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82] 툭탁질



  작은 일을 놓고 둘이 다툽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다투다가 어느새 손이 올라가더니, 한 사람이 때리고 다른 한 사람이 맞다가, 맞은 사람도 때린 사람을 때리면서 마구 뒤엉켜서 큰 싸움으로 번집니다. 작은 일을 놓고 둘이 옥신각신합니다.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그른 셈입니다. 서로 으르렁거리더니 다시 다툼질이 되고 싸움질로 되고 말아요. 작은 일을 놓고 서로 뜻이 안 맞습니다. 한번은 가볍게 티격을 벌이다가, 이내 티격태격 말소리가 높아지고, 어느새 툭탁거리면서 눈알을 부라리기까지 합니다. 어린이도 때때로 툭탁거리는 툭탁질을 합니다. 어른도 곧잘 툭탁거리면서 툭탁질을 해요. 우리는 누구나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마음이 다르기 마련일 텐데,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를 찬찬히 헤아리지 못한 나머지 그만 다툼질을 하고 싸움질을 하며 툭탁질을 하고 티격질을 해요. 잘못하다가는 주먹질이나 발길질이 나올 수 있어요. 이러다가는 서로 마음이 크게 다쳐서 앞으로 앙금이 깊이 쌓일 수 있어요.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한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툭탁거리는 소리가 잦아듭니다. 4349.1.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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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81] 날개 나래



  학교에서는 ‘상상화’를 그리라고 가르치거나 시킵니다. 나는 어릴 적에 ‘상상화’가 무엇인지 갈피를 잘 잡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상상’이라는 말부터 살갗으로 느끼기 어려웠어요. 어른들한테 상상화가 무엇이냐 하고 여쭈면 “상상을 그리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시 ‘상상’이 무엇이냐 하고 여쭈면 ‘생각’을 그리라고 하다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을 그리라고도 하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그리라고도 했어요. 이때에 비로소 알아차리지요. 아하, ‘꿈을 그리면’ 되는구나 하고. 이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요. 꿈을 그린다고 한다면 ‘꿈그림’이라 말하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나기를 바라거나 이루려는 꿈이라면 ‘앞꿈그림’이나 ‘새꿈그림’이라 이름을 붙일 만해요. 종이 한 장을 책상에 펼치고 내 꿈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내 꿈에 날개를 달아 보려고 합니다. 꿈날개를 펼쳐서 새로운 생각을 지으려고 합니다. 때로는 꿈나래를 펄럭이면서 마음껏 온갖 생각을 지으려고 합니다. ‘나래’는 ‘날개’를 가리키는 옛말이라고도 하고 고장말이라고도 해요. 4349.1.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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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다시피 고쳐쓰고 손질한 '말놀이' 이야기 네 가지를 새로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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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닦는천



  얼굴이나 몸이나 발을 씻은 뒤에는 물기를 천이나 헝겊으로 닦습니다. 그런데 천이나 헝겊을 써서 물기를 없애는 일은 따로 ‘훔치다’라는 낱말로 가리켜요. 걸레를 써서 방바닥을 닦을 적에도 “방바닥을 훔친다” 하고 가리키지요. 그러니까 몸을 씻고 나서 천으로 물기를 ‘훔칠’ 적에는 ‘잘 마른 천’을 씁니다. 젖은 천으로는 물기를 못 훔칠 테니까요. ‘마른 천’ 가운데에는 부엌에서 개수대 둘레에 놓으면서 쓰는 행주가 있고, 얼굴이나 손을 훔칠 적에 쓰는 천이나 헝겊이 있으며, 발을 닦는 천이나 헝겊이 있어요. 뒷주머니나 앞주머니에 넣으며 늘 들고 다니는 천이나 헝겊도 있지요. 자, 그러면 얼굴이나 손을 훔치는 천을 무엇이라 하나요? 발을 닦는 천은 무엇이라 하지요? 주머니에 넣어서 들고 다니는 천은 무엇이라 할까요? 어른들은 으레 ‘수건’이라는 낱말을 써요. ‘수건’은 한자말이고 ‘手巾’처럼 적어요. ‘手’는 “손”을 뜻하고, ‘巾’은 “천”을 뜻해요. 곧 ‘수건 = 손천’인 셈이에요. 우리가 ‘발수건’이라 말하면 ‘발 + 손천’이 되고, ‘손수건’이라 말하면 ‘손 + 손천’이 돼요. 뭔가 말이 엉뚱하지요? 어른들이 처음부터 ‘수건’ 아닌 ‘손천·발천·얼굴천·주머니천’ 같은 말을 썼다면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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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저고리



  예부터 한국사람이 입은 옷은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입니다. 바지와 치마는 아랫도리이고, 저고리는 웃도리예요. 사내가 걸치는 바지랑 저고리를 아울러 ‘바지저고리’라 가리키고, 가시내가 걸치는 치마랑 저고리를 묶어서 ‘치마저고리’라 가리켜요. 한겨레 옛 옷을 흔히 ‘한복’이라고도 하지만, 한겨레는 예부터 우리 옷을 놓고 ‘바지저고리·치마저고리’라고만 가리켰어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은 한국사람이 입은 ‘바지저고리’를 업신여겼고,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도시 문화가 크게 퍼지면서 시골살이를 깔보았어요. 이 두 가지 슬프고 아픈 발자취는 오늘날 한국말사전 뜻풀이에까지 고스란히 남습니다. 솜을 두어 겨울에 따스하게 입는 옷을 가리키는 ‘핫바지’를 놓고도 일제강점기부터 잘못 퍼진 슬프고 아픈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서 어수룩한 사람이나 시골내기를 놀리는 말로 ‘핫바지’를 얄궂게 쓰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이런 말결이나 말씨를 살뜰히 가다듬지 못하는데, 우리 어린이들은 새로운 말결이나 말씨로 한국사람 옷차림을 가리키는 수수한 이름을 곱게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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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별



  어린이는 해를 바라보면서 ‘해’라 말합니다. 해가 비출 적에는 ‘햇빛’이라 말하고, 해가 풀과 나무를 살찌울 적에는 ‘햇볕’이라 말합니다. 해가 빛줄기를 곱게 퍼뜨릴 적에는 ‘햇살’이 눈부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꽤 많은 어른은 해를 바라보며 ‘해’라 말하지 않고 ‘태양’이라는 한자말을 쓰려 합니다. 해가 베푸는 빛과 볕과 살을 맞아들여 이 기운을 쓸 적에는 ‘태양에너지’라 하기도 해요. 왜 해는 해가 되지 못하고 ‘태양’이 되어야 할까요? 햇빛을 살리는 힘이라면 ‘햇빛힘’이 될 테고, 햇볕을 살리는 힘이라면 ‘햇볕힘’이 될 테며, 햇빛이랑 햇볕을 함께 살리는 힘이라면 ‘해힘’이나 ‘해님힘’이 될 텐데요. 더 헤아리면, 지구별이 있는 우주는 ‘해누리’입니다. ‘태양계’가 바로 ‘해누리’예요. 밤하늘에 눈부시도록 빛나는 별은 저마다 다른 ‘별누리’에 깃들어요. 그러니까 ‘은하’가 바로 ‘별누리’입니다. 그러면 너른 ‘우주’는 어떤 곳일까요? 바로 ‘온누리’랍니다. 모든 누리를 아우르기에 ‘온누리’이거든요. 모든 별을 아우른다고 하는 ‘천체’는 ‘온별누리’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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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찬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선풍기’라고 합니다. 더운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온풍기’라고 해요. 우리 집 큰아이가 ‘온풍기’를 처음 보던 날 “저것 선풍기야?” 하고 묻기에 “응? 아니야. 선풍기 아니야.” 하고 말하니, “그러면 뭐야?” 하고 묻고, 나는 “더운바람이 나오는 아이야.” 하고 말해 줍니다. 아이는 문득 “‘더운바람이’겠네?” 하고 말합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아이 말대로라면 ‘찬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란 바로 ‘찬바람이’입니다. 온풍기가 ‘더운바람이’라고 한다면, 참말 선풍기는 찬바람이 나오니 ‘찬바람이’가 되지요. 그렇다면 에어컨은? 에어컨도 찬바람이일 텐데, 선풍기하고 같은 이름이 될 테군요. 선풍기는 날개가 돌아가니까 ‘날개바람이’나 ‘날개찬바람이’라 하고, 에어컨은 그냥 ‘찬바람이’라고 하면 될까요? 선풍기도 온풍기도 에어컨도 이 이름대로 써도 되지만, 퍽 재미있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서 선물처럼 붙여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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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놀이' 이야기 네 가지를 새롭게 손질하고 고쳐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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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은지



  개구리는 어떤 소리를 내면서 노래할까요? 개구리가 내는 소리를 ‘노래한다’고 여기면서 듣는 사람이 있고, ‘운다’고 여기면서 듣는 사람이 있어요. 노래하는 소리하고 우는 소리는 사뭇 달라요. 매미가 노래하거나 울 적에도 소리가 사뭇 다를 테고, 비둘기나 제비나 참새가 노래하거나 울 적에도 소리가 사뭇 달라요. 자, 그러면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서 노랫소리나 울음소리를 들어 보기로 해요. 병아리랑 닭은 어떻게 노래하거나 울까요? 소랑 돼지는 어떻게 노래하거나 울까요? 귀뚜라미랑 방아깨비는 어떻게 노래하거나 울까요? 냇물은 어떤 소리를 내면서 흐를까요? 빗방울은 어떤 소리를 내면서 떨어질까요? 빨래를 손으로 비빌 적에는 어떤 소리가 날까요? 달걀을 부치거나 소시지를 익히거나 감자를 볶을 적에는 어떤 소리가 날까요? 밥이 끓는 소리랑 국이 끓는 소리는 어떠할까요? 참새는 ‘짹짹’이라 하는데 참말 참새 노랫소리나 울음소리는 ‘짹짹’ 하나뿐일까요, 아니면 다른 소리가 있을까요? 시냇물은 ‘졸졸’ 소리만 내면서 흐를까요, 아니면 새로운 소리가 있을까요?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이던 때에 우리 집 마당에 찾아온 멧새를 보더니 “아버지, 저 새는 ‘은지은지’ 하고 우네?” 하고 말했어요. 그때 우리는 그 멧새한테 ‘은지은지새(또는 은지새)’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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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리



  네 식구가 면소재지 마실을 하면서 중국집에 들르던 날입니다. 중국집에서 몇 가지를 시켜서 먹은 뒤 값을 치르려는데 아주머니가 “500원은 깎아 줄게요.” 하고 말씀합니다. 중국집에 이어서 면소재지 빵집으로 갑니다. 몇 가지 빵을 산 뒤 값을 내려는데 아주머니가 “이건 어제 거니까 디시(DC)해 줄게요.” 하고 말씀합니다. 면소재지 마실을 마친 뒤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합니다. 한곳에서는 ‘깎는다’고 말씀하고, 다른 한곳에서는 ‘디시(디스카운트)’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한국말이고 하나는 영어예요. 값을 깎는 일을 놓고 한국말로는 따로 ‘에누리’라 하기도 해요. 그리고 ‘에누리’를 한자말로는 ‘할인’이라 하기도 하지요. 한국에서는 한국말 ‘깎다’랑 ‘에누리’도 쓰지만, 영어 ‘디시’나 ‘디스카운트’도 쓰고, 한자말 ‘할인’도 써요.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한국말을 올바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만 여러 가지 말을 재미나게 쓸 수도 있어요. 그나저나 값을 깎는 일을 가리킬 적에는 어떤 말을 주고받을 적에 즐거울까요? 어린이랑 어른이 한국에서 즐거이 함께 쓸 낱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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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콩



  우리가 먹는 여느 밥은 쌀밥이고, 쌀밥은 쌀알로 지어요. 쌀알은 볍씨를 심어서 거둔 열매인 ‘벼알’에서 껍질을 벗겨 얻습니다. 벼알 껍질인 겨를 살짝 벗기면 누르스름한 빛깔이 감도는 ‘누런쌀(현미)’이고, 겨를 많이 벗기면 하얀 빛깔이 감도는 ‘흰쌀(백미)’이에요. 겨를 많이 벗긴 흰쌀은 노란 쌀눈까지 깎이기 마련인데요, 노란 쌀눈은 이 열매(벼알)를 흙에 심어서 자라도록 하는 바탕입니다. 볍씨를 심어서 얻은 벼알을 껍질을 벗기지 않고 잘 건사하거나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심으려고 하면, 이 볍씨를 ‘씨나락’이라고 따로 가리켜요. 씨(씨앗)가 되는 ‘나락’이라는 뜻입니다. 감자는 열매이면서 씨앗이에요. 감자가 묵으면 눈이 돋고 싹이 나오지요. 이 눈이나 싹이 돋은 자리를 알맞게 잘라서 밭자락에 심으면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으면서 새로운 감자알이 맺어요. 이렇게 새 감자알을 얻도록 따로 건사하거나 갈무리하는 감자는 ‘씨감자’라 하지요. 밥에 함께 넣는 콩이라든지, 된장이나 고추장이나 두부로 바뀌는 콩도 열매이면서 씨앗이에요. 이듬해에 새로 심을 콩이라면 이때에는 ‘씨앗콩’이거나 ‘씨콩’이에요. 가만히 보면 우리가 먹는 모든 열매는 열매이면서 씨앗이에요. 밭에서 자란 씨앗을 먹으면서 마음밭에 생각이라는 새로운 씨앗을 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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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말이



  가을에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걷는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으레 묻습니다. “아버지, 저기 저 똥그랗고 커다란 건 뭐야?” “뭘까? 너는 뭐라고 생각해?” “어! 아, 음, 음. 잘 모르겠어.” “그러면, 이름을 한 번 붙여 봐.” “이름? 글쎄, 음, 그래, 똥그라니까 똥그라미!” 큰아이가 일곱 살이던 때까지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주고받았는데, 큰아이는 만화책에서 저 논바닥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보았고, 제대로 이름을 알려 달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한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기 저 논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는 ‘볏짚말이’라고 해.” “‘볏짚말이?’” “응, 볏짚을 동그랗게 말아서 볏짚말이라고 하지. 달걀말이도 달걀을 동글동글 말지.” “아하, 그렇구나.” “볏짚을 동그랗게 말면 ‘동글볏짚말이’나 ‘둥근볏짚말이’라 하면 되고, 볏짚을 네모낳게 여미면 ‘네모볏짚말이’라 하면 돼.” “응, 알았어.” 이렇게 큰아이하고 ‘볏짚말이’라는 이름을 놓고 생각을 나눈 뒤에 인터넷으로 ‘볏짚말이’를 무어라 가리키는가 하고 찾아보았어요. 그랬더니 ‘원형(梱包) 곤포(梱包) 사일리지(silage)’라는 이름을 쓴다더군요. 어떤가요? ‘원형 곤포 사일리지’라 하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만할까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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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놀이' 이야기를 손질해서 새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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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 두 접시



  한 사람이 밥을 먹을 적에는 한 그릇을 먹어요. 한 사람이 때로는 두 그릇이나 세 그릇을 먹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기에 여러 그릇을 먹으며,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여느 때에 워낙 많이 먹는 사람은 한 그릇으로 모자랄 수 있어요. 두 사람이 밥을 먹을 적에는 저마다 한 그릇씩 놓으니 밥상에는 두 그릇을 놓습니다. 세 사람이 밥을 먹을 적에는 저마다 한 그릇씩 놓아서 밥상에 세 그릇을 놓지요. 그러니까 한 사람은 ‘한 그릇’이고, 이 한 그릇은 이를테면 ‘일인분’입니다. 한자말 ‘일인분’은 “한 사람 몫”을 뜻해요. 한 사람이 밥으로 먹는 몫이 그릇으로 하나이기에 ‘한 그릇’인 셈입니다.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면 어떻게 말할 만할까요? 이때에는 한 사람 몫으로 ‘한 접시’라 이를 만합니다. 세겹인 돼지고기를 먹으려 한다면 ‘세겹살 한 접시’가 한 사람 몫인 한 그릇인 셈이고, 세겹인 돼지고기를 두 접시 먹으려 한다면 ‘두 접시’가 되어요. ‘그릇’은 밥이나 물건을 담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접시’는 그릇 가운데 납작하게 생긴 것을 따로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고기집에서 세겹살은 납작하게 생긴 것에 담기에 ‘한 접시’라 해야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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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돌이와 노래순이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불러요. 마음으로 서로 헤아리면서 새롭게 이름을 붙여 주어요. 반가운 사람이기에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만날 적마다 즐거운 마음이 들기에 서로 이름을 곱게 부릅니다. 이름은 어버이가 아이를 처음 맞이할 적에 붙여 주기도 하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새삼스레 이런 이름이나 저런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해요. 이를테면 잘 웃으니 ‘웃보’라 하고, 잘 울어서 ‘울보’라 해요. 웃보한테는 웃음둥이라는 이름이 달라붙기도 하고, 울보한테는 울음둥이 같은 이름이 뒤따르기도 해요. 그리고 웃음순이나 울음돌이 같은 이름이 새록새록 피어나기도 합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면 노래순이나 노래돌이가 되어요. 빨래를 거드는 아이라면 빨래돌이나 빨래순이가 되지요. 자전거를 좋아하면 자전거순이나 자전거돌이가 되고, 그림을 그리며 즐겁게 놀면 그림돌이나 그림순이가 돼요. 사진을 좋아한다면 사진순이가 됩니다. 춤을 좋아한다면 춤돌이가 됩니다. 케이크를 좋아하면 케이크순이가 되고, 빵을 좋아하면 빵돌이가 될 테지요. 밥순이나 고기돌이나 고구마순이나 감자돌이가 될 수 있어요. 서울에서 살아 서울순이요, 부산에서 살아 부산돌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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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사람



  우리 집 큰아이가 여섯 살 무렵이던 어느 날,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문득 ‘물고기사람’을 그려서 가위로 오리며 놉니다. “물고기사람! 물고기사람!” 하고 노래하며 노는데, ‘물고기사람’이 도무지 무엇인지 알쏭달쏭하다고 여기다가, “얘야, 그 (종이)인형 좀 줘 보렴.” 하고 말하며 가만히 들여다보았어요. 아하, 우리 어른들이 으레 말하는 ‘인어’로군요. 아이가 어디에서 ‘인어’가 나오는 그림을 보았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물고기에서 사람이 된’ 줄거리를 보여주는 만화영화를 한동안 자주 보았습니다. 그 만화를 헤아리니 금붕어 머리가 꼭 사람을 닮고, 다른 곳은 모두 물고기 모습이었어요. 여섯 살 아이는 그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람이 된 물고기’를 이 아이 나름대로 ‘물고기사람’으로 새롭게 그린 뒤에 종이인형으로 만들어서 논 셈입니다. 표준말로는 ‘인어’요, 이 낱말은 앞으로도 오래 쓰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섯 살 아이가 불쑥 터뜨린 이름 ‘물고기사람’은 말느낌이 퍽 곱고 잘 어울린다고 느껴서, 나는 앞으로 이 낱말을 즐겁게 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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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ㄷ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적에 곧잘 ‘ㄱㄴㄷ’을 씁니다. 말을 할 때뿐 아니라 글을 쓸 적에도 으레 ‘ㄱㄴㄷ’을 붙여요. 숫자로 ‘1 2 3’을 쓸 수 있지만, 한글 닿소리로 ‘ㄱㄴㄷ’을 즐겁게 씁니다. 열다섯 가지가 넘는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자리라면 한글 닿소리로는 모자라서 숫자를 쓰지요. 그러나 몇 가지가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면 한글 닿소리를 기쁘게 씁니다. 때로는 ‘가나다’를 쓰기도 하고요. ‘첫째 둘째 셋째’를 ‘ㄱㄴㄷ’이나 ‘가나다’로 나타내는 셈이에요. 오늘날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a b c’를 으레 씁니다만, 나는 씩씩하게 ‘ㄱㄴㄷ’을 써요. 그저 재미나게 한글 닿소리를 쓰지요. 내 이름을 적어야 하는 자리라면 ‘최종규’ 석 자에서 한글 닿소리를 따서 ‘ㅊㅈㄱ’처럼 적어요. 나는 인터넷 모임에 글을 올릴 적에는 ‘숲노래’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때에는 ‘ㅅㄴㄹ’라는 닿소리를 따서 써요. 편지를 쓴다든지 일기를 쓸 적에도 글 끝에 이렇게 한글 닿소리를 따서 곱게 적어 볼 수 있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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