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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이름과 책읽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을 펼쳐 읽다가 문득 책날개에 적힌 해적이를 들여다본다. “1952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고, 목포교육대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라는 대목이 첫 줄에 나온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이야기야 으레 적을 만하지만, 어느 대학교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꼭 적어야 했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면, 어느 해에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도 굳이 안 적을 만하다만, 사랑을 어떻게 받고 꿈을 어떻게 키우며 삶을 어떻게 일구었는가 하는 이야기와 함께 곁들인다면, 나란히 적어도 괜찮을 나이요 고향이라고 본다. 그런데 대학교 이름은 왜 밝혀야 할까. 대학교 이름을 밝힌다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이름은 안 밝혀도 될까.

 발자국을 찬찬히 밝히려 한다면 학교이름 적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다. 그렇지만, 몇 줄 안 되는 책날개에 학교이름을 적느라 한두 줄이나 두어 줄을 흘린다면, 정작 책쓴이 삶을 더 깊이 돌아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셈이 아닐까.

 학교가 사람을 얼마나 가르칠까. 학교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칠까. 학교를 다닌 사람은 무엇을 배울까. 학교에서 사람은 어떤 사랑과 꿈과 삶을 배울까. 학교는 사람한테 무슨 책을 읽힐까.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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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mphotonet/5926 

수채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할머님 육아일기가 다시 나온다. 

할머니가 아직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돌보면서 살아가실 때에 

이 책이 다시 나오니 참으로 반갑다. 

새로 나오는 판은 예전에 나온 판이 편집을 너무 어수룩하게 해서 

책맛을 잃게 했던 아쉬운 대목을 잘 추스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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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용과 책읽기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책을 읽지 못한다. 버스를 모는 이 가운데 무척 드물게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고 틈틈이 읽는 사람이 있다지만, 자가용 모는 사람 가운데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으며 틈틈이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짐차를 몰거나 택시를 모는 사람은 어떠할까. 온누리 온갖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모는 겨를하고 책을 읽는 겨를이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누구나 앞을 보며 달린다. 옆을 보거나 뒤를 볼 수 없다. 다른 자동차하고 받거나 스치지 않자면 옆거울이나 뒷거울을 본다. 그렇지만 옆이나 뒤를 보지는 않는다. 앞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앞산이나 앞들이나 앞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오직 앞길과 앞차만 바라볼 수 있다.

 집에서 식구들을 태우는 자가용일 때에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다. 모든 삶터는 휙휙 스친다. 달리기를 멈추고 오래도록 한 곳에서 느끼거나 누리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숲 사이 찻길을 달린다 하더라도 스치면서 살짝 맛보는 숲길이 될 뿐, 오래도록 멈추어서 숲과 바람과 하늘과 멧새와 풀벌레가 어찌 어우러지는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자동차는 소리가 시끄럽다. 모든 자동차는 라디오를 틀든 노래를 듣든 소리를 키워야 들린다. 모든 자동차는 바깥에서 어떠한 소리가 나는지 들을 수 없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귀뚜라미가 울든 꾀꼬리가 울든 아이들이 조잘조잘 놀이노래를 부르든 자동차는 이 모든 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둘레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야 만다.

 모든 자동차는 아주 바쁘다. 가까운 길이든 머나먼 길이든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자동차일 뿐이다. 가까운 길을 가깝게 즐기거나 머나먼 길을 머나멀게 누리도록 하는 자동차는 없다.

 오토바이를 타면 바람을 짜릿하게 맛본다지. 그래, 바람을 짜릿하게 맛보기는 한다. 그렇지만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소리가 크게 난다. 둘레 소리를 죄 잠재울 뿐 아니라, 바람을 짜릿하게 맞는 동안 둘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산들바람에 숲나무마다 나뭇잎이 반짝반짝 나부끼며 예쁜 소리를 내든, 어미새가 먹이를 찾아 새끼새한테 먹이며 고운 소리를 내든,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더 소리를 죽이고 더 삶을 죽인다.

 자동차를 몰면 운전대 옆에 책을 얹는다든지 놓으면서 건널목 신호에 걸릴 때에 들출 수 있는지 모르나, 오토바이를 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오토바이를 몰기만 할 뿐이다.

 나는 나부터 자가용이 되든 오토바이가 되든 몰거나 가지고 싶지 않다. 책읽기를 등질 뿐 아니라 책읽기를 짓밟는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는 밉다.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나중에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몰겠다 할 수 있겠지. 다 큰 아이들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말라 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 큰 아이들은 저희 하고픈 대로 해야 한다. 다만, 아이들한테 한 가지를 느끼도록 한 다음 저희 하고픈 대로 하라고 해야 어버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소리와 냄새와 바람과 숲과 새와 흙과 햇살과 나무와 하늘과 별과 달과 냇물과 골목을 조용히 맞아들이고 나서 저희 하고픈 대로 하도록 하고 싶다. 이원수·이오덕·권정생·임길택·송건호·리영희·김남주·신동엽·김수영·고정희·윤정모·박경리 같은 사람들 글을 좋아하거나 아끼는 아이로 자란다면, 아이들은 맑으면서 밝은 길을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갈 테지.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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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난 책읽기


 재미나다고 느끼는 책을 읽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누구나 재미난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다. 누구라도 재미나다 싶은 이야기에 눈이나 귀나 마음이 쏠리기 마련이다.

 나는 재미난 책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재미나다 싶은 책 또한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책이다. 내가 기쁘게 장만하는 책은 참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끼는 책이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면 아주 고맙다고 여긴다. 이러한 책을 쓴 사람과 이러한 책을 엮은 사람 모두 더없이 고맙다고 절을 하면서 장만해서 읽는다. 이러한 책을 갖춘 책방 일꾼 또한 참말 고맙다고 절을 한다.

 곰곰이 돌아보면, 재미난 책은 아주 많다. 아름다운 책도 퍽 많다. 재미나면서 아름다운 책도 꽤 많다. 그러나,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은 아주 드물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은, 아름다움이 재미로 녹아들고 사랑스러움이 재미로 스며든다.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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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6-12 08:45   좋아요 0 | URL
어머...벼리 넘어졌었나봐요.
많이, 오랫동안, '호오~'해 주셔야 겠어요.

숲노래 2011-06-12 13:21   좋아요 0 | URL
자전거에 태워 마실 다녀오는 길에 수레가 뒹굴어서 까졌는데 이제 다 아물었어요. 아버지 생채기는 흉으로 남았지만, 아이는 다 사라지네요 ^^;;;
 



 미역국 책읽기


 철모르던 때에는 가위로 미역을 잘라서 불린 다음 끓였습니다. 철이 조금 들 무렵 손으로 미역을 끊어서 불린 다음 곱니다. 미역국은 ‘끓일’수록이 아니라 ‘골’수록 맛이 한결 우러납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댁으로 돌아가시고 닷새가 됩니다. 닷새를 보내며 저녁나절 기저귀 빨래를 하고 미역을 새로 끊어 불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애 엄마 몸풀이(산후조리)를 집에서 홀로 맡아서 하는구나’ 하고. 첫째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둘째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옆지기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이렇게 홀로 맡아서 한다고 새삼 느낍니다.

 집일을 잘하든, 집살림을 잘 못 꾸리든,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맡아 꾸리는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을 더 튼튼히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도와주거나 맡을는지 모르지만, 남이 돕기를 바란다거나 옆지기가 하루아침에 기운을 차려 주먹 불끈 쥐며 모든 집일과 집살림을 짊어져 주기를 꿈꿀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튼튼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맑아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착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아요.

 이듬날 아침에 새로 골 미역국을 헤아리면서 두부와 버섯을 잔뜩 지집니다. 이듬날 아침에는 호박을 잔뜩 지지자고 생각합니다. 날푸성귀랑 참외랑 토마토를 잘 썰어 무침을 하나 하자고 생각합니다.

 하루일로 고단한 몸을 드러누우면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돌리지 못하고 그저 땅바닥에 찰싹 들러붙습니다. 흙하고 아주 가깝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흙하고 더 가까이 들러붙다가는 아주 흙하고 하나가 될 테지요.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가늘게 내다가 생각 한 자락을 더 하고는 까무룩 곯아떨어집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밥을 먹고 새옷을 갈아입으며 잠자리에 드는데, 왜 사람들은 날마다 먹는 밥이랑 날마다 입는 옷이랑 날마다 지내는 살림집 이야기를 글로 안 쓸까 하고 생각을 살짝 합니다. 밥하거나 빨래하거나 살림하는 나날이란 글로 적바림할 만한 값이 없을는지요. 밥하기 빨래하기 살림하기는 책으로 엮일 만한 뜻이 없을는지요.

 바쁘거나 힘들거나 아프다면 빨래기계를 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빨래기계는 사람들 몸과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사람이라면 제 옷은 제 손으로 빨아서 입어야 합니다. 빨래를 도맡을 집일꾼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나 여자가 집일을 도맡는 집일꾼이지 않습니다. 내 밥은 내가 차리고 내 옷은 내가 빨며 내 살림집은 내가 돌보아야 합니다. 밥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남자란, 사람 구실을 못하는 아버지이거나 남자입니다. 밥할 줄 아는 어머니와 여자는, 사람 구실을 얼마나 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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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6-12 07:22   좋아요 0 | URL
갓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 빨래 기계 없이 빨래를 해대기란 참 쉽지 않더군요. 저도 한동안 아이 옷은 손빨래로 빨아 입혔는데 정말 아이고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오더라고요.

주로 새벽에 글을 쓰시지요? 아침에 서재에 들어오면 늘 된장님 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숲노래 2011-06-12 07:34   좋아요 0 | URL
새벽 아니면 글을 쓸 수 없거든요 ^^;;;;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일을 하고 아이랑 부대끼고 나서... 겨우겨우 밤에 살짝 눈을 붙였다가 밤새 둘째 똥기저귀 갈고 빨며 하다가 끼적끼적 합니다.
첫째가 태어난 날부터 하루에 두 시간 넘게 잔 날이 거의 없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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