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10. 여느 날 낮에 버스 타기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면서 ‘여느 날 낮에 버스 타기’를 거의 해 보지 못했다. 아주 드물게 여느 날 낮에 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어쩐지 대단히 잘못했거나 사람들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요즈음 아이들 가운데 제도권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다시피 할 테니, 여느 날 낮에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면서 볼일을 보거나 마실을 다니는 삶을 누려 본 적도 드물 테지. 여느 날 낮에 느긋하게 책집에 들른다거나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찾는다거나 공원에서 나무그늘을 찾는다거나 숲길을 걸어 보는 일도 드물 테고. 주말이나 방학에 우르르 몰려서 가는 ‘여느 날 볼일이나 마실’이 아닌, 언제라도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삶을 돌아보고 삶터를 헤아리는 나날이 되어야지 싶다. 여느 날 낮에 해를 보며 해바라기를 한다. 여느 날 낮에 바닷가에 찾아가 바닷물에 풍덩 뛰어든다. 여느 날 낮에 풀밭을 거닐며 풀내음을 먹는다. 여느 날 낮에 만화책을 펴고 시 한 줄을 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09. 안 깨우기



우리 집 아이들을 아침에 깨우는 일이란 거의 없다. 아이들이 아주 느즈막할 때까지 안 일어나는, 이를테면 아침 열 시가 되어도 안 일어날 적조차 되도록 안 깨웠다. 그리 늦게 잠들지 않았는데 아침 열 시나 열한 시 무렵에 일어나는 아이를 안 깨우기란 쉽지 않았지만, 더 자야 하니까 더 자야 하겠거니 여겼다. 이렇게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어느 무렵, 작은아이부터 새벽 다섯 시나 다섯 시 반 무렵 스스로 깨어나더니, 큰아이도 아침 일곱 시 넘어서 깨어나는 일을 찾아볼 수 없다. 둘 다 스스로 새벽빛을 보면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나 스스로도 울림시계를 쓴 일이 없고, 아이들도 울림시계를 안 쓴다. 우리는 몸에다 대고 이야기한다. 얼마쯤 자면 좋겠고, 언제쯤 일어나면 좋겠다 하고. 이러면 몸은 우리 이야기를 알아듣고는 고스란히 따른다. 어쩌면 우리는 잠을 아예 안 자고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몸한테 ‘잠을 안 자도 얼마든지 눈부시게 튼튼하지’ 하고 말한다면. 다만, 낮잠이나 밤잠을 살짝살짝 누리면서 꿈나라를 누빌 적에 기쁘니 굳이 잠을 안 잘 생각은 없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08. 값싼 것



아이들이 무엇을 골라서 사야 할 적에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아, 우리가 쓸 세간을 고를 적에는 물건값을 쳐다보지 말자. 우리가 쓸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보자. 두고두고 즐겁게 쓸 만한지 아닌지를 보자. 얼마쯤 쓰다가 망가져서 버릴 만하다면 처음부터 장만하지 말자. 우리는 더 싸거나 비싼 것이 아닌, 오래오래 즐겁게 쓰면서 누릴 세간을 살펴서 쓰면 돼.” 값싼 것을 여럿 둔대서 좋거나 즐거울 일이란 참말 아예 없다. 값싼 신을 여러 켤레 두면 좋을까? 제대로 좋은 것을 제값을 치러 꼭 하나 둘 적에 좋지 않을까? 신을 굳이 여러 켤레 둘 일이 없다. 가장 나은 신 한 켤레만 있으면 된다. 바깥으로 마실을 다니다가 밥을 사다가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도 가장 먹고 싶은 한 가지를 먹기로 한다. 주머니에서 돈이 적게 나갈 만한 싼 것을 먹을 생각이 없다. 느긋하게 즐겁게 넉넉하게 먹을 만한 밥차림을 살피기로 한다. 가만 보면 우리가 값싼 것을 찾으려 할 적에는 배울 이야기가 없다. 굳이 값싼 책을 여럿 장만해야 할까? 두고두고 되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책 하나로 넉넉하지 않은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07. 혀짤배기



나는 혀짤배기라는 몸이 부끄럽다고 여겨 때때로 말을 안 하고 살았다. 이를테면 국민학생 적에 반 해 동안 입을 꾹 다문 채 지낸다든지, 낯선 사람을 마주할 적에 입을 안 열고 고개만 살짝 까딱한다든지 하면서. 한때는 입으로 말하기보다 글로 써서 생각을 밝히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여기기도 했다. 이러다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 발길 없는 곳을 두어 시간쯤 천천히 걸으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 본다든지, 새벽에 신문을 자전거로 돌리면서 신나게 노래를 불러 보면서 ‘혀짤배기한테 맞는 소리결하고 소리값’ 찾기를 했다. 말다운 말이 흐르지 않는구나 싶은 이 나라에서 혀짤배기로도 말다운 말을 펴자고 생각을 돌려 보았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서 내 소리결하고 소리값을 얼추 찾기까지 열 몇 해가 걸렸고, 요즈음도 내 몸에 어울리는 소리결하고 소리값을 꾸준히 찾는다. 이러면서 아이들한테 이야기한다. 오늘 너희가 뭘 못 하는구나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못 해도 된다고, 나중에 그 못 하는구나 싶은 일을 바꾸고 싶으면 천천히 바꾸어 보면 된다고, 즐겁게 마음을 기울이라고, 너희 아버지는 무척 느긋하면서 즐겁게 혀짤배기 말소리를 이렇게 바꾸어서 휘파람까지도 부는 몸이 되었다고.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06. 먹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하루가 얼마나 길고, 살림은 얼마나 홀가분하며, 우리는 서로 참으로 사이좋게 어우러질 텐데 하고, 꽤 어릴 적에 생각한 적 있다. 아니, 꽤 어릴 적에 무척 자주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가 밥을 차리느라 밤부터 애쓰고 새벽에도 애쓰며, 아침이며 낮이며 저녁이며 하루를 온통 쓰면서 밥살림 짓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면서 ‘먹느라 왜 이렇게 힘도 돈도 품도 말미도 많이 써야 하나?’ 하고 여겼다. 우리가 먹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힘든 일에서 풀려날 뿐 아니라, 하루를 넉넉히 쓰면서 어머니 꿈을 홀가분히 펴실 테고, 아버지도 아버지대로 아침저녁으로 먼 길을 오가며 돈을 버느라 고되지 않아도 되리라 느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그만 숨이 끊어져서 죽는 몸이 될 테지만, 밥을 먹지 않는대서 바로 죽어버린다든지 굶주림에 허덕이지는 않는 몸이리라고. 늘 즐겁거나 기쁘게 지내는 이웃이나 동무는 무척 적게 먹어도 참말로 늘 즐겁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았기에 이런 생각은 내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