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받아들인 도서관 취재 (도서관일기 2013.10.1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2007년 4월부터 문을 연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이다. 2013년은 어느새 일곱 해째인데, 이제껏 대견스레 잘 살아왔구나 싶다. 그동안 여러 신문·방송에서 도서관으로 취재를 하러 오겠다 했고, 인천에서 몇 차례 신문취재만 받아들인 뒤, 더는 ‘기자 손님’을 받지 않았다. 책을 살피며 읽는 넋이 아닌 구경하는 눈길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마다 어떤 넋 서렸는가 헤아릴 적에 비로소 책읽기가 된다고 느낀다. 줄거리 훑는대서 책읽기는 아니다. 줄거리에 깃든 삶과 꿈과 넋을 마음으로 받아안으면서 내 하루를 새로 보듬는 기운 북돋우며, 시나브로 책읽기 되리라. 이번 방송취재 받아들이며 ‘굳이 시골 깊은 곳’, 게다가 ‘전라남도 고흥’에 사진책도서관을 옮긴 까닭을 이야기했다. 책은 책이면서 나무이고, 사람들 삶이다. 이런 책이 있는 시골마을 도서관까지 오려면 품 많이 들고 오래 걸린다. 그러나, 도시에서 시골로 오는 동안 푸른 숲과 들을 본다. 시골자락 멧봉우리와 파랗게 빛나는 하늘이며 바다이며 냇물을 만난다. 자동차 창문을 열고 싱그러운 바람 쐬며 ‘사람이 살아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차분히 되새길 수 있다. 우리 도서관으로 와서 온갖 책 골고루 만지면서 읽어도 반갑다. 그리고, 고흥 시골로 오가면서 숲바람·들바람·바닷바람 쐬며 마음과 몸에 푸른 숨결 담을 수 있어도 반갑다. 종이책만 책이 아니고, 전자책만 책이 아니다. 숲책이 있고, 들책이 있다. 풀책, 나무책, 꽃책과 하늘책, 냇물책, 흙책과 빗물책 또한 책이다. 밥책과 빨래책이 있으며, 걸레책과 설거지책이 있다. 우리 삶은 모두 책이다. 삶책이다. 이를 오롯이 느끼며 책읽기가 이루어진다. 인문지식·사회지식·정치지식·과학지식으로는 삶을 일구지 못하고, 삶을 돌보지 못한다. 아이들은 육아지식 아닌 사랑으로 보살필 뿐이다. 삶은 사랑으로 가꾸며, 책은 사랑으로 읽는다. 나무그늘에 서 보라. 나무내음 맡으며 나무노래를 들어라. 나무 한 그루에 감도는 햇살·빗물·바람·흙을 읽으면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읽어 줄 수 있기를 빈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oren 2013-10-1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과에서 벗어나 저 멀리 언덕이나 늪을 행해 들판을 가로지르곤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결코 그치지 않고 책들을 공부해서 알게 되었을 것보다 그 책들에 관해 더 많은 것을 갑작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보거나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보고 들을 수밖에 없는 교실에 내 자신이 와 있음을 알았다"고 소로가 말한 바로 그 '책들과 교실들'이 '자연'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해주는 일이 얼마나 보람되고 즐거운 일일지요.

숲노래 2013-10-12 14:58   좋아요 0 | URL
하버드대학교 다니며 너무 괴로운 나머지
도무지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고요.

이런 마음을 오늘날 인문학자는 얼마나 헤아릴까 궁금해요.
아마... 다들 거의 모르는 채 도시에, 서울에 몰려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에 사로잡힌 채 논쟁만 쏟아낼 테지요...

appletreeje 2013-10-13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둘의 책장에 꽂힌 책들이 무척 눈이 갑니다~
종이학을 탄 꼬마 책과 온천(?)물 속에 들어가있는 꼬마 그림책도
무척 귀여워요! 어떤 재미난 이야기일지 궁금합니다~

숲노래 2013-10-13 09:01   좋아요 0 | URL
온천물 꼬마 그림책은
한국말로 번역되었어요.
아... 이름이 뭐였더라.... @.@
에구구.... ㅠ.ㅜ
 


 한글날 서재도서관 (도서관일기 2013.10.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오늘은 한글날이라고 한다. 오늘부터 한글날은 달력에서 붉은 빛 입는 기림날이 된다.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는 다시 ‘빨간날’이 된 한글날을 놓고 여러 가지 기사를 내보내는 듯하다. 그런데 하나같이 ‘맞춤법 잘못 쓰는 사람’이라든지 ‘인터넷에 퍼지는 외계말’이라든지 ‘엉터리로 쓰는 공문서’를 들먹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이 나라 학교교육에서 한국말 올바르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게 가르친 적이 있던가? 오늘날은 영어가 미친바람이 불며 유치원에서조차 영어를 가르치는데, 지난날에는 한문이 미친바람이 불어 대여섯 살 아이들한테까지 한자를 쓰도록 등을 떠밀지 않았던가? 한글에 담을 말을 제대로 살핀 적이 없으며, 한글에 담는 한국말이 무엇인가를 옳게 가르치지 않는다. 게다가, 신문이나 방송은 스스로 올바르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말로 엮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신문글과 방송말부터 엉터리인데 누구를 나무라거나 꾸짖겠는가.


  어제 하루 비가 옴팡 왔기에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나온다. 어제 낮에 도서관에 벽을 타고 빗물 스미는 모습을 보고는 밀걸레로 받치고 나왔는데, 그럭저럭 잘 있겠지? 밀걸레를 받쳤기에 책꽂이까지 빗물이 스미지 않았다. 앞으로는 비 오는 날마다 이렇게 대야겠다.


  한쪽에 고인 빗물로 밀걸레를 적셔 골마루를 밀고 또 민다. 비가 오는 날에는 물청소를 하는 날이 된다.


  한참 물청소를 하고 허리를 펴며 도서관 끝교실 ‘내 발자취 묻은 살림살이’ 갈무리를 한다. 어느 짐상자를 풀다가 2002년에 어린이 국어사전 만들며 헌책방 다니다가 모은 헌책방 이름쪽 한 꾸러미가 나온다. 이제 문을 닫은 헌책방 이름이 새롭고, 오늘도 씩씩하게 헌책방 책살림 일구는 이름이 남다르다. 모두 애틋하구나.


  2004년에 부산 보수동에서 ‘헌책방 사진 잔치’를 열면서 만든 알림종이가 석 장 나온다. 옳거니, 잘 되었다. 올 2013년 10월 보수동 헌책방골목 책잔치 10돌에 이 종이를 가져가야겠다. 두 장은 책꽂이 벽에 붙인다.


  인천 용화반점 나무젓가락이 나온다. 2007년부터 인천에서 다시 살 적에 틈틈이 찾아간 곳인데, 2010년에 인천을 떠나면서 거의 찾아가지 못했다. 2007년에 받은 나무젓가락, 그 다음해에 받은 나무젓가락, 그리고 2009년과 2010년에 받은 나무젓가락일 테지. 이 나무젓가락 감싼 종이와 무늬도 나중에 ‘인천을 말하는 역사’가 될 수 있을까.


  니스를 다 바르고 잘 말린 책꽂이를 사진책 있는 칸으로 하나 옮긴다. 사진책 있는 칸에서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잡지 있는 책꽂이 책부터 들어낸다. 이 책들을 알뜰히 아끼고 싶으니, 이 칸에서는 이 책들부터 새로 니스 바른 책꽂이로 옮겨 꽂으려 한다. 책은 이듬날 다시 와서 꽂기로 하고, 오늘은 책꽂이 서던 자리 바닥을 닦는다.


  다른 짐상자를 끌른다. 이번에는 서울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쓰던 책싸개 하나 나온다. 오호라. 이런 것을 내가 예전에 장만한 적이 있었네.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을 처음 열며 손으로 써서 만든 소식지 꾸러미 나온다. 요즈음 살림돈이 아주 바닥나는 바람에 도서관 소식지와 1인잡지를 여러 달째 못 찍는다. 그래, 1인잡지는 힘들면 어쩔 수 없이 좀 미루더라도, 도서관 소식지는 예전처럼 이렇게 손글씨로 만들 수 있겠네. 바로 오늘부터 어떤 이야기로 손글씨 소식지를 쓰면 좋을는지 생각하자.


  도서관 골마루 바닥을 말끔히 쓸고 닦았다. 작은아이가 졸린지 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앉기도 한다. 그래, 너희들이 이렇게 뒹굴며 놀 수 있도록 나무바닥 있는 작은학교 자리를 찾았지. 그리고 이 나무바닥을 깨끗이 닦아 너희들이 뒹굴며 놀다가 책을 보며 삶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랐지.


  16대 대통령 뽑힌 노무현 님이 보내 준 편지가 나온다. 그때 이녁한테 표를 준 사람한테 모두 보낸 편지였을까.


  도서관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바깥 전깃줄 따라 참새가 잔뜩 앉는다. 얘들아, 이곳 도서관 풀밭은 너희들한테 즐거운 보금자리 되겠지. 우리 식구는 이곳에 책터를 닦고, 너희들은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며 서로 사이좋게 놀고 어울리자.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10-10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루 바닥이 반짝반짝 하네요. ^^
저도 바닥에 편히 앉아 책 읽고 싶군요~
손글씨 소식지도, 또 색다른 기쁨을 줄 것 같구요~*^^*

숲노래 2013-10-10 19:46   좋아요 0 | URL
마루 반짝반짝 하도록
여러 날 신나게 걸레질 하면서
오늘도 등허리와 어깨가 결리네요 ^^;;;;; 이궁~
 


 태풍 오는 날 (도서관일기 2013.10.8.)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태풍 오는 날,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으로 쓰는 건물은 ‘빌려서 쓰는 건물’이지만 ‘우리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래저래 손질을 하지 못하고, 비가 새는 곳을 고치지도 못한다. 언제쯤 이 폐교 건물을 우리 것으로 사들여서 건물 지붕과 비 새는 데를 모두 고칠 수 있으려나.


  비옷을 입고 도서관으로 간다. 아침에 한 번 낮에 한 번 간다. 낮 세 시까지는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비가 오는 김에 빗물을 받아서 골마루에 쌓인 먼지를 닦는다. 교실 넉 칸과 골마루를 혼자서 물걸레질을 하자니 등허리와 팔다리가 저리다. 꽤 넓은 자리를 혼자서 걸레질을 했구나.


  이럭저럭 살피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낮 네 시 무렵, 빗줄기는 굵어지고, 맨 오른쪽 교실 벽을 타고 빗물이 스민다. 이제부터 빗물이 스미는구나. 밤새 얼마나 스미려나. 큰 밀걸레와 작은 밀걸레를 빗물이 스며 고이는 바닥에 댄다. 다음에는 헌옷을 가져와서 빗물이 책꽂이까지 흐르지 않도록 막아야겠다. 하루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와서 바닥에 고인 빗물을 치워야겠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냄새·나무냄새·풀냄새 (도서관일기 2013.10.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곰팡이가 핀 책꽂이에 니스를 바르고 보름이 더 지난다. 이 책꽂이가 어떻게 되나 한참 지켜보았는데 다시 곰팡이가 오르지는 않는구나 싶다. 잘 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니스를 발라서 말리고, 곰팡이가 핀 책꽂이는 책과 자료를 모두 들어내어 곰팡이를 닦고는 며칠 말린 뒤 다시 니스를 발라서 또 며칠을 말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손질하고 니스를 바르고 닦고 말리고 하면서 달포쯤 지나면, 도서관 책꽂이 갈무리는 올해에 이럭저럭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듯하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책꽂이를 닦고 니스를 바르면, 책꽂이 하나 반쯤 겨우 닦고 니스를 바른다. 책꽂이 칸마다 꼼꼼히 발라야 하기에 일이 더디다. 니스 냄새에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니 더 많이 닦거나 바르지 못한다. 아이들도 두 시간쯤 놀다 보면 배가 고프다고 아버지를 부른다.


  나도 요 몇 해 사이에 비로소 깨달았는데, 아마 여느 사람들도 잘 모르리라. 책방 일 오래 한 분들 아니고는 잘 모르리라. 나무로 제대로 짠 책꽂이에는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합판으로 짠 책꽂이에는 곰팡이가 쉬 오른다. 나무로 탄탄히 짠 책꽂이는 휘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 지날수록 책꽂이 냄새가 고즈넉하게 감돈다. 합판으로 짠 책꽂이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조금도 안 난다. 오히려, 합성수지 냄새를 빼내야 하니 골이 아프다.


  정갈하게 잘 빚은 책에서는 고운 책내음이 흐른다. 책내음이란 종이와 잉크가 섞인 냄새이다. 종이란 숲에서 자라던 나무이다. 곧, 책내음이란 나무내음이면서 숲내음이요, 햇볕을 받고 바람을 쐬며 빗물을 마시던 숨결이 사람들한테 새로운 빛으로 다가와 들려주는 이야기라 할 만하다.


  책내음이 오래오래 알뜰살뜰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니스를 발랐다. 니스가 책한테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느끼지만, 앞으로 돈을 넉넉히 벌어 도서관 건물을 사들이고 좋은 나무로 책꽂이를 모두 다시 짜는 날까지 아쉬운 대로 ‘합판 책꽂이’들이 책을 잘 보듬어 주기를 빌고 또 빈다. 작은아이가 도서관 드나드는 풀밭길을 처음에는 싫어하더니 이제는 잘 걷는다. 재미를 붙인 듯하다. 왜 여기 풀을 안 베느냐 묻는 분이 있지만, 아이들이 풀밭길 밟고 다니는 재미와 즐거움 누리도록 하고 싶어서 조금만 베고 더 안 벤다. 너무 웃자라면 조금 벨 뿐, 아이들 무릎만큼 자라는 풀은 그대로 두어도 한결 낫다. 시골에서도 농약냄새 없는 풀을 밟을 만한 땅이 너무 없어, 우리 도서관에서만큼은 아이들도 손님들도 이 풀밭길 밟으면서 도서관 드나들기를 바라기도 한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후애(厚愛) 2013-10-0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너무 귀여워요 > <

책냄새, 풀냄새, 나무냄새 다 좋아합니다.^^

숲노래 2013-10-06 17:14   좋아요 0 | URL
책도 풀도 나무도 모두
아름다운 숲내음이지 싶어요~
 


 방송취재 (도서관일기 2013.10.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으로 방송취재를 나온다. 곰팡이 핀 책꽂이를 바꾸고 니스를 바르느라 부산한 만큼, 이래저래 어지럽지만, 얼추 치워 놓는다. 작은아이가 똥을 스스로 다 가릴 줄 안 뒤로 도서관으로 함께 나와서 일할 적에 한결 수월하다. 앞으로 작은아이가 더 크면, 두 아이가 도서관에서 한창 뛰놀다가도 조용히 걸상에 앉아 그림책을 읽겠지. 그러면 이동안 아버지는 더욱 느긋하게 오래도록 도서관 책꽂이를 손질하고 청소도 하겠지.


  둘이 잡기놀이를 하더니, 어느새 조용하다. 큰아이는 만화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읽는다. 작은아이는 바퀴인형을 들고 책꽂이 사이를 누비는 기차놀이를 한다. 방송국 피디한테서 전화가 온다. 마을회관 앞에 왔단다. 마을회관 앞으로 가서 도서관으로 함께 돌아온다. 한국방송에서 〈스카우트〉라는 이름으로 푸름이들 나오는 풀그림을 찍는다고 한다. 올 한글날에 맞추어 한글과컴퓨터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는 푸름이 넷이 저마다 다른 솜씨를 뽐내며 겨룬다고 한다. 우리 도서관으로 찾아온 푸름이는 열아홉 살 아이. ‘순 우리 말 가로세로 낱말풀이 게임’을 만든다고 한다.


  재미있게 만들면 되지. ‘순 우리 말’이라고 하지만, 너희가 학교를 다니며 ‘순 우리 말’을 배운 적 있을까? 없을 테지. ‘순 우리 말’ 아닌 ‘우리 말’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걸. 교과서를 들여다보자. 어디 우리 말다운 우리 말이 있디? 낱말은 낱말대로 엉터리이고, 낱말을 엮는 글월도 글월대로 엉터리이다. 낱말을 놓고 일본 한자말이니 영어이니 하고 나무라면서 다듬느라 사람들이 퍽 애쓰지만, 정작 일본 말투나 영어 번역투에서 홀가분한 사람이 아주 드물다. 국어학자도 한글학자도 전문가도 모두 똑같다. 얼마 앞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꾸짖는 책이 새로 나왔는데, 이 책을 쓰신 분도 ‘일본 말투’와 ‘영어 번역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글월을 엮을 적에 올바르며 알맞고 아름답게 한국말다운 말투가 되지 못하면서, 낱말에만 눈길을 두어서 무엇이 될까.


  말은 ‘낱말’이 아니라 ‘말’인 줄 알아야 하는데, 방송 풀그림에 나오는 이 푸름이는 이 대목을 얼마나 짚을 수 있을까.


  가로세로 낱말풀이를 만든다 할 적에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로만 만들면 쉬 벽에 부딪힌다. ‘국어사전에 없는 말’을 새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몇 가지 보기를 알려주었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들에서 새잡이를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집에서 파리를 잡고 모기를 잡아요. 그러니까 ‘파리잡이’에 ‘모기잡이’예요. 국어사전에는 이런 낱말 안 나오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늘 이런 ‘잡이’를 한단 말이지요. ‘내 밥을 몰래 핥아 먹으려 하는 벌레를 잡는 일’이라고 문제를 내면 재미있어요. 저 하늘에 뜬 구름 보았지요? 저 구름 어때요? 무슨 빛 같아요? ‘구름빛’ 아니고는 나타낼 길이 없겠지요? 구름은 하얀 구름도 있고 잿빛 구름도 있는데, 사람들은 흔히 하얀 구름만 생각해요. 그렇겠지요? 그러면, ‘파랗게 빛나는 하늘에 하얗게 물드는 빛’이라는 문제를 낼 수 있어요. 정답은? ‘구름빛’이에요. 생각하는 힘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지만, 생각하는 힘 키우지 않는 사람은 도무지 못 맞추겠지요.”


  요새는 도시 아이가 되든 시골 아이가 되든 ‘풀’이 왜 풀인 줄 알지 못하고, ‘푸르다’라는 낱말이 왜 ‘푸르다’인 줄 알지 못한다. ‘노랗다·누렇다·파랗다·빨갛다’가 어떻게 태어난 낱말인 줄 생각하거나 깨닫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말뿌리를 알려주어도 못 믿는 사람도 많다.


  방송국 피디가 오기 앞서 방송작가가 전화를 먼저 걸었는데,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 묻더라.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뭐 그런 걸 묻더라. 피식 웃었다. 요새는 읍내나 면소재지에도 아파트나 빌라가 서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시골인데. 도시가 아닌데. “저희 집은 그냥 시골집입니다.” 하고 말하면서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참말 시골을 모를까? 시골은 생각한 적 없을까?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시골집이 아직도 시골에 있는 줄 모를까? 바닥과 벽을 시멘트로 새로 발랐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시골마을 시골집은 뼈대와 속살은 온통 나무와 흙과 돌이다. 시골을 하나도 모르는 도시사람이 방송을 찍고 신문을 엮을 텐데, 이러다 보니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온통 도시 이야기만 흐른다. 가끔 시골로 무언가 취재하러 나오더라도 시골빛을 제대로 모르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으니 뚱딴지 같은 말을 하기 일쑤이다. 하기는. ‘쌀’과 ‘벼’를 가리는 사람은 흙일꾼 아니고는 없다 할 만하고, ‘겨’가 무엇이요 ‘짚’이 무엇인 줄 가리는 사람도 흙일꾼 아니고는 이제 없지 않겠나. 학교에서도 안 가르치고 교과서에도 안 나올 테며 수학능력시험에도 이런 이야기는 안 물을 테니까.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