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책읽기


 아이와 서로 손을 잡고 읍내마실을 합니다. 아이는 논둑길을 거닐며 아주 즐거워 노래노래 부릅니다. 아이 손에는 망가진 필름사진기가 들립니다. 아이는 아버지처럼 사진기를 챙겨서 마실을 가야 한다고 합니다. 논둑길을 걷다가 “어?” 하면서 멈추고는 아버지처럼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이 없으니 새겨지지 않는 사진인데,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사진기로 들여다보면서 마음에 새긴다면 모두 사진이 됩니다.

 아이하고 읍내를 돈 다음 피자집에 들릅니다. 읍내에 다녀올 때에 옆지기가 피자를 사올 수 있으면 사오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시골집까지 날라다 주는 밥집은 없습니다. 옆지기는 피자보다 돼지뼈감자곰국을 먹고 싶어 했지만, 이 먹을거리를 싸서 갈 수 없고, 읍내에 돼지뼈감자곰국을 하는 데도 찾지 못했습니다. 읍내 가게에서 뼈다귀와 감자를 장만해서 내가 끓일까 생각해 보기도 하다가, 고개를 젓습니다. 나중에 함께 읍내에 나갈 때에 찾아서 먹어야지, 집에서 하지는 말자.

 피자집에서 두 판을 시키고 아이랑 나란히 기다립니다. 피자집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큰소리로 온갖 광고와 방송이 흐릅니다. 아이는 넋을 잃고 들여다봅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따분해졌는지 가게 안팎을 이리저리 휘젓듯 돌아다닙니다. 나는 아이가 노는 양을 바라봅니다. 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아이 노랫소리보다 텔레비전 소리가 훨씬 크고, 가게 앞 찻길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더 큽니다. 깔깔거리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목소리가 퍽 크고, 피자 굽는 기계가 내는 소리가 꽤 큽니다.

 이것저것 장만하려고 읍내로 나오지만, 이 읍내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생각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읍내보다 훨씬 클 시내에서는, 여느 시내보다 더더욱 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들으며 생각할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시골마을 이야기이든, 두릅나무 꽃이 보름 넘게 흐드러진다는 이야기이든, 논마다 누런 벼알이 날마다 얼마만큼 익는다는 이야기이든, 달과 별과 구름과 햇살을 올려다보는 아이들 눈빛이 얼마나 맑은가 하는 이야기이든, 예나 이제나 텔레비전에 흐른 적이 없습니다. 뭐, 책이라 해서 이런 이야기를 즐겨 적바림하지는 않습니다. (4344.9.1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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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외버스 책읽기 3


 시외버스를 타고 바깥으로 볼일을 보러 움직이는 길이기에, 퍽 느긋하게 책을 펼칠 만합니다. 집에서는 온갖 집일을 하면서 아이랑 부대껴야 하니, 어느 한때조차 느긋하게 책을 펼치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가 얌전하고 조용하게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둘째 아이가 새근새근 잠자면, 아버지도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면서 몇 쪽이나마 펼칩니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읽으면 첫째 아이는 뽀로롱 달려와서 아버지 무릎에 앉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서 가방에서 책을 꺼냅니다. 시외버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선 채로 책을 읽었습니다. 멧골집에서 나와 시골버스 타는 데로 걸어오는 동안, 또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긋나긋 울려퍼지는 가을날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노랫소리는 시골버스를 탈 때부터 더는 들을 수 없고, 읍내에 닿은 다음부터는 꿈꿀 수 없습니다. 서울로 달리는 시외버스는 살가운 흙내음하고는 동떨어진 차가운 시멘트내음하고 가까워집니다.

 바람을 가르는 큼지막한 버스가 내는 소리가 귀에 울립니다. 맞은편 찻길을 내달리는 수많은 자동차가 바람을 가르는 무서운 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에어컨 소리가 들리고, 버스 일꾼이 켠 라디오 소리가 들립니다. 빠르게 달리는 버스가 덜덜 내는 소리가 들리며, 바퀴가 아스팔트를 찍는 소리랑 엔진이 부릉부릉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가용 있는 집 아이들은 늘 이런 소리를 끼고 살아야겠지요.

 온누리는 온통 수많은 기계와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내는 소리들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피면 커다란 도시 한복판을 둘러싼 곳에서만 이러한 소리일 뿐, 아직 훨씬 더 넓은 들판과 멧자락에서는 흙내음 소리랑 햇살 소리랑 바람결 소리와 푸나무 소리입니다. 나는 나부터 내 몸에 걸맞지 않을 뿐더러, 내 몸을 힘들게 하는 소리를 즐기고 싶지 않으며, 이 소리를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골이 띵하지만 시외버스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한손으로 이마와 뒷통수를 꾹꾹 누르면서 책읽기를 합니다. (4344.9.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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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조복성 님 책


 나는 조복성 님 책을 2001년에 처음 만났다. 2001년 가을, 서울 명지대학교 옆 헌책방 〈문우당〉에서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고려대출판부,1975,비매품)를 처음으로 보았다. 이때 나는 출판사에서 국어사전을 기획하는 일을 했고, 함께 국어사전을 만들던 윤구병 님을 비롯해 여러 출판사 사람들한테 보여주면서 이만 한 책을 하루 빨리 되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모두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이태가 지난 2003년 7월 9일, 서울 성신여대역 둘레 헌책방 〈이오서점〉에서 《곤충기》(을유문화사,1948)를 만났다. 이무렵 나는 하루에 두어 군데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책을 사서 읽었다. 하루에 두어 군데였기에 한 해라면 800 군데쯤 되는 헌책방을 다니는 셈이요, 이태 만에 조복성 님 다른 책을 만났으니까, 헌책방을 1600 군데쯤 다닌 끝에 비로소 다른 책 하나를 만났다 하겠다.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에 이어 《곤충기》를 만났기 때문에, 이제는 더 아쉬울 대목이 없다고 느꼈다. 1948년에 나온 《곤충기》이지만, 2003년까지 나온 한국땅 곤충학자 곤충책하고 견주어 줄거리가 알차고 글투가 단출하면서 쉬웠다. 이무렵 더 알아보니 조복성 님은 1968년이던가, 아무튼 1960년대에 금성출판사였는지 민중서관이었는지, 어린이 과학백과 같은 묶음책 가운데 곤충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여태껏 찾아내지 못했다. 어린이 과학백과 뒤쪽에 적힌 광고글에서만 이러한 책이 있는 줄 읽었을 뿐, 도무지 이 책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나 《곤충기》라면, 어른들이 사서(또는 얻어서) 읽는 책이요, 어른들이 사서 읽는 책은 ‘전쟁이나 이사나 이민이나 무슨무슨 일 때문에 사라지는 일’이 있어도, 어른들 스스로 버리지 않는다. 여느 잡지책이나 소설책이라면 가볍게 버리기도 하지만, 인문책이나 전문학술책은 이 책을 갖춘 사람이 숨을 거두기까지 버려지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책을 갖춘 사람이 숨을 거둘 때에는 이 책들이 비로소 헌책방으로 나온다.

 이와 달리,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될 때부터 함부로 버려진다. 우리네 1950년대 어린이책은 거의 찾을 길이 없다. 1960년대 위인전조차 대단히 드문 옛책이 된다. 1970년대 어린이책마저 아주 드물다. 이제는 1980년대 어린이책이 차츰 드문 책이 되려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린이책을 사서 읽힌다지만, 쉽게 사서 읽히고 쉽게 버리고 만다.

 조복성 님 책 두 가지를 찾은 기쁨을 누리면서, 자연책이나 생태책이나 환경책을 내는 출판사 사람들한테 책 실물을 보여주면서 되살리는 길을 여쭈었다. 책을 살핀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자들은 하나같이 “조복성이라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이러한 책이 나오면 이 나라 학문과 출판에 크게 이바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막상 책으로 되살리려고 애쓴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어느 출판사 편집자가 책으로 낼 기획을 하겠다며 책을 빌려갔는데,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그만 잃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고 했다.

 잃어버렸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닭 목아지를 비튼다고 동이 틀 수 없듯, 잃어버렸다는 사람 손목아지를 비튼다고 책이 나올 수 없다. 다시금 여러 해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겨우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 한 권을 새로 장만했다.

 얼마 앞서 조복성 님 책 두 가지(《곤충기》와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한데 묶어 말끔하며 번듯한 책으로 되살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뜨인돌’ 출판사에서 《조복성 곤충기》(황의웅 엮음,2011)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나 말고 조복성 님 책을 되살리려고 애쓴 분이 있는 줄 처음 알았고, 이분 또한 참 힘들게 ‘손사래질’을 겪으면서 힘들었구나 싶다. 그런데, 이분이 조복성 님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다니는 이야기 가운데 어딘가 아리송한 대목이 있다.


.. 2004년 가을 고서적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앞 헌책방 이오서점에도 그 책은 없었다. 먼지 쌓인 서고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조복성 곤충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동아일보〉 2011.9.8.


 나는 《곤충기》를 2003년 7월 9일에 찾았다. 2003년 7월 9일에 이 책을 찾은 이야기를 2003년 7월 24일에 갈무리해서 내 누리집에 글로 썼고, 이 이야기를 2003년 7월 29일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띄웠다. 이때에 〈오마이뉴스〉는 내가 쓴 글에 내가 붙인 이름(제목)을 엉뚱하게 고쳐서 몹시 짜증스러웠는데, 어찌 되었든, 이때에 올린 글이 퍽 알려지고 읽혀서 조복성 님 이름과 《곤충기》라는 책이 오랜만에 햇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성신여대 옆 헌책방 〈이오서점〉은 내가 이 글을 쓴 지 이레 만에 문을 닫았다. 왜냐하면, 2003년 7월 20일 즈음(날짜가 언제였는지는 모른다)에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기 때문.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서둘러 〈이오서점〉 사진을 뽑아서 찾아갔다. 헌책방지기가 흙으로 돌아간 헌책방은 더없이 쓸쓸했고, 이 책들을 건사할 마땅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2003년 7월 9일에는 책방 얼거리만 사진으로 담았고, 〈이오서점〉 사장님은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이리하여, 사장님 얼굴이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고, 애써 〈이오서점〉을 담은 사진조차 사장님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동아일보〉에 난 기사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3년 7월 끝무렵에 문을 닫아 2003년 8월에는 책이 모두 빠졌는데, 2003년 가을조차 아닌 2004년 가을에 〈이오서점〉을 찾아갔다고 하니, 뭔가 잘못 안 셈 아닌지? 아니면, 내가 〈이오서점〉에서 《곤충기》를 찾아내어 〈오마이뉴스〉에 알린 글 이야기를 잘못 이야기하고 다닌 셈 아닌지? 또는, 〈동아일보〉 기자가 기사를 엉터리로 썼을까?

 내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읽은 사람들한테서 《곤충기》를 ‘팔라’는 물음글을 참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수집가’도 ‘장사꾼’도 아닌 ‘책마을 일꾼’이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팔지 않았다. 또한, 내 책시렁에 이 책들을 ‘꽁꽁 감추지’도 않았다. 나는 이 책을 내가 2007년에 인천 배다리에서 연 개인도서관 책꽂이에 잘 보이도록 놓고는 누구한테나 보여주었으며, 두 손으로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구경한 사람이 꽤 많다. 그런데, 《조복성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온 책 ‘엮은이 말’에조차 좀 엉뚱하다 싶은 이야기까지 적혔다.


.. 을유문화사에서 1948년에 출간되었던 조복성 선생의 『곤충기』 원본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0년대 말, 나는 이 책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 고서점과 헌책방 등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서에 눈독 들인 도서관이나 전문 수집가들의 서고 속으로 숨어 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별다른 기대 없이 들른 어느 고서점에서 『곤충기』와 만났다. 분명 우연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곤충을 유난히 좋아했을 뿐 아니라 몇 년 동안이나 이 책을 애타게 찾아 헤매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운명처럼 느껴졌다. 금세라도 바스러질 듯한 누런 책장을 한장 한장 조심스레 넘기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 책을 어두운 서재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자!’ ..  (《조복성 곤충기》 엮은이 말)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책을 되살리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 몫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넋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고 느낀다. 부디, 서로서로 아름다운 빛줄기를 일구면서 아름다운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책을 기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손길을 베풀면 그지없이 기쁘겠다. (4344.9.9.쇠.ㅎㄲㅅㄱ)
 

 

(곤충기는 여행기보다 책이 작다. 실물을 놓고 보면 이만 한 비율이 된다) 

 

내가 2003년 7월 9일에 찾은 책 모습. 이 모습 그대로 있던 책이었다. 

 

내가 책을 사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슬프게도 가게문을 닫고 말았다. 책이 다 빠진 뒤, 셔터에 쪽지만 덩그러니 붙었다. 2004년에는 이 책방이 남지도 않았다. 

 

아름다운 책을 되살리면서 왜 이런 말을 썼을까? 부끄럽다고 느끼기를 바란다. 

 

내 예전 싸이월드 누리집에 올린 <이오서점> 글 목록. 

 

나는 2003년 7월 24일에 내 누리집에 첫 글을 띄웠고, 이 글을 띄운 날 저녁, 이오서점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3년 7월에 쓴 글 가운데. 

 

오마이뉴스에 띄웠던 기사 한 토막. 오마이뉴스는 기사 제목을 저희들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바꾸어 달기 때문에 몹시 짜증스럽다. '콕 찍어 이오'가 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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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생각
― 사진과 사랑


 첫째 아이를 낳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습니다. 한국땅 여느 남자라 한다면 집밖일을 하느라 집안일은 옆지기한테 도맡겼을 테며, 아이키우기 또한 옆지기가 도맡도록 했겠지요. 어느 아버지라 하더라도 ‘나도 내 아이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하고 말할 테지만, 막상 ‘아이하고 같은 곳에서 함께 눈을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겨를’은 얼마 안 되리라 느낍니다.

 집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고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왜 이 나라 여느 아버지라 하는 사람들은 아이키우기와 살림하기와 집안일을 어머니한테 떠넘길까 궁금합니다. 여느 한국땅 아버지로서 집밖에서 돈만 잘 벌어오면 아이는 저절로 쑥쑥 자랄는지요. 돈이 넉넉해서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집안일이나 집살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는지요.

 나는 내가 사진을 몹시 모를 뿐 아니라 사진을 어설피 말해서는 안 된다고 느껴, 사진길을 열 해 남짓 걷는 동안 사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기만 했습니다. 사진책을 읽는 눈썰미를 기르면서 내 사진기를 다루는 손길을 다스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느덧 열네 해째 사진길을 걸으면서 돌이킵니다. 사진길을 한 해 걸었으면 한 해 걷는 삶 그대로 사진을 말하면 됩니다. 사진길을 다섯 해 걸었으면 다섯 해 걷는 삶 그대로 사진을 말하면 돼요.

 사진길을 쉰 해 걸은 사람만 사진을 말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길을 다섯 달 걸은 사람이 말하는 사진이 사진길을 스물다섯 해 걸은 사람이 말하는 사진하고 견주어 모자라거나 어수룩하거나 덜 떨어질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니까요. 누구하고 누구를 견줄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사진이고 서로 다른 이야기이며 서로 다른 꿈입니다. 곧, 사진은 저마다 다 달리 걷는 길이요, 저마다 다 달리 일구는 삶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이키우기 = 삶’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결대로 아이를 돌보거나 보살피거나 먹여살립니다. 다만, 아이들을 ‘키운’대서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간다’ 할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먹여살리’니까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 할 만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수용소에 가두어도 ‘키우’거나 ‘먹여살리’는 셈입니다.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설에 넣어도 ‘돌보’거나 ‘아끼’는 셈이에요. 그러나, 이때에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아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꾸면서 같은 사랑이 오가는 일입니다.

 수많은 어버이들이 ‘아이를 낳기 앞서나 아이를 낳은 뒤’에 사진기를 장만합니다. 막상 ‘내 아이’가 되고 보니, 이 멋지고 예쁘며 사랑스럽다 여기는 아이를 사진으로 안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는 이들 가운데, 내 아이 여느 자리 여느 삶 여느 모습을 여느 사진으로 담아 여느 이야기로 일구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예쁘게 차려입히고 예쁘게 눈짓을 하며 예쁘게 웃어야 비로소 사진으로 담을 만하다고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어버이 스스로 사진을 삶으로 녹이지 않는데, 제아무리 멋들어지거나 값지다 하는 사진기가 있다고 해 보았자, 아이를 사진으로 찍으려 한대서 얼마나 살갑거나 사랑스레 찍을 수 있겠어요. 사진기는 손에 쥐었어도 삶은 가슴으로 붙안지 못하는걸요. 사진은 찍는다지만 삶을 찍지 못할 뿐 아니라, 어버이 삶도 아이 삶도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걸요.

 집일을 하며 하루 내내 집안에서 지낸다고 모든 어버이가 아이사랑과 삶사랑을 살뜰히 느낀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하루 내내 보내며 집일을 건사하는 일을 답답하게 여긴다거나 괴롭게 느낄 분이 제법 많다고 봅니다. 손으로 천기저귀를 갈아 손으로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정갈하게 빨래한 다음 햇볕 잘 드는 곳에 기쁘게 너는 어버이는 오늘날 거의 없습니다. 바쁘고 힘드니까 빨래기계를 쓴다는데, 너무 바쁘고 힘든 나머지 천기저귀는 생각조차 않거나 아예 모릅니다. 더욱이,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이 종이기저귀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살피지 않으며, 이 종이기저귀가 어떤 쓰레기가 되어 이 땅을 더럽히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밥을 차리든, 옷을 장만하든 늘 같습니다. 아이한테 더 좋은 밥이나 더 예뻐 보이는 옷을 안기는 일이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야 해요. 아이를 함께 낳은 내 짝꿍한테 더 맛난 밥을 사먹이는 일이 사랑인가요. 내 짝꿍이 더 예뻐 보이는 옷을 입도록 새옷 사 주는 일이 사랑인가요. 더 멋져 보이는 자가용을 장만해서 슬슬 나들이를 다니는 일이 사랑인가요.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회사에서 돈벌이만 하면서 집안에 몸을 둘 겨를이 없는 삶이 사랑인가요. 돈을 더 벌고 돈을 더 쓰기만 하는 삶일 뿐, 사랑을 더 나누며 사랑이 더 꽃피도록 하지는 못하는 삶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삶을 일구는 대로 삶을 바라보며, 삶을 바라보는 결 그대로 말을 하며, 삶을 바라보는 결 그대로 말을 하는 얼거리에 따라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옮깁니다.

 삶을 참다이 사랑할 때에 사진을 참다이 사랑합니다. 삶을 착하게 사랑할 때에 사진을 착하게 사랑합니다. 삶을 아름다이 사랑할 때에 사진을 아름다이 사랑합니다.

 나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집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복닥이니까, 집 바깥으로 나돌면서 돈을 버는 데에는 젬병입니다. 그야말로 돈벌이는 거의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돈을 거의 못 버니까 돈을 거의 못 씁니다. 돈을 거의 못 벌어 돈을 거의 못 쓰니, 돈을 적게 쓰면서 살림을 꾸릴 만한 시골자락 작은 집을 얻어서 지냅니다. 돈을 더 써야 하는 삶이라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돈을 덜 쓰거나 적게 쓰거나 안 써도 되는 삶이기에 시골에서 호젓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살을 부비면서 따사로운 나날을 누릴 만합니다.

 아이들 잠투정을 고스란히 받아먹으면서 밤새 설잠이 들거나 눈이 벌게진 채 해롱거립니다. 깊은 밤에도 몇 차례 깨어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고 첫째 오줌 마렵다 할 때에 부시시 일어나서 오줌 누는 데까지 데리고 가서 데리고 돌아옵니다. 함께 살아가니까 참으로 고단한 일이 많고, 참으로 고단한 일이 많은 만큼 더 사랑할 수 있으며, 내가 보낸 어린 나날 나는 내 어버이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깊이 곰삭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자리 어느 때에 어여쁜가 하고 느끼려면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여느 어른은 여느 아이들 말을 좀처럼 못 알아듣지만,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아직 제대로 소리내지 못하는 퍽 어설픈 소리’를 잘 가리거나 알아챕니다. 좀 다른 테두리이지만, 아이들은 ‘어른들 누리로 보자면 고장말을 하는 셈’입니다. 이웃 고장에서 지내는 사람들 말을 새겨듣고 받아들이듯 내 아이나 이웃 아이 말을 내 아이 삶과 이웃 아이 삶을 깊이 톺아보면서 새기면 훤히 알아들으며 이야기꽃을 나눌 수 있어요.

 다큐사진을 찍거나 패션사진을 찍거나 무슨무슨 사진을 찍거나 언제나 똑같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하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거나 만나야 합니다. 일과 일이라 하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오가지 않을 때에는 빛나는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다큐사진을 찍는 곳에서 사진기 앞에 선 사람하고 제대로 섞이거나 녹아들지 못했을 때에는 노상 겉도는 사진만 만듭니다. 패션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무슨 사진이든, 모델이 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얼 잘하는가를 깨닫지 않으면서 뜻과 마음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겉치레 사진만 만듭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진을 ‘만드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못하고 사진을 ‘만들기’만 한다면 슬픕니다. 안타깝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사랑을 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애써 ‘만들지’ 않아도 돼요.

 글은 써야지 글을 만들 수 없습니다. 노래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결대로 불러야지 노래를 억지로 만들듯 쥐어짤 수 없습니다. 만들 때에는 만든다지만, 참다이 만드는 사진이라면 참다이 찍는 테두리에서 만듭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삶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아이키우기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글이고 그림이며 책이자 노래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바야흐로 사람이요 사진이며 사귐입니다. (4344.9.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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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책읽기


 음성 할머니가 아이한테 옥수수를 쪄서 내준다. 옥수수는 퍽 뜨겁다. 그렇지만 아이는 이 뜨거운 옥수수자루를 거침없이 집어든다. 아뜨 아뜨 하면서도 옥수수자루를 입에 문다. 워낙 옥수수를 좋아하다 보니 뜨거운 옥수수라 하더라도 뜨거움을 견디면서 먹는다.

 뜨거운 옥수수를 맛나게 먹는 아이를 바라보는 옆지기는 이듬해에 옥수수를 많이 심어야겠다고 얘기한다. 그렇지. 아이도 옆지기도 옥수수를 잘 먹는데, 우리 텃밭에 옥수수를 잔뜩 심어야지. 새 보금자리에서 우리가 지을 텃밭을 얼마나 얻을 만한지 모르지만, 요 빈터 저 빈터에 신나게 심어야지. 겨우내 똥오줌 거름 잘 모아서 거름도 예쁘게 주어야지. 새해를 맞이해서 새롭게 옥수수를 심을 때에는 첫째 아이는 다섯 살이 될 테니까, 올해보다는 흙일을 한결 잘 거들겠지.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더라도 아이한테 글을 가르칠 생각이 없다. 네 살이건 다섯 살이건 글을 배우기에 퍽 이르다고 느낀다. 일곱 살까지는 글을 몰라도 되고, 여덟 살이 되어도 글을 몰라도 돼. 아이 스스로 글을 배우고 싶다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글을 가르치면 돼.

 글을 모르는 아이라 하지만, 호미 쥐기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하나씩 둘씩 집어 밭고랑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쏙쏙 넣고 손바닥으로 판판하게 덮는 일 또한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양을 바라보면서 배운다. 아이는 흙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는 이런 책을 읽을 수조차 없다. 아이는 몸으로 배우고 삶으로 익힌다. 아이는 스스로 흙하고 하나로 얼크러지면서 흙을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을 배운다.

 돌이켜보면,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 같은 이야기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대서 깨닫거나 느끼거나 배울 수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을 할 수 없다. 도시 일자리를 내려놓고 시골로 가야 한다. 도시에서 돈을 좀 덜 벌면서 빈터가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 텃밭을 일구어야 한다.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하늘바라기를 할 줄 모른다면, 환경책을 천만 권 읽는들 더할 나위 없이 부질없다. (4344.9.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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