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책읽기


 병원에서는 항생제를 놓고 진통제를 놓으며 지혈제를 놓으면서 ‘자연분만’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씁니다. 자연분만이란, 이름 그대로 자연스레 아이를 낳는 일이에요. 항생제나 약물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가 애 어머니 배를 꾹꾹 누르는 한편, 힘껏 잡아당겨 아기를 쑤욱 뽑아내는 일이 아닙니다. 애 어머니 샅을 가위로 싹둑 자르면서 자연분만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애 어머니와 함께 찾아와서 가까스로 아기를 낳고 나서 살며시 숨을 돌린 다음, 병원에서 내는 책자를 펼치니, 병원 의사가 하는 말, ‘뱃속에 쌓이는 똥(숙변)’이란 없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는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겠다 하고, 가루젖을 먹이지 않겠다 했으나, 이 말을 열 번 가까이 되풀이한 끝에 겨우 예방주사를 안 맞히도록 하고 가루젖을 안 먹이도록 했습니다. 그렇지만, 피를 멎게 한다는 항생제 주사는 우리한테 말하지 않고 그냥 놓습니다. 종이기저귀를 대어도 자주 갈아 준다면서, 천기저귀를 쓰지는 않겠답니다. 천기저귀를 그때그때 빨아서 주겠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피멎이 항생제는 어떤 화학물질로 만든 약물일까 궁금하지만, 병원 의사나 간호사들은 이러한 항생제 성분을 헤아리거나 살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방주사를 안 맞히겠다는 말을 열 차례나 되풀이하도록 한 병원인 만큼, 이곳 병원에서는 예방주사는 아주 마땅히 놓아야 하는 줄 여깁니다. 미국 의사가 쓴 《예방주사 어떻게 믿습니까》 같은 책을 읽었거나 살피거나 아는 의사나 간호사는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만, 이러한 책을 읽거나 살피거나 안다 하더라도 살갗으로 와닿도록 느끼는 이는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자연스레 아기를 낳으려고 이모저모 살피며 갖추었지만,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 스스로 더욱 자연스레 내 살림을 꾸리지 못했기 때문에, 아기낳는 막날에 끝내 집에서 자연스레 못 낳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자연스레 아이를 낳지 못했으나, 이렇게 해서 태어난 우리 아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어여쁘며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한테 이런저런 ‘장애 검사’를 하는 일을 하나도 반기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장애가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을 뿐 아니라, 장애 검사를 미리 한대서 장애를 막을 수 있지 않는데다가, 아기를 낳을 때 맞히는 갖가지 주사와 약물 때문에 장애가 생기니까요. 너무 밝은 갓난아기방이라든지, 갓난아기한테 가루젖을 먹이고 포도당을 먹이려 하는 일부터 아기 삶과 목숨을 너무 안 살피는 노릇입니다.

 의사나 간호사 노릇을 하자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요. 의사나 간호사 자리에 선 다음, 이들 의사와 간호사는 어떠한 책을 더 꾸준히 살피거나 찾아서 읽을까요. 이틀 뒤 병원 문을 나선 뒤로는 다시금 병원을 찾지 않도록, 옆지기와 나는 더 바지런히 내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야겠고, 네 식구 삶과 살림을 가꾸거나 지킬 책을 한결 알뜰히 살피며 읽어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4344.5.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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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니까 책읽기


 사람들은 너나없이 바쁩니다. 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안 바쁜 사람이 없습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사람들은 저마다 수많은 일을 맡아야 합니다. 온갖 일을 치러야 합니다. 갖은 일을 돌보거나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느긋하거나 한갓지기에 책을 읽는 사람이 더러 있겠지요. 몸이 안 아프거나 돈이 넉넉해서 책을 읽는 사람 또한 있을 테고요. 나한테 돈이나 겨를이 넉넉하기에 읽는 책은 어떻게 스며들며, 나한테 돈이나 겨를이 빠듯하거나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할 때에 읽는 책은 어떻게 파고들까요.

 바쁘거나 힘들기에, 바쁜 틈을 쪼개고 힘든 나날을 바쳐서 읽는 책입니다. 바쁘니까 바쁜 만큼 온갖 일에 마음을 쓰면서 ‘함께 마음을 써서 읽는’ 책입니다. 힘든 만큼 힘든 몸을 더 움직이면서 ‘애써 읽는’ 책이에요.

 한갓지거나 느긋하다면, 한갓지거나 느긋한 내 삶을 사랑하면서 읽는 책입니다. 바쁘거나 힘들다면, 바쁘거나 힘든 내 삶을 아끼면서 읽는 책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는 책은 없습니다. 내 삶을 헤아리면서 내 삶만큼 사랑하면서 읽는 책입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서 내 삶에 걸맞게 찾아서 손에 쥐어 읽는 책입니다.

 바쁘니까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바쁘니까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힘들기에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힘드니까 꿈을 꾸거나 펼칠 수 없습니다. 돈이 없어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돈이 없을 때에도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하고 나눌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돈이 있으나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돈이 있는 동안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하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면서 한삶을 즐기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

 즐거우니까 웃고, 슬프니까 웁니다. 즐거울 때에는 즐거이 사랑하고, 슬플 때에는 슬프게 사랑합니다. 즐거웁기에 즐겁게 읽는 책이며, 슬프기에 슬피 읽는 책입니다. (4344.5.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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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5-21 10:57   좋아요 0 | URL
이게 요즘 제 책읽는 방식이예요.
바쁘면 바쁜대로 책읽기, 슬프면 슬픈대로 책읽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거죠.
적어도 책읽기는 제게 삶이랑 동의어쯤 되니까 말예요.

이렇게 소박한 글로도 큰 울림을 만들어 내시다니요, 위로가 되어 몇자 남깁니다.꾸벅~

숲노래 2011-05-21 13:11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즐거이 좋은 나날 일구셨으리라 믿어요~ ^^
 



 사다리 놀이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5.20.



 새 책꽂이를 스물 들인다. 새 책꽂이는 형과 음성 어버이한테서 얻은 돈으로 장만했다. 내 팍팍한 살림돈으로는 도무지 새 책꽂이를 장만할 수 없었다. 새 책꽂이를 들이는 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 문을 모두 열어 냄새를 뺀다. 지난 2007년에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쓰던 책꽂이를 얻을 때에도 퍽 오랫동안 문을 열어 냄새를 뺐다. 주한미군 도서관 책꽂이에서는 노린내가 뱄는데, 한국사람이 쓰는 책꽂이에는 무슨 냄새가 밸까.

 새 책꽂이를 들이는 만큼,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과 책을 알뜰히 갈무리할 수 있다. 신나게 치우며 갈무리한다. 아이는 집과 도서관 사이를 뜀박질하면서 오간다. 한창 뛰고 달리며 놀다가는 사다리에 올라탄다. “벼리, 올라갈 수 있어요?” 하고 묻는다. 벌써 사다리에 다 올라간 다음 이야기한다. 제 키보다 훨씬 높이 올라가면서 안 무섭나 보지? 아이는 아버지가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 때에는 “벼리 빗자루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저도 함께 비질을 하겠단다. 아버지가 쓰레기를 주으면 저도 쓰레기를 줍겠다며 달려든다. 아버지가 짐을 나르면 저도 나르겠다며 손을 내민다. 참 귀여우면서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느덧 네 해째 이 집에서 함께 살아간다. 곧 태어날 둘째는 얼마나 귀여우면서 사랑스러울 아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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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 《샘이 깊은 물》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5.15.



 잡지 《샘이 깊은 물》 권수를 살핀다. 다른 책들을 먼저 살피면서 제자리를 찾아 주느라 《샘이 깊은 물》은 한 곳에 뭉텅이로 쌓기만 하고 오래도록 건사하지 못했다. 마른 천으로 먼지를 닦으면서 한 권씩 제자리를 찾아 준다. 펴낸 해와 달에 맞추어 차곡차곡 꽂는다. 정기구독을 해서 읽던 잡지가 아니라, 헌책방에서 하나씩 찾아서 읽던 잡지이다. 누군가 통째로 내놓은 잡지를 사들인 적이란 없다. 한 번에 한두 권씩만 사서 모으던 잡지이다. 이제 헌책방에서도 《샘이 깊은 물》은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이 잡지를 보던 이들이 여느 신문뭉텅이하고 함께 종이쓰레기가 되도록 버렸는지 모르고, 이 잡지이든 저 잡지이든 헌책방에는 잡지가 넘치게 들어오는 만큼 헌책방 일꾼이 알뜰히 못 돌보는지 모른다.

 비로소 얌전히 꽂거나 눕힌 잡지를 바라본다. 앞으로 한 해 두 해 더 흘러서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난 뒤에는, 앞날 사람들이 《샘이 깊은 물》과 같은 잡지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앞날 사람들은 헌책방에서 비싼값을 치르면서 이 잡지를 찾아서 읽으려나, 아니면 비싼값을 치르며 건사할 수집품으로 여기려나, 새로운 나날에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삶얘기를 펼치도록 도와줄 책동무로 여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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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이라는 곳은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5.16.


 살림을 시골자락으로 옮긴 지 한 해가 가깝다. 책짐은 살림을 옮기고 나서 두 달 뒤에 옮겼으니 시골자락 도서관이 된 지 한 해가 되려면 조금 더 남은 셈이기는 한데, 꽤 오래도록 책살림을 알뜰히 갈무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날마다 조금씩 갈무리하면서 차츰차츰 꼴이 나고, 오래도록 바라보며 천천히 갈무리하기 때문에 이 책들 한 번 더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할 수 있기도 하다.

 언제쯤 여느 바깥사람한테까지 도서관을 열 수 있을까. 여느 바깥사람은 시골자락 사진책 도서관으로 찾아왔을 때에 무슨 책과 어떤 이야기를 스스로 건져올릴 수 있을까. 사진을 보는 눈길과 삶을 붙잡는 손길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도서관이란 더 많은 사람들한테 책을 나누는 일이 된다기보다, 이 도서관을 마련한 사람 스스로 제 삶을 책과 엮어 한결 사랑스레 돌보고프다는 뜻이 되지 않느냐고 느낀다. 도서관이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이 책 저 책 그저 잔뜩 들여놓아도 될 곳인가. 널리 사랑받는 책을 갖추어야 하는 곳인가. 온누리 모든 책을 건사할 만한 도서관은 없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부질없는 막공사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이렇게 막공사를 하는 데에 들일 돈과 품에다가 건물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한다면, 온누리 모든 책을 알뜰히 갖출 수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 스스로 돈과 땀과 품과 겨를을 어디에 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같은 책을 백 번쯤 되읽거나 즈믄 번쯤 곱새기며 읽을 수 있을 때에 넋이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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