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손님 (도서관일기 2013.7.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해남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고흥은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광주에서도 멀고, 해남에서도 멀다. 춘천이나 음성이나 인천이나 대전에서도 멀다. 이렇게 어디에서나 먼 데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으니 책손을 받겠다는 뜻인지 안 받겠다는 뜻인지 아리송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고흥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해남도 멀고 서울도 부산도 광주도 멀다. 춘천이나 음성이나 인천이나 대전도 다 멀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수도권에는 이것저것 참 많다. 우리 도서관도 맨 처음에는 인천에 있었다. 한국에서 사람이 많이 살기로 서울이 가장 많고 경기도와 인천을 헤아리면 한국땅에서 반 남짓 이 언저리에서 살아간다 할 만하다. 그러니, 인천이라든지 서울에 ‘사진책 도서관’이 있을 때에 책손과 사진손을 맞아들이기에 훨씬 낫다고 여길 사람이 있으리라 본다.


  도시에서 처음 도서관을 열다가 시골로 깃들며 지내는 동안 곰곰이 생각한다. 도시라 해서 나쁠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러면, 시골은 어떨까? 시골에 도서관이 있는 일이란, 시골에 전문 도서관이 있는 일이란 어떨까?


  우리 도서관 둘레는 온통 논이고 밭이며 멧자락이다. 우리 도서관 있는 마을 언저리로 드나드는 자동차는 매우 적다. 어쩌다 군내버스나 짐차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참으로 조용하다. 책을 읽는 사람한테 거리낄 소리가 없다. 풀벌레와 멧새가 노래한다. 풀바람이 스미고 나무바람이 흐른다. 다른 도시에서 고흥군으로 접어들어 우리 도서관 깃든 동백마을까지 달리는 동안 나무와 풀과 하늘과 숲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이 나라에서 전문 도서관이 하나둘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면 어떠할까 하고 꿈을 꾼다. 고흥에 ‘사진책 도서관’이 있듯이, 장흥이나 보성이나 강진이나 해남이나 영암이나 함평에도 조그맣게 전문 도서관이 문을 열어, 사람들이 애써 먼길을 시골로 찾아가도록 하면 어떠할까 하고 꿈을 꾼다.


  책을 찾아 전문 도서관으로 마실을 하는 분들은 자가용보다는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오면 더 낫겠지. 도서관이나 마을회관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느긋하게 책을 즐길 수 있으면 더욱 기쁘겠지.


  요즈음은 도시에서도 도서관 둘레에는 으레 나무를 심거나 조그맣게나마 숲을 이루곤 한다. 도서관 둘레에 자동차 소리 깃들지 않게 애쓴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책을 빚은 나무’가 책꽂이 아닌 흙땅에 뿌리를 내려 푸른 숨결 내뿜을 때에 새삼스레 맑은 이야기 들려주는구나 하고 조금씩 깨닫는구나 싶다.


  시골에 도서관이 늘고 미술관이 늘며 사진관이 늘기를 바란다. 시골에 책방이 새로 열고 젊은이들 다시 찾아와 오순도순 아이 낳고 조촐히 살림 꾸리며 숲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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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전문도서관이 하나 둘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고 또 사람들이
그 전문도서관을 찾아 간다면 참 아름다울 것 같아요. 그때야 비로소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요?
시골에 미술관과 사진관이 늘고 젊은이들이 시골로 찾아와 오손도손 아이를 낳고 조촐히 살림을 꾸리며 숲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 밤, 꿈꾸어 봅니다~~*^^*

숲노래 2013-07-21 22:36   좋아요 0 | URL
시골이 아름답게 되면
도시도 아름답게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에고///
 


 반가운 손님 (도서관일기 2013.7.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포두면에서 산다는 분이 도서관으로 찾아오겠다 전화를 한다. 군내버스를 타고 동백마을에서 내린 뒤 연락을 한다고 한다. 마당에 옷가지와 이불과 베개를 잔뜩 널고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으로 간다. 장마가 살짝 쉬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는 땡볕이 후끈후끈 내리쬔다. 이불도 옷가지도 베개도 잘 마른다. 장마비 내리는 동안 집안이 눅눅해지며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에 스미던 물기가 바짝바짝 마르는구나 싶다. 며칠 뒤 또 비가 온다 하니, 햇살내음 듬뿍 받기를 바라면서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를 평상이며 마당에 잔뜩 깔아 놓고 도서관으로 간다.


  햇볕은 따갑고 뜨겁지만, 우리 도서관에 깃들며 창문을 열면 시원하다. 이곳이 폐교 되기 앞서도 이렇게 시원했을까. 폐교가 된 뒤 운동장이며 학교 건물 둘레며 온통 풀밭이 되어 뙤약볕을 한껏 받아들여 주면서 풀바람이 불기에 시원하지는 않을까.


  2011년 가을에 사진책도서관을 고흥으로 옮기면서 여태껏 ‘젊은이’가 우리 도서관에 오겠다고 전화하며 찾아온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교사나 어른을 따라 함께 온 젊은이와 푸름이는 있지만, 스스로 씩씩하게 찾아온 사람은 아직 없다. 오늘 손님은 여러모로 반가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참 마땅한 일인데,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이 읽을 책이지, 억지로 누군가 끌여들여 손에 책을 쥐도록 할 수 없다. 시골숲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숲에 깃들어야 시골숲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하고 느낀다. 시골바람이 시원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바람을 쐬어야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시바람하고 사뭇 다른 달콤한 시골바람 시원한 맛을 느낀다.


  남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을 살찌우지 못한다. 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스스로 찾고 살피면서 어떻게 내 마음을 건드리거나 움직이도록 이끄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궁금한 대목은 스스로 찾아서 밝힌다. 아쉬운 대목은 스스로 갈고닦아서 북돋운다. 기쁜 대목은 동무들과 도란도란 책이야기를 펼쳐 나눈다. 아름다운 대목은 마음에 잘 아로새겨 내 삶길에 밑바탕으로 삼는다.


  돌이켜보면, 어느 도서관도 ‘도서관 홍보’를 하지 않는다. “우리 도서관으로 오십쇼!” 하고 홍보하는 데는 없다. 도서관은 늘 그 자리에서 씩씩하게 책터를 가꾸면 된다. 사람들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고 생각을 열며 책을 손에 쥐어야 한다. 도서관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문을 열어야 할 뿐이고, 사람들이 찾고 싶은 책을 언제라도 내어줄 수 있도록 책시렁 알차게 갖추어야 할 뿐이다.


  반가운 손님을 앞에 두고 책꽂이 자리를 바꾼다. 지난해에 새로 들인 책꽂이에 곰팡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목 아닌 합판으로 짠 책꽂이는 참말 쓸 것이 못 된다. 아무리 새로 들인 책꽂이라 하더라도 합판으로 댄 책꽂이는 도서관에 두어서는 안 되는구나 싶다.


  나무로 빚은 책을 나무로 짠 책꽂이에 둘 때에 도서관이 된다. 나무로 지은 집에 온갖 나무 알뜰살뜰 가지를 뻗고 푸른 잎사귀 빛낼 때에 보금자리가 된다. 책이란 나무빛이라 하겠구나. 집이란 보금자리숲이라 하겠구나.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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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놀이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3.6.2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사진책도서관 이야기책 《삶말》 7호를 내놓았다. 여러 날 걸쳐 하나씩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적어 부친다.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른다. 책과 짐을 갖다 놓고, 책꽂이 벽이랑 나무 벽에 사진과 묵은 종이를 못을 박아 붙인다. 문에는 커다란 포스터도 붙인다.


  아이들이 저희끼리 잘 노는 모습을 본다. 낫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풀을 벤다. 풀을 베면서 개망초꽃은 꽃다발 이루듯 왼손으로 그러모은다. 한창 풀 잘 자라는 여름이니 또 풀이 잔뜩 올라오겠지. 샅샅이 베기보다는 아래쪽을 슥슥 베며 큰길 언저리까지 나아간다. 아이들이 풀에 치이지 않으며 걸어서 지나갈 만하게 벤다.


  그림책 펼치고 노는 아이들을 본다. 큰아이한테 “자, 벼리 선물.” 하고는 개망초꽃다발을 내민다. 작은 다발 아닌 큰 다발이니 조금 무겁지. 나는 다시 책을 갈무리하고 이것저것 치우며 붙이는데, 두 아이가 뛰어다니며 논다. 가만히 보니, 큰아이는 동생한테 줄기 꺾인 꽃대 하나만 주었네. 뭐니. 그렇게 큰 꽃다발 가졌으면, 좀 꽃대 튼튼한 녀석 하나 주어도 되잖아.


  아이들이 어머니 예전 사진을 보며 “여기 어머니 있다!” 하고 외친다. “여기 이모도 있네! 여기 삼촌이다!” 하고도 외친다. 너희가 태어나기 앞서인데, 그 사진 보고도 어머니요 이모이며 삼촌인 줄 알겠니?


  양철북 출판사에서 《이오덕 일기》 내놓으며 함께 만든 사진엽서를 한쪽에 붙인다. 지난날 이오덕 선생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면서 이 사진들을 찾아서 스캐너로 긁어 사진파일 만들던 일이 아련하다. 이무렵 내 자전거 꽁무니에 달고 다니던 낡은 천 하나 찾아내어 책꽂이 가로대 한쪽에 붙인다. 꼭 열 해쯤 된 낡은 천인데, “충주에서 왔구만” 하고 글을 적어서 가방이나 깃대에 달고 자전거를 탔다. 자동차 모는 이들이 자전거 잘 알아채어 옆으로 비껴 달리기를 바라며 깃발 하나 마련해서 달고 다녔다. “충주에서 왔구만”이란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선생님 글과 책을 갈무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커다란 꽃다발 들고 골마루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달리며 놀던 큰아이가 “아이 더워. 아이 무거워.” 하더니 “이제 내려놓아야겠네.” 하고 말한다. 풀밭에 내려놓으라 이야기한다. 자, 그러면 창문 닫고 우체국으로 가자.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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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말> 7호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나무 곁에서 숨 쉬는 글들로 매일 제 아침을
마음밥으로 찬찬히 숨쉬고 채웁니다..^^
커다란 개망초꽃다발이 싱그러이 아주 예쁘군요..ㅎ

숲노래 2013-07-03 18:49   좋아요 0 | URL
개망초 안 좋아하는 분도 많지만
예쁘게 보면
다 예쁜 풀과 꽃이 돼요.

모두 우리 마음에 따라 달라져요.

2013-07-10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0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두꺼운 책 (도서관일기 2013.6.1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나한테도 더는 없는 ‘두꺼운 책’을 얻었다. ‘두꺼운 책’을 얻은 값을 곧 부쳐야 할 텐데, 이달에는 못 부칠 듯하고, 다음달에는 붙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고마운 책 기쁘게 보내 주신 분한테 마땅히 책값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책값 치를 만한 글삯벌이 곧 들어오리라 믿는다.


  양철북 출판사에서 다음주에 《이오덕 일기》 예쁜 판으로 나온다고 연락해 준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참 오래 걸렸다. 내가 이오덕 선생님 책과 글을 갈무리하던 2006년부터 《이오덕 일기》를 내놓으려고 하다가 어영부영 한 해 두 해 흘렀고, 2011년부터 양철북 출판사에서 다시금 힘을 그러모아 애쓴 끝에 비로소 빛을 본다. 책이 나오기 앞서 만든 가제본은 도서관으로 옮겨놓는다. 다음주에 선보일 고운 옷 입은 《이오덕 일기》 다섯 권은 어떤 모습일까. 그 책들을 받으면, 한 권씩 느낌글을 모두 쓸 생각이다. 느낌글 다섯 꼭지를 다 쓰고 나면, 이 책들도 도서관으로 옮겨놓을 수 있겠지. 책시렁 한 칸 비워야겠다.


  내 ‘두꺼운 책’ 꽂을 책시렁도 비운다. 이 ‘두꺼운 책’은 두께만 두꺼운 책이었을는지, 이야기와 알맹이도 두꺼운 책이었을는지 궁금하다. 새책방에서는 진작에 다 팔리고 출판사에도 남은 책이 없다 했으니, 이럭저럭 이야기와 알맹이 깃든 책이었을까. 2쇄를 찍지 못한 채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졌으니, 이번에 얻은 이 책들 아니고는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선물하거나 빌려줄 수 없다. 이 ‘두꺼운 책’ 2000권은 어떤 2000 사람 손길을 거쳐 어느 자리로 갔을까. 저마다 어떤 마음밥 구실을 하려나.


  도서관 둘레 들딸기를 따서 아이들 먹이려 했더니, 이웃마을 누군가 조그마한 알맹이까지 모조리 훑었다. 뽕나무에 맺힌 오디까지 샅샅이 훑었다. 어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아이들 낮밥으로 들딸기랑 오디를 먹이려 했는데, 이만저만 아이들이 서운해 하지 않는다. 미안하구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새밥 지어 차릴게. 오늘은 도서관 일 하지 말고 집으로 가자.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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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6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책. 정말 좋습니다. ^^
어느 사람이 그렇게 욕심 사납게 그렇게 들딸기와 오디까지 싹 다 따갔을까요...
그렇게,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하시던 전우익 선생님의 책 제목이 떠오르는
아침이네요. 벼리와 보라가 서운해하는 마음이 표정에 다 나와 있군요.. 에궁..

숲노래 2013-06-26 09:32   좋아요 0 | URL
아마 장날에 내다 팔 생각이었든지,
술을 담그려고 했겠지요...

분꽃 2013-08-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책방에서 보낸 1년" 이 책을 읽고 제가 종규님을 알게 되었네요.
알라딘에서 이책을 보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두꺼은 책을 썼을까?' 놀랐고,
또 '이 책을 낸 출판사도 참말 대단하다' 하고 두 번 놀랐네요.
종규님을 알게 된 고마운 책입니다~
 


 곰팡이떡 된 대형사진 (도서관일기 2013.6.2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바야흐로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서재도서관 들어서는 길은 풀숲이 된다. 아직 그리 키 높이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키로 살피면 제법 우거진다. 이 풀들 조금은 베어서 길을 터야겠지만, 한동안 그냥 둘까 싶기도 하다. 나는 풀이 우거져도 벨 마음이 없다. 풀이 우거지도록 두고 싶으며, 사람이 지나갈 자리만 조금 베거나 뽑으면 된다고 느낀다. 아니, 사람이 지나갈 자리조차 풀을 안 베고 슥슥 밟고 지나가도 된다. 어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만 한 풀숲은 스스로 씩씩하게 헤치면서 다니도록 해 주고 싶다. 그야말로 아무것 아닌 풀숲인걸. 풀잎을 느끼고 풀내음을 맡으면서 자랄 때에 ‘풀아이’가 되지 않겠는가.


  더운 여름에 비가 잦으니 도서관에 후덥지근한 기운이 감돈다. 얼른 창문부터 연다. 엊그제 제법 비가 쏟아졌지만 이번 비는 그닥 새지 않았다. 그런데 큰 포스터 건사하는 큰 종이가방 아래쪽에 곰팡이가 피었다. 아니, 언제 여기에 이런 곰팡이가 피었지? 깜짝 놀라 안에 든 포스터를 꺼낸다. 2004년 무렵에 30인치 크기로 목돈 들여 만든 사진 스무 장 남짓 떡처럼 달라붙어 안 떨어진다. 하이고, 이 사진들 값이 얼마인데. 수십만 원이 한꺼번에 날아가네. 포스터는 어떤가 하고 살피니, 포스터 있는 자리까지 곰팡이와 물기가 스미지 못했다. 비싼 사진들이 떡이 되면서 포스터는 지킨 듯하다.


  떡이 된 사진을 떼려다가 그만둔다. 필름으로 뽑은 마지막 대형사진이라 다시는 이 사진을 만들 수 없다. 이 사진을 다시 만들자면 이제는 수백만 원이 든다. 그나마 사진은 어찌저찌 다시 만들 수 있겠지. 외려 포스터는 다시 얻을 수 없잖은가. 행사 포스터, 광고 포스터, 2002년 월드컵을 하면서 신문사에서 길에 뿌린 축구선수 포스터, 재개발 철거하는 동네에 나붙은 포스터, 사진전시회 포스터, …… 그야말로 온갖 포스터를 열 해 남짓 그러모았는데, 이 포스터를 곰팡이와 물기에서 건졌으니 고맙다 여겨야지 싶다.


  건지기는 했으나 포스터에도 곰팡이 기운 조금씩 올라오려 한다. 마른 물수건으로 곰팡이를 턴다. 2004년부터 부산 보수동에서 헌책방골목책잔치 하며 붙인 포스터를 본다. 이 포스터 다치면 안 되지. 2004년에 부산 보수동에서 사진잔치 벌이며 쓴 포스터도 보고, 황새울 사진전시회 포스터도 본다. 2005년치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시회 포스터를 본다. ‘조아세’에서 2004년치 달력으로 만들었던 ‘친일신문 조선일보’ 알리는 자료를 본다. 어느새 열 살 묵은 이런 달력도 포스터와 함께 건사했었네.


  그나저나 커다란 포스터는 어떻게 두어야 좋을까. 넓은 책상에 포스터를 올려놓고 누구나 손으로 만져서 살피도록 하면 될까. 나이 먹은 포스터에 테이프를 발라 벽에 붙일 수는 없고, 하나하나 비닐을 씌우려 한대도 커다란 비닐 얻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고. 앞으로 열 해쯤 더 묵혀 ‘포스터 나이 스무 살’쯤 될 때에 사람들 앞에 선보일까. 아무튼 이 포스터 잘 건사하는 길도 생각해야겠다.


  오늘도 사진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인천에서 동시 쓰는 할아버지가 손글씨로 부쳐 준 누런봉투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손글씨 봉투를 붙이니 보기 좋네, 하고 혼자서 생각한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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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6-26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과 불, 그리고 책벌레는 책보존에 치명적인 것 같네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본 영화에서는 고서 희귀본을 모아놓는 방은 습도와 온도거 조절되는 밀실이더군요.ㅎㅎ 고생하시네요.

숲노래 2013-06-26 09:3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만큼 넉넉한 데에
이럭저럭 책을 두었으니
앞으로 잘 돌보면서 건사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