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209] 칼질



  칼을 손에 쥐고 무나 배추를 썰 수 있어요. 칼로 봉투를 열거나 종이를 자를 수 있어요. 칼로 당근이나 고구마를 채썰기를 해 볼 수 있고, 칼로 골판종이를 잘 도려서 종이인형을 빚을 수 있어요. 자를 적에 쓰는 ‘칼’이에요. 칼로 자르는 일을 가리켜 ‘칼질’이라 해요. 그런데 어른들은 이 칼을 놓고 좀 엉뚱한 몇 가지 말을 써요. 먼저 ‘부엌칼’이라 안 하고 ‘식도·식칼’이라 하기도 하는데, ‘식도’에서 ‘식(食)’은 ‘밥’을 뜻하고, ‘도(刀)’는 ‘칼’을 뜻하는 한자예요. 그러니 ‘밥칼’이라는 뜻으로 ‘식도’라 하는 셈이지만, 한국말은 ‘부엌칼’이에요. 빵집이나 햄버거집에서는 어린이가 빵이나 햄버거를 먹기 좋도록 칼로 잘라서 주기도 하는데, 이때에 ‘커팅칼’로 자른다고 흔히 말해요. ‘칼’은 자를 적에 쓰고 ‘커팅(cutting)’은 ‘오리다’나 ‘자르다’를 뜻하는 영어예요. 그러니 “자름칼(자르는 칼)로 빵을 자른다”고 말하는 셈이니 어딘가 얄궂지요. 그냥 ‘칼’이라고 하든지 ‘빵칼’이라고 해야 올발라요. 칼로 무엇을 자르는가를 살펴서 알맞게 칼 이름을 붙일 노릇이에요. 4349.1.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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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8] 놀림감


  짓궂은 아이가 여린 아이를 놀려요. 짓궂은 아이는 센 아이를 놀리지 않아요. 센 아이를 잘못 놀렸다가는 그만 큰코를 다칠 테니까요. 여린 아이는 ‘놀림감’이 되어도 좀처럼 맞서지 않아요. 여린 아이는 놀림감이 되면 더 ‘놀림거리’가 되곤 해요. 한 아이가 놀리고 두 아이가 놀리지요. 처음에는 장난이었을 텐데 어느새 거의 모든 아이가 따돌림을 하듯이 놀려요. 나중에는 여린 아이한테 붙인 ‘놀림말’이 이 아이 이름처럼 되고 말아요. 짓궂은 아이는 왜 여린 아이를 놀리려 할까요? 어쩌면 짓궂은 아이도 어디에선가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받았기에 이 아픔이나 생채기나 응어리를 다른 아이한테 풀려고 하지는 않을까요?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가 여린 아이를 놀리는 일은 없어요.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사랑으로 하루를 누리는 아이가 여리거나 아프거나 고단하거나 괴롭거나 슬픈 아이를 함부로 놀리거나 따돌려야 할 까닭이 없어요. 사랑을 받기에 여린 동무한테 사랑스러운 손길을 내밀고, 따스한 보살핌이 얼마나 기쁜가를 알기에 여린 아이하고 어깨동무하려 하겠지요. 짓궂은 아이를 가만히 살피면 다른 짓궂은 아이나 어른한테서 모질게 ‘놀림’을 받은 나머지 놀림쟁이나 놀림꾸러기 짓을 하는구나 싶어요. 2016.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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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7] 닭고기버거



  불에 구워서 먹는 고기이기에 ‘불고기’입니다. 그러면 물에 끓여서 먹으면 ‘물고기’일까요? 어느 모로 보면 물에 끓여서 먹는 고기는 ‘물고기’가 될 테지만,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고기를 따로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냇물에서 사는 물고기는 ‘민물고기’라 하고,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는 ‘바닷물고기’라고 해요.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고기라면, 물이 아는 땅에서 사는 고기는 ‘뭍고기’가 되어요. ‘뭍’은 섬이나 바다에서 땅을 바라보면서 가리키는 말이에요. 아무튼, 물을 끓여서 고기를 먹을 적에는 ‘삶은고기’라 해요. 이때에는 ‘삶다’라는 말을 쓰거든요. 불에 굽는 고기 가운데 돼지를 구우면 ‘돼지불고기’이고, 소를 구우면 ‘소불고기’예요. 푹 고아서 끓이는 국을 ‘곰국’이라고 하기에, 닭을 오래 끓여서 국물을 우려낼 적에는 ‘닭곰국’이 되어요.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겨서 먹을 적에는 ‘돼지고기튀김’이에요. 이 돼지고기튀김을 가리키는 일본말로 ‘돈가스’가 있고, 물고기를 튀긴 일본 밥으로 ‘생선가스’가 있지요. ‘생선가스’는 한국말로 하자면 ‘물고기튀김’이에요. 햄버거 가운데 소고기를 넣으면 ‘소고기버거’이고, 돼지고기를 넣으면 ‘돼지고기버거’이며, 닭고기를 넣으면 ‘닭고기버거’나 ‘닭튀김버거’예요. 4349.1.2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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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6] 스스로문, 저절로문



  혼자서 열리는 문이 있어요. 사람이나 고양이가 이 문 앞을 지나가면 어떤 장치가 이를 느껴서 스스로 열린다고 할 만한 문이에요. 자, 그러면 이렇게 혼자서 열리는 문은 어떤 문일까요? 스스로 열리는 문은 어떤 문일까요? 따로 단추를 누르거나 손잡이를 돌리지 않아도 저절로 열리는 문은 어떤 문일까요? 문 앞에 가만히 섰더니 스르륵 열리는 문은 어떤 문일까요? 어른들은 이 문을 가리켜 ‘혼자문’이나 ‘스스로문’이나 ‘저절로문’이나 ‘스르륵문’ 같은 이름을 알맞게 붙일 수 있었지만, ‘자동문’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써요. ‘자동’이라는 한자말은 “스스로 움직이다”를 뜻해요. 그러니까, ‘자동문’이라는 이름을 따지고 보면 “스스로 움직이는 문”이나 “스스로 열리는 문”이니 ‘스스로문’이라는 뜻이 되는 셈이에요. 발을 사뿐히 얹을 적에 스스로 오르내리는 계단이라면 ‘스스로계단’이나 ‘저절로계단’이 되겠지요. 걷지 않고 발만 올려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면 ‘스스로길’이나 ‘저절로길’이 되고요. 4349.1.2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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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


  서울 시내를 다니는 버스는 ‘서울버스’입니다. 광주 시내를 다니는 버스는 ‘광주버스’이고, 시골을 다니는 버스는 ‘시골버스’예요. 다른 곳을 안 거치고 바로 가는 버스라면 ‘바로버스’이고, 여러 곳을 돌고 돌아서 가는 버스라면 ‘도는버스’이지요. 바로버스는 ‘직행버스’라 하기도 하고, 도는버스는 ‘완행버스’라 하기도 해요. 서울에서 다니는 버스는 2003년부터 네 가지 빛깔로 옷을 새롭게 입혔어요. 처음에는 ‘그린(G)·옐로(Y)·블루(B)·레드(R)’처럼 온통 영어만 썼는데, 이제는 ‘풀빛(푸름)·노랑·파랑·빨강’ 같은 한국말을 써요. ‘풀빛버스’보다는 ‘초록버스’라는 이름을 쓰는 분이 있는데, ‘초록’은 ‘풀빛’을 가리키는 중국 한자말이에요. 일본 한자말로는 ‘녹색’이 있어요. 그러고 보면, 빛깔말을 쓰는 ‘빨간약’이 있습니다. 다치거나 까진 생채기에 바르는 약이에요. 이 약에는 ‘머큐로크롬’이라는 긴 이름을 있지만, 흔히 손쉽게 ‘빨간약’이라고 해요.


+


빙글걸상


  다리가 아프면 걸상에 앉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기도 해요. 여러 사람이 앉을 만하도록 긴 걸상이 있어서, 이를 ‘긴걸상’이라 해요. 혼자 앉을 만한 걸상은 그냥 ‘걸상’이라 할 텐데 ‘홑걸상’이라 해 볼 수 있어요. 앉으면 폭신한 걸상이라면 ‘폭신걸상’이 되고, 다리가 바닥에 단단히 버티지 않아서 흔들흔들거리는 걸상이라면 ‘흔들걸상’이 돼요. 앉는 자리가 동그랗다면 ‘동글걸상’이나 ‘동그라미걸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네모난 자리를 마련하면 ‘네모걸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걸상이 빙그르르 돌아간다면 ‘빙글걸상’이나 ‘빙그르르걸상’이 될까요? 어른들은 빙글빙글 도는 걸상을 가리켜 ‘회전의자’라 하고, 빙글빙들 돌면서 드나드는 문은 ‘회전문’이라 하는데, 빙글빙글 도는 문은 ‘빙글문’이라 하면 한결 알아듣기 쉬우리라 생각해요. 밥상을 빙글빙글 돌릴 수 있으면 ‘빙글밥상’이 되지요. 일본밥을 파는 가게에 가 보면 ‘빙글초밥’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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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작대기


  가늘고 긴 것이 있으면 ‘작대기’라 해요. 이 작대기가 나무라면 ‘나무작대기’이고, 쇠라면 ‘쇠작대기’예요. 가늘고 긴 것이라 할 테지만 작대기보다 짧으면 ‘막대기’이지요. 작대기를 토막으로 낸다면 막대기라고 할 만합니다. 작대기를 쓰면 높은 곳에 매달린 것을 따거나 움직일 수 있어요. 도랑이나 냇물에 빠진 것을 건지려면 작대기를 쓰지요. 낚싯대는 바로 작대기이고, 마당에 빨랫줄을 드리운 뒤에 받치는 바지랑대도 작대기예요. 창문을 가리는 천을 드리우려고 벽과 벽 사이에 높이 가로지르는 길다란 것도 작대기이지요. 막대기는 짧은 것을 가리키는데, 빵집에서 흔히 파는 바게트라고 하는 빵이 바로 ‘막대기’를 닮은 빵이에요. 그래서 바게트빵은 ‘막대기빵’이나 ‘막대빵’이라 할 만해요. 길이가 짧으면서 덩어리가 진 것은 ‘토막·도막’이라 하는데, 토막은 크고 두툼한 것을 가리키고, 도막은 작고 도톰한 것을 가리켜요. 장난감으로 삼는 ‘나무도막’은 작고 도톰하지요. ‘나무토막’이라고 하면 난로에 불을 땔 만큼 제법 큰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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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슬프거나 아픈 일을 숱하게 겪으면서 말까지 슬프거나 아픈 일을 겪었어요. 남녘하고 북녘이 서로 다른 나라로 갈리면서 남녘말하고 북녘말이 갈리기도 하는데, ‘동무’라고 하는 낱말을 두고도 남·북녘이 뿔뿔이 갈렸지요. 그렇지만 〈동무 생각〉 같은 노래는 그대로 부르고, 〈어깨동무 노래〉 같은 오래된 놀이노래는 고이 흘러요. 아무리 정치와 사회가 찢기거나 갈리더라도 사람들 가슴에 깃든 오래된 사랑이나 살가운 숨결을 억지로 끊지는 못한다고 할까요. 오래된 놀이노래인 〈어깨동무 노래〉를 살피면 ‘어개동무·가게동무·씨동무·보리동무·천동무·만동무·머리동무(머리카락 동무)·개동무(날씨 개는 동무)·해동무(해님 같은 동무)’ 같은 동무 이름이 나와요. 이런 여러 동무 말고도 ‘길동무·책동무·글동무·일동무·놀이동무·소꿉동무’가 있고, ‘책동무·생각동무·마음동무·밥동무·이야기동무·이웃동무’가 있으며, ‘꿈동무·만화동무·노래동무·춤동무·배움동무·그림동무·사진동무·영화동무’가 있어요. 비슷한 또래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를 가리키는 ‘벗’이라는 낱말도 있고, ‘동무님·벗님’처럼 쓰기도 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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