖을 물려도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잠자리에 네 식구가 드러눕고 불을 끄니 첫째는 금세 곯아떨어지고, 둘째도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새끼돼지 둘이 잠든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도 곯아떨어진다.

 이래저래 뭔가를 알 수 없는 참으로 뒤죽박죽인 꿈누리에서 헤매다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서 시계를 찾는다. 몇 시이지? 두 시 반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허둥지둥 첫째 엉덩이에 손을 댄다. 안 젖었다. 아직 쉬를 안 누었군. 여느 날보다 늦어서 걱정스러웠으나 잘 참았구나. 첫째를 덮은 이불을 걷고 두 손을 살며시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쉬, 쉬.” 하고 말한다. 아이는 발목이 꺾이고 무릎이 접히지만 용케 걸어 준다. 오줌그릇에 앉힌다. 아이 스스로 속옷을 내리고 쉬를 보아야 할 테지만, 몇 달쯤 아버지가 내려 주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쉬를 다 눈 다음에도 아버지가 올린다. 이러고 나서 다시 아이 손을 잡고 잠자리로 오고, 잠자리에서는 아버지가 번쩍 안아서 눕히고 이불을 여민다. 굳이 번쩍 안지 않아도 되지만, 둘째가 있기도 하고, 아이가 싫다고 할 때까지는 이렇게 해 줄까 하고 생각한다. 길어야 열 살까지 이렇게 해 주겠나.

 아이가 다시 잠든 모습을 보고 나서 기지개 켤 틈 없이 보일러 단추를 누른다. 잠자기 앞서 해 놓은 기저귀 빨래가 얼마나 말랐는가 만진다. 방바닥에 펼쳐 말린 기저귀는 꽤 말랐기에 차곡차곡 접는다. 보일러 도는 김에 더 마르라 해 놓고는 그동안 쌓인 새 빨래를 한다. 바닥에는 열석 장이 깔리고, 새로 할 빨래는 열 장.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래할 때에도 손바닥이 제법 아렸고, 새벽에 빨래할 때에도 손바닥이 꽤 아리다. 그렇다고 이 빨래를 누가 해 줄 수 없다. 빨래기계를 들인다고 될 일이 아닐 뿐더러, 빨래기계 값은 꽤 비싸다. 더욱이, 우리 집에는 빨래기계 놓을 마땅한 자리가 없다. 빨래기계 값이라면 어머니 자전거랑 아이 자전거수레를 새로 장만하고 남는다.

 똥오줌기저귀 열 장을 다 빨고 빨랫대에 여섯 장 걸고 넉 장은 집안 이곳저곳에 옷걸이로 걸친다. 남은 기저귀는 일곱 장이고, 열석 장은 삼십 분쯤 뒤에 개어 둘째 머리맡에 놓아야지. 이제 아침까지는 걱정없다. 다시 시계를 본다. 세 시 이 분. 빗줄기는 쉬거나 끊이지 않는다. 다른 날이라면 달빛이 저물며 새벽 햇빛이 천천히 어우러질 무렵인데, 엿새째 이어지는 빗줄기 새벽은 더없이 조용하면서 어둡다. 좋은 새벽이다. (4344.6.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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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 책읽기


 저녁에 똥오줌기저귀를 빠는데 손바닥이 아프다. 손바닥이 통째로 굳은살이긴 하더라도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쉴새없이 빨래를 해야 하면 손바닥이 아프다. 빨래를 하는 사이사이에는 밥을 차리고 치우며 아이를 씻긴다. 게다가 요사이에는 책짐을 싸느라 날마다 두 시간 즈음 끈을 만지작거린다. 오늘은 모처럼 기운을 내어 저녁 잠자리에서 아이한테 그림책을 하나 읽어 주었다. 집일이 많다지만 아이하고 살가이 복닥일 겨를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아이 앞에서 어버이라 할 수 있겠느냐 뉘우친다. 투박하고 거칠며 딱딱한 손바닥으로 보드라운 아이 볼을 쓰다듬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꾹꾹 주무른다. 이 아이는 오늘 하루도 앉을 새 없이 뛰고 노느라 다리가 퍽 아팠겠지. 아이한테 팔베개를 살짝 해 주다가는 아이보고 제 베개를 베고 누우라 이야기한다. 아이는 제 베개를 베고 아버지 쪽을 바라보며 누워 키득키득 웃고 종알종알 떠들며 놀다가 어느새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하다가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자는 아이를 토닥토닥 한 다음 일어나서, 밤새 또 기저귀 빨래가 얼마나 나올는지 모르기에 똥기저귀 석 장을 빤다. 오줌기저귀 넉 장이 남는다. 석 장을 빨고 둘째를 옆지기하고 재우려고 애쓰는데 좀처럼 잠을 잘 자지 못한다. 한 시간 반쯤 울고 낑낑거리다가 비로소 잠든다. 이동안 똥기저귀가 새로 두 장, 오줌기저귀가 새로 한 장 나온다. 아이는 어머니 옷에까지 똥을 발랐기에 어머니 옷 빨래가 하나 더 나온다.

 두 시간쯤 쉬었다가 기저귀 넉 장쯤 또 빨아야지. 두 시간쯤 뒤에 물을 만지면 손바닥은 덜 아플까. 생각해 보면, 나는 이런저런 집일을 도맡기는 하지만, 바느질이나 뜨개질까지 하지는 않는다. 아이 옷을 내가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서 입히지 않을 뿐더러, 이불을 꿰지도 않는다. 밥을 할 때에 절구를 들어 쌀을 빻아 겨를 벗기지 않는다. 장작을 패어 불을 땐다든지, 삭정이를 긁어모으는 일을 하지 않는다. 밭에서 푸성귀를 거두어들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집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터라 손바닥이 아프다 할 만한지 모른다. 하루에 한 쪽이라도 책을 읽자며 다짐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쪽을 더 읽느라 내 손바닥이 더할 나위 없이 ‘일하거나 살림하는 사람 손바닥’이 못 되어, 자꾸 쓰라리거나 따끔거리는지 모른다. (4344.6.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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