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85. 빨랫대와 호박넝쿨 (2015.8.23.)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마당에 빨래를 넌다. 호박넝쿨은 빨랫대를 감고 싶다. 그렇지만 호박넝쿨한테 빨랫대를 내줄 수 없다. 무엇이든 잡히기를 바라는 호박넝쿨이 뻗는 자리에서 살살 에두르면서 빨랫대 자리를 바꾼다. 호박꽃은 피고 지고, 호박알은 차츰 굵는다. 우리가 뜯어먹는 풀도, 우리가 안 뜯어먹는 풀도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자란다. 여름 막바지 풀내음이 몹시 짙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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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4. 여름에 우리는 (2015.8.3.)



  구름 한 점이 없고 바람 한 줄기 불지 않는 한여름이 되면, 이러한 무더위에 땀이 퐁퐁 솟는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나무그늘이 시원하고, 샘물은 차갑다. 한여름은 온 들과 숲이 파란 하늘을 그득그득 품에 안으면서 짙푸르고 알차게 익는 철. 이 멋진 철에 땀을 신나게 쏟고 나서 시원한 샘물로 온몸을 씻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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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3. 우리 집 고양이 (2014.6.28∼7.18.)



  우리 집은 ‘그냥 우리 집’이거나 ‘숲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고양이집’이나 ‘책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아주 쉽다. 가만히 기다리면 고양이가 알아서 척척 마당을 가로지르거나 옆밭이나 뒤꼍 어딘가에서 크게 하품을 하면서 꾸벅꾸벅 존다. 광에서 새끼가 태어나고, 새끼는 거침없이 온갖 곳을 다 헤집으면서 돌아다니며 논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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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2. 달린다 (2014.5.15.)



  달린다.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앞만 보고 달린다. 싱그러운 오월볕을 쬐면서 달린다. 발바닥으로 이 땅을 느끼면서 달린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곳을 마음껏 달린다. 아이는 뛰고 달리면서 자란다. 아이일 적에 아이답고 뛰놀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어른으로 자란다. 나는 어릴 적에 자동차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달리기를 멈추어야 했으나, 우리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실컷 달리면서 온몸을 골고루 가꿀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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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81. 찔레꽃내음이 찬찬히 퍼져서 (2014.5.14.)



  밥상에 올릴 풀을 뜯으려고 뒤꼍을 오를 때면 찔레꽃 하얀내음이 훅 끼쳐서 문득 걸음을 멈춘다. 새봄인 삼월에 피는 꽃도 봄내음이 물씬 나고, 매화꽃이나 모과꽃이나 유채꽃이나 동백꽃이나 후박꽃이나 장미꽃도 싱그러운 내음이 몹시 곱다. 그런데 오월로 접어들어 여름을 코앞에 두고 찔레꽃이 피면, 이제껏 퍼지던 꽃내음을 모두 잊을 만큼 대단히 짙고 새하얀 꽃내음이 퍼지면서 온몸을 사로잡는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시골에서 어린 나날을 보낸 적이 없으니, 찔레꽃하고 얽힌 이야기가 아직 없다. 그러나 바로 오늘부터 내 삶을 새로 열어 내 이야기를 새롭게 지을 수 있다고 느낀다. 어제 이야기는 없어도 오늘 이야기가 있고, 앞으로 두고두고 누릴 모레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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