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 책읽기


 첫째 아이랑 살아오던 나날을 돌이키면 둘째 아이랑 살아가는 나날이란 가없이 홀가분합니다. 첫째 아이는 저녁에 재울 때부터 벅찼고, 밥을 먹일 때에도 힘겨우며, 무얼 할 때마다 손이 많이 갔습니다. 둘째 아이는 얌전히 잠들고, 밤에 자주 깨어 힘들게 하지 않을 뿐더러, 손이 퍽 덜 갑니다. 이렇게 착한 아이라면 열이라도 돌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저녁에 잠들지 않으려고 악이나 떼를 쓴대서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밥자리에서 자꾸 딴짓을 하니까 못된 아이가 아닙니다. 이모저모 손이 많이 가기에 얄궂은 아이가 아닙니다. 얌전하건 개구지건 똑같이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아이요, 손이 많이 가건 적게 가건 한솥밥을 먹는 살붙이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말을 잘 들을 때에 착한 아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냥 말을 잘 듣는 아이입니다. 마음을 착하게 쓰면서 살아갈 때에 착한 아이라고 느낍니다. 책을 많이 읽거나 자주 읽을 때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책을 많이 읽은 아이라 할 뿐입니다. 스스로 읽은 책에서 얻은 앎을 사랑하면서 스스로 몸으로 부대끼는 삶을 곱게 맞아들일 때에 비로소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착하게 살아가면서 책을 좋아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4.8.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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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책 읽기, 모르는 책 읽기


 아는 사람은 저 스스로 아는 이야기를 찾아 읽을까. 안다고 여기면서 저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이야기가 참으로 어떠한가를 조금도 안 살피거나 처음 알았을 때 그대로 살아가려나. 모르는 사람은 저 스스로 모르니까 찾아서 읽을 수 없을까. 모르기에 그저 모르니까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몰라도 살아가며 어려움이나 힘겨운 일이 없다고 느껴 그저 이대로 살아가도 좋다고 여기려나.

 아는 책을 굳이 읽어야 하나. 모르는 책을 읽는대서 느낄 수 있나. 아는 책이기에 더 새롭게 알아차리거나 더 깊이 느끼거나 더 남달리 보듬는 삶을 어우르며 읽을 수 있나. 모르는 책이라서 고개숙여 고마이 여기면서 읽거나 새삼스레 놀라며 즐거이 읽거나 이제껏 얼마나 까막잡이였는가 뉘우치며 반가이 읽을 수 있나.

 알기에 기쁘게 집어든다. 모르기에 고맙게 쥐어든다. 알아서 한 번 더 펼친다. 몰라서 처음으로 펼친다.

 알아보기에 눈빛을 밝히면서 책시렁에서 뽑아든다. 여태 몰라보던 나날이었으니까 눈알을 굴리면서 책꽂이에서 살며시 뽑는다. 읽는 사람은 두 갈래이다. 알기에 읽고, 모르기에 읽는다. 안 읽는 사람은 두 가지이다. 안다고 생각해서 안 읽고, 그저 모르니까 안 읽는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와 아이들이 늘 똑같은 모습·삶·넋·몸인 적은 없다. 하루하루 새로워진다. 내가 무엇을 안다 하더라도 내가 살아온 길에 따라 언제나 달리 바라보면서 알기 마련이다. 오늘은 오늘만큼 알고, 글피에는 글피만큼 알겠지. 너르게 사랑하고 따스히 믿고 싶어서, 같은 책을 되풀이해서 읽는다. 곱게 돌보며 살가이 어깨동무하고 싶기에, 낯선 책을 어린이마음으로 읽는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살아내며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이야기로 일군다. 자전거를 다루는 책이든, 사랑을 들려주는 책이든,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이 깃들었으리라 믿으며 신나게 읽는다.

 삶을 아름다이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은, 날마다 거듭나는 넋으로 예쁜 말꽃을 피운다. 말꽃을 읽는 사람은 말숨을 어여삐 쉬면서 말씨를 가다듬고 말꿈을 키운다.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가는 숨결을 이야기로 실어내어 살빛을 살찌우는 살림열매 나눈다. (4344.8.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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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과 책읽기


 서울에서 살아가려면 아주 바빠야 하고, 몹시 바빠야 하며, 언제나 바빠야 하니까, 책을 읽을 수 없는지 몰라요. 책을 읽을 수 없으니, 사람을 읽을 수 없고, 사랑을 읽을 수 없으며, 삶 또한 읽을 수 없을 테지요. 사람과 사랑과 삶을 읽으려 하지 않으니까, 바쁜 나머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랑과 삶을 읽으려 한다면,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거나 바쁜 일을 젖혀 놓고 책을 읽겠지요. 아니, 사람과 사랑과 삶을 아끼려 할 때에는, 바쁜 나날이 아닌 넉넉하면서 따사로운 나날이 되도록 온힘을 기울이겠지요. (4344.8.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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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책읽기


 아버지가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준다. 어머니가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준다. 두 어버이는 어린 날 저희 아이만 할 적에 저희 동무들이랑 신나게 부르던 노래를 저희 아이한테 불러 준다. 두 어버이는 저희 어린 날 둘레 어른이나 저희 어버이한테서 들은 노래를 저희 아이한테 불러 준다.

 어버이는 저희 어버이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저희 아이한테 들려준다. 어버이는 저희 어버이와 살아오면서 듣고 보며 배운 삶자락을 저희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준다.

 모든 사람이 어버이 구실을 해야 하지는 않고, 꼭 어버이 구실을 한대서 어버이 참삶을 깨닫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거나 생각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어버이 구실을 맡을 때에 사람됨과 사람다움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지 않거나 생각을 하나도 가꾸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버이 구실을 하는 때에도 아무것도 못 깨달을 뿐 아니라 엉터리 길을 걷겠지.

 마음을 열 때에 어버이라 할 테지만, 마음을 열어야 어버이이기 앞서 옹근 사람이다. 생각을 가꿀 때에 어버이라 하겠으나, 생각을 가꾸어야 어버이라 하기 앞서 착한 사람이다. 옹글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어버이 몫도 못하지만 사람 몫부터 못한다. 착하게 살아내지 않을 때에는 어버이 자리도 부끄럽다만 사람 자리부터 부끄럽다.

 나와 내 옆지기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노래는 내 아이가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서 제 아이한테 들려줄 노래가 된다. 나와 내 옆지기가 아이한테 차려서 내놓는 밥은 내 아이가 차근차근 몸에 새겨서 제 아이한테 차려서 내놓을 밥이 된다. 나와 내 옆지기가 사랑하며 읽는 책은 내 아이가 새록새록 넋과 얼에 아로새기면서 제 아이와 지내며 스스로 사랑하며 읽을 책이 된다. (4344.8.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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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외버스 책읽기


 고속도로 둘레로 온통 풀빛 수풀과 논밭이 펼쳐집니다. 고속도로를 옆에 끼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동차 소리를 얼마나 어떻게 느껴야 할까 궁금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고속도로 둘레 사람들이 자동차 소리를 어떻게 얼마나 느끼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멈추고 땅에 발을 디뎌야 비로소 이 소리를 깨닫습니다.

 한여름 무더위이든 끔찍하도록 안 그치는 막비이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에어컨 찬바람으로 가득한 시외버스에서는 하나같이 잠들거나 손전화질이거나 주전부리질이거나 수다질입니다. 나는 잠든 아이를 허벅지에 눕힌 채 커다란 배낭에서 책 한 권 꺼내어 읽습니다. 마실을 떠나면서 책 한 권 옳게 읽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잠든 틈에 몇 줄이라도 읽고픈 마음에 무거운 배낭에 무거운 짐이 될 책 한 권을 챙겼습니다.

 시외버스를 탄 고등학생과 대학생치고 책을 읽는 이를 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시외버스를 탄 어버이랑 아이치고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기 대단히 힘듭니다. 시외버스를 탄 할머니랑 할아버지, 아주머니랑 아저씨들 가운데 책을 읽는 사람이란 거의 없다뿐 아니라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여느 때부터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 드뭅니다. 가게를 지키면서 쉬는 결에 책을 읽는다든지, 손님이 없는 동안 조용히 책을 펼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전철이나 기차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썩 드물지만,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더욱더 드뭅니다. (4344.8.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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