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새롭게 읽는 책

 


  이오덕 님이 엮어서 내놓은 《일하는 아이들》(청년사)을 헌책방에서 새삼스레 본다. 1978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이 나라 교육과 문학을 뒤집는 노릇을 했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이 나라 교육과 문학은 아이들을 ‘동심천사주의’ 그물에 옭아매어 입시문제로 들볶느라, 삶도 꿈도 놀이도 빛도 사랑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멧골마을 아이들 삶이 드러나는 글을 모아서 엮은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으면, 아주 마땅히, 책이름 그대로 “일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런데, 일하는 아이들만 나오지 않는다. 일하는 아이들이란 “놀이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 놀이가 수없이 나온다. 또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동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붙이를 사랑한다. 꽃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며 숲을 사랑한다.


  그러면 왜 책이름이 “일하는 아이들”이었을까? 스스로 삶을 밝히면서 가꾸는 일이 무엇이요 사랑이 어떠한가를 깨닫지 못할 적에는 도시문명사회에서 돈벌이로만 치닫는 생체기계인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삶다운 삶을 찾는 첫길로 “일다운 일”을 찾는 “일하는 아이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일하는 아이들》 예전 판을 본다. 이 책은 무척 많이 팔렸다고 하는데, 나중에 출판사에서 판매부수를 속이고 인세지급을 안 하며 책을 새로 찍고도 ‘중판’이라 적거나 ‘판수 줄이기’ 장난을 쳤다고 한다. 이를테면, 8쇄를 찍었으면서 간기에 ‘7쇄’라 찍어서 출고를 하는 모양새로. 이런 이야기를 이오덕 님 둘레에서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어서(권정생 님도 여러 차례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오덕 님은 청년사 대표한테 편지를 띄웠고, 청년사 대표가 흐리멍덩하게 말을 흐리자, 안 되겠구나 싶어 내용증명을 보내 절판시키라 했다. 그러나 곧바로 절판시키지 않고 한두 해쯤 몰래 더 찍어서 팔았다고 한다.


  엊그제 헌책방에서 만난 《일하는 아이들》은 1쇄를 찍은 뒤 이레만에 2쇄를 찍은 판이다. 3쇄는 얼마만에 찍었을까. 모두 몇 권이나 찍었을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밥 얻었을까. 2002년에 새옷 입고 다시 나온 책도 있는데, 헌책방에서 예전 판으로 만나 다시 읽으면 새로운 느낌을 얻는다. 1970년대 끝무렵 아직 군사독재정권 서슬이 시퍼렇던 그때, 이런 책 내놓았다고 문교부와 지방교육청 장학사한테 들볶이고 시달리던 이오덕 님 삶을 돌아본다. 총칼로 사람들 억누르던 군사독재정권이 이 땅 아이들을 어떻게 입시노예 도시노예로 길들이려 했던가 하는 이야기를 헤아린다. 1970년대에 어린이였던 사람은 오늘날 어떤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볼까 궁금하다.


  오늘날 어른은 “일하는 어른들”일까, 아니면 “돈버는 어른들”일까. 오늘날 아이들은 “놀이하는 아이들”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아이들 가운데 “꿈꾸는 아이들”이나 “사랑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삶을 아끼고 동무를 보살피며 이웃과 어깨를 겯는 착하고 참다운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삶을 지을까.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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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7-16 17:03   좋아요 0 | URL
저도 시간나면 헌책방 찾아가야겠어요.^^
나중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한번 더 가 보고요.ㅎㅎ

숲노래 2013-07-16 17:41   좋아요 0 | URL
대구에 있는 <대륙서점>도, 또 부산에 있는 보수동 헌책방골목도,
또 알라딘책방도 모두 즐겁게
책마실 하시면서
두 손에 고운 책빛 담아 보셔요~~ ^^
 

나무가 빛나는 책시렁

 


  나뭇잎이나 나뭇줄기는 쓰다듬거나 비빈다고 닳지 않는다. 살아서 바람을 마시는 목숨은 닳지 않는다. 사람도 쓰다듬거나 어루만진다고 해서 닳지 않는다. 산 목숨은 닳지 않고 단단해진다. 산 숨결은 닳는 일 없이 한결 곱게 빛난다. 고운 손길 뻗어 쓰다듬을 적에 사랑이 스민다. 맑은 눈빛 드리워 어루만질 때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나무에서 태어난 책은 사람들이 만지고 만질 때마다 조금씩 닳는다. 나이를 먹는 책은 천천히 낡는다. 백 사람도 만 사람도 손으로 만져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천 해 지나고 이천 해 흐르는 사이 종이가 바스라지고 책등이 조금씩 터진다.


  그런데, 낡거나 닳는 책은 껍데기가 낡거나 닳더라도 빛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은 껍데기나 종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종이에 얹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읽는 책이지, 종이를 읽거나 껍데기를 읽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은 책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은 이야기를 살피고 헤아리며 즐길 뿐, 껍데기에 붙인 이것저것을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즐기지 않는다. 겉장은 단단한 종이로 새로 붙여도 된다. 속종이는 아예 새로운 종이에 다시 박아서 묶을 수 있다. 그런데, 겉장을 새로 붙이든 속종이를 새로 찍어서 묶든, 속에 얹는 글(이야기)은 한결같다.


  가지 하나 부러지더라도 나무는 나무이다. 잎사귀 모두 떨구어도 나무는 나무이다. 꽃이 새로 필 적에도 나무는 나무이다. 벼락을 맞아 부러지거나, 나무꾼이 도끼로 베어 그루터기만 남아도 나무는 나무이다.


  아이들이 과자 먹던 손가락으로 책에 기름을 묻히더라도 책은 책이다. 빗물이 떨어져 책종이가 일어나도 책은 책이다. 끈으로 질끈 묶인 채 몇 해 동안 책손 손길을 타지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더라도 책은 책이다. 많이 팔리는 책도 책이고, 책손 한 사람이 알뜰히 사랑해도 책이다.


  나무가 빛나는 책시렁을 바라본다. 나무에서 태어난 책은 나무를 잘라 마련한 책시렁에 놓이면서 빛난다. 어쩌면, 사람들 숨결도 늘 나무가 아닐까. 나무가 있어 집을 짓고, 불을 피우며, 연장을 마련한다. 나무가 있어 그늘이 있고 푸른 바람이 불며 둘레에 온갖 풀이 자란다. 나무가 있어 새들이 깃들어 노래한다. 나무가 있기에 숲이 우거지면서 냇물이 흐른다. 나무가 있어 구름이 피어나고 무지개가 뜨며 별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4346.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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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불빛

 


  어둠이 드리운 골목에 불빛이 밝다. 시골마을에 켜는 등불에는 하루살이와 밤벌레가 찾아든다. 어둠이 드리운 골목에 밝게 켠 책방 불빛은 마음밥 먹고 싶은 사람들을 부른다. 마음밥을 먹으면서 마음밭에 씨앗 한 톨 뿌리는 사람들은 마음나무를 키워서 마음꽃을 피우고 마음빛을 밝힐 수 있을까.


  나무는 열 살쯤 자라면 작은 멧새 내려앉을 만한 가지를 키울 수 있을까. 나무는 열다섯 살쯤 자라면 작은 멧새한테 고운 열매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나무는 스무 살쯤 자라면 아이들한테 조그맣게 그늘 내어줄 만할까. 나무는 서른 살쯤 자라면 어른들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잔치 나누는 너른 그늘 마련해 주려나.


  마음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어두운 골목에 등불을 켠다. 책방 앞에도, 책방 안에도 그리 크지 않은 등불을 켠다. 주유소나 여관이나 술집처럼 번쩍거리는 등불을 켜지 않는 책방이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학교들처럼 애먼 아이들 붙들지 않는 책방이다. 책을 읽을 사람은 스스로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책을 아로새길 사람은 스스로 책장을 넘긴다. 책 한 줄에서 삶을 헤아릴 사람은 스스로 꿈을 키운다. 책밥 즐거이 먹은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이웃과 나눈다.


  해 떨어진 저녁, 조용한 골목에 등불 하나 켠 책방이 환하다. 하루일 마친 어른도, 하루놀이 끝내는 아이도, 맑은 이야기밥을 책방마실 하면서 얻는다. 4346.7.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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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2 09:27   좋아요 0 | URL
며칠째 비가 내리고
해 떨어진 저녁, 조용한 골목에 등불 하나 켠 책방에
가고 싶은 아침입니다. 혼자 가도 좋겠지만..고운 벗과 함께 가서
말없음표..속에서도, 등불을 켜듯 그렇게 책들을 고르고 서로에게
마음밥, 마음빛, 마음눈물, 마음길.. 선물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숲노래 2013-07-12 09:41   좋아요 0 | URL
올가을 9월 마지막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마실을 해 보셔요~ ^^

저녁나절 헌책방골목 불빛이
참 그윽하며 예쁘답니다.

appletreeje 2013-07-12 09:49   좋아요 0 | URL
예~꼭 그래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저녁나절 보수동 헌책방골목 가서 책들을
한꾸러미씩 골라 들고..막걸리도 한잔씩 마시고 와야겠습니다. ㅎㅎ
 

빗물과 책

 


  비가 퍼붓는 날이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건 책방으로 나들이 가는 사람이 있다. 보슬비가 듣는 날이건 구름에 살며시 그늘 드리우는 날이건 책방하고는 등을 지는 사람이 있다. 마음속에 책씨앗 심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책방 나들이를 한다. 마음밭에 책씨앗이 없는 사람은 늘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삶을 일군다.


  비가 오면 헌책방에서는 책을 바깥으로 내놓지 못한다. 비가 오는 날이건 비가 안 오는 날이건 새책방에서는 책을 바깥으로 내놓지 않는다. 새책방에서는 우산비닐을 문간에 두는데, 헌책방에서는 양동이를 하나 놓거나, 아예 양동이조차 없곤 하다. 우산은 문간에 기대어 놓거나 바닥에 눕히는 헌책방이다.


  새책방은 문을 굳게 닫은 채, 바깥이 춥든 덥든 아랑곳하지 않기 마련이다. 헌책방은 으레 문을 연 채, 바깥이 추우면 함께 춥고 바깥이 더우면 함께 덥기 마련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와 비내음이 빗물과 함께 헌책방으로 물씬 스며든다.


  비가 쏟아지는 날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지붕과 길바닥을 때리는 빗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면서 책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비오는 날에는 책종이가 살짝 흐늘거린다. 이리하여, 헌책방은 비가 그치면 문을 더 활짝 열어 책시렁마다 스며든 물기가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도록 한다.


  헌책방에서 책은 바람을 마시면서 자란다. 헌책방에서 책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듯 비닐을 뒤집어쓴다. 헌책방에서 책은 해바라기를 하고, 한갓지게 드러누워 쉬면서, 반가운 책손 한 사람 기다린다. 고운 빛 우산을 쓰고 헌책방으로 찾아올 한 사람을 기다린다.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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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책들은

 


  커다랗게 만들어도 책이고, 조그맣게 만들어도 책입니다. 커다랗게 만든대서 이야기가 커지지 않습니다. 조그맣게 만들기에 이야기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떤 꼴로 만들어도 책에 깃드는 이야기는 한결같습니다.


  책에 때가 타거나 먼지가 앉아도 이야기에는 때가 타지 않고 먼지가 앉지 않습니다. 책이 헐어도 이야기가 헐지 않습니다. 책이 다쳐도 이야기가 다치지 않아요. 아이들은 똑같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천 번 만 번 되읽습니다. 책이 아주 낡고 닳습니다. 그런데, 책이 낡고 닳을수록 이야기가 한결 빛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책빛이란, 이렇게 손길을 타는 빛이요, 눈길을 받는 빛일는지 몰라요.


  손바닥만 한 책들에는 손바닥만 한 이야기가 깃들지 않습니다. 크기는 손바닥만 하지만, 이야기는 너른 바다와 같습니다. 한손으로 쥘 만큼 가볍고 작은 책이지만, 이야기는 깊은 숲과 같아요.


  책을 읽습니다. 커다란 책이나 조그만 책 아닌, 내 마음 북돋우는 아름다운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습니다. 이름있는 책이나 이름없는 책 아닌, 내 사랑 보듬는 어여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습니다. 값있는 책이나 값없는 책 아닌, 내 꿈 밝히는 책을 읽습니다.

  조그마한 씨앗이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아기 손톱보다 훨씬 작은 씨앗 하나가 아주 커다란 나무로 자랍니다. 나무씨는 콩씨보다 작기 일쑤입니다. 나무씨가 아주 조그맣대서 조그마한 나무로 자라지 않아요. 마음속에 고운 빛 품기에 씩씩하게 자랍니다. 가슴속에 맑은 빛 어루만지기에 튼튼하게 자랍니다.


  이야기 한 타래 책밭에서 자랍니다. 이야기 한 꾸러미 책터에서 자랍니다. 이야기 한 가지 책누리에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작은 손길 뻗어 손바닥만 한 책들 사이에서 조그마한 이야기씨앗 하나 받아안습니다. 4346.7.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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