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책읽기


 누가 어느 책을 깎아내린대서 내가 어느 책을 읽을 때에 좋은 알맹이나 줄거리나 빛줄기가 스러지거나 옅어지지 않는다. 누가 어느 책을 추켜세운대서 내가 어느 책을 읽을 때에 얄궂은 속살이나 겉치레나 허울이나 껍데기가 사라지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읽는 책이요, 책은 책 그대로 책이다.

 누가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한대서 내가 깎이거나 낮추어지지 않는다. 누가 나를 추켜세운대서 내가 올라가거나 높아지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나일 뿐, 둘레 사람들 어떠한 말에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 나로서는 내 삶을 사랑하면서 늘 착하며 참다이 걸어갈 한길을 돌아볼 노릇이다.

 겉이 아닌 속을 읽을 책이고, 겉치레가 아닌 속치레를 할 삶이며, 입에 발린 사랑이 아니라 따스히 껴안는 사랑을 나눌 일이라고 느낀다. 부질없는 말을 일삼을 때에는 부질없는 삶에 스스로 얽히고 만다. 맑은 말로 맑은 넋을 키우며 맑은 삶을 일구면 된다. 밝은 글이 깃든 밝은 책을 알아보며 밝은 꿈을 가꾸면 된다. (4344.6.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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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이름과 책읽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쓴 책을 펼쳐 읽다가 문득 책날개에 적힌 해적이를 들여다본다. “1952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고, 목포교육대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라는 대목이 첫 줄에 나온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이야기야 으레 적을 만하지만, 어느 대학교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꼭 적어야 했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면, 어느 해에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이야기도 굳이 안 적을 만하다만, 사랑을 어떻게 받고 꿈을 어떻게 키우며 삶을 어떻게 일구었는가 하는 이야기와 함께 곁들인다면, 나란히 적어도 괜찮을 나이요 고향이라고 본다. 그런데 대학교 이름은 왜 밝혀야 할까. 대학교 이름을 밝힌다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 이름은 안 밝혀도 될까.

 발자국을 찬찬히 밝히려 한다면 학교이름 적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다. 그렇지만, 몇 줄 안 되는 책날개에 학교이름을 적느라 한두 줄이나 두어 줄을 흘린다면, 정작 책쓴이 삶을 더 깊이 돌아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셈이 아닐까.

 학교가 사람을 얼마나 가르칠까. 학교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칠까. 학교를 다닌 사람은 무엇을 배울까. 학교에서 사람은 어떤 사랑과 꿈과 삶을 배울까. 학교는 사람한테 무슨 책을 읽힐까. (4344.6.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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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mphotonet/5926 

수채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할머님 육아일기가 다시 나온다. 

할머니가 아직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돌보면서 살아가실 때에 

이 책이 다시 나오니 참으로 반갑다. 

새로 나오는 판은 예전에 나온 판이 편집을 너무 어수룩하게 해서 

책맛을 잃게 했던 아쉬운 대목을 잘 추스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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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용과 책읽기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책을 읽지 못한다. 버스를 모는 이 가운데 무척 드물게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고 틈틈이 읽는 사람이 있다지만, 자가용 모는 사람 가운데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으며 틈틈이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짐차를 몰거나 택시를 모는 사람은 어떠할까. 온누리 온갖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모는 겨를하고 책을 읽는 겨를이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누구나 앞을 보며 달린다. 옆을 보거나 뒤를 볼 수 없다. 다른 자동차하고 받거나 스치지 않자면 옆거울이나 뒷거울을 본다. 그렇지만 옆이나 뒤를 보지는 않는다. 앞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앞산이나 앞들이나 앞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오직 앞길과 앞차만 바라볼 수 있다.

 집에서 식구들을 태우는 자가용일 때에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다. 모든 삶터는 휙휙 스친다. 달리기를 멈추고 오래도록 한 곳에서 느끼거나 누리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숲 사이 찻길을 달린다 하더라도 스치면서 살짝 맛보는 숲길이 될 뿐, 오래도록 멈추어서 숲과 바람과 하늘과 멧새와 풀벌레가 어찌 어우러지는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자동차는 소리가 시끄럽다. 모든 자동차는 라디오를 틀든 노래를 듣든 소리를 키워야 들린다. 모든 자동차는 바깥에서 어떠한 소리가 나는지 들을 수 없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귀뚜라미가 울든 꾀꼬리가 울든 아이들이 조잘조잘 놀이노래를 부르든 자동차는 이 모든 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둘레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야 만다.

 모든 자동차는 아주 바쁘다. 가까운 길이든 머나먼 길이든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자동차일 뿐이다. 가까운 길을 가깝게 즐기거나 머나먼 길을 머나멀게 누리도록 하는 자동차는 없다.

 오토바이를 타면 바람을 짜릿하게 맛본다지. 그래, 바람을 짜릿하게 맛보기는 한다. 그렇지만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소리가 크게 난다. 둘레 소리를 죄 잠재울 뿐 아니라, 바람을 짜릿하게 맞는 동안 둘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산들바람에 숲나무마다 나뭇잎이 반짝반짝 나부끼며 예쁜 소리를 내든, 어미새가 먹이를 찾아 새끼새한테 먹이며 고운 소리를 내든,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더 소리를 죽이고 더 삶을 죽인다.

 자동차를 몰면 운전대 옆에 책을 얹는다든지 놓으면서 건널목 신호에 걸릴 때에 들출 수 있는지 모르나, 오토바이를 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오토바이를 몰기만 할 뿐이다.

 나는 나부터 자가용이 되든 오토바이가 되든 몰거나 가지고 싶지 않다. 책읽기를 등질 뿐 아니라 책읽기를 짓밟는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는 밉다.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나중에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몰겠다 할 수 있겠지. 다 큰 아이들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말라 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 큰 아이들은 저희 하고픈 대로 해야 한다. 다만, 아이들한테 한 가지를 느끼도록 한 다음 저희 하고픈 대로 하라고 해야 어버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소리와 냄새와 바람과 숲과 새와 흙과 햇살과 나무와 하늘과 별과 달과 냇물과 골목을 조용히 맞아들이고 나서 저희 하고픈 대로 하도록 하고 싶다. 이원수·이오덕·권정생·임길택·송건호·리영희·김남주·신동엽·김수영·고정희·윤정모·박경리 같은 사람들 글을 좋아하거나 아끼는 아이로 자란다면, 아이들은 맑으면서 밝은 길을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갈 테지.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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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난 책읽기


 재미나다고 느끼는 책을 읽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누구나 재미난 이야기를 좋아할 수 있다. 누구라도 재미나다 싶은 이야기에 눈이나 귀나 마음이 쏠리기 마련이다.

 나는 재미난 책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재미나다 싶은 책 또한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책이다. 내가 기쁘게 장만하는 책은 참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끼는 책이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면 아주 고맙다고 여긴다. 이러한 책을 쓴 사람과 이러한 책을 엮은 사람 모두 더없이 고맙다고 절을 하면서 장만해서 읽는다. 이러한 책을 갖춘 책방 일꾼 또한 참말 고맙다고 절을 한다.

 곰곰이 돌아보면, 재미난 책은 아주 많다. 아름다운 책도 퍽 많다. 재미나면서 아름다운 책도 꽤 많다. 그러나,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은 아주 드물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책은, 아름다움이 재미로 녹아들고 사랑스러움이 재미로 스며든다.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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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6-12 08:45   좋아요 0 | URL
어머...벼리 넘어졌었나봐요.
많이, 오랫동안, '호오~'해 주셔야 겠어요.

숲노래 2011-06-12 13:21   좋아요 0 | URL
자전거에 태워 마실 다녀오는 길에 수레가 뒹굴어서 까졌는데 이제 다 아물었어요. 아버지 생채기는 흉으로 남았지만, 아이는 다 사라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