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책읽기


 서른다섯 살까지는 기지개를 거의 켜지 않았다. 서른 살까지는 기지개를 아예 켜지 않았다. 스물다섯 살까지는 잠잘 때를 빼놓고는 등을 바닥에 대며 쉰 적이 없다.

 새벽에 두 차례 오줌기저귀를 빨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몰아치듯 열 몇 장을 빨 수 있지만, 요즈음 날씨를 보건대,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 다 마를는 지 알 길이 없다. 더욱이, 한꺼번에 많이 빨면 나부터 참 힘들다. 조금씩 자주 빨며 한숨을 돌려야 한다. 똥오줌기저귀를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던 첫째 아이를 어떻게 돌보면서 빨래를 다 해냈나 싶을 만큼, 지난 몇 해 일이 아득하다.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 때를 생각하면 빨래가 거의 안 나오는 셈이다. 이불이나 방바닥에 똥을 질러대는 일부터 드물다. 그렇지만 모르지. 돌을 맞이하는 날부터 낮에는 기저귀를 풀고 똥오줌 가리기를 시킬 텐데, 이때에는 첫째 때와 똑같이 온 집안이 똥나라 오줌누리가 될 테지. 온 집안을 똥나라 오줌누리로 만들며 두 달쯤 지내야 비로소 낮에 똥가리기 오줌가리기를 해내겠지. 이즈음에는 기저귀 빨래는 좀 줄 테지만, 쉴새없이 걸레를 빨고 이불을 빨며 뭐를 닦고 해야 하니 그야말로 넋이 나가도록 바쁘리라.

 서른일곱 아저씨는 새벽 다섯 시 삼십오 분에 방바닥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를 켜고서 좀처럼 다시 일어나 앉지 못한다. 날이 갈수록 등허리가 방바닥하고 사귀는 겨를이 늘어난다. 누워서 책을 읽으면 버릇이 없다고도 하고, 책을 애써 쓴 사람들한테 못할 짓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어쩌나. 등허리가 버티지 못하는데. 등허리를 반듯하게 편 채 책을 읽으면 참 좋겠지만, 이렇게 책읽기를 할 틈이 없는걸. 등허리를 반듯하게 펼 때에는 집일을 건사해야 하거나, 아이하고 놀아야 한다. 힘겨운 몸을 쉴 때에 살그머니 눈을 떠서 책줄을 조금 훑는다. 이나마 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글 한 줄 못 읽고 지나치기 쉽다. 방바닥에 등허리를 찰싹 붙이고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두 아이를 가슴에 갈마들어 올리고는 등을 토닥인다. (4344.9.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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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 책읽기


 두 아이를 바라본다. 멧자락을 옆에 낀 이 시골집을 떠나 새 시골집을 찾아야 하기에, 짐을 꾸리고 쌓아 두느라 집안이 참 어지럽다. 이 어지러운 집에서도 잘 놀고 잘 크며 잘 떠드는 아이들이 고맙다. 둘째가 하루하루 눈부시게 자라면서 곧 뒤집기를 해내겠지. 첫째는 둘째하고 놀아 준다며 때때로 ‘좀 괴롭히는 짓’이 되고 마는 놀이를 하지만, 둘째는 첫째한테 ‘좀 괴롭힘을 받아’도 까르르 하면서 웃는다. 나는 우리 형한테서 어떤 괴롭힘이자 놀이를 받았을까.

 나도 어린이였고 옆지기도 어린이였다. 어린이로 살아가는 두 아이는 머잖아 어른이 되리라.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를 낳으면, 저희 아이를 돌아보면서 저희 어린 나날을 곱씹을까. 아니면, 오늘 이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옳게 사랑하고 착하게 껴안는 나날을 일굴 수 있으면,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에 저희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저희 어린 나날을 돌이키며 아름다운 넋을 건사하도록 할 수 있을까.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갈 사랑스러운 길이 어디인가 하는 이야기는 육아책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다. 바로 우리 두 아이 얼굴에, 발가락에, 혓바닥에, 머리카락에 하나하나 아로새겨진다. 아이들 작은 가슴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으면 콩콩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을 내 가슴에 올리고 가만히 있으면 쿵쿵 뛰는 소리를 아이들이 듣겠지. 어버이는 아이책을 읽고 아이들은 어른책을 읽는다. (4344.9.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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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사람 책읽기


 서울이나 서울처럼 크고작은 도시는 하나도 즐겁지 않다. 그러나, 나무가 있고 이 나무 곁을 걷거나 이 나무 둘레를 거닐 수 있으면 느긋하고 너그러우면서 좋다. 책을 읽으려면 서울에서는 읽지 말아야 한다. 아니, 서울에서는 책을 읽을 수 없다. 다만, 서울이라 하더라도 나무 한 그루를 찾아, 바람결에 따라 바실바실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잎사귀 노래를 듣는 푸른 그늘에서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로 일군 책’을 천천히 펼친다면 책읽기가 이루어진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서울사람이나 도시사람이 책을 읽으라고 바랄 수 없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음직이는 사람들한테는 이러한 곳에서 착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할 줄 알기를 바랄 뿐이다. 착한 마음을 잃은 채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슬픈 사람들을 부대끼고 싶지 않으니, 서울마실을 할 때에 버스나 전철에서 책을 펼치며 힘겨운 아픔을 떨친다. 소리가 살고 냄새가 그윽하며 빛살이 고운 곳에서만 책을 읽을 수 있다. 도시가 자꾸 커지거나 새로 늘기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은 나날이 책을 덜 읽거나 안 읽을밖에 없다. 도시에서는 책을 읽을 일터나 보금자리나 쉼터가 깡그리 사라진다. (4344.9.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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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토리 책읽기


 도토리가 떨어진다. 나도 줍고 아이도 줍는다. 도토리를 한 알씩 줍는 아이는 “아버지, 도토리요!” 하고 외친다. 처음에는 덜 익은 풋도토리가 떨어졌으나, 이제는 잘 익은 도토리가 떨어진다. 멧자락에서 살아가는 다람쥐한테는 아직 나무에 달린 도토리가 많을 테니까 바람 불어 떨어지는 한두 알쯤이야 대수롭지 않겠지. 그러나 날마다 한두 알씩 떨어지는 도토리는 아이한테 놀라운 선물이다. 도토리를 곱게 빻고 갈아 묵을 쑤자면 도토리 열매가 참 많이 있어야 한다. 아직 우리 식구가 시골집에서 손수 도토리묵을 쑤지는 못한다. 길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으면서 한 알은 밭이나 빈터에 던지고, 한 알은 아이가 건사해서 밥그릇에 예쁘게 담는다. 겨울을 나고 봄을 즐기다가 여름을 누빈 참나무마다 가을을 맞이해서 도토리를 떨군다. 참나무는 좋은 숲동무이자 고마운 숲스승이다. (4344.9.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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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책읽기


 모든 사람은 살아갑니다.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죽은 넋입니다. 모든 사람은 새로운 밥을 먹으면서 새로운 목숨을 얻어 새로운 나날을 살아갑니다. 새로운 밥을 먹어 새로운 목숨을 얻듯,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살아갑니다. 새롭게 살아간다 할 때에는 새롭게 자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는다’고 하는데, 늙기 또한 ‘자라기’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크기’로 ‘자라기’를 이루고, 어른은 ‘늙기’로 ‘자라기’를 이룹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자라면서 한껏 싱그러운 꿈을 키운다면, 어른은 자라면서 머잖아 눈을 감고 숨을 거둘 마지막날을 헤아리는 꿈을 보듬습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숨을 쉬기에 살아갑니다. 살아가기에 날마다 새로운 한 가지를 배웁니다. 오랜 나날 살아온 깜냥을 바탕으로 슬기를 빚을 수 있지만, 오랜 나날 살아온 깜냥은 잊은 채 하루라도 더 튼튼하거나 젊은 몸으로 뛰놀고프다는 덧없는 밥그릇에 얽매이는 바보스러움을 일굴 수 있습니다. 슬기도 배움이요 바보스러움도 배움입니다. 《어머니의 감자밭》이라는 그림책처럼, 사람들은 끔찍하게 죽이고 죽는 싸움(전쟁)을 치러야 비로소 나눔(평화)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가를 깨닫곤 합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삶, 바보스러운 짓, 멍텅구리 같은 모습 또한 고마운 슬기 구실을 합니다.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살아가는 책읽기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인 만큼 살아가는 마음읽기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랑읽기예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저 먼 곳에서 살아가거나 살았거나 살아갈 사람들 나날을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저 먼 때에 살았거나 살아갈 사람들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따사로운 손길을 받고 너그러운 눈길을 보냅니다. 저 먼 누리에서 어떤 사랑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씨를 냈는가를 따사롭고 너그러이 나눕니다.

 둘째 갓난쟁이는 새벽녘 칭얼거리다가 어머니 젖을 물고 잠듭니다. 이윽고 오줌을 누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울다가 다시 어머니 젖을 물고 새근새근 예쁜 소리를 내며 잠결에 듭니다. 첫째 네살박이는 어제 하루 고단하도록 놀더니 한밤에 힘겨운 몸으로 깨어 앓는소리를 하다가 어머니가 따숩게 건네는 말마디를 듣고 아버지가 살며시 가슴에 얹는 손바닥 따스함을 느끼면서 고즈넉히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열 때에 책 하나 손에 쥐어 읽을 만합니다. 살아가는 책읽기는 사랑하는 책읽기입니다. (4344.9.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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