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30. 기다려



  글 하나를 마무리짓기 앞서 큰아이가 불쑥 부른다. 다섯 줄로 한 자락을 마치면 될 글이다. 아이가 부른대서 마음이 살짝이라도 흐트러질 일은 없으나, 뭔가 아이한테 알려줄 일이 생겼다고 뼛속 깊이 짜르르 번쩍거린다. 글마무리를 멈추고 아이를 두 손으로 품에 안고서 속삭인다. “사름벼리야, 어머니가 뜨개할 적에 너희가 안 건드리지?” “응.” “너희가 책짓기 하거나 그림 그리거나 뭔가 쓸 적에 아버지가 안 건드리지?” “응.” “아까 아버지가 한창 밥할 적에 동생이 이것 좀 보라고 불렀지만 아버지는 밥을 지켜봐야 하니까 그쪽으로 고개도 돌릴 수 없잖아?” “응. 그래.” “아버지는 곧 마무리를 지어야 할 글이 있어. 조금 더 쓰면 끝나거든. 그런데 마무리를 지을 적에 누가 말을 걸면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어. 그때에는 기다려 주렴. 얼른 끝내고 다시 이야기하자.” 큰아이하고 함께 살아온 열두 해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바랄 적에 ‘기다려’ 하고 말한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없다시피 하다. 다만 이제는 아이도 뭔가 기다리고서 제 할 말을 하면 좋겠구나 하고 느낄 때이지 싶다. 기다리는 사람이란 너그러운 사람이란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란 엄청나게 넉넉한 사람이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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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9. 다들 안다



지켜보면서 살아가면 된다. 서두르려 하면 서두르는 마음이 퍼진다. 섣불리 달려들면 섣부른 마음이 흐른다. 느긋하게 함께 걸으면 느긋한 마음이 스민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살림을 지으면 즐겁게 노래하는 살림이 가만가만 녹아든다. 무엇을 가르치느냐는 참으로 대수롭겠지. 그러나 이보다 대수로운 대목이 있으니 어떻게 마주하느냐이다. 아무리 알차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어떻게 들려주느냐를 헤아려야 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서로 옷차림이나 겉모습에 마음을 기울이려 한다. 아무리 속마음이 아름답더라도 ‘어떻게 = 겉차림’으로 여겨 버릇하니까. 이쯤에서 곰곰이 돌아보자. 아무 옷이나 걸치면 안 되는 셈일까? 두 눈을 감고 볼 적에는 무엇을 걸치든 무엇이 대수로울까? 눈으로 보기에 예뻐야 더 맛날 수 있으나, 눈으로 보는 느낌에 속아넘어간다면? 예뻐 보이지만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물이 깃들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독버섯이 이와 같겠지. 예쁠수록 섣불리 만지지 말라는 독버섯을 모르는 이가 드물 텐데, 막상 예뻐 보이는 겉모습일수록 그이 마음이 어떠할는지를 살피는 사람도 꽤 드물지 싶다. ‘어떻게 = 겉차림’이 아니다. ‘어떻게 = 마음을 쓰는 숨결’이다. 마음을 쓰는 숨결은 옷차림이나 얼굴이나 몸매나 머리카락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고 마주하며 받아들여서 헤아려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눈을 떠야 할 곳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아야 할 곳에서 눈을 감는 길, 이 길이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살림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 물려주고 물려받는 보금자리일 테지. 다들 안다고 하지만 정작 모르는, 다들 얼마든지 알 수 있기에, 두 눈을 제대로 건사할 노릇이라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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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8. 하나가 둘로



아이들을 낳아 돌보는 살림길이 아니었으면 도무지 못 배웠을까 싶은, 그러나 꼭 아이들을 낳아 돌보는 살림길을 걷기 때문에 배우지는 않았을, 즐거운 한 가지를 아침에 느낀다. 신나게 배우려 하면서 활짝 웃는 아이들한테는 하나만 가르치지 못한다. 둘도 셋도 넷도 열도 잇달아 노래하면서 가르쳐 준다. 이렇게 가르치면서 나부터 까르르 웃는 몸짓이고, 배우는 아이들은 히히히 노래하는 마음짓이네. 배움이란 늘 웃음꽃이네. 배움이란 참말로 노래잔치이네. 배우는 삶이란 더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답네. 아이들한테 한 마디를 보탠다. 사랑해. 참 아름답구나. 하루가 맑고 좋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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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7. 아무 말



둘레에서 얼핏 구경하는 사람은 잘 모르기 마련이다.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면서 사랑하려는 눈길인 사람은 잘 느끼기 마련이다. 나는 “아무 말”이나 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말”이든 한다. 나는 “아무 일”이나 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일”이든 한다. 나는 “아무 사람”이나 사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든 사귄다. 나는 “아무 사람”한테나 내 글이나 사진이나 책이나 사전을 주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든 내 글이나 사진이나 책이나 사전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한 땀 두 땀 마음을 쏟는다. 우리 집 아이들은 두 어버이한테서 “아무러한 것”이나 배우지 않는 길을 가도록 마음을 기울인다. 우리 집 아이들은 두 어버이한테서 “어떠한 것”이든 슬기롭게 배우고 사랑으로 녹여서 살림으로 꽃피우는 길을 스스로 익히도록 마음을 쓰려 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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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6. 누구나



어머니 혼자 집일을 하면 어머니가 고되다. 아버지 홀로 집일을 다루면 아버지가 벅차다. 아이들 힘만으로 집일을 해내려면 아이들이 지친다. 어느 한 사람이 도맡을 집일이 아니다. 누구나 할 집일이다. 서로 한 가지씩 배우고 가르친다. 처음에는 손에 잡히는 쉬운 일부터 익히고, 차근차근 다른 일로 손을 뻗어서 모든 일을 저마다 즐거이 다룰 수 있도록 가다듬는다. 생각해 보라. 씨앗만 심을 줄 알면 될까? 풀포기만 훑어서 먹을 줄 알면 될까? 흙결을 살필 줄 알기만 하면 될까? 열매를 거둘 줄 알기만 하면 될까? 갈무리만 할 줄 알면 될까? 먹을 줄만 알면 될까? 밥짓기만 할 줄 알면 될까? 설거지만 할 줄 알면 될까? 아주 잘 해야 하거나 솜씨좋게 해내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든 누구나 즐겁게 하면서 살림노래를 부르면 넉넉하면서 아름답구나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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