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42] 마음꽃



  마음에 꽃이 필 적에 웃음이 저절로 피어납니다. 마음을 밭으로 삼아서, 그러니까 마음밭에 꽃이 환하게 터지도록 ‘마음꽃잔치’를 이룬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환한 웃음꽃이 저절로 터집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마음꽃’이라는 낱말은 안 나오고, ‘心花’ 같은 한자말도 안 나옵니다. 그렇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마음꽃’을 말하고, 마음꽃을 피우려 하며, 마음꽃을 이웃하고 사이좋게 나누면서 삶을 곱게 가꾸려고 합니다. 마음에 꽃이 핀다면, 생각에 꽃이 필 수 있습니다. 사랑에 꽃이 필 수 있고, 꿈이나 노래나 이야기나 책이나 영화나 삶이나 말에 꽃이 필 수 있어요. 이리하여 ‘생각꽃·사랑꽃·꿈꽃·노래꽃·이야기꽃·책꽃·영화꽃·삶꽃·말꽃’ 같은 수많은 말이 새롭게 태어나서 이 땅을 밝힐 만해요. 꽃을 피우는 넋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들 사람일 테지요.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너를 아끼고, 네가 너 스스로 사랑하면서 나를 보살필 적에, 우리는 서로 ‘사람꽃’입니다. 들에는 들꽃이 피고 숲에는 숲꽃이 피듯이 마음에 피는 마음꽃으로 살림살이를 알뜰살뜰 보듬으면서 살림꽃이 피는 아침밥을 차리고 저녁밥을 짓습니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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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1] 풀그늘



  무화과잎이 빚은 그늘에 풀개구리가 앉았습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기 앞서까지 이 개구리를 바라보면서 그냥 ‘청개구리’라 했으나, 시골에서 살고 보니, ‘청개구리’는 풀밭을 좋아하고 언제나 풀빛인 몸이더군요. ‘파란 빛깔’을 나타내는 한자 ‘靑’으로 가리킬 수 없습니다. 먼 옛날부터 한겨레 시골내기는 이 개구리를 보며 그냥 ‘풀개구리’라 했으리라 느낍니다. 푸른 잎이 드리우는 그늘을 놓고 ‘녹음(綠陰)’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꽤 많지만, 나무가 드리우는 푸른 그늘이라면 ‘나무그늘’이고, 풀잎이 드리우는 푸른 그늘이라면 ‘풀그늘’입니다. 풀개구리는 조그마한 풀그늘이라도 시원하게 땡볕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여름에 누리는 짙푸른 그늘은, 말 그대로 ‘푸른그늘’이나 ‘풀그늘’이나 ‘나무그늘’이나 ‘잎그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잎사귀가 빚는 그늘을 보면, 이 그늘도 여느 그늘이나 그림자처럼 ‘까만 빛깔’이라 할 만하지만, 싱그러운 풀내음과 풀바람이 흐르는 그늘이니 ‘푸른그늘·풀그늘’ 같은 이름을 쓰면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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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0] 살림밥



  요사이는 어디에서나 ‘가정주부’나 ‘주부’ 같은 말을 쓰지만, 고작 쉰 해나 백 해 앞서를 떠올리면 이런 말은 어디에서도 안 썼어요.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누구나 ‘살림꾼’을 말했어요. 살림을 야무지게 한대서 살림꾼이기도 하지만,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살림꾼입니다. 집에서 집살림을 건사하는 사람이라면 가시내도 사내도 모두 살림꾼이에요. 나는 어버이로서 살림꾼이 되자고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씩씩하고 슬기로운 살림꾼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생각해 봅니다. ‘살림지기’가 되고 ‘살림벗’이 되며 ‘살림님’이 되기를 바라요. 숲지기처럼 집살림을 지킬 수 있는 살림지기요, 이웃이나 벗처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살림벗이며, 하느님이나 곁님처럼 아름다운 살림님입니다. ‘살림’은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밥을 짓는 살림꾼이라면 ‘살림밥’을 짓습니다. 서로서로 고운 숨결을 살리거나 북돋우는 말을 들려준다면 ‘살림말’을 나누어요. 이웃을 아끼면서 착한 마음을 살리려 한다면 ‘살림넋’이 곱다고 할 만합니다. 예부터 살림을 건사하던 살림지기·살림님이 부르던 노래는 ‘살림노래’입니다. 노동요도 민요도 아닌 살림노래라고 할 수 있어요.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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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9] 골짝놀이



  무더운 여름날입니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물놀이 할래.” 하고 말합니다. 두 아이가 물놀이를 하겠다는 때는 새벽 여섯 시 반. “얘들아, 조금 더 있다가 하지 않으련?” 하고 묻지만, 새벽 여섯 시부터 일어난 아이들은 자는 동안 물놀이를 꿈꾸었을는지 모릅니다. 시골집에서는 땅속 깊숙한 데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올리니, 손이랑 낯만 씻어도 “어, 추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큰 통에 받아 놓은 물도 그늘 자리에 놓으면 그대로 차갑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골짜기에 가고 싶어요. 골짜기에서 놀래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자전거를 몰아 골짝마실을 갑니다. 우리는 자전거로 고갯길을 타고 골짜기에 마실을 가서 ‘골짝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드리우는 나무 그늘이 시원하면 마당놀이를 하고, 이불을 마당에 널어서 말리면 이불 밑으로 들어가서 이불놀이를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이가 되어요. 책을 읽으면 책놀이요, 소꿉을 만지작거리면 소꿉놀이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놀이가 되고, 숲에서는 숲놀이입니다. 한국말사전에는 ‘물놀이·소꿉놀이’쯤만 나오지만, 아이들은 날마다 온갖 놀이를 새롭게 빚으면서 새로운 말을 끝없이 짓습니다. 4348.7.3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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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38] 버스집



  다섯 살 아이가 문득 한 마디를 합니다. “아버지, 저기 ‘버스집’이야?” “응? 버스집?”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고 두리번거리니, 시외버스가 ‘버스터미널’로 들어갑니다. 두 아이하고 시외버스로 나들이를 다니는데, 어느 버스터미널에 살짝 들를 무렵, 작은아이는 그곳에 버스가 가득 있으니 “버스가 사는 집”으로 여긴 듯합니다. 차를 마시는 곳은 찻집이라 하고, 떡을 파는 곳은 떡집이라 합니다. 책을 다루는 곳인 책방을 책집이라 하기도 합니다. ‘버스집’이라는 말처럼 ‘택시집’이나 ‘기차집’이나 ‘비행기집’ 같은 말을 재미나게 쓸 수 있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나루’는 냇물을 배를 타고 건너다니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빌어 ‘버스나루’처럼 쓸 수 있다고도 합니다. ‘쉼터·삶터·놀이터’처럼 ‘버스터·기차터·비행기터’처럼 써도 잘 어울립니다. ‘버스누리·기차누리·비행기누리’ 같은 말을 써 볼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터미널(terminal)’이나 ‘역(驛)’이라는 낱말만 써야 하지 않아요. 생각을 짓다 보면 새로운 말이 태어날 수 있어요. 다섯 살 어린이가 쉽게 알아들을 만한 이름을 다섯 살 어린이하고 함께 지어 볼 수도 있습니다. 4348.7.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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