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김이


  똑똑한 사람을 두고 ‘똑똑이’라 해요. 뚱뚱한 사람을 두고 ‘뚱뚱이’라 해요. 멍청한 사람을 두고 ‘멍청이’라 해요. 눈이 애꾸인 사람을 두고 ‘애꾸눈이’라 해요. ‘고기잡이·앞잡이·칼잡이’나 ‘길잡이·글쓴이·엮은이’처럼 ‘-이’가 붙어서 어떤 사람을 나타내고요. 착한 사람이라면 어떤 이름이 될까요? ‘착한이’가 되지요. 고운 사람이라면 어떤 이름이 될까요? ‘고운이’가 되어요. 이러한 결을 살피면, ‘맑은이·멋진이(멋쟁이)·놀람이·사랑이·기쁜이(기쁨이)·슬픈이(슬픔이)·성난이·뿔난이’라든지 ‘배움이·가르침이·나눔이·돌봄이·도움이·지킴이·웃음이·눈물이’ 같은 이름을 아기자기하면서 재미나게 지을 만해요. 인터넷을 하다 보면 ‘즐겨찾기’를 할 수 있어요. 즐겁게 찾아가는 곳이기에 ‘즐겨찾기’예요. 그러니, 즐겁게 먹으면 ‘즐겨먹기’이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 ‘즐겨부르기’이며, 즐겁게 놀면 ‘즐겨놀기’입니다. ‘즐기기’라고만 해도 되지만, ‘즐겨하기·즐겨듣기·즐겨보기·즐겨읽기·즐겨가기’처럼 새롭게 쓸 수 있어요. 이렇게 온갖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라면 ‘즐김이’가 되고요. 즐김이에는 ‘만화즐김이·영화즐김이·노래즐김이·책즐김이·여행즐김이·낮잠즐김이’를 비롯해서 온갖 즐김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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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곳


  자동차나 버스나 기차나 배나 비행기를 ‘탈’ 적에 어떻게 하나요? 그냥 ‘탈’ 테지요. ‘내릴’ 적에는 어떻게 하지요? 그대로 ‘내릴’ 테지요. 차를 타고 내릴 적에는 “타고 내리기”를 합니다. 그런데, “타는 곳”이나 “내리는 곳”은 같기 일쑤예요. “타는 곳”은 타는 자리이면서 내리는 자리가 되고, “내리는 곳”은 내리는 자리이면서 타는 곳이 되어요. 자그마한 도시나 시골은 한 곳에서 두 가지가 이루어져요. 예전에는 ‘승강장·승하차장’ 같은 한자말을 썼으나, 요새는 ‘타는곳’이라는 새로운 한국말을 씁니다. 전철이나 지하철에서는 모두 ‘타는곳’이라고 해요. 타는 자리하고 내리는 자리가 다르다면 ‘타는곳·내리는곳’을 따로 둘 만해요. 버스에는 ‘타는문·내리는문’이 따로 있기도 해요. 전철이나 지하철에서는 ‘갈아타는곳’이 있지요. ‘갈아타는곳’이라는 이름이 길면 ‘샛곳·샛목’이나 ‘이음곳·이음목’ 같은 이름을 쓸 수 있어요. ‘사이’를 ‘잇는다’는 뜻에서 ‘샛목·이음목’ 같은 말을 써요. 기차나 버스를 타는 곳은 ‘터’라는 말을 붙여서 ‘기차터·버스터’처럼 써도 재미있고, 택시를 타는 곳은 ‘택시터’라 해 볼 수 있어요. 기차터나 버스터를 보면, 기차가 드나드는 때를 기다리도록 ‘맞이방’이 있습니다. 마중하거나 배웅하면서, 또 기다리면서 ‘맞이방’에서 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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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아기가 태어나면 어버이는 대단히 기쁩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딸인지 아들인지 구태여 가리지 않습니다. 아기는 새롭게 태어난 목숨으로서 기쁘며 반가운 사람이에요. 처음 세이레(석 주) 동안 아기를 고요한 곳에서 알뜰히 보살핀 뒤에 햇볕을 쪼입니다. 온날(백 날)에 이르면 ‘온날잔치’라고 할 ‘백날잔치(백일잔치)’를 열어서 이웃한테 널리 절을 시키지요. 오롯이 온(100) 나날을 자랐기에 앞으로 씩씩하게 잘 크겠다는 뜻이면서, 아기를 낳아 돌보는 두 어버이를 기리는 뜻이에요. 아기가 처음으로 걸음을 뗄 즈음에 돌잔치(한살잔치)를 하지요. ‘한돌잔치’나 ‘첫돌잔치’ 뒤에는 ‘두돌잔치’이고, 이윽고 ‘석돌잔치’랑 ‘넉돌잔치’를 지나요. 해마다 무럭무럭 크는 아기이니 해마다 생일에 잔치를 베풀어 기쁨을 나눌 만합니다. 지난날에는 어른이 예순 살까지 사는 일이 드물었다고 해서 ‘예순잔치(환갑잔치)’를 열었어요. 또 ‘일흔잔치’나 ‘여든잔치’를 열지요. 마을에서는 ‘마을잔치’를 벌이고, 나라에서는 ‘나라잔치’를 벌여요. 새봄에 꽃이 흐드러지면 ‘벚꽃잔치’나 ‘유채잔치’나 ‘매화잔치’ 같은 ‘꽃잔치’를 열고, 봄가을에 흔히 여러 고장에서 ‘책잔치’를 열어요. 함께 기뻐하고 서로 즐겁게 살림을 북돋우려는 뜻에서 ‘잔치마당’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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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단추로 잠그는 옷이 있고, 쭈르륵 올려서 잠그는 옷이 있어요. 예부터 한겨레가 입던 저고리나 두루마기에는 단추가 아니고 천을 엮어서 단단하게 뭉친 ‘고름(옷고름)’이 있어요. ‘고름·옷고름’은 단추하고 비슷한 구실을 해요. ‘단추’나 ‘고름’은 옷에서 살짝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도드라져 보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헤아리면서 “누르는 것”을 가리키는 곳에서도 ‘단추’라는 낱말을 쓰고, 따로 ‘누름단추’처럼 쓰기도 해요. 버스에서 내릴 적에 바로 이 단추(누름단추)를 눌러요. 그런데 영어에서는 ‘벨(bell)’하고 ‘버튼(button)’하고 ‘버저(buzzer)’가 있어요. 요새는 이런 영어를 그대로 쓰기도 하는데, 두 가지 모두 ‘단추’로 쓸 수 있고, ‘누름단추·누름쇠·알림단추’처럼 손질하거나 ‘딸랑단추·딩동단추(딩동댕단추)·삐단추(삐익단추)’처럼 소리를 살려서 재미나게 손질할 만해요. ‘부자·부저’처럼 쓰는 말은 일본 말투예요. 처음부터 ‘단추’로 알맞게 쓰면 한결 나았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니게 온갖 말이 뒤섞이고 말았어요. 어른들은 말을 말답게 다스리지 못했지만, 앞으로 어린이들이 말을 말답게 다스리면서 가꾸어서 새로운 말넋을 갈고닦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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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12] 털옷



  털실로 짜면 ‘털옷’입니다. 영어로는 ‘스웨터’라고도 하는데, 털가죽으로 지은 옷도 ‘털옷’이에요. 털가죽을 쓰면 ‘털가죽옷’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털실이나 털가죽을 쓰기에 ‘털신·털모자·털조끼·털양말·털치마·털바지’가 되고, 가죽으로 지은 옷은 ‘가죽옷·가죽신·가죽모자·가죽조끼·가죽치마·가죽바지’가 돼요. ‘점퍼’는 위에 걸치는 겉옷을 가리키는 영어이고, ‘잠바’는 일본 말투예요. 일본사람은 영어를 일본말로 바꾸어 ‘빠다(← 버터)’나 ‘빤스(← 팬티)’처럼 써요. 그래서 ‘점퍼·잠바’는 한국말로는 ‘웃옷’이나 ‘겉옷’이고, 따로 ‘웃겉옷’이라 할 만합니다. 바람만 막는 얇은 웃겉옷이라면 ‘바람막이’라고도 해요. 어른들은 흔히 ‘양복’을 입는데, ‘양복’은 ‘서양옷’을 뜻해요. 흔히 ‘양복’을 입어야 예의를 갖춘다거나 회사에 다니는 차림새가 된다고 잘못 여기지만, “갖춰서 입는 옷”은 ‘갖춘옷(갖춤옷)’이에요. 웃옷하고 아랫도리를 따로 나누어 입는 옷은 ‘두벌옷’이라 하고, 웃옷하고 아랫도리가 하나로 이어진 옷은 ‘한벌옷’이에요. 이를 영어로 ‘투피스(→ 두벌옷)’나 ‘원피스(→ 한벌옷)’라고도 합니다.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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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11] 콧소리, 콧노래



  즐거우면 저절로 노래가 나와요. 입으로도 흥얼흥얼 읊고, 코로도 신나게 노래하지요. 안 즐거우면 노래가 안 나와요. 이러면서 “쳇!”이라든지 “치!”라든지 “흥!” 같은 ‘콧소리’를 내요. 안 즐거울 적에는 콧소리이지만, 즐거울 적에는 ‘콧노래’예요. 바람이 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바람이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건드릴 적에는 그저 ‘바람소리’인데, 이 소리가 마치 어떤 가락과 같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적에는 ‘바람노래’로 바뀌어요. 바다에서 듣는 ‘바다소리(바닷소리)’도 그렇지요. 그저 바다에서 듣는 소리라면 ‘바다소리’일 테지만, 이 소리가 나한테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북돋운다면 ‘바다노래(바닷노래)’로 거듭납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말은 여느 자리에서는 아직 ‘말소리’인데, 서로 아끼면서 돌보는 마음이 흐르면 말소리도 어느덧 ‘말노래’처럼 흐릅니다. 낭창낭창 한들한들 구성지면서 그윽한 노랫가락 같은 말노래가 된다고 할 만해요. 귀에 들리기만 하면 소리이고, 입으로 터뜨리면 말이며, 생각을 주고받으면 이야기이고, 마음을 실어서 기쁘게 나누면 노래가 되어요. 4349.1.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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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10] 넉넉해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한’ 동무가 있어요. 밥 한 그릇으로는 모자라서 두 그릇은 먹어야 하는 동무가 있어요. 이만 한 짐이라면 나 혼자서도 ‘너끈히’ 들 수 있어요. 때로는 이만 한 짐을 나 혼자서 조금도 들 수 없어서 어머니 손이나 언니 손을 빌어야 해요. 오늘은 ‘느긋이’ 길을 걸어요. 서두를 일이 없거든요. 오늘은 느긋할 겨를이 없어서 부산을 떨어야 해요. 몹시 서둘러야 할 일이 있거든요. 할아버지는 언제나 ‘너그럽게’ 우리를 헤아려 주셔요. 나도 할아버지한테서 너그러운 숨결을 물려받으면서 한결 ‘넓은’ 마음을 품어 봅니다. 그러니까,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을 아낍니다. 너끈히 힘을 쓰면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느긋이 돌아보거나 살피면서 하루를 차분히 보냅니다. 날마다 생각을 넓게 키워서 꿈을 곱게 품어요. 나긋나긋 부드럽게 말을 하고, 넘실넘실 흐르는 물결처럼 신나게 노래를 불러요. 바람 따라 너울거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나풀나풀 나비처럼 즐겁게 춤을 추어요. 2016.1.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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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209] 칼질



  칼을 손에 쥐고 무나 배추를 썰 수 있어요. 칼로 봉투를 열거나 종이를 자를 수 있어요. 칼로 당근이나 고구마를 채썰기를 해 볼 수 있고, 칼로 골판종이를 잘 도려서 종이인형을 빚을 수 있어요. 자를 적에 쓰는 ‘칼’이에요. 칼로 자르는 일을 가리켜 ‘칼질’이라 해요. 그런데 어른들은 이 칼을 놓고 좀 엉뚱한 몇 가지 말을 써요. 먼저 ‘부엌칼’이라 안 하고 ‘식도·식칼’이라 하기도 하는데, ‘식도’에서 ‘식(食)’은 ‘밥’을 뜻하고, ‘도(刀)’는 ‘칼’을 뜻하는 한자예요. 그러니 ‘밥칼’이라는 뜻으로 ‘식도’라 하는 셈이지만, 한국말은 ‘부엌칼’이에요. 빵집이나 햄버거집에서는 어린이가 빵이나 햄버거를 먹기 좋도록 칼로 잘라서 주기도 하는데, 이때에 ‘커팅칼’로 자른다고 흔히 말해요. ‘칼’은 자를 적에 쓰고 ‘커팅(cutting)’은 ‘오리다’나 ‘자르다’를 뜻하는 영어예요. 그러니 “자름칼(자르는 칼)로 빵을 자른다”고 말하는 셈이니 어딘가 얄궂지요. 그냥 ‘칼’이라고 하든지 ‘빵칼’이라고 해야 올발라요. 칼로 무엇을 자르는가를 살펴서 알맞게 칼 이름을 붙일 노릇이에요. 4349.1.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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