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놓는 마음

 


  내가 장만해서 읽은 책은 내 마음을 살찌우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즐겁게 일해서 그러모은 돈을 즐겁게 써서 책을 한 권 장만합니다. 기쁜 마음 되어 두근두근 책장을 넘겨요. 새록새록 스며드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고맙게 받아먹습니다. 다 읽은 책을 가슴에 포옥 안으며 한껏 설렙니다. 이 느낌 홀로 누리기보다 여럿이 누리면 더 즐거우리라 생각하면서, 내 마음 살찌운 아름다운 책을 한 꾸러미 되도록 모아서 헌책방으로 가져갑니다. 즐겁게 장만해서 즐겁게 읽은 책이기에 즐겁게 내놓습니다. 누군가 나처럼 이 책들 환하게 맞아들여 반갑게 즐기면서 새롭게 마음밥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즐겁게 읽은 책을 헌책방에 내놓는 마음이란, 기쁘게 북돋운 사랑을 이웃과 나눠 갖고 싶은 빛입니다. 내 마음에 빛 한 줄기 된 책을 내 이웃 마음속으로도 새로운 빛 한 줄기로 스며들기를 바라는 꿈입니다.


  책이 돌고 돕니다. 책이 읽히고 읽힙니다. 돌고 도는 책은 언제까지나 아름답게 빛납니다. 읽히고 읽히는 책은 한결같이 사랑스럽습니다.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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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8 09:53   좋아요 0 | URL
저는 중고등학교때만 해도, 헌책방은 필요 없어진 책을 팔고 또 필요한 책을 더욱 싼 값으로 사오는데로만 알았어요..^^;;; 집근처인 동대문운동장이나 평화시장 길목에 헌책방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함께살기님 덕분에 '헌책방'의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의 오래된 숲을 깨닫게 되어 참 기쁘고 감사하답니다. ^^
저도 나중에 제가 즐겁게 읽은 예!쁜 책들을 한꾸러미씩 모아 헌책방엘 가야겠어요~.
사진으로 올려주신 헌책방이 참으로 근사하고 좋군요..^^

숲노래 2013-07-08 10:50   좋아요 0 | URL
헌책방에서 '필요한 책'을 사려면, 누군가 그 '필요한 책'을 내놓아 주어야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아직도 이 대목을 잘 모르시더라구요. 그래도, 적잖은 사람들은 이 대목을 잘 알아서, 예나 이제나 아름다운 책을 헌책방에 즐겁게 내놓아 준답니다~
 

책방 앞을 걷다

 


  책방 앞을 지나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책방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책방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내가 책방 옆을 지나가는구나.’ 하고 느끼는 날 있을 테고, ‘오늘은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하는 날 찾아올 수 있어요.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르고, 내가 어떤 책을 고를는지 모르지만, 마냥 책방 문 열고 들어가서 책시렁을 가만히 돌아볼 날 찾아오리라 믿어요.


  빵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빵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찻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찻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곁에 늘 있는 조그마한 빵집과 찻집이 나를 부르듯, 마을에 깃들어 오래도록 제자리 지키는 책방 한 곳을 마음에 두면, 시나브로 책내음이 나를 부릅니다.


  마을에 숲이 있으면, 숲 앞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숲에 한 발자국 들일 수 있어요. 마을에 냇물이 흐르면, 냇물 앞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신을 벗고 냇물에 발을 담글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 어떤 집과 가게가 있는가를 느껴야지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에 풀과 꽃과 나무가 어떻게 어우러졌는가를 느껴야지 싶어요. 이웃을 살피고 숲을 헤아립니다. 동무를 생각하고 수많은 숨결을 떠올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집과 학교 사이를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집과 학교 사이를 걸어서 다니는 거님길 둘레에는 자동차가 되도록 적게 다니거나 안 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조용한 바람을 느끼고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걸어다닐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걷는 이 길에 예쁜 책방 몇 군데 있어, 마음을 쉬거나 살찌우거나 다스릴 만한 이야기 즐겁게 찾을 수 있기를 빌어요.


  책방이 있기에 책을 만나요. 책방이 있어 마을이 환하게 웃어요. 책방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새록새록 감돌아요. 책방과 함께 삶을 노래해요.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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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책, 비싼 책

 


  값이 너무 비싸다 싶은 책이 있으면 선뜻 손이 안 가기도 하지만, 값이 너무 싸다 싶은 책이 있으면 또 선뜻 손이 안 가곤 합니다. 내 주머니가 그닥 넉넉하지 못해 값이 너무 비싸구나 싶으면 선뜻 장만하지 못한다 할 텐데, 값이 너무 싸다 싶은 책한테도 손길이 안 가요. 값이 아주 싸다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이 장만할 수 있을 테지만, 마음이 안 움직입니다.


  장만하고 싶은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 사진책 내놓은 분은 ‘고인돌’을 찍었습니다. 참 좋은 ‘삶과 사람과 사진 이야기’ 들려주리라 생각하며 이 사진책 장만할 꿈을 키우는데, 따로 주문을 받아 사진작가가 손수 원판 사진을 묶어서 팝니다. 이 책은 첫 ‘수제본’은 100만 원이었다 하고, 이내 150만 원이 되었다가, 요즈음은 300만 원쯤 치러야 살 수 있는 듯합니다. 머잖아 500만 원이 넘을 수 있어요. 원판 사진에다가 손수 묶는 아름다운 책이니 틀림없이 ‘소장 값어치’가 있는 사진책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10만 원이나 15만 원 즈음, 또는 5만 원이나 7만 원 즈음으로 여느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는 사진책이 나올 수는 없는지 궁금해요. 사진을 좋아하고, 삶을 사랑하며,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한테는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값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에서 500원이나 1000원 값 붙여서 내놓는 책은 손쉽게 장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인터넷책방에서 500원이나 1000원 값 붙여서 판다는 책은 누구나 장만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나는 500만 원짜리 사진책을 장만할 엄두를 못 내기도 하지만, 500원짜리 값싼 책 또한 장만할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아주 작고 얇으며 가벼운 책이라면, 헌책으로서 500원이나 1000원이 될 수도 있지만, 200∼300쪽 즈음 되는 여느 판짜임 책이라 할 때에는 헌책방에서도 3000∼4000원은 받아야 마땅하고, 요즈음 물건값을 살피면 5000∼6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느껴요. 제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깎아내린 값은 달갑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사람’한테 지나치게 깎아내린 책값이 도움이 될까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낸 사람한테 이런 터무니없는 싼값이 이바지할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는 텃밭에서 무 한 뿌리 배추 한 포기 거저로 내어주곤 합니다. 굳이 돈으로 따져서 건네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저로 선물할 수 있다 해서 무 한 뿌리나 배추 한 포기에 500원이나 1000원을 받을 수 없어요. 제값을 받아야지요.


  책선물은 얼마든지 반갑지만, 선물 아닌 책을 500원이나 1000원에 사고팔도록 한다면, 또는 다른 책하고 견주어 너무 깎아내린 값으로 다룬다면, 이때에는 책이 무엇이 될까요.


  그저 많이 읽히면 되나요. 그저 많이 사들이도록 북돋우면 되나요.


  《위대한 개츠비》라고 하는 소설책 하나를 새책으로 펴낸 커다란 출판사마다 50% 에누리라느니 51% 에누리라느니 66% 에누리라느니 58% 에누리라느니를 하면서 2900원에, 3920원에, 4750원에, 4000원에, 5390원에 팝니다. 갓 나온 책조차 10% 에누리 아닌 40%, 아니 50% 훨씬 넘는 에누리로 사고팔립니다. 헌책 아닌 새책을 이렇게 팔고, 이렇게 파는 책이 아주 불티나게 팔립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책’ 아닌 ‘싸구려 물건’을 사들입니다.


  싸구려 물건 사들인다 하더라도 ‘아름답게’ 읽으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슴속에 품겠지요. 비싸게 사든 값싸게 사든, 읽는 이 스스로 즐겁게 읽으면 즐거운 빛이 마음속에서 환하게 샘솟겠지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우리가 읽을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깎아내리는 책에서만 얻을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토록 함부로 깎아내려서 사고팔아야 하나요. 게다가 3000∼5000원 사이로 파는 이 책들을 사면 다른 새책을 한두 권씩 끼워서 주고, 다른 선물까지 덤으로 안깁니다. 새책 한 권이 천 원조차 안 되는 꼴입니다.


  책값은 비쌀 수 있고 쌀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읽고픈 책을 사면 될 노릇입니다. 비싸다고 하면, 푼푼이 돈을 모아서 장만하면 되고, 값싸다 싶으면 여러 권 장만해서 이웃한테 선물할 수 있어요. 부디 책이 책답게 되도록 책마을 일꾼이 땀을 쏟기를 빕니다. 책방지기가 맑은 웃음 지으며 따순 손길로 아름다운 책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기를 빕니다. 책으로 삶을 읽으려는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이야기가 흐르도록 이끄는 책을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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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7-04 21:31   좋아요 0 | URL
출판사 스스로가 저처럼 책 세일을 하고 있으니 책 읽는 이들이 내가 사는 책이 과연 거품이 없나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단 생각이 드네요.그러니 정가에 책을 사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고 결국 세일해야만 팔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3-07-04 23:12   좋아요 0 | URL
네. 이번 개츠비 책들은...
사재기 출판사 문제보다 훨씬 크고 나쁜 문제를
일으키는구나 싶은데에도...
'독자가 바란다'는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붙여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터무니없는 깎아팔기가... 이어질 듯해요...
 

책 사이에 드리우는 빛

 


  책에는 빛이 서립니다. 책에는 다른 어디에도 서리지 않는 빛이 곱게 서립니다. 나는 이 빛을 ‘책빛’이라고 말합니다.


  책빛은 언제나 곱게 서립니다. 이 빛을 알아채는 사람과 안 알아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빛은 이 빛을 알아채는 사람한테만 곱지 않습니다. 이 빛을 안 알아채는 사람한테도 늘 곱게 서립니다. 다만, 안 알아채기 때문에 못 받아들일 뿐입니다. 마치 햇볕이 어디에도 곱게 드리우지만, 햇볕이 드리우는 줄 모르고 지하철을 타거나 건물에서 형광등 켜고 일하는 사람이 많듯, 햇볕도 책빛도, 또 사랑빛과 푸른 숨결도 어디에나 찬찬히 드리우거나 서립니다.


  책에 서리는 빛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를 베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저마다 복닥이거나 부대끼면서 빚는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빛 한 줄기 되어 책에 서립니다. 나무들 우거진 숲을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 손길과 숨소리와 마음결이 고스란히 종이 한 장에 스며듭니다. 햇살은 나무로 드리우며 나무를 살찌우고, 나무는 사람한테 와서 종이가 되어 포근한 기운을 보여주며,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한 자락 알뜰살뜰 엮어 책 하나를 새롭게 빚습니다.


  빛이 된 이야기는 이야기빛일 텐데, 사람들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으니 이야기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이야기빛은 이야기씨앗이 되면서 이야기나무로 자라고, 이야기꽃으로 피어납니다. 이야기꽃은 고소한 이야기밥이 되어 스며들고, 다시 이야기바람이 되어 시원한 생각 간질입니다.


  빛이 없거나 볕이 없는 데에서도 목숨이 싹틀까요. 빛이 없거나 볕이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울 수 있을까요. 책은 인쇄소와 제본소에서 척척척 찍어서 나오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모습으로 천 권 이천 권 만 권 십만 권 찍힌다 하더라도 저마다 고운 나무숨 담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아파트에서 형광등 켜고 읽을 수 있다지만, 석유와 천연가스 바닥이 나면 햇살이 드리우는 아침과 낮과 저녁 아니고서는 읽을 수 없습니다. 아니, 책이란, 형광등 불빛 아닌 햇살을 쬐며 읽을 때에 비로소 책이라 할 만합니다. 햇살이 있는 곳에서 읽으며 따스한 기운 받아먹고, 햇살이 온누리에 골고루 내리쬐도록 마음을 기울이도록 북돋우며, 햇살처럼 따스한 사랑이 내 마음에 서려 날마다 새롭게 웃고 뛰놀도록 이끌어, 바야흐로 ‘책’이 되고 ‘책빛’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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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무와 책기둥

 


  헌책방에서는 책이 책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탑이 되고 때로는 밑받침이 된다. 헌책방에서는 책이 보배가 되기도 하면서 읽을거리가 되며 따사로운 이야기꽃이 되기도 한다. 헌책방에서는 책이 기록이나 역사나 문화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만남이 될 때가 있고, 애틋한 벗이 될 때가 있으며, 그리운 님이 될 때가 있다.


  받침대 밑에서 기둥 노릇을 하는 책은 서운하게 여길까. 나무받침대 밑에서 튼튼히 기둥 구실을 하는 책은 저마다 어떤 빛을 이룰까.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는 사람들이 이야기 담은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들한테 푸른 숨결 나누어 주던 나무는 알맞게 잘리고 손질받아 받침대나 책상이나 걸상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


  오래되어 낡은 플라스틱이나 쇠붙이나 비닐은 쓰레기가 된다. 오래되어 낡은 책걸상은 잘 닦고 손질해서 두고두고 쓸 뿐 아니라, 너무 갈라지거나 쪼개졌다 싶으면 아궁이에 넣어 방바닥 지피는 장작으로 거듭난다.


  다 다른 이야기 담긴 책은 어떠한 빛이 되어 사람들 손으로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오늘 이야기는 모레나 글피에 어떠한 빛으로 사람들 손에 살그마니 얹힐 수 있을까.


  서른 해 꾸준하게 읽히는 책이 있고, 마흔 해만에 새롭게 빛을 보는 책이 있다. 이백 해 한결같이 읽히는 책이 있으며, 오백 해만에 비로소 빛을 보는 책이 있다.


  책을 아름답다고 느끼면, 내 마음속에서 아름다움이 찬찬히 싹을 튼다는 뜻이다. 책을 사랑스레 느끼면, 내 마음자리에서 사랑이 천천히 움을 튼다는 뜻이다. 책을 반가이 여기면, 내 마음결이 보드랍게 춤을 추면서 이웃을 반가이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가 책기둥에서 하나 빼내어 다른 책을 책기둥 되도록 할까. 누가 책기둥을 하나하나 덜어내어 받침대 기둥이 오롯이 나무로 바뀌도록 할까. 돌고 도는 책이니만큼, 오늘은 책기둥이 되고 모레에는 다른 책들이 책기둥이 되다가는 글피에는 새로운 책들이 책기둥이 되겠지. 4346.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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