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헌책방

 


  신문사나 잡지사나 방송사에서 곧잘 ‘헌책방’을 취재하곤 한다. 기자와 방송작가와 피디는 으레 나한테 연락을 한다. 오래도록 헌책방을 다녔으니 ‘좋은’ 헌책방을 잘 알지 않겠느냐며, 몇 곳을 추천해 달라 하고, 짬이 되면 길잡이를 해 달라 한다. 나는 이들한테 ‘좋고 나쁜’ 헌책방이란 없다고 말한다. 어느 헌책방이든 집과 일터하고 가까운 곳을 꾸준하게 즐거이 찾아다니면 마음을 사로잡거나 살찌우거나 북돋우는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굳이 ‘좋은’ 헌책방 몇 군데 추려서 멋들어진 그림 보여주려고는 하지 말라 주십사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헌책방만 취재하지 말고, 서울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적어도 인천이나 수원으로는 가든지, 의정부나 천안이나 청주쯤 가 보기를 바란다. 요새는 춘천까지도 쉬 오갈 수 있고, 부산까지 고속철도 타면 훌쩍 다녀올 수 있다. 그렇지만, 서울에 있는 기자도 방송작가도 피디도, 서울에서만 맴돈다. 적어도 인천까지 갈 생각을 못한다.


  서울을 벗어나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여길까. 서울을 벗어난 데에 있는 책방은 갈 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여길까.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은 서울사람만 본다고 여길까. 서울사람은 서울에 있는 책방 이야기만 보아야 한다고 여길까.


  나더러 서울에 볼일 있으면 함께 다닐 수 있느냐고 묻지만, 내 찻삯과 일삯을 대주지 않으면 어떻게 다니겠는가.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왜 시골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니지 못할까. 왜 시골로 나들이를 오면서 시골에 깃든 푸근하고 따사로운 책넋을 만나려고 하지 못할까. 서울 아닌 다른 도시에서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맑은 책숨을 마시면서 이 나라 책삶 골고루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찾기란 아직 너무도 먼 길이요 힘든 노릇일까.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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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헌책방

 


  책은 불도 싫어하고 물도 싫어합니다. 책은 따스함과 시원함은 좋아하지만, 불과 물은 반기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책이 된 나무도 흙땅에 뿌리를 내려 살아갈 적에 숲에 불이 나거나 큰물이 지면 달갑지 않아요.


  들풀도, 벌레도, 사람도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불을 여러모로 살려서 문명과 문화를 일구는 사람이라 하지만, 불길 치솟는 전쟁과 싸움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가뭄이 들거나 큰물이 질 때면 사람들 삶터 또한 무너집니다. 그렇다고, 냇바닥을 시멘트로 바꾸고 냇둑 또한 시멘트로 높이 쌓는 일이 사람들 삶터를 지키지 않아요. 시멘트 울타리 세우는 댐에 물을 가두어 시멘트관으로 물줄기 이어 도시를 먹여살리려 한대서 사람들 삶터를 살찌우지 못합니다. 흐르는 냇물이 숲을 살찌우고 사람을 살찌웁니다. 맑게 흐르고, 구비구비 흐르는 물줄기가 흙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지요.


  비가 내리는 날 헌책방골목은 빗물에 젖습니다. 헌책방골목 길바닥은 깔끔한 돌로 바꾸었으나, 지붕은 따로 없어, 비 내리는 날이면 가게마다 해가리개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잇습니다. 해가리개 사이사이 빗물이 흐르고, 빗물이 길바닥에 덜 튀도록 양동이를 댑니다. 빗물이 덜 튀어야 책이 덜 다치겠지요. 비 내리는 날에는 하는 수 없이 비닐로 책을 덮고, 비닐로 책을 덮으면 책이 잘 안 보이며, 책이 잘 안 보인대서 비닐을 함부로 걷으면 책들이 빗물에 젖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책을 바깥으로 내놓지 않으면 골마루가 책더미에 쌓여 드나들기 어렵습니다. 헌책방은 책을 들이고 내놓는 품을 들이면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비가 안 오면 시골마을을 걱정하고, 비가 내리면 책을 걱정합니다.


  비 내리는 날 책방마실 하는 책손은 어느 곳에서 발걸음 멈추고 우산을 끌까요. 비 내리는 날 책방마실 누리는 책손은 어느 책 하나 살포시 가슴에 안으며 빗물내음과 함께 책내음을 마실까요.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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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르는 책

 


  ‘남 눈’으로 바라보면 ‘남 흉내내는 그림’을 그려요. ‘남 눈’으로 헤아리면 ‘남 따라하는 글’을 써요. ‘남 눈’으로 돌아보면 ‘남 꽁무니 좇는 사진’을 찍지요. ‘남 눈’에 휘둘리면 ‘남이 만든 울타리’에 갇혀 내 삶을 잃어요.


  ‘내 눈’으로 바라보면 ‘내 이야기 담은 그림’을 그려요. 그림솜씨가 떨어지더라도 언제나 ‘내 그림’ 되어요. 그럴듯한 작품이나 이름값 얻는 작품이 안 되더라도, 내 사랑 실은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내 눈’으로 헤아리면 ‘내 삶 보여주는 글’을 써요. 글솜씨나 글재주는 없어도 돼요. 글솜씨나 글재주를 키우지 않아도 돼요. 내 삶을 밝히는 글을 쓰면서 글빛을 북돋우면 즐거워요. 내 삶을 사랑하는 글을 쓰면서 글넋을 살찌우면 기뻐요.


  ‘내 눈’으로 돌아보기에 ‘내 마음빛 아로새기는 사진’을 찍습니다. 빛과 그림자로 일구는 사진에 내 삶빛과 삶그림자를 담습니다. 내 눈은 내 눈빛을 밝히고, 내 눈은 내 손길을 어루만집니다. 내 눈은 내 눈길을 넓히고, 내 눈은 내 손빛에 웃음노래를 드리웁니다.


  남이 골라 주는 책이 아닌, 내가 고르는 책을 읽습니다. 남이 추천하거나 칭찬하는 책이 아닌, 내 마음에 와닿는 책을 읽습니다. 남들이 많이 읽는다는 책이 아닌, 내가 즐겁게 읽을 책을 고릅니다. 내 삶을 밝힐 책을 생각하고, 내 삶을 일구는 밑거름이 될 책을 헤아리며, 내 삶을 사랑하는 눈길 어루만지는 책을 살핍니다.


  내가 고르는 책은 내가 가는 길입니다. 내가 고르는 책은 내가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가 고르는 책은 나와 어깨동무하는 이웃입니다. 내가 고르는 책은 내 꿈이 드리우는 쉼터입니다. 내가 고르는 책은 곱게 빛나는 웃음꽃입니다. 내가 고르는 책은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씨앗입니다.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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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6-23 03:39   좋아요 0 | URL
깨침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__)
'내 눈'으로 보아야 '내 마음'으로 들어오고 '내 삶'이 되는군요.

숲노래 2013-06-23 07:34   좋아요 0 | URL
어느 책이든 스스로 살피고 헤아리며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 느껴
즐겁게 읽으면 되어요~
 

헌책방골목

 


  헌책방이 모여 헌책방골목이 됩니다. 찻집이 모이면 찻집골목 되겠지요. 옷집이 모이면 옷집골목 될 테고, 술집이 늘어서면 술집골목 됩니다. 여관이 많아 여관골목이요, 칼국수집 옹기종기 모여 칼국수골목입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사람들이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듯 모여 골목동네 이룹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햇살을 서로 조금씩 나누어 받습니다. 골목을 이룬 가게는 조그마한 이야기를 나란히 주고받습니다. 어느 한 가게 때문에 골목이 알려지지 않고, 어느 한 가게라도 처지거나 힘들지 않도록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너와 네가 함께 있어 골목이요, 우리 집과 너희 집이 사이좋게 동무가 되기에 골목동네입니다.


  새책방만 모여 이루어진 골목이 있을까요. 서울에 한때 도매상골목 있었지만, 이제 도매상골목은 옛모습이 거의 안 남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새책방이 어깨동무하며 이루어진 책방골목’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다른 어느 나라에서나 ‘헌책방이 어깨동무하며 이우러진 책방골목’은 한두 군데쯤 어김없이 있습니다. 수십 수백 군데가 모인대서 헌책방골목 되지는 않아요. 열 군데 모여서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하고, 너덧 곳이 모여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하며, 다문 두 군데 헌책방이 나란히 마주보면서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합니다.


  참 용하지요. 헌책방은 다섯 평짜리 조그마한 가게 두 군데만 나란히 있어도 ‘헌책방골목’ 또는 ‘책방골목’ 소리를 들어요. 이와 달리 새책방은 두 군데 나란히 모이기도 힘들 뿐더러, 커다란 새책방이 두어 곳 모였대서 ‘책방골목’이나 ‘새책방골목’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아요.


  가만히 따지면, 아파트 수백 곳 모인 데를 ‘아파트골목’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파트 수백 곳 모인 데에는 골목이 없으니 골목이 안 되어요. 아마, 커다란 새책방 두어 곳 모인다 하더라도 이 둘레에 골목이 아닌 널따란 찻길만 놓일 테네 ‘골목’이 못 되지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달동네 꽃동네 새동네 같은 골목동네는 나즈막한 지붕 이어진 작은 사람들 살림집 고만고만 맞닿습니다. 조그마한 헌책방들 서로 어깨를 기대어 이루어진 헌책방골목은 작은 헌책방지기 작은 책사랑 하나둘 모여서 아기자기하고 책꽃 피웁니다. 한국에 부산 보수동 꼭 한 군데 ‘헌책방골목’ 있어 책빛이 환하고 책노래 맑게 흐릅니다.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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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들

 


  작은 책들을 눈여겨봅니다. 책시렁에 번듯하게 꽂히더라도 커다란 책들 틈바구니에서 책등조차 거의 드러나지 못하는 작은 책들을 눈여겨봅니다.


  작은 책들을 살펴봅니다. 큰 책들 꽂히고 나서야 큰 책들 위쪽에 덩그러니 놓이기 마련인 작은 책들을 살펴봅니다.


  이 작은 책들은 어떤 사랑을 받아 태어났을까요. 이 작은 책들은 왜 다른 커다란 책들처럼 커다란 판으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


  작은 책은 값이 쌉니다. 큰 책하고 똑같은 줄거리 담았어도, 종이를 적게 쓰고 잉크를 적게 먹어 값이 쌉니다. 작은 책은 값이 싸니까, 작은 책을 만들어 파는 책마을 일꾼은 돈을 적게 법니다. 사람들이 어차피 사서 읽는 책이 똑같다면, 큰 판짜임으로 엮어 내놓으면 돈을 제법 벌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책마을 일꾼은 굳이 작은 책으로 엮어서 내놓습니다.


  파묻히기 쉽고 사라지기 쉽다 할 작은 책들인데, 외려 이 작은 책들이 더 크게 보이곤 합니다. 큰 책들 사이에 낑기거나 찡기거나 눌리기 쉽다 할 만큼 작은 책들이지만, 되레 이 작은 책은 한 번 더 쓰다듬거나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작기에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합니다. 작으니 잠자리에서도 버스에서도 길에서도 자전거에서도 손쉽게 들고 다닐 만합니다. 작은 마음으로 작은 사랑 담아 작은 이야기 꾸리는 작은 책을 작은 사람이 작은 손으로 만지작거립니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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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6-18 12:34   좋아요 0 | URL
왜 일본 책 보면 다 하나같이 귀엽고 자그마하잖아요,
우리나라에는 문고본들이 워낙 음, 시리즈물이 대부분이고 문고본이라 치기엔 너무 삐까번쩍해서;;;; 부담스러운데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중고딩 시절) 삼중당 문고본 맨날 읽었는데- 축약본이어서 좀 그렇긴 했지만 (당시에는 축약본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읽었고)

자그마한 책들이 한국에도 좀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3-06-18 14:04   좋아요 0 | URL
돈만 있대서는 자그마한 책을 못 만들고,
아름다운 뜻과
그야말로 책읽기 좋아하는 사장과 편집자 있어야
비로소 손바닥책 예쁘게 태어나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