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80. 능구렁이 사는 집 (2014.5.12.)



  해마다 ‘우리 집 뱀’을 본다. 다만 한두 차례 얼핏 볼 뿐, 찬찬히 지켜보기는 쉽지 않다. 아무래도 뱀이 사람을 꺼리고, 사람이 뱀을 꺼리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 집에서 뱀이 함께 산다면, 뱀이 잡아먹을 만한 작은 짐승이나 제법 큰 풀벌레가 있기 때문일 테지. 올해에는 능구렁이를 본다. 이 능구렁이를 예전에도 보았을까? 제법 큰 몸이니 여러 해를 살았을는지 모른다. 우리 집을 얼씬거리는 쥐를 잡아먹어 주었을 테고, 우리 집에 깃든 개구리도 잡아먹었겠지. 아마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터에서 이곳 사람들하고 함께 살아온 숨결이라고 느낀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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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79. 꽃내음 빨래 (2014.5.1.)



  꽃이 흐드러지는 마당에 빨래대를 세우고 빨래를 널면, 이 옷가지는 꽃내음을 듬뿍 맡는다. 햇볕을 쬐고 꽃내음을 먹으면서 보송보송 마른다. 바람을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싱그러이 마른다. 아침과 낮을 흐르는 봄기운이 따사롭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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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5-04 08:55   좋아요 0 | URL
우와 빨래도 잘 마르겠어요.

숲노래 2015-05-04 09:58   좋아요 0 | URL
빨래도 잘 마르면서 아주 싱그럽답니다~
 

​고흥집 78. 뒤꼍을 오르내리는 꽃길 (2014.4.24.)



  뒤꼍을 오르내리는 꽃길이 생긴다. 집과 뒤꼍 사이를 튼 뒤 뒤꼍을 지난해까지 그대로 묵히기만 하다가, 지난가을부터 바지런히 밟고 디뎌서 ‘걸어서 지나다니는 길’을 냈다. 걸어서 지나다니는 길에는 풀이 돋지 않고, 비가 와도 흙이 얼마 안 쓸린다. 밟고 디디기를 되풀이했기에 이 길만 단단해지지 싶다. 이 길이 더 단단해지도록 마른 풀도 틈틈이 깔아 놓으려 한다. 갓꽃과 유채꽃이 찬찬히 오르면서 꽃길이 된다. 처음에는 갓꽃이 꽃대를 길 쪽으로 올리더니, 자꾸 이 길을 오르내리니 꽃대가 구부정하게 옆으로 틀어진다. 우리가 이 길을 다니기 수월하도록 꽃대가 휘어서 자라는구나. 고맙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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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77. 장미꽃내음은 빗물에 섞여 (2014.5.14.)



  비가 오는 날에는 꽃내음이 한결 짙다. 빗줄기는 먼 데서 풍기는 냄새를 떨구고, 우리 집에서 피어나는 냄새를 우리 집안에 더 짙게 아로새긴다. 비를 맞으면서 더욱 싱그럽게 터지는 꽃송이는 눈으로도 코로도 손가락으로도 마음으로도 기쁜 숨결을 받아먹으라고 속삭인다. 꽃을 마주보도록 살며시 쪼그려앉는다. 꽃내음을 헤아리면서 코를 가까이에 댄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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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76. 걷는다 (2015.4.4.)



  우리는 우리 길을 걷는다. 우리는 우리가 가려는 길을 걷는다. 우리는 함께 걷는다. 이 바람을 쐬면서 이 길을 걷는다. 이 봄에 이 봄바람을 곧바로 마주보면서 씩씩하게 걷는다. 줄줄이 서서 걷고, 걷다가 달리고, 다시 걸어서 우리 보금자리를 천천히 누빈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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