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책읽기 2


 책을 읽으면서 버스내음이나 버스소리를 잊으려고 하지만, 속이 울렁거리면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서울에 닿기 앞서부터 바람결이 칙칙하다고 느낍니다. 이곳 서울에서 이 많은 사람들은 무얼 보고 마시고 쓰고 먹으면서 목숨을 이을까요. 이곳에서 살아왔고 이곳에서 살아가며 이곳에서 살 사람들한테는 무슨 빛줄기가 도움이 되거나 쓸모가 있을까요. 아니, 빛줄기를 바라기는 할까 모르겠습니다. 빛줄기를 찾기나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내가 시외버스를 타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책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잠자기입니다. 그러나, 시외버스에서 잠을 자며 몸이 개운한 적이란 없습니다.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으며 머리가 맑아지는 때란 없습니다. 푸른 들판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곳이 아니라면 잠을 자더라도 개운하지 않습니다. 푸른 들판 내음과 소리를 맞아들이고 파란 하늘 내음과 소리를 받아들이는 자리가 아니라면 책을 읽더라도 맑거나 밝은 넋이 깃들지 않습니다.

 책을 살짝 내려놓습니다. 한손으로 이마를 짚습니다. 조용히 비손합니다. 부디 나부터, 아무쪼록 내가 먼저,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쓸쓸한 곳을 오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내 빛줄기를 놓거나 잃거나 내동댕이치지 말자고 비손합니다. 내가 걷는 길에 내 발자국 고이 아로새기고, 내가 쥔 책에 내 손길 예쁘게 어리도록 하자고 비손합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나를 돕고, 나는 아나스타시아를 돕습니다. 옆지기가 나를 돌보고, 나는 옆지기를 돌봅니다. (4344.9.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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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 책읽기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야 사랑을 이루지 못합니다. 목숨을 들이지 않고서야 아이를 낳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목숨을 쏟지 않고서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마어마하게 따사로운 목숨이 깃든 책 하나를 고맙게 읽습니다. 나 또한 내 목숨을 기울여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책 하나 일구어 내놓습니다.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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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놀이 책읽기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모른다는 옛말이 있지만, 참말 개구리가 올챙이였던 나날을 모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람은 개구리가 아니요, 개구리 삶을 모르며, 개구리 넋을 짚을 수 없으니까. 개구리를 빗대어 이야기하지만, 옳게 말하자면 어른은 어린이였던 지난날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 아기였던 나날을 떠올리는 어버이가 드물거나 없다고 해야 한다. 나부터 헤아린다면,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막상 내가 이 두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찌 지냈는가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한다.

 첫째 아이가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가끔 바라본다. 아직 혼자서 마당에서 놀지 못한다. 빨래를 널거나 걷으러 마당에 나올 때면 쪼르르 따라나와서 흙놀이를 하곤 한다. 흙놀이를 마친 아이는 흙 묻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거나 옷에 문지른다. 아마, 나도 첫째 나이만 했을 때에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아이가 옷에 흙을 묻힌다고 나무라려 한다면, 나 또한 어린 나날 나무라는 소리를 들은 일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방으로 들어와서 손을 물에 씻는다 하더라도 금세 다시 흙놀이를 한다. 씻으나 마나라 할 테지만, 또 씻겨야 할 테지.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곧잘 갯벌마실을 가서 갯벌흙을 만지며 놀았다. 바닷가에서는 모래흙도 만지고 뻘흙도 만질 수 있어 좋다. 질척질척한 뻘흙으로는 이것저것 만들기 쉽다. 수많은 구멍을 좇아 어떤 목숨들이 옹크리는가를 살핀다. 뻘흙에서 논 다음에는 바닷물로 손을 씻으면 된다.

 내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형하고 인천 송도유원지에 마실을 다녀오던 퍽 어린 어느 날, 형하고 내가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울 때, 내 아버지, 곧 아이들 할아버지가 나와 형이 옹크린 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 찍었다. 나는 내 아이가 시골집 마당에 옹크리며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몇 해를 기다린 끝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를 모두 장만한다. 2002년에 한 번 찍고 판이 끊어진 책인데, 출판사에서 용케 2011년에 새로 찍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한글을 깨치고 만화책을 신나게 읽을 무렵일 2020년 언저리에 《불새》가 다시 나오리라 바랄 수 없다. 《불새》뿐이랴. 《아톰》이나 《블랙잭》이 다시 나오리라 꿈꿀 수 있을까. 《나의 손오공》은 2020년에도 장만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모든 책을 다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하더라도 “자, 여기에 있어.” 하고 내미는 어버이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이건 뭐야?” 하고 물을 때에, “응, 이건 이렇단다.” 하고 보드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버이가 되어야 하리라. 지치지 말고, 꺾이지 말며, 책을 읽듯 삶을 읽으면서 삶을 읽듯 책을 읽는 예쁜 어버이로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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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1-08-31 10:47   좋아요 0 | URL
언제 보아도 참 행복해보이는 아이랍니다,
우리딸도 저럴때가있었는데 요즘 엄마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싶어요,,ㅎㅎ

숲노래 2011-08-31 11:01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곱고 예쁜 모습 그대로일 딸아이로
사랑스레 자라리라 믿어요~
 

 

 책을 안고 잠들기


 가슴에 책을 안고 잠들 수 있는 아이는 즐거울까. 놀고 또 놀며 다시 놀려고 하던 아이가 아주 모처럼 한낮에 책을 가슴에 꼬옥 안고 포옥 잠들었다. (4344.8.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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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에서 책읽기


 아이하고 텃밭 옆에 함께 앉는다. 문득 이 텃밭에서 아이하고 풀을 뽑은 적은 있고, 아이하고 씨를 심은 적은 있으나, 텃밭 옆에 함께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가만히 푸성귀나 풀을 바라본 적은 없다고 느낀다. 오늘 옆지기는 첫째랑 멧길을 올라가서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단다. 그렇구나.

 텃밭 옆에 앉으니 모기에 물린다. 아버지만 잔뜩 물린다. 모기가 아이를 물지 않아 고맙지만, 땀내 물씬 풍기는 아버지 등짝이며 어깨며 발등이며 무릎이며 된통 무는 모기가 고달프다.

 아버지는 텃밭 옆에서 고추꽃이랑 오이꽃을 그림으로 그린다. 아이는 텃밭 옆에서 꼬물꼬물 글 그리기를 한다.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멧길을 오르내리는 일도 좋은 한편,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일도 좋은데, 왜 이제껏 이렇게 하자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너무 고단해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지쳐서? 사람들은 마음을 쉰다며 멧자락을 타기도 하는데, 멧골자락 집에서 살아가며 멧골 기운을 더 깊이 느끼지 않으니 바보스럽다 할 만하다.

 식구들 모두 새근새근 잠든 깊은 밤, 우리 집을 둘러싼 풀숲에서 끝없이 가득가득 퍼지는 풀벌레 소리를 마음껏 듣는다. 둘째 백날떡을 받으러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도 풀벌레 소리를 신나게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걸어도, 자전거를 달려도, 아이를 안고 달래도, 부엌에서 쌀을 씻어 불려도, 노상 듣는 풀벌레 소리.

 둘째 백날을 맞이해 찾아온 음성 할머니가 텃밭에 배추를 심어 김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신다. 배추랑 무를 심고픈 마음 한가득이지만, 이제 이 멧골집에서 떠날 텐데, 그래도 텃밭에 씨앗을 심고 떠나야 할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올봄에 텃밭 가장자리에 심은 살구나무 잎사귀가 천천히 노랗게 물든다. (4344.8.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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