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책읽기


 첫째가 오줌그릇에 눈 똥을 치우려고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 가장자리에 놓은 거름통에 아기 똥오줌을 붓는다. 도랑 뒤쪽 숲에 하얀나비 하나 팔랑거린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졌지만 엿새째 이어지는 날씨에 어디에서 어디로 날아가는 나비일까. 빗방울을 맞으며 한동안 바라보니, 하얀나비는 텃밭 감자꽃에 살짝 앉으려다가 다시 팔랑거리며 다른 곳으로 간다.

 집으로 들어온다. 쇠수세미로 아이 오줌그릇을 씻는다. 물기를 털어 제자리에 놓는다. 집 안쪽에서 바깥쪽에서나 빗소리만 들린다. 바람소리도 새소리도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나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 또한 들리지 않는다.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논마다 찾아 날아드는 왜가리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빗줄기가 스무 날 서른 날 이어지지는 않겠지. 머잖아 똑 끊기고 쨍쨍 눈부신 날이 찾아오겠지. 쨍쨍 눈부신 날이 찾아오면 비로소 빗소리에 잠기거나 숨죽이는 모든 소리가 깨어나겠지.

 아침 낮 저녁 밤 새벽 내내 빗소리만 들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토록 빗소리만 들으면서 지낼 수 있는 나날이 좋다. 첫째하고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보다가는, 아버지 혼자 문학책 《하이디》를 읽는다. (4344.6.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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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치구이와 책읽기


 갈치를 굽는다. 스텐팬에 불을 아주 작게 넣고 천천히 굽는다. 어머니가 하셨듯 접시에 구운 갈치를 얹고, 어머니가 하셨듯 갈치 살을 발라 아이 밥그릇에 얹는다. 어머니가 하셨듯 몸통을 아이랑 옆지기한테 주고, 어머니가 하셨듯 가장자리 가시 있는 데를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4344.6.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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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07-03 09:24   좋아요 0 | URL
하하하 !!! 종규님은 저랑 똑같네요~~

숲노래 2011-07-03 16:26   좋아요 0 | URL
아, 네. ^_^
 



 30분 책읽기


 새벽 두 시 반에 번쩍 깬다. 저녁 열 시쯤 쓰러질 듯 가까스로 잠들었다. 첫째는 더 놀고 싶다며 앙앙 울고, 둘째는 토닥토닥 안아도 어머니가 젖을 물려도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잠자리에 네 식구가 드러눕고 불을 끄니 첫째는 금세 곯아떨어지고, 둘째도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새끼돼지 둘이 잠든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도 곯아떨어진다.

 이래저래 뭔가를 알 수 없는 참으로 뒤죽박죽인 꿈누리에서 헤매다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서 시계를 찾는다. 몇 시이지? 두 시 반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허둥지둥 첫째 엉덩이에 손을 댄다. 안 젖었다. 아직 쉬를 안 누었군. 여느 날보다 늦어서 걱정스러웠으나 잘 참았구나. 첫째를 덮은 이불을 걷고 두 손을 살며시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쉬, 쉬.” 하고 말한다. 아이는 발목이 꺾이고 무릎이 접히지만 용케 걸어 준다. 오줌그릇에 앉힌다. 아이 스스로 속옷을 내리고 쉬를 보아야 할 테지만, 몇 달쯤 아버지가 내려 주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쉬를 다 눈 다음에도 아버지가 올린다. 이러고 나서 다시 아이 손을 잡고 잠자리로 오고, 잠자리에서는 아버지가 번쩍 안아서 눕히고 이불을 여민다. 굳이 번쩍 안지 않아도 되지만, 둘째가 있기도 하고, 아이가 싫다고 할 때까지는 이렇게 해 줄까 하고 생각한다. 길어야 열 살까지 이렇게 해 주겠나.

 아이가 다시 잠든 모습을 보고 나서 기지개 켤 틈 없이 보일러 단추를 누른다. 잠자기 앞서 해 놓은 기저귀 빨래가 얼마나 말랐는가 만진다. 방바닥에 펼쳐 말린 기저귀는 꽤 말랐기에 차곡차곡 접는다. 보일러 도는 김에 더 마르라 해 놓고는 그동안 쌓인 새 빨래를 한다. 바닥에는 열석 장이 깔리고, 새로 할 빨래는 열 장.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래할 때에도 손바닥이 제법 아렸고, 새벽에 빨래할 때에도 손바닥이 꽤 아리다. 그렇다고 이 빨래를 누가 해 줄 수 없다. 빨래기계를 들인다고 될 일이 아닐 뿐더러, 빨래기계 값은 꽤 비싸다. 더욱이, 우리 집에는 빨래기계 놓을 마땅한 자리가 없다. 빨래기계 값이라면 어머니 자전거랑 아이 자전거수레를 새로 장만하고 남는다.

 똥오줌기저귀 열 장을 다 빨고 빨랫대에 여섯 장 걸고 넉 장은 집안 이곳저곳에 옷걸이로 걸친다. 남은 기저귀는 일곱 장이고, 열석 장은 삼십 분쯤 뒤에 개어 둘째 머리맡에 놓아야지. 이제 아침까지는 걱정없다. 다시 시계를 본다. 세 시 이 분. 빗줄기는 쉬거나 끊이지 않는다. 다른 날이라면 달빛이 저물며 새벽 햇빛이 천천히 어우러질 무렵인데, 엿새째 이어지는 빗줄기 새벽은 더없이 조용하면서 어둡다. 좋은 새벽이다. (4344.6.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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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 책읽기


 저녁에 똥오줌기저귀를 빠는데 손바닥이 아프다. 손바닥이 통째로 굳은살이긴 하더라도 새벽부터 이듬날 새벽까지 쉴새없이 빨래를 해야 하면 손바닥이 아프다. 빨래를 하는 사이사이에는 밥을 차리고 치우며 아이를 씻긴다. 게다가 요사이에는 책짐을 싸느라 날마다 두 시간 즈음 끈을 만지작거린다. 오늘은 모처럼 기운을 내어 저녁 잠자리에서 아이한테 그림책을 하나 읽어 주었다. 집일이 많다지만 아이하고 살가이 복닥일 겨를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아이 앞에서 어버이라 할 수 있겠느냐 뉘우친다. 투박하고 거칠며 딱딱한 손바닥으로 보드라운 아이 볼을 쓰다듬고 종아리와 허벅지를 꾹꾹 주무른다. 이 아이는 오늘 하루도 앉을 새 없이 뛰고 노느라 다리가 퍽 아팠겠지. 아이한테 팔베개를 살짝 해 주다가는 아이보고 제 베개를 베고 누우라 이야기한다. 아이는 제 베개를 베고 아버지 쪽을 바라보며 누워 키득키득 웃고 종알종알 떠들며 놀다가 어느새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하다가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자는 아이를 토닥토닥 한 다음 일어나서, 밤새 또 기저귀 빨래가 얼마나 나올는지 모르기에 똥기저귀 석 장을 빤다. 오줌기저귀 넉 장이 남는다. 석 장을 빨고 둘째를 옆지기하고 재우려고 애쓰는데 좀처럼 잠을 잘 자지 못한다. 한 시간 반쯤 울고 낑낑거리다가 비로소 잠든다. 이동안 똥기저귀가 새로 두 장, 오줌기저귀가 새로 한 장 나온다. 아이는 어머니 옷에까지 똥을 발랐기에 어머니 옷 빨래가 하나 더 나온다.

 두 시간쯤 쉬었다가 기저귀 넉 장쯤 또 빨아야지. 두 시간쯤 뒤에 물을 만지면 손바닥은 덜 아플까. 생각해 보면, 나는 이런저런 집일을 도맡기는 하지만, 바느질이나 뜨개질까지 하지는 않는다. 아이 옷을 내가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서 입히지 않을 뿐더러, 이불을 꿰지도 않는다. 밥을 할 때에 절구를 들어 쌀을 빻아 겨를 벗기지 않는다. 장작을 패어 불을 땐다든지, 삭정이를 긁어모으는 일을 하지 않는다. 밭에서 푸성귀를 거두어들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집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터라 손바닥이 아프다 할 만한지 모른다. 하루에 한 쪽이라도 책을 읽자며 다짐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쪽을 더 읽느라 내 손바닥이 더할 나위 없이 ‘일하거나 살림하는 사람 손바닥’이 못 되어, 자꾸 쓰라리거나 따끔거리는지 모른다. (4344.6.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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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일과 책읽기


 장마철 첫날, 음성 장마당에 수레를 단 자전거를 끌고 다녀온다. 아이를 태우고 함께 다녀오고 싶었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틀림없이 비가 퍼부을 듯해서 혼자 나가기로 한다. 고뿔이 나서 한동안 자전거를 안 태웠기 때문에, 또 몸이 아파서 바깥에 함부로 나가지 말라고 한 터라, 아이는 서럽디서럽게 운다. 바깥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한참 듣다가 장마당 마실을 갔다.

 음성 읍내에 닿기 무섭게 빗줄기가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를 쫄딱 맞는다. 집식구 먹을거리를 가방과 수레에 실은 채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나는 여태껏 얼마나 오랫동안 자전거 안장에서 살았을까.

 나한테 자가용이 있어 읍내 장마당에 휙 다녀올 수 있다면, 가고 오는 데에 고작 십 분쯤 걸리리라. 나한테 자전거가 있어 읍내 장마당에 땀 뻘뻘 흘리며 낑낑거리는 데에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나는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자전거에 앉은 채 길에서 흘리는 겨를이 길까?

 빗물을 혀로 핥으며 더 생각한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이라면 읍내 장마당 다녀오는 데에 얼마 걸리지 않을 테지만, 다른 곳을 돌아다니느라 외려 자동차 걸상에 훨씬 오래 앉은 채 보내리라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추스른다. 아이와 옆지기가 먹을 밥을 차리기 앞서, 몸을 씻는다. 내 몸을 씻어 땀기를 가신 다음, 둘째 갓난쟁이를 씻기고, 네 살박이 첫째를 씻긴다. 이런 다음 아이와 옆지기가 먹을 밥을 차린다. 부산을 떨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집안일을 하는 데에 얼마나 기나긴 겨를을 들이면서 살아가는가. 밥을 차리는 데에, 설거지를 하는 데에, 빨래를 하는 데에, 집안을 쓸고 닦는 데에, 아이를 돌보는 데에, ……. 이와 함께, 이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한테는 얼마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가를 곱씹는다.

 이모저모 따지니, 하루 가운데 책읽기에 들일 만한 겨를은 아예 없다. 책읽기를 할 틈이 생길 수 없다. 1분이라도 등허리를 펴고 자리에 누워 한숨을 돌려야 겨우 다음 일을 할 만하구나 싶다.

 깝깝한가? 고단한가? 괴로운가? 슬픈가? 서운한가?

 아이와 옆지기가 새근새근 잠든 깊은 밤에 깨어 똥오줌기저귀 일곱 장과 이것저것 빨래하는 동안 다시금 생각한다. 나는 고작 서너 해 이렇게 아이키우기로 온삶을 바친다지만, 내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님은 당신 아이들 보살피는 데에 온삶을 쏟았다. 나는 이것저것 하면서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다지만, 내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님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또 내 어머니를 낳아 돌본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님을 낳아 보살핀 어머님은 어떤 삶이었을까. 당신들은 얼마나 오랜 나날을 집안일을 하면서 보내야 했을까.

 참말, 집안일을 하면서 책읽기를 할 수는 없다. 집안일로 온몸 기운이 쏘옥 빠져나가고 눈코 뜰 사이 없는 터라, 책읽기를 생각할 틈바구니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일에 매인 채 살아가면,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물려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일만 하는’ 어버이를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까.

 더없이 고되지만, 1분 더 쉬기보다는 1분이라도 말미를 내어 책을 펼치자고 다짐한다. 고작 하루에 1분이더라도 수첩에 글을 끄적이자고 다짐한다. 아이는 책을 펼치거나 글을 끄적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책 읽어?” “공부해?” 하고 묻는다. 아버지는 “응, 책 읽어.” “그래, 공부해.” 하고 말한다.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이는 놀이를 한다고 시늉한다. 저랑 더 기쁘게 놀아 주지 못하는 어버이인 탓에 말을 잘 안 듣거나 말썽을 피우곤 하지만, 아이는 참 착하다. 예쁘다. 이 착하고 예쁜 아이는 앞으로 제 삶을 빛내거나 밝히는 고운 책을 스스로 즐거이 찾아내어 맞아들일 수 있기를 빈다. 이러면서 집안을 돌보는 일과 살림이 무엇인지를 슬기롭게 깨달아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힘겨운 나날이 이어지는 어버이로서, 아픈 옆지기가 집일이나 집살림을 거의 거들지 못하는 나날을 늘 맞이하는 어버이로서, 우리 집 아이들이 한손에는 걸레나 호미나 빨래비누를 쥐고, 다른 한손에는 책이나 연필이나 물감을 들기를 비손한다. (4344.6.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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