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다

 


  즐겁게 읽은 책을 헌책방에 즐겁게 내놓습니다. 내가 헌책방에 내놓은 책은 누군가 즐겁게 알아보고는 기쁘게 장만해서 읽을 테지요. 내가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가서 알아보고는 기쁘게 장만해서 읽은 책은 누군가 즐겁게 읽고 나서 스스럼없이 내놓은 아름다운 책일 테고요.


  나는 책 한 권 즐겁게 읽고 나서 아름다운 넋을 얻습니다. 그러고는 이 책들을 즐겁게 내놓고는 내 이웃들이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언제나 새롭게 나를 일깨우는 책을 만나러 책마실을 다닙니다. 내 이웃은 내 이웃대로 책 한 권 기쁘게 읽고 나서 사랑스러운 넋을 누립니다. 그러고는 이 책들을 살포시 내놓아 다른 이웃과 동무가 사랑스레 만날 수 있기를 바라지요. 늘 새롭게 마음밭 살찌우는 책을 만나고 싶어 책마실을 다녀요.


  책을 파는 사람이 있어 책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사는 사람이 있기에 책을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있어 책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하나로 얽혀 이어집니다. 서로 아름답게 만나고, 다 함께 기쁘게 어울립니다. 책 하나가 징검돌 되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글 한 줄이 징검다리 되어 사랑과 꿈이 이곳과 저곳을 따사로이 잇습니다. 4346.8.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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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02 20:59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글을 읽으니...'책을 파는 일'의 의미가
한층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숲노래 2013-08-02 21:45   좋아요 0 | URL
책을 파는 사람이 있어 책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후애(厚愛) 2013-08-02 22:08   좋아요 0 | URL
제가 찾고 있는 책들이 알라딘에 없으면 헌책방 가서 찾으면 너무너무 기뻐요.^^
미국에 있을 때는 없어서 못 갔는데 이제 한국에서 사니 언제든지 갈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ㅎㅎ

숲노래 2013-08-03 06:37   좋아요 0 | URL
미국에도 헌책방은 곳곳에 있지만
모두 영어로 된 책이었을 테지요~

늘 즐겁게 책방마실 누리면서
아름다운 책들 포옥 안아 주셔요~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아름다울까, 하고 헤아려 본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일군다면 아름다운 사람일 테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일구지 않는다면 안 아름다운 사람일 테지.


  흙을 만지며 살아가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안 아름다울 수 있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일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으나 안 아름다울 수 있다. 어떤 모습이 보이느냐는 대수롭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도 대수롭지 않다. 언제나 꼭 한 가지가 대수로우니, 바로 마음이다.


  스스로 삶을 어떤 마음으로 누리거나 일구거나 즐기는가 하는 대목을 읽을 수 있어야지 싶다. 삶을 읽고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에 책을 읽거나 글을 읽을 수 있으리라 느낀다. 삶을 안 읽거나 못 읽는다면, 마음을 안 읽거나 못 읽다면, 무엇을 읽거나 살핀다고 할 만할까.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공부만 잘 해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성적 잘 나온대서 되지 않는다. 어른들은 회사나 공장에서 돈만 잘 번다고 되지 않는다. 집안일 도맡는다지만 사랑이 없이 해치우는 집안일이란 어떤 보람이나 웃음이나 이야기가 있겠는가.


  삶을 사랑하고 마음을 꿈으로 빛낼 때에 비로소 아름다움이 피어난다고 느낀다. 삶을 사랑할 때에 비로소 책을 손에 쥘 만하고, 마음을 꿈으로 빛내는 사람일 때에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이야기꽃을 나눈다고 느낀다. 4346.7.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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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책방

 


  아이들이 태어나기 앞서, 옆지기와 만나 아기를 밴 뒤, 아기가 갓 태어나고 나서, 아이들이 차츰 자라 스스로 걷는 동안, 이제 뛰고 달리면서 까르르 웃고 노는 아이들이 먼저 앞장서면서, 조그마한 헌책방 찾아다닌다. 조그마한 헌책방도 나이를 먹고, 헌책방지기도 나이를 먹으며, 나도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나이를 먹는다.


  자주 보든 오랜만에 보든 서로 알아보며 인사를 나눈다. 내가 조그마한 헌책방 책시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느끼는 사이에, 헌책방지기는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자라 몰라보게 튼튼해졌는가를 느낀다.


  나무가 나이를 먹듯이 책이 나이를 먹는다. 사람도 나이를 먹고 책방도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 사람들이 책방에서 만나 ‘나이 먹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지 않아 이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게 책방마실 다니면서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요’라든지 ‘우리 어머니가 지난날에요’ 하는 이야기를 할머니 헌책방지기나 할아버지 헌책방지기하고 도란도란 주고받으리라 생각한다. 4346.7.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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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들 책들

 


  대학교 교수님들이 대학교 도서관이라든지 이런 곳 저런 곳에 당신 책을 기증하곤 한다. 그러면 대학교 도서관이나 이런 곳이나 저런 곳에서 이녁 책을 ‘아무개 교수 장서’라는 이름을 달고 몇 해쯤 건사해 두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면 조용히 내다 버리곤 한다. 이렇게 버린 책을 헌책방에서 곧 알아채고는 알뜰히 건사해서 다른 책손이 사들일 수 있도록 다리를 놓지.


  대학교 도서관이나 이런 곳이나 저런 곳에 책을 기증하는 교수님들이 책을 모으는 동안 ‘헌책방에서 적지 않은 책을 찾아내어 모았’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도서관에서 책을 건사해서 학문과 학술을 빛내는 밑거름 되도록 이끌지 못하니, 교수님들로서는 헌책방 나들이를 꾸준히 하면서 당신이 바라는 자료를 살피기 마련이다.


  나는 헌책방을 다니면서 ‘아무개 교수’가 ‘아무개 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한 책들’을 자주 만난다. 그렇다고 이 책들을 내가 몽땅 사들이지는 못한다. 나한테 쓸모있는 책만 고르고 싶기도 하지만, 이 책들을 어느 도서관에 기증한 마음을 헤아리며 가슴이 아파 선뜻 어느 책도 못 고르기 일쑤이다. 그래도, 아무개 교수님 책들이 이래저래 대학교 도서관 기증도서였다가 버려진 발자국 아로새기려는 뜻으로 몇 권쯤 산다. 다른 책들은 부디 아름다운 책손 만나 오래오래 사랑스레 읽히기를 빈다.


  나이 예순이나 일흔쯤 된 교수님들 뵐 때마다 늘 생각한다. 부디, 교수님들 책 대학교에 기증할 생각 마시고, 예쁜 제자한테 통째로 주거나, 오래도록 단골로 다닌 헌책방에 통째로 넘겨 주십사 하고 바란다. 헌책방에 당신 책 통째로 넘기면, 이 책들 통째로 물려받을 좋은 책손 곧 나오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도서관이 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에, 헌책방에서 책을 건사해 준다. 4346.7.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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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킨다

 


  어느 도서관 ‘보존서고’에 있었다는 책이 버려진다. 그렇지만, 헌책방이 있어 이 책 얌전히 새롭게 꽂힌다. ‘보존서고’에 있었다는 자국 남기며, 누군가 어여삐 건사해 주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새 책손을 기다린다.


  책은 도서관에서 지키는가? 책은 헌책방이 지켜 주는가? 책은 사람이 읽는가? 책은 마음에 모시어 곱게 보살피는가? 4346.7.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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