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이 있나요

 


  어떤 책이 이곳에 있나요. 어떤 책이 책꽂이에 있나요. 어떤 책이 우리 가슴에 있나요. 어떤 책이 지구별에 있나요. 어떤 책이 우리 마을에 있나요. 어떤 책이 내 손에 있고, 어떤 책이 내 마음자리에 살포시 감겨드는가요.


  책을 읽는 마음은 어떠한가요. 책을 읽고 나서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요. 책을 읽은 손으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요. 책을 사랑하듯이 이웃과 동무와 옆지기를 살가이 사랑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웃는가요.


  한 번 읽고 나서 덮는 책을 마주하는가요. 한 번 읽었기에 앞으로 새롭게 거듭 읽을 책을 만나려 하는가요. 한 번 읽은 뒤 어느새 잊어버리는 책을 장만하는가요. 한 번 읽고 나서 자꾸자꾸 새로 장만해서 둘레에 선물하는 책을 맞이하는가요. 4346.10.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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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책지기한테

 


  헌책방을 오래오래 일구신 책지기님한테 한 말씀 올립니다. 나는 이제까지 헌책방 책지기님 모두한테 더할 나위 없이 크고 너른 사랑을 받았습니다. 몇 만 권에 이르는 책을 헌책방에서 장만할 수 있었고, 따로 장만하지 않았지만 헌책방 책시렁을 두루 살피며 수십만 권에 이르는 책을 기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크고작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방이 문을 닫았습니다. 오래도록 지역문화를 지키던 씩씩하고 아름답던 책방마저 거의 모조리 문을 닫았습니다. 몹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헌책방도 참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퍽 많은 헌책방은 온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 여미십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아무리 책살림 빠듯하거나 어렵다 하더라도 오래도록 헌책방 책살림 붙잡은 힘이란, 첫째 책을 만지는 즐거움이요, 둘째 새로운 책손한테 책을 잇는 보람, 이렇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움과 보람으로 온갖 어려움을 헤치며 오늘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마다 지역책방이 살아가자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책방이거나 헌책방이거나, 또 도서관이거나 다 똑같을 텐데요, 즐거움과 보람 두 가지를 늘 되새기면서 책살림 꾸려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마을빛(지역색)을 살리거나 북돋우는 길을 살피셔야지 싶습니다. 인천에서는 인천책을 갖추고, 부산에서는 부산책을 갖출 노릇입니다. 순천에서는 순천책을 갖추며, 춘천에서는 춘천책을 갖출 노릇이에요. 대형서점에 다 있고 인터넷서점 살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더 싸게’ 사는데다가 ‘적립금 더 얹어’ 주는 그런 책들 말고, 참말 마을빛을 살리고 살찌우는 책을 우리 헌책방들 책시렁 한쪽에 곱게 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책으로 들어온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갖출 수도 있어요. 그러나,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마을에서 씩씩한 마을책방으로 뿌리를 내리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으려고 한다면,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넘어 ‘우리 책방으로 찾아오는 책손이 기쁘게 만나며 새롭게 배워서 아름답게 읽을 책’을 갖추도록 힘을 쓰시고 마음을 기울이셔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답게 꿈꾸면서 사랑하고 싶기에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고 싶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담은 책을 찾아서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 서재를 채워 주는 장서가 아니라, 마을이웃 작은 책시렁에 곱게 놓이면서 삶빛 아름답게 밝힐 책을 일구는 데가 헌책방이요 마을책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고 하는 전문가나 독서라가 할지라도 ‘아직 모르는 책’이 있고 ‘아직 못 만난 책’이 있어요. 우리 헌책방 책지기님들은 바로 이렇게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를 뿐 아니라 책지기 스스로도 여태 구경하지 못한 새로운 헌책’을 알뜰살뜰 추스르고 갈무리하면서 책시렁을 환하게 빛내는 몫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징검돌 되는 마을책방으로서, 헌책방으로서, 책터로서, 책쉼터로서, 책이야기터로서, 삶자리로서, 가슴속에 책빛 맑고 밝게 보살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다 함께 즐겁게 책빛마실 다니도록 우리 곁에 있는 아름다운 헌책방이 고맙습니다. 4346.10.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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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빛마실


 

  책빛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늘 책빛을 읽는다. 책에 서린 빛을 읽는다. 책에 감도는 빛을 읽는다. 책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읽는다.


  책빛을 읽는 마실을 한다. 책빛마실을 한다. 새책방을 다닐 적에도 도서관을 드나들 적에도 헌책방으로 찾아갈 적에도, 언제나 책빛마실이다.


  새롭게 돋는 빛을 누린다. 오랜 옛날부터 흐르던 빛을 바라본다. 앞으로 곱게 이어갈 빛을 헤아린다. 책에 서리는 빛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아오며 일군 빛이다. 책에 감도는 빛은 사람들이 어깨동무하며 사랑하던 빛이다. 책에서 우러나오는 빛은 사람들이 알뜰살뜰 옹기종기 꾸린 살가운 이야기에서 샘솟는 빛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빛을 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빛을 그린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빛을 찍는다. 빛을 노래하고, 빛으로 춤춘다. 빛으로 이야기하며, 빛으로 밥을 차린다. 온삶 가득 빛살이 흐드러진다.


  책이란 무엇인가. 종이책이면 책인가. 전자책이 새로운 책으로 되는가. 삶이 없이 책이 태어날 수 있는가. 사랑이 없이 책을 쓰거나 읽을 수 있는가. 아름다운 삶도 삶이여 슬픈 삶도 삶이며 거짓으로 꾸민 삶도 삶이다. 모두 삶이며, 어느 이야기라 하더라도 책이 된다. 그러면, 전쟁도 사랑이 되는가. 미움과 주먹다짐도 사랑이 되는가. 아니지, 전쟁이나 미움이나 주먹다짐은 사랑이 아니지. 그런데 전쟁과 미움과 주먹다짐으로 얼룩진 삶을 책으로 쓰기도 하잖은가. 이런 책에서 우리는 어떤 사랑을 느껴 어떤 사랑을 살찌울 기운을 얻을까.


  책을 펼쳐 삶을 읽는다. 아이들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책을 읽는다. 책을 쥐며 사랑을 읽는다. 맑은 물을 길어 정갈한 쌀을 씻고 불려 밥을 짓는 동안 책을 읽는다. 책을 선물하며 삶을 읽는다. 나무를 살며시 안고 풀밭을 맨발로 뛰놀며 책을 읽는다.


  가을바람 푸르게 분다. 산들산들 살랑살랑 나뭇잎 스치며 푸른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숲에서 태어났고, 온누리 고루 어루만지다가 새삼스레 숲으로 돌아가 조용히 잠든다. 나무야 나무야 푸르디푸른 나무야, 네 속살이 온통 책으로 태어나 우리한테 풀빛을 노래하는구나. 4346.10.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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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책시렁에서 내 책

 


  헌책방 책시렁에서 내 책을 만난다. 너, 누구한테서 읽히고 이리로 왔니? 너를 읽은 사람은 즐거운 마음이었니? 기쁘게 다 읽고 나서 너를 이곳에 곱게 데려다주었니? 앞으로 누가 너를 다시 즐거이 알아보면서 차근차근 읽을까. 내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들은 누군가 즐겁게 장만해서 읽은 책이듯, 너 또한 누군가한테서 곱게 사랑을 받고서 이곳에 깃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 사랑스러운 손길을 탄 책들이 새롭게 사랑스러운 손길을 타기를 기다리는 헌책방 책시렁에서, 너 또한 고운 책빛을 흩뿌리면서 다소곳하게 잠들었구나. 머잖아 네 어깨를 톡 치면서 빙그레 웃을 책손 만나리라. 그날까지 고즈넉하게 단꿈을 누리렴. 4346.10.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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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품과 재활용품

 


  새책방만 있는 문화는 1회용품 문화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책 하나를 한 사람만 읽고 더 읽히지 못하도록 책꽂이에 꽁꽁 가두어 모신다면, 이 책은 한낱 1회용품 물건하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새책방 곁에 헌책방이 있으면, 책은 재활용품 문화로 거듭납니다. 내 살림집에 건사한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헌책방에 내놓으면 이 책들은 누군가 다른 사람 손으로 건너갑니다. 가난한 이웃이든 마냥 책이 좋아 새책방도 헌책방도 신나게 마실하는 책님이든, 책이 돌고 돕니다. 다른 책벗이 헌책방에서 장만해서 읽은 책은 또 헌책방으로 나올 수 있고, 이 책 하나 돌고 돌면서 수없이 되읽힙니다.


  도서관이라는 곳은 바로 책 하나 되읽히도록 이음돌 놓는 책터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도서관은 책 두는 자리를 새로 짓거나 늘리지 못합니다. 책은 날마다 새로 나오는데,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을 모두 장만하지 못하고, 모두 건사하지 못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뺀 다른 도서관은 꾸준히 ‘묵은 책은 버리’고 ‘새로 나온 책을 사들이’는 일을 하고야 맙니다. 도서관 곁에 헌책방이 없다면, 이 나라 도서관에서 버릴 수밖에 없는 슬프고 안타까운 책이 모두 종이쓰레기가 됩니다.


  꾸준하게 많이 팔리는 책이라면 몇 권쯤 종이쓰레기 되어도 다시 찍어 다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줄거리와 속살이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미처 사람들한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진 책은 몇 권이라도 종이쓰레기가 되면 자칫 두 번 다시 만날 길 없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100만 권 팔리는 책만 아름답지 않습니다. 1000권 겨우 팔린 책도, 100권 가까스로 팔린 책도, 10권 힘겹게 팔린 책도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읽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처음 펴낸 책은 빚을 지고 혼잣돈으로 펴냈는데 몇 해에 걸쳐 고작 100권 남짓 팔렸다고 해요. 소로우 님은 이녁 삶을 책으로 써서 내놓고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아 이 빚을 갚느라 여러 해 고되게 일해야 했다고 해요. 이 책들을 도서관에서 버린다면, 이 책들을 받아줄 헌책방이 없다면, 아마 소로우 님 책은 앞으로도 제대로 빛을 못 받을 수 있었겠지요.


  삶은 1회용품이 아닙니다. 1회용품은 모두 쓰레기로 바뀝니다. 부엌칼도 도마도 빗자루도 쓰레받기도 1회용품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다시 쓰고 또 쓰며 오래 쓰는 재활용품입니다.


  재활용품 파는 가게에서 사는 물건이 재활용품이 아니라, 우리가 꾸준히 곁에 두며 쓰는 물건이 모두 재활용품입니다. 바지 한 벌 열 해째 잘 건사해서 입는다면, 나는 바지 한 벌을 열 해째 재활용품으로 즐기는 셈입니다. 자전거 한 대 열 해째 잘 돌보며 탄다면, 나는 자전거를 탈 적마다 재활용을 하는 셈입니다.


  돌고 돌 때에 돈이듯이, 돌고 돌 때에 책입니다. 여러 사람이 골고루 누릴 때에 아름다운 돈이 되듯이, 여러 사람이 골고루 읽으며 스스로 이녁 삶을 살찌우는 징검돌로 삼을 적에 아름다운 책이 됩니다. 큰책방과 작은책방, 인터넷책방과 동네책방, 여기에 새책방과 도서관과 헌책방이 고루고루 골골샅샅 아름답게 어깨동무를 해야 책빛이 환하게 드리울 수 있습니다. 4346.10.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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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15 12:44   좋아요 0 | URL
정말 새책방 옆에 헌책방이 있고, 더구나
도서관 옆에 헌책방이 있어야 함을, 함께살기님의 글을 읽으니
더욱 절감이 드네요.
저도 즐겁고 살뜰하게 읽은 책들을 꼭 소장할 책이 아니라면
부지런히 헌책방에 내놓으려 합니다~^^

숲노래 2013-10-16 14:57   좋아요 0 | URL
모두들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책빛도 삶빛도 환하게 드리운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