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아이 호미질과 책읽기


 씨감자를 몇 심는다. 오늘 일요일을 맞이해 음성 읍내에서 열리는 장마당에서 씨감자를 아직 판다면, 씨감자를 더 사서 텃밭 골을 더 만들어 감자를 심어야지. 골 하나라고 하기에도 멋쩍은 골을 하나 만들어서 얼렁뚱땅 감자를 심는데, 네 살 아이도 일을 거들겠다며 호미를 들고 나선다. 아직 풀캐기라든지 고랑 만들기를 할 줄은 모르지만, 호미를 마치 곡괭이처럼 들고 땅을 콕콕 찍는다. 그래,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이런 놀이나 일은 꿈조차 꿀 수 없었지. 제아무리 아파트나 번쩍거리는 도심지가 아닌 고즈넉한 골목동네에서 살았다 하더라도, 골목이든 아파트이든 똑같이 도시가 아니겠니. 도시에서는 너한테 호미질을 일러 줄 수 없구나. 그림책으로만 보여주거나 사진 몇 점으로 보여줄 뿐이지.

 호미질을, 그러니까 그림책을 백 번 천 번 본다 한들 익힐 수 있는 호미질이겠니. 그림책 한 번 안 보았어도 호미 한 번 단단히 움켜쥐고 땅을 콕콕 파 보아야 비로소 무언가를 알 수 있지.

 네 아버지는 예쁜 그림책을 싫어하지 않는다. 네 아버지도 예쁘장한 그림책에 눈길이 간다. 그러나 예쁘기만 하고 알맹이는 없는 그림책은 반갑지 않다. 지식으로만 읽는 그림책은 내키지 않고, 재미난 웃음이 나오도록 이끌려 하는 그림책 또한 반갑지 않다. 땀흘리는 일은 땀흘리며 일하는 보람이 있기 마련인데, 요즈음 사람들이 스스로 땀흘리며 살아가려 하지 않는대서 땀흘리는 일을 억지로 그럴듯하게 껍데기를 씌우거나 재미난 놀잇거리라도 되는 듯이 꾸밀 수는 없어.

 빨래를 빨래놀이처럼 즐길 수 있겠지. 그러나 빨래는 빨래야. 걸레질은 걸레질이야. 걸레빨이는 걸레빨이야. 비질은 비질이지. 쌀을 씻어 티끌을 떨구는 일도 쌀씻기야. 나는 맛나구려 하고 보여주는 요리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맛나구려 하는 밥거리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어 얻는가를 함께 밝히지 못한다면, 하나도 맛나구려 하는 밥거리라고 느끼지 못한다.

 네 어머니는 네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곧 네 할머니가 마련해 준 김치를 맛있게 잘 먹는다. 네 할머니가 밭에서 손수 길러 거둔 배추로 마련한 김치이든 저잣거리에서 사들인 배추로 마련한 김치이든, 네 할머니 김치를 네 어머니가 맛나게 먹는다. 김치맛도 김치맛일 테고, 할머니 김치에는 이 김치를 마련하는 손길이며 땀방울이며 깃들었으니까.

 너는 세 살 아이일 때부터 호미질을 했다. 네 동생은 돌쟁이 무렵부터 호미질을 하겠지. 너는 네 아버지가 쓰는 삽이나 괭이를 들어 보겠다며 낑낑거린다. 네 동생은 돌쟁이 무렵부터 삽이나 괭이를 만지작거리겠지. 너는 요 조그마한 텃밭에서 노닥거릴 때이건 숲속을 거닐 때이건 신에 흘러든 모래알을 느낀다. 1분을 채 걷지 않았어도 시골 흙길에서는 신에 모래일이 깃든다. 도시에서는 여러 시간을 걸어도 신에 모래알이 깃들 까닭이 없다. 그저 먼지로 까맣게 될 뿐이다.

 모든 사람 삶은 흙에서 비롯한다. 어마어마하게 높이 세우는 건물이나 아파트이건, 사람들이 읽는 책이건,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이건, 어느 하나 흙에서 안 비롯할 수 없다. 사람들이 날마다 먹는 밥이건 빵이건 케익이건 과자이건 무엇이건 흙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내기들은 흙을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랑하거나 아낄 줄을 모른다. 우리 살림집이 도시에 깃들 때에는 우리 살림집 또한 흙을 생각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기 힘들다. 흙을 밟고 들어서는 도시이니까. 흙을 울궈먹으며 뱃살이 디룩디룩해지는 도시이니까. 흙을 멀리해야 깨끗해지는 도시이니까.

 모든 책은 흙에서 비롯한다. 모든 책은 흙에 뿌리를 내린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에서 비롯한다. 모든 책은 흙에서 먹을거리를 얻어 목숨을 잇는 사람들이 종이에 글을 써서 비롯한다. 어제와 그제는 모처럼 네 살 너한테 그림책을 몇 권 읽어 주었으나, 요사이는 네 아버지가 참 고단해서 다른 날에는 그림책을 거의 못 읽어 주었다. 그래도 어제 낮에는 텃밭에서 호미질 놀이를 했으니, 우리는 어제 하루 흙책을 읽은 셈이다. 모레와 글피에도 흙책을 읽도록 오늘 장마당에서 씨감자랑 푸성귀 씨앗을 실컷 장만하자. (4344.4.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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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하나씩 살피며 산다


 한국땅 어버이들은 언제부터 어린이책을 전집으로 왜 사는가 궁금합니다. 한국땅 출판사들은 언제부터 어린이책을 전집으로 만들어 버릇하며 파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나라만 전집책이 이토록 많은지 궁금합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전집’이라는 이름이라든지 ‘전집’과 같은 책꼴은 이웃한 일본에서 태어났겠지요. 일본에서 일본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만든 전집을 몰래 베끼거나 훔쳐서 한국 어린이한테 팔던 흐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 모릅니다.

 ‘세계명작’이라든지 ‘세계문학전집(또는 세계문학선집)’이라든지 ‘어린이명작동화’ 같은 이름은 죄다 일본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저학년문고’나 ‘고학년문고’라는 이름 또한 일본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은 어린이책을 전집으로 얼렁뚱땅 묶어 얼렁뚱땅 팔아치우지는 않습니다. 일본에도 퍽 덜 떨어진 전집책이 있을 테지만, 한국에서 옮긴 일본 전집책은 매우 훌륭합니다. 오랫동안 많은 돈과 많은 품을 들여 찬찬히 일군 아름다운 일본 전집책이기 일쑤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본 전집책을 요리조리 가위질하거나 베껴서 수십 해 동안 팔아먹었습니다.

 요즈음은 도둑질을 섣불리 할 수 없기 때문에 저작권 계약을 해서 일본 전집을 번역해서 내곤 합니다. 드문드문 영국이나 프랑스나 미국 전집책을 번역하기도 합니다. 어느 전집책이든, 나라밖에서는 ‘이 전집책만 보면 다른 책은 애써 안 보아도 된다’고 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전집책’이란, ‘낱권 하나만 보아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깊이 살필 수 없다’고 느껴서 만드는 책입니다. 과학동화이든 수학그림책이든, 낱권 하나가 아니라 열 권이나 스무 권이나 서른 권이나 마흔 권으로 잘게 나누어 묶으면서, 아이들이 차근차근 실타래와 고리를 잇는 동안 시나브로 과학이나 수학 밑바탕을 깨닫거나 들여다보도록 이끌려고 합니다.

 곧, ‘나라밖 전집책’은 ‘낱권책이 하나하나 모여 열 권이나 서른 권이나 쉰 권으로 이루어진 책뭉치’라 할 수 있어요. 아주 두툼하다 싶도록 커다란 ‘낱권책 하나’라 할 만합니다.

 좋은 전집책이든 좋은 낱권책이든, 이러한 책을 내놓은 출판사 이름으로 책을 살피거나 살 수는 없습니다. 퍽 드물지만, 아주 훌륭한 책길을 꿋꿋하고 씩씩하게 걷는 곳이 있습니다만, 모든 출판사가 모든 책을 알알이 여민다고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내 아이이든 이웃집 아이이든 모든 책을 똑같이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아요. 더 좋아하는 책이 있고, 덜 좋아하는 책이 있습니다. 한 출판사를 아주 단단히 믿더라도, 한 출판사 책에 매이지 말고, 아이 눈길이 닿으며 사랑스러운 마음밥을 얻을 책을 골라야 합니다.

 이렇게 책을 고르자면, 아이한테 좋을 책을 살핀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어른인 나부터 내가 어린이라면 어떠한 책을 즐겁게 100번이나 1000번쯤 되읽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른인 내 눈썰미로 살피는 책이 아니라, 어른인 내가 어린이라고 여기면서 나 스스로 이 책을 몇 번이나 되읽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장만할 만한 좋은 어린이책은 책방(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에 선 채로 다 읽고 나서 장만할 만한 책이어야 합니다. 책방에 선 채로 다 읽었으니 안 사도 된다 여기면, 이러한 책은 굳이 살 까닭이 없습니다. 책방에 선 채로 다 읽었기에 사야겠다고 느낄 만한 책을 사야 합니다.

 어른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책도 열 번 스무 번 되읽을 만하다 싶은 책을 찾아서 장만해야 아름답습니다. 되읽을 값어치가 없다고 느끼면, 나로서는 그닥 아름다울 책이 못 됩니다. 되읽을 값어치가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우리 집에 오래도록 꽂아 둘 책으로 무엇이 좋을까 하고 곱씹어야 합니다.

 어떠한 책이든 ‘출판사나 이름값이나 베스트셀러이냐 아니냐’를 살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책이든 ‘우리 집 책시렁에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넉넉히 꽂힐’ 책이라고 생각하며 살펴야 합니다. 우리 집을 자주 옮긴다고 한다면, 이삿짐을 싸고 묶고 하면서 하나도 짐덩어리로 느끼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다고 바라보는 책을 장만해야 합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아주 좋은 전집책이나 낱권책’이 아니라, ‘참으로 아름답고 좋구나 하고 느낄 책’ 하나를 마주하려는 마음이어야지 싶습니다. 좋은 책을 하나하나 찾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냄비 하나 아무렇게나 장만하지 않습니다. 냄비 하나를 한두 해만 쓰고 버리겠습니까. 열 해뿐 아니라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즐겁게 쓸 좋은 냄비를 장만해야지요. 자전거 한 대를 서너 해쯤 타다가 내다 버릴 자전거로 장만하겠습니까. 자전거 한 대는 내 아이가 즐겁게 탔다가 동생이나 이웃한테 예쁘게 물려줄 만큼 튼튼하고 좋은 녀석으로 장만해야지요. 책상도 밥상도 걸상도 매한가지예요. 두고두고 쓸 물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책꽂이 또한 쉰 해나 백 해를 버틸 튼튼하며 좋은 책꽂이로 갖추어야 합니다.

 나는 내 아이를 한두 해만 사랑하고 떠나보낼 마음이 아닙니다. 나는 내 아이를 예순 해 여든 해 고이 지켜보면서 늙고 싶습니다. 예순 해 여든 해를 고이 지켜보다가 아이보다 일찍 눈을 감고 싶기에, 내 아이가 마주할 책 하나란 오래오래 아이 마음밭에서 싱그러이 꽃을 피우는 어여쁜 책이 될 수 있게끔 찬찬히 살펴서 고릅니다. (4344.4.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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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서너 살 아이와 영어 그림책 읽기


 오늘날 숱한 두서너 살 아이들이 일찍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으며 영어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얼핏설핏 들으면서 우리 집 아이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우리 집 아이는 돌이 되기 앞서부터 영어 그림책을 보았다. 영어로 된 그림책뿐 아니라 일본말로 된 그림책을 보았다. 일본말로 된 그림책에다가 독일말이나 프랑스말로 된 그림책을 함께 보았다. 때로는 러시아말이나 스페인말로 된 그림책을 나란히 보았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글을 깨우치도록 무언가 가르칠 생각에서 여러 가지 그림책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아직 우리 말로 옮겨지지 못한 좋은 나라밖 그림책이라면 헌책방에서 마주할 때에 즐겁게 장만해서 보여주었다.

 때로는 한국에 옮겨진 그림책을 굳이 나라밖 책으로 보여주곤 한다. 한국말로 옮겨진 그림책은 빛느낌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바빠빠》를 들 수 있다. 한국에는 1994년에 처음으로 옮겨졌고, 우리 집에는 2007년 29쇄가 있다. 그런데 한국판 《바바빠빠》는 빛느낌이 끔찍하도록 엉터리이다. 우리 집에는 일본에서 나온 《ベ-ベペペ》도 있는데, 일본판은 1972년에 처음 나왔고 2003년에 자그마치 203쇄를 찍는데, 바바빠빠 빛느낌이 잘 살았다. 한국판 바바빠빠는 시뻘건 빛깔인데, 바바빠빠는 빨갱이가 아니다. 분홍이이다. 그런데 내가 가진 책만 빨강이일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쇄를 거듭할 때마다 바바빠빠 빛깔이 바뀌는지 모른다. 어느 때에는 붉음이인 바바빠빠요 어느 때에는 짙은 분홍이인 바바빠빠인 듯하다. 어쩜 이렇게 책마다 바바빠빠 빛깔이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한국 그림책을 그닥 믿지 못한다. 2007년에 옮겨진 《짝꿍 바꿔 주세요》는 일본에서 1991년에 나왔던 책을 옮겼는데, 우리 집에는 일본판을 퍽 일찍부터 헌책방에서 만나서 즐겁게 보다가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아이한테 자주 읽어 주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말을 잘 하기에 일본말을 번역하며 읽어 주지는 못한다. 그림을 보면서 이 대목에서는 무슨 이야기일까 헤아리면서 읽어 주었다.

 한국판 《짝꿍 바꿔 주세요》 또한 한국판 《바바빠빠》와 매한가지로 빛느낌이 썩 나쁘다. 일본 그림책 빛느낌은 매우 보드라우면서 밝다. 한국 그림책 빛느낌은 퍽 어두우면서 거칠다. 왜 이렇게 될까. 왜 이토록 달라질까.

 예전에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일하며 이태수 님 그림책을 일본말로 옮겨서 내던 일을 떠올려 본다. 나는 영업부 직원이니 편집일에 끼어들거나 어찌저찌 하지 않는다. 책이 나오면 신나게 책방마실 하면서 책팔이를 할 뿐이다. 일본에서 내놓은 《우리 순이 어디 가니》와 《심심해서 그랬어》를 보는데, 한국에서 나온 그림책보다 빛느낌이 훨씬 보드라우면서 해맑았을 뿐 아니라, 구석구석 더욱 또렷했다. 《심심해서 그랬어》는 주인공 모습이 책 가운데에 씹히지 않도록 0.5센티미터를 옆으로 살짝 옮겨 놓기까지 했다. 제본 또한 일본책이 훨씬 훌륭했고.

 나는 우리 아이한테 나라밖 그림책을 애써 읽힐 마음이 없다. 우리 아이가 어린 나이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으며 영어를 배우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그림책다운 그림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는 책다운 책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책이 좋은 제본과 땀방울에 따라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 스스로 나중에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언제라도 배우라지. 우리 집에는 수많은 한국말사전과 영어사전과 영어책이 골고루 있으니까.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따로 영어를 가르칠 마음이 없다. 영어이든 뭐든 스스로 배우고 싶다고 느껴 스스로 찾아나서야 배울 수 있다. (4344.4.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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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부침개와 책읽기


 옆지기 귀빠진날을 맞이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어제부터 곰곰이 생각했다. 귀빠진날이 닥치고 나서 생각한대서야 무얼 달리 뾰족히 할 만할 수 없겠구나 싶은데, 요 몇 해 사이 무슨 일을 하든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다보면서 헤아린 일이란 거의 없지 않느냐 떠올린다. 미리미리 살피거나 보듬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낀다. 숱한 집일이 밀려드니까, 이 집일을 껴안기만 하더라도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새벽과 밤에 잠을 쪼개어 글조각을 붙잡는데, 졸립거나 고단한 몸을 버티며 글조각을 붙잡는 일이란 퍽 부질없거나 덧없는지 모른다.

 옆지기 귀빠진날인 오늘은 새벽 여섯 시 이십삼 분에 일어난다. 요즈음 새벽에 꽤 늦게 일어난다. 새벽 서너 시쯤에 일어나서 일손을 붙잡아야 그럭저럭 글조각 보듬기를 할 만한데, 새벽 여섯 시라면 너무 늦다. 이때에 일어나면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침 일곱 시부터는 아침밥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니까. 일곱 시 이십 분이나 삼십 분 즈음에 쌀을 씻어 불리고, 아침에 끓일 국을 무엇으로 할는지 생각한다. 미역국이나 다시마를 넣은 국이라면 미역이나 다시마를 미리 손으로 끊어서 불려야 한다. 다른 국 또한 이무렵부터 국거리를 손질한다.

 아이는 오늘 따라 아홉 시 반 즈음에 일어난다. 요 몇 달 사이, 다른 날에는 아침 일곱 시 반이나 여덟 시에 어김없이 일어났는데, 하도 신나게 뛰놀다 보니 오늘만큼은 꽤 많이 고단했나 보다. 열 시가 가까워 일어났는데에도 아침밥이자 낮밥을 먹을 무렵부터 눈가에 졸음이 꽤 쌓인 모습이다.

 느즈막하게 일어난 아이를 데리고 비탈논으로 간다. 우리가 짓는 비탈논은 아니고, 웃마을 이오덕학교에서 짓는 비탈논이다. 이 비탈논 둑자리를 따라 송송 돋는 쑥을 뜯는다. 아이는 처음에 몇 차례 아버지 흉내를 내어 쑥을 뜯어 보더니, 이내 논둑이며 논바닥이며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신나게 잘 논다.

 저녁밥을 차리려고 또 한 번 아이를 데리고 논둑으로 나온다.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대로 노래하면서 뛰놀고, 아버지는 바지런히 쑥을 뜯는다.

 내가 옆지기한테 해 줄 만한 선물이란 무엇일까. 없는 돈으로 무엇을 해 줄 수는 없다. 무언가 먹고프다 한다면 자전거를 몰고 읍내로 달려가서 장만한 다음 낑낑대며 돌아올 수 있겠지. 지난 한 해 동안 튀김닭 한 번 피자 세 번 자전거배달을 했다. 이 멧골자락까지 날라다 주는 곳은 없으니까.

 오늘은 아침과 저녁으로 쑥부침개를 해 본다. 아침에 마련한 쑥부침개에는 밀가루가 좀 많이 들어간 듯해서 저녁에 하는 쑥부침개에는 밀가루보다 쑥을 훨씬 많이 넣는다. 아침보다 곱절을 더 뜯은 쑥으로 부침개를 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저녁에는 쑥부침개라기보다 쑥버무리튀김에 가깝다. 조금 더 바삭하게 되도록 해야 할 텐데, 아직 잘 안 된다. 불을 꽤 작게 해서 스텐팬으로 했는데, 불을 이보다 훨씬 작게 하고 기름을 더 적게 둘러서 해야 할까. 불크기는 알맞은데 기름을 살짝 더 둘러 볼까.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다가 멧골자락 작은 집으로 옮긴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라면 봄에는 봄내음이 물씬 나는 밥상을 차리는 데에 있지 않을까 살짝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직 나물을 잘 모른다. 하나씩 배워야 할 텐데, 책으로는 배울 수 없을 듯하다. 이 풀 저 풀 뜯어서 먹으며 몸으로 배워야 하겠지. 망초도 어찌저찌 먹어 보려 하다가, 텃밭을 고르며 하도 많이 나와서 망초를 데치거나 볶거나 어찌저찌 해서 먹어 보려던 마음이 싹 가셨다. 사람들이 왜 망초를 잘 안 먹는지 알 만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질리게 금세 돋아나며 텃밭을 뒤덮으니까, 이 망초를 솎아내자고 얼마나 고달프겠나. 따지고 보면 쑥도 금세 퍼져서 돋곤 하는데, 쑥은 사람한테 향긋한 냄새이면서 봄맛을 돋우기 때문에 그닥 안 싫어할까. 그러나 텃밭 풀을 뽑고 흙을 갈아엎을 때에는 나 또한 쑥이고 뭐고 가리기 힘들더라. 꽃다지이건 뭐건 하나하나 따로 갈무리하기 벅차더라. 참말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갈면서.

 쑥부침개를 아침과 저녁으로 내리 하면서, 국에도 쑥을 꽤 넣어 본다. 국을 마시며 가만히 코를 킁킁거리면 쑥내가 난다. 이 쑥을 앞으로 며칠 더 즐길 수 있을는지, 또는 4월 내내 쑥을 즐길 만한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밥에도 쑥을 넣어 쑥밥을 해 볼 수 있을까. 옆지기한테 한 번 물어 보고 나서 쑥밥을 해 보고 싶다. 뜯을 사람도 적고 먹을 사람도 적으니, 온 논둑과 밭둑 쑥은 도맡아서 뜯고 도맡아서 밥거리로 마련한다. 쑥떡까지는 못할 듯싶지만, 쑥밥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쑥부침개는 옆지기한테 어줍잖게 내민 선물이라면, 쑥밥은 나한테 남우세스레 내미는 선물이 될까. 그러면 아이한테는 어떤 쑥을 내밀어 주면 좋으려나. (4344.4.13.물.ㅎㄲㅅㄱ)
 

 

아침이자 낮밥...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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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할머니, 그림 할머니


 그림 할머님을 네 식구가 찾아뵙는다. 옆지기와 첫째 아이와 옆지기 몸에서 자라는 둘째 아이까지 해서 네 식구가 찾아뵙는다. 그림 할머님으로 당신 고마운 삶을 일구는 박정희 님은 올해로 여든아홉 살이다. 우리 식구는 박정희 할머님이 여든다섯 나이일 때에 처음 뵈었고, 나는 일흔두 살 나이일 때부터 박정희 할머님을 알았다.

 여느 사람들은 그림 할머님인 박정희 님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다. 아니, 안다기보다 이름을 들어 보기도 하고 이름을 못 들어 보기도 한다. 으레 독재자 박정희라는 사람을 떠올리지 그림 할머님을 떠올리지 못한다. 어떤 이는 미국사람 ‘모세 할머니(grandma Moses)’하고 박정희 할머님을 빗대기도 하지만, 박정희 할머님은 그대로 박정희 할머님이다.

 박정희 할머니를 낳아 기른 아버님은 박두성이라고 여쭌다. 박두성 님은 일제강점기에 ‘한글 점글’을 만들었다. 흔히 ‘루이 브라이’라 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박두성 님하고 견주기도 하지만, 박두성 님은 고스란히 박두성 님이다. 루이 브라이라는 사람이 ‘맨 먼저 점글을 만든’ 사람이지는 않다. 점글을 맨 먼저 만든 사람은 따로 있을 뿐 아니라, 루이 브라이 님은 장님이 더 손쉽게 쓸 뿐 아니라 널리 쓸 만한 ‘알파벳 점글’을 만든 사람이다. 박두성 님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장님이 손쉽게 널리 쓸 만한 ‘한글 점글’을 만든 사람이다.

 한글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리라. 그러나 한글 점글을 만든 사람을 아는 한국사람은 매우 적다. 더욱이 한글 손말을 빚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기란 훨씬 힘들다. 나도 아직 ‘한글 손말’을 빚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누가 한글 점글을 만들었는지 이름을 알든 모르든 얼마나 대수로운가. 한글 점글을 찍을 줄 알거나 읽을 줄 알아야지, 한글 점글을 만든 사람 이름만 안대서 무엇이 대단한가.

 딸 넷 아들 하나한테 육아일기를 만들어 선물로 베푼 그림 할머님인 박정희 님을 떠올리거나 기리거나 모시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름만 안다 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며, 놀랍거나 대단하다고 말해 보아야 무슨 뜻이 있는가. 나는 나대로 내 아이를 사랑하면서 하루하루 일굴 수 있으면 된다. 할머님은 할머님대로 할머님 삶을 사랑하고 고맙게 여기면서 할머님 삶을 일구었다. 할머님을 낳아 기른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넋을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사랑이 있기에 일제강점기라는 무시무시한 때에 한글 점글을 만들 수 있다. 사랑이 있기에 다섯 아이에다가 여러 식구를 거느리면서도 그림그리기를 놓지 않을 수 있다. 사랑이 있기에 여든아홉 나이에도 수채그림 교실을 마련해 당신 밥벌이로 삼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사람을 읽어야 한다. 사람을 읽는 사람은 사랑을 읽어야 한다. 사랑을 읽는 사람은 삶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든 그림을 읽든, 또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매한가지이다. 글쓰기란 사람쓰기요 사랑쓰기이며 삶쓰기이다. 그림그리기란 사람그리기요 사랑그리기이며 삶그리기이다.

 내가 박정희 할머님을 좋아하면서 할머님 매무새를 사진으로 담아 보기도 하는 까닭을 든다면, 할머님 스스로 할머님 삶을 사랑하면서 이웃사람과 예쁜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이랄 수 있다. 나는 나대로 우리 시골집에서 네 식구 올망졸망 복닥이면서 더 사랑하고 아끼는 길을 찾고 싶다. 그러나 어제 하루도 나는 우리 아이한테 골을 많이 부렸다. 이쁘다 이쁘다 하고 말해야 하지만, 어쩌면 나는 나한테부터 이쁘다 이쁘다 하고 말을 못하니까 내 아이한테든 옆지기한테든 이쁘다 이쁘다 소리를 좀처럼 못하는 삶에 허덕이는지 모른다. 할머님 말마디를 띄엄띄엄 수첩에 옮겨적었다.


 “그렇게 굶어죽는 집에 시집을 가서 물지게도 못하고 밥도 못해요. ‘너는 그 상태로 시집 올 생각을 했니?’ 했는데, 나는 물지게하고 시집이 관계가 있는 줄 몰랐어. 딸 딸 딸 딸 낳으면서도 너무나 기뻐서, 너무나 예쁘고 말 잘 듣는다 말하면서 …… 나는 내가 하느님께 충성하는 만큼 이 아이들을 길렀는데, 적중했어요 …… 암만 생각해도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에요. 말을 안 들으면 죽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거를 봐요 …… 우리 남편은 상상도 못할 철부지 남편이었어. 나 없으면 밥도 안 먹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그래도, 부모님 모시고 나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끝났어요 …… 이거 어떡하다가, 밥을, 그림 가르치며 먹는 셈이잖아 …… 그림을 그리며 보내잖아, 벅찬 거야, 이 희열의 순간들. 그림 그리는 시간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많은 하나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모자란데,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뭘 그리 감격해 해요?’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시간들이 소중하다고 …… 여기(화평동) 재개발 들어간다잖아. 문짝 팔아 먹고살 수는 없고, 남편이 병원 문 닫은 다음에 유치원을 할까 하다가,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어 힘이 없으니 아이를 들지를 못해 …… 내일 막내딸이 며느리를 얻어, 결혼식이야 …… 자기(막내딸)와 같이 예배 드리던 사람이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 울어야지, 감사해서 ……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되면 돼 … 요즘 사람들은 돈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고, 다들 미쳤어 …… 어느 분이 시험에 붙었어. 그래서 나한테 전화를 하지. 내가 아주 좋아할 줄 알고 …… 그림은 하나님의 솜씨를 그리워하면서 하는 수작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 어떤 이가 밤 아홉 시까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더니, ‘안 돼요, 할머니 노동 착취 하면 안 돼요.’ 하고 다 보내요. 그러니, 그림을 그리던 분이 다 깔깔대요 …… 할머니가 좋아해서 미쳐서 그림을 그리니까, 이분들(나한테 그림을 배우는 분들)도 다 미쳐서 그리는데, 그림을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식구들도 다 좋아한대요. 화백이라고 불러 줘서 좋고, 집에서도 그림을 좋다 해서 좋고 …… 새로 목사님이 오셨는데 젊은 분이야, 목사님이 내 손주뻘 나이네. 아이고 예쁘다 그림 그리고 싶네요 하니까, ‘할머니 그림 그리세요?’ 해서, 네 그림 그립니다 하고는, 처음에 한 시간, 그리고 일 주일 뒤에 한 시간 더 그리면 액자 끼워서 드릴게요 했어 …… 그런데, 한 시간 그림을 그린 뒤에 목사님이 보고 이 그림 나 달라고 그래. 그래서 일 주일 뒤에 다시 와서 더 그려야 한다고 하는데 ‘더 그릴 게 뭐 있어요?’, 화가가 더 그릴 게 있다면 그런 거지요. 그러고 일 주일 뒤에 다시 와서 한 시간 더 그리니까 또 달라고 그래. 그래, 내가 처음에 한 시간 일 주일 뒤에 한 시간 그러고 나서 액자 끼워서 준다고 했지요 …… 그기(그 그림이) 하나님 작품이니까 좋지, 내 작품이니까 좋지는 않거든. 사람이건 자연이건 풍경이건 꽃이건, 내가 아이들을 기를 때에 늘 그렇게 길렀어요. 한 번도 ‘너 때문에 내가 할 일을 못했다’라거나 하지 않았어요 …… 맨날 애들보고 이쁘다 이쁘다만 했어요 …… 난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돈은 못 벌고 사랑만 벌어 온 거 같아 …… 겉으로 미사여구를 잔뜩 늘어놓아도 뱃속으로 아시는 사랑이 하나님이다.” (4344.4.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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