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10.


《새로운 규슈 여행》

 치칭푸이푸이 타비자 글·사진/이진아 옮김, 꿈의지도, 2018.1.15.



나는 어디로 나들이를 가든 먹을거리·마실거리에는 그리 마음을 안 둔다. 첫째로는, 우거진 나무 사이에 맨발로 거닐다가 누울 풀밭이 있는지를 보고, 둘째로는, 손으로 떠서 마실 냇물이나 샘물이 있는가를 보며, 셋째로는 마을책집이 있는지를 보고, 넷째로는 집마다 나무가 얼마나 돌보는지를 본다. 살뜰한 마을이라면 어느 밥집에 들어가도 섭섭한 일이 없으리라. 알뜰한 마을이라면 조그맣더라도 책집을 품겠지. 《새로운 규슈 여행》을 보면서 ‘새롭다’란 말을 혀에 다시 얹어 본다. 무엇이 새롭게 가는 나들이일까? ‘먹고 마시고 사고 쓰고’란 네 가지 틀을 넘어설 만하다면 새로울까. 그렇다면 이 책을 여민 이들은 이 틀을 얼마나 넘어서거나 벗어났을까. 어쩌면, ‘여행’이란 이름으로 다니는 길이란, 먹고 마시고 사고 쓰고라는 흐름일는지 모른다. ‘관광문화·관광산업·관광수입’ 같은 말이 쉽게 춤추는 이 나라를 보면 알 만하지. 이웃을 만나려고 다녀오는 길이 아니라, 뭔가 쓰고 누비고 휘젓고 사진을 남기는, 이른바 ‘맛집·멋집·옷집’ 찾기일 뿐이라면 시시하지 않을까. 춤을 추고 싶으면 이태원이 아닌 너른 들판에서. 술을 즐기고 싶다면 홍대가 아닌 나무가 그늘을 베푸는 마당 한켠에서.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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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9.


《빈 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글, 문학과지성사, 2016.6.16.



바깥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시외버스에서 《빈 배처럼 텅 비어》를 읽는데, 첫자락에서는 움찔하구나 싶은 이야기가 흐르더니, 어느새 폭삭 늙어 주저리주저리 잔소리를 늘어놓는 듯한 이야기로 바뀌네 싶더라. 글쓴님은 첫머리에 “한 판 넋두리”를 늘어놓았다고 적는데, “늙은 잔소리”이네 싶더라. 넋두리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저 넋두리이지. 그동안 힘겨웠다는 하소연에는 여태 묻어 놓은 핏내음이 흐른다. 여태 벅찼다는 넋풀이에는 이제껏 담아 놓은 눈물바람이 도사린다. 이제껏 아팠다는 아이고땜에는 오늘까지 덮어 놓은 생채기가 드러난다. 빈 배라면 말 그대로 텅 비었겠지. 아무것도 없겠지.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빈 배이니 물줄기를 잘 타고 간다. 이녁 몸뚱이만 실은 배이니 어디로든 홀가분하게 나아간다. 빈 배를 탄 몸이라면 포카혼타스 아가씨처럼 “Just Around the Riverbend”란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 어느 길로 가시겠는가? 오늘까지 걸어온 길을 이제는 거스르고 싶은가? 오늘부터 새로 나아갈 길은 어제하고 다르기를 바라는가? 사랑하는 삶을 바라는지, 사랑이 없는 쳇바퀴를 바라는지, 두 갈래 가운데 하나일 뿐. 아가씨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어린이도 버드나무한테 찾아가서 물어보면 실마리를 찾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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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6.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로라 바카로 시거 글·그림/김은영 옮김, 다산기획, 2014.5.30.



온누리가 사람이 살기 좋다면 높다란 겹집이나 자동차나 비행기가 오가기 때문이 아닌, 바로 푸른물결이 찰랑찰랑 덮기 때문이지 싶다. 어느 고장이 아름답다면 오래된 집이나 골목이 있기 때문이 아닌, 바로 골목꽃에 골목나무에 골목밭이 싱그럽기 때문이지 싶다. 그림책을 넉넉히 누릴 마을책집을 찾아나서려고 서울로 간다. 따지고 보면, 서울에서 만날 분이 있기에 움직이지만, ‘일은 핑계’요 ‘마을책집이 뜻’이라고 생각해 본다. 큰고장 한복판에도 푸르게 우거지는 바람을 일으키는 마을책집이다. 이 마을책집을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떤 바깥일도 가붓하면서 즐겁다.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을 되읽었다. 온누리에 풀빛이 참으로 많디많다지. 풀잎이며 나뭇잎도 푸른물결일 테고, 풀바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푸른너울일 테며, 숲바람을 보살피는 손길도 푸른빛살이겠지. 나물로 삼으며 먹어도 반가운 풀이요, 나물로 안 삼고 밭자락이나 마당이나 뒤꼍을 풀밭으로 덮고서 맨발로 사뿐사뿐 디뎌도 좋은 풀이다. 나무 곁에 기대어 선다든지,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구름이 베푸는 그늘을 누리며 맡아도 좋은 풀내음이다. 풀을 미워하는 나라는 무너진다. 풀을 싫어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멀어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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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8.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

 인디고 서원 엮음, 궁리, 2020.4.24.



어린이날이 지나갔고 어버이날이 흐른다. 문득 형이 생각나서 잘 지내느냐고 묻는 쪽글을 띄운다. 아침 일찍 익산에서 전주로 건너가려고 걷는다. 전주만큼은 아니나 익산도 관광문화를 키우려고 애쓰지 싶은데, 남부시장에서 익산역으로 걸어가는 길이 엉망진창이다. 익산시장을 비롯해서 공무원은 이 길을 걸었을까? 익산으로 마실하는 사람은 자가용으로 어느 곳을 콕 찍듯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갈까?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면서 이 고장을 누리고 싶겠지. 그런데 가게마다 거님길에 내놓은 그들 짐꾸러미가 너무 많고 지저분하다. 모든 가게가 거님길을 그 가게 짐터로 삼지는 않는다. 어느 가게는 거님길에 아무 짐을 안 내놓고 깔끔하다. 적잖은 가게는 거님길에 그 가게 짐이며 오토바이에 짐차를 아무렇게나 부린다. 이팝나무 꽃내음을 느끼면서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를 떠올린다. 마실길 나오기 앞서 읽었는데, 배움길만 바른길이지 않으리라. 삶길도 살림길도 사랑길도 모두 곧은길이겠지. 행정을 펴는 길도, 정치를 하는 길도, 글을 쓰는 길도, 밥을 짓고 옷을 손질하며 집안을 돌보는 길도 하나같이 올바르면서 즐겁고 상냥한 길이라고 본다. 배움꽃길로, 살림꽃길로, 마을꽃길로, 사랑꽃길로 얼크러지는 하루를 꿈꾼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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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5.


《연필로 쓰기》

 김훈 글, 문학동네, 2019.3.27.



풀을 벤다. 낫으로 석석 베어 눕힌다. 훑어서 먹지 않은 들풀은 낫으로 눕혀 새흙으로 돌아가라고 속삭인다. 너희가 싱그러이 자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고 노래한다. 맨발에 맨손으로 우리 집 뒤꼍 풀밭을 누리면서 해를 보고 바람을 먹는다. 발가락에 닿는 풀잎이 산뜻하고, 손가락을 스치는 풀포기가 새롭다. 김훈이란 분은 《연필로 쓰기》라는 책을 써냈는데, 집에서건 마실을 다니건 언제나 연필꾸러미를 잔뜩 챙기는 사람으로서 돌아본다면, 난 “연필로 쓴다”고 말하지 않는다. 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낫으로 씁니다. 저는 자전거로 씁니다. 저는 아이들이랑 놀면서 씁니다. 저는 똥오줌기저귀를 신나게 손빨래를 하는 살림돌이로서 씁니다. 저는 바지랑대를 세우고 햇볕을 먹는 맨발로 씁니다. 저는 눈물로 쓰고 춤으로 씁니다. 저는 별빛으로 쓰고 꽃내음으로 씁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 별을 사랑으로 보듬고 싶은 숲이 노래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김훈 님이 쓴 글이 나쁘거나 엉성할 일이 없다. 다만, 나쁘지 않고 엉성하지 않으니 외려 싱겁다. 글솜씨가 보이되, 솜씨에 담을 포근한 숨결은 좀처럼 못 본다. 그렇다고 김훈이란 분이 낫질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한테 바랄 일 없다. 내가 오늘 낫질로 글쓰기를 하면 될 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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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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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0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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