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모르는 책읽기 (책 읽어 주는 남자 the reader)


 여관 텔레비전을 켜도 왜 이리 볼 만한 영화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아 바보야, 쿡 채널인가 뭔가로 들어가면 거저로 보는 영화가 있잖아, 하고 떠올립니다. 영화만 나오는 방송이라 해서 언제 어떤 좋은 영화가 흐를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언제라도 찾아보며 볼 수 있는 영화를 보았어야 합니다.

 거저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무엇 있나 살펴봅니다. 〈책 읽어 주는 남자(the reader)〉라는 작품이 눈에 뜨입니다. 내가 책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이 영화가 눈에 뜨이는지 모릅니다. 영화를 돌립니다. 영화이름 그대로 책을 읽어 주는 사내가 나옵니다. 이 사내는 학생입니다. 이 학생은 당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한테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지만 아직 사람과 삶이 무엇인지는 한참 모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나누는 사랑에 차츰 젖어들지만, 이 사랑이 사람한테 어떻게 스미고 이 사랑으로 어떠한 삶을 일굴 수 있는가를 깨달으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그나저나 가장 큰 일이 있으니, 이 학생이 사랑하는 이가 글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학생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한테 책을 읽어 줍니다. 책을 읽어 주고 사랑을 꽃피우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합니다. 이동안 이 학생이 사랑하는 이한테 가장 큰 일이 너무 아픈 어려움으로 찾아옵니다. 이 학생이 사랑하는 이는 글을 몰라 글을 아무것도 읽지 못하는데, 밥집에서도 차림표를 읽지 못하는데, 이 사람이 일하는 일터에서 이 사람이 일을 알뜰히 잘 한다면서 ‘현장직에서 사무직으로 바꾸어 주는 승진’을 시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아무것 아닌지 모릅니다. 이 사람한테는 곧 훨씬 커다란 아픔이 찾아듭니다. 글을 몰라 일자리 찾기 수월하지 않은 이 사람으로서는 몸으로 움직이는 일만 할 뿐이요, 흔한 말로 ‘단순노무직’만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그예 ‘단순노무직’이라고 여긴 ‘감시원’ 일을 합니다. 감시원이라는 일을 누가 시키고 왜 시키는가는 따지지 않습니다. 아니, 따질 수 없어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되는 일자리이거든요. 이 사람은 ‘일자리’로서 ‘감시원’이 되는 길을 걷습니다. 다만, 이 사람은 하나도 몰랐습니다만, ‘감시원 일자리’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뒤 유태인을 가두었던 수용소 감시원 일자리’였습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서 늙습니다. 감옥에서 조용히 흰머리가 늘며 할머니가 됩니다. 아주 흰바구니가 된 때에 처음으로 글을 익힙니다. 한 낱말씩 아주 더디게 글을 익힙니다.

 이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한 사내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사내는 법학과 대학생이 됩니다. 사내가 법학과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 전범재판이 열리고, 사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전범재판에 붙들려 나옵니다. 사내는 그예 멀거니 떨어져서 바라보는 구경꾼으로 지나갑니다. 왜냐하면, 대학생이 된 뒤에도 아직 참사랑을 모르고, 참사랑을 깨닫지 않으며, 참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거든요. 사내는 ‘마음열기’를 하지 않을 때에는 사랑이 될 수 없는 줄 모릅니다. 이러한 삶을 둘레에서 옳게 일깨우지 못하기도 했다 핑계를 돌릴 수 있을 텐데, 더 깊이 파고들면, 사내를 둘러싼 숱한 사람들도 참사랑을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참사랑으로 꽃피우는 참삶으로 나 스스로 참사람이 되는 길을 밝히지 않아요.

 이 사람이 글을 익힌 까닭은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돈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을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힘을 움켜쥐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냅니다.

 살을 섞는 일은 살섞기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놀이라 할 수도 있을 텐데, 사랑하는 ‘놀이’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을 열어 사랑을 하지 않고서야, 숱한 다른 여자(또는 남자)하고 살을 섞건 뭐를 하건 사랑이 꽃필 수 없습니다. 사랑이 꽃피지 않는데 열매를 맺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씨앗을 내지 못해요. 언제까지나 외로우면서 갑갑하게 돈벌이만 하거나 이름얻기만 하거나 권력바라기로 지낼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아끼려는 사람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공직자가 될 꿈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을 돌보려는 사람은 회사원이나 노동자가 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바라보며 사랑을 바라는 사람은 내 사랑을 살찌울 살림을 일구려 합니다. 나와 내 살붙이 밥과 옷과 집을 아름다이 마련하는 살림을 따사로우면서 넉넉하게 일구려 합니다.

 베엠베란 자가용을 몬대서 뜻을 이루었다 할 수 없습니다. 아파트 몇 채를 살 만한 돈을 모았대서 꿈을 이루었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가용이 아니니까요. 사랑은 돈도 재산도 부동산도 아니니까요. 7급 공무원이나 3급 공무원이 되면 사랑을 이룬 셈일까요? 연봉 1억이나 3억이면 사랑을 꽃피운 셈일까요?

 사랑이 없는 사람은 더 많은 돈벌이가 되는 길에서 허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이름내기에 더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어 주던 사내는 ‘책’이라고 하는 ‘허울’을 읽었습니다. 책이라고 하는 마음밭에서 자라나는 사랑을 읽지 못했습니다. 사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흰바구니 할머니가 되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던 날, 감옥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사내가 선물한 책을 굳은살 가득한 맨발로 밟고 올라서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야 비로소 이제껏 ‘사랑을 등지’거나 ‘사랑 앞에서 고개를 돌린’ 채 바보스런 허울을 좇으며 삶을 갉아먹은 줄 조금 느낍니다. 이리하여, 이제서야 당신 딸아이한테 당신이 ‘마음을 열지’ 못했고, 당신이 헤어진 옛 옆지기한테도 ‘마음을 안 열’며 바보스레 삶을 내동댕이친 줄을 살짝 느낍니다.

 사랑이지 않은 삶은 덧없습니다. 사랑이지 않은 책은 부질없습니다. 사랑으로 살아낼 하루입니다. 사랑으로 읽어낼 책이며 이야기입니다. (434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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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 숙제 책읽기


 여름과 겨울을 맞이하는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독후감 숙제를 낸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책읽기를 하도록 이끌면서 느낌글을 쓰라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늘 독후감 숙제를 낼 뿐이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독후감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내가 쓴 느낌글을 읽고는 ‘독후감 숙제에 도움이 되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퍽 자주 남기곤 한다. 여름방학이 곧 끝날 즈음이 되어서인지, 요즈음 들어 이런 인사말을 자주 듣는다. 참으로 철없이 숙제를 내고 숙제를 하는구나 싶어, 내 누리사랑방이나 누리모임에 올린 느낌글을 ‘갈무리 못하게’ 할까 싶기도 하지만, 구태여 울타리를 치고 싶지는 않다. 숙제를 하려고 내 느낌글을 읽어 주면서 아이들 스스로 저희 느낌글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그렇지만, 숙제에 얽매인 아이들로서는 저희 느낌을 헤아릴 겨를이 없겠지. 바삐바삐 숙제를 마쳐야 할 테지. 점수를 따져야 하고, 눈치를 보아야 하며, 시험에 휘둘려야 할 테지. 이 아이들은 독후감 숙제가 걸린 책을 제대로 읽기는 했을까. 독후감 숙제가 걸리는 책은 얼마나 읽을 만할까. 학교 교사는 아이들한테 내주는 ‘독후감 숙제’가 걸리는 책을 찬찬히 읽었을까. 교사들부터 이 책들을 차분히 읽으면서 사랑스레 느낌글을 쓴 적이 있을까. 아이들이 독후감 숙제를 내야 한다면, 교사 또한 방학 동안 어떠한 책을 읽었는가를 아이들 앞에서 밝히며 교사 나름대로 적바림한 느낌글을 교실 뒤쪽에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이 아파도 다시 끄적이지만, 독후감은 글이 아니고 느낌글 또한 아니다. 독후감 숙제를 한다며 읽는 책이란 책이 아닐 뿐 아니라, 책읽기가 될 수 없다. 독후감을 쓰는 사람은 바보가 되려는 사람이며, 독후감 숙제를 내거나 독후감 숙제를 하는 사람 모두 삶을 뒷전으로 미루면서 아름다운 길하고 등지는 셈이다. (4344.8.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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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거미줄 책읽기


 칠월에 이어 팔월에도 해를 보기 어렵다. 햇살 구경하기 어려운 나날이 이어진다. 햇살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소리는, 빨래를 해서 말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빨래를 해서 말리기 어려우니까, 이불 빨래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불을 햇볕에 보송보송 말리지 못한다.

 몇 시간째 그치지 않던 비가 새벽에 이르러 겨우 그친다.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다. 빗소리를 좋아하지만, 몇 시간 내리 퍼붓는 빗소리는 하나도 달갑지 않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새벽에 그친 빗소리에 이어 새벽 다섯 시 이십 분부터 매미 우는 소리가 찾아든다. 아침이 되니 매미랑 온갖 풀벌레가 함께 우는 소리가 스며든다. 낮나절 먹을 쌀을 씻어서 불리다가 부엌 조그마한 창문으로 텃밭 쪽을 바라보는데 거미줄에 걸린 물방울이 보인다. 빗물이 걸렸을까, 이슬이 걸렸을까. 멧자락 안개가 걸렸을까. 멧꼭대기 쪽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걸려 햇살을 가로막는다. 이 구름이 걷혀야 모처럼 마당에 내놓은 빨래가 잘 마를 텐데. 하늘에 구름이 사라져야 이불을 빨래할 텐데.

 《인간의 벽》 둘째 권을 오랜만에 집어든다. 석 달 만에 집어들었나. 석 달 앞서 읽었으면 생각밭을 더 깊이 가다듬을 수 있었을까 어림한다. 오늘 읽기에 오늘부터 생각밭을 더 알뜰히 일굴 수 있나 헤아린다. 석 달 뒤, 또는 세 해 뒤, 아니면 서른 해 뒤 읽는다면 뒤늦게나마 생각밭을 더 널리 돌볼 수 있나 곱씹는다.

 어제는 어제대로 아름다운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대로 아름다운 날이다. 하루를 지내고 또 하루를 지내는 새로운 날은 새롭게 아름다울 날이 되겠지. 이시카와 다쓰조 님이 느낀 높직한 사람울타리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김없이 걷히지 않을 테고, 사람울타리를 세우는 사람은 사람울타리가 무언가를 깨닫지 않는데다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슬프며 안쓰러운 나날을 느끼지 못하겠지.

 해가 나면 거미줄 이슬 또는 물방울은 마른다. 거미는 새 먹이를 기다리며 숨죽이리라. (4344.8.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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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1-08-13 14:45   좋아요 0 | URL
오... 시까지 띄워 주시고,
고맙습니다~~ ^^
이러한 시를 쓰는 분이 있군요~~~
 



 호박꽃 책읽기


 텃밭에 호박씨를 심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호박싹이 텄고 호박줄기가 올랐으며 호박잎이 돋다가는 그예 호박꽃이 핀다. 내가 한 일이라면, 둘째가 태어난 뒤로 텃밭을 도무지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밥을 할 때에 호박 찌끄레기를 텃밭 한쪽에 버린 한 가지. 호박 찌끄레기에 깃들던 호박씨 몇이 텃밭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터서 노란 꽃방울을 함지박만 하게 터뜨렸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똑같은 그림책을 수백 차례 되풀이 읽는다. 한 번 보고 그닥 다시 보고프지 않은 그림책을 사고 난 뒤에는 돈을 잘못 썼다고 생각한다. 지식이나 상식을 다룬다든지, 옛사람 살림살이나 장마당을 보여준다든지, 지구별 여러 나라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그림책을 아이들이 수백 차례 보기는 힘들다. 수백 차례 되풀이해서 볼 만한 그림책에는 이야기가 깃들어야 한다. 날마다 먹는 밥처럼 날마다 여러 차례 되읽을 만큼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여야 한다.

 둘째가 혼자 잘 놀기도 한다. 그렇지만 곁에서 말끄러미 바라보며 함께 놀자고 해야 훨씬 잘 논다. 조막만 한 손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고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힘을 쓰게 하기만 해도 까르르 웃는다. 두 발을 하나씩 쥐고 하늘달리기를 해 주어도 즐겁게 웃는다.

 어버이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기쁘게 맞아들이도록 돕는 책을 한 권 두 권 아끼면서 그러모으지 않는다면, 아이하고 책읽기를 할 수 없다. 어버이로 지내면서 어버이다운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책을 한 권 두 권 살피며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이한테 책을 물려줄 수 없다. 호박꽃은 흙땅에 씨를 뿌리내리면 피어나지만, 씨앗이 있어야 하고 흙땅이 있어야 한다. 빗물이 있어야 하고, 햇살이 있어야 하며, 바람이 있어야 한다. (4344.8.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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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 책읽기


 해가 났다가 구름이 가득하고, 빗줄기가 퍼부었다가 어느새 그치는 날씨.

 가끔 이러한 날씨를 맞이한다면 그러려니 하면서 여우비라느니 범이 장가를 가느니 하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구지레한 채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이 되면, 도무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공장은 더 늘고 자동차는 끝없이 늘며 아파트는 자꾸 늡니다.

 엉망진창이 되는 날씨를 한 사람 힘으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착하며 고운 날씨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엉망진창으로 흐르는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을 한 사람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맑으며 아리따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비가 멎고 구름이 걷혀 해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서렸기에 섣불리 빨래를 내걸지 못합니다. 십 분 이십 분 지난 다음 빨래를 내겁니다. 조금 더 지난 뒤, 곰팡이가 피는 사진틀을 잘 닦아 해바라기를 시킵니다. 조금 더 지난 다음, 나무로 된 평상을 뒤집어 말립니다.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이불을 빨랫줄에 차곡차곡 넙니다.

 다문 한 시간이라도 이 따사로운 햇살을 맞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따사로운 햇살은 기저귀 한 장에도 내려앉고 손닦개 석 점에도 내려앉습니다. 빨래를 잔뜩 했건 조금 했건 다르지 않습니다. 햇살은 모든 빨래에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햇살은 텃밭에건 무논에건 멧자락에건 들판에건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어느 쪽에는 더 내려앉고 어느 쪽에는 덜 내려앉지 않습니다. 땅이 기울었어도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목덜미로 땀이 흐릅니다. 빨래를 너는 동안에도 목덜미로 땀이 흐릅니다. 보송보송해지면서 햇살 냄새 듬뿍 받아들인 이불을 걷어 터는 동안에는 등줄기로 땀이 흐릅니다. 햇살은 빨래와 이불뿐 아니라, 빨래랑 이불을 널고 걷는 사람 등짝과 얼굴과 손등과 허벅지에도 내려앉습니다. 누구를 미워하지 않는 햇살이면서, 누구를 딱히 더 좋아하지 않는 햇살입니다. 아니, 미움과 좋아함을 넘어, 고운 품으로 따사로이 부둥켜안는 너른 햇살입니다.

 내가 책을 왜 가까이했는가 생각합니다. 내가 책을 왜 이렇게 갈무리하면서 살아가는가 헤아립니다. 모든 책이 햇살처럼 너르면서 고운 따순 품은 아니었지만, 틀림없이 햇살처럼 너르면서 곱고 따순 책이 있습니다. 백 권 가운데 하나이든 만 권 가운데 하나이든, 내 마음밭을 너르면서 곱고 따순 헷살로 스며든 책이 있습니다. 백 권이나 만 권이 아니라 한 권을 믿으면서 책을 만났고, 사귀었으며, 함께 살아갑니다.

 모두를 바치는 사랑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모두를 누리는 사랑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햇살 한 조각으로 즐거운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햇살 한 조각을 누리거나 나누면서 웃거나 우는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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