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맛 (도서관일기 2013.5.1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책꽂이 자리를 조금 바꾼다. 책 가득 꽂힌 책꽂이를 옮기자면 품과 겨를이 많이 들지만, 힘들여 자리를 바꾸니, 빛이 한결 잘 들어온다. 처음에는 책을 바지런히 꽂는 데에만 마음을 썼다면, 이제는 빛을 골고루 받으면서 책꽂이 찬찬히 살피기 좋도록 자리를 바꾸는 데에 마음을 쓴다.


  한창 책꽂이 자리를 바꾸는데, 아이들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논다. 재미있니? 재미있으니 이렇게 놀겠지? 아이들 눈높이에서 헤아린다면, 도서관은 퍽 재미난 놀이터로구나 싶다. 어른한테는 그저 책이 꽂힌 데라 하지만, 아이한테는 ‘또 다른 숲’과 같다. 여기에 살짝 몸을 숨기고, 이리저리 골마루 쏘다니면서 ‘숨은 길(미로)’을 즐긴다. 숨바꼭질 하기에 꽤 좋다. 술래잡기 하기에도 퍽 좋다. 공공도서관은 어디에서나 아이들 떠들지 못하도록 하지만, 조용히 책을 즐기는 자리와 함께, 아이들이 좀 개구지게 떠들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더라도 괜찮은 책터도 나란히 있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또는, 도서관 둘레에 너른 숲과 마당과 뜰이 있어, 아이들이 숲과 마당과 뜰에서 땀 옴팡 쏟으며 뛰놀도록 한 다음, 한숨 돌리고 쉬면서 조용히 책을 보도록 하면 좋으리라.


  도서관 둘레에 너른 숲과 마당과 뜰이 있으면,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좋다. 어른들은 푸른 숨결 마시면서 몸을 다스린다. 몸을 차분히 다스리며 맑은 넋 된 다음 책을 손에 쥐면 아주 깊고 넓으며 빠르게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책을 숲속 걸상에 앉아 읽으면 더 좋겠지. 책을 마당이나 뜰 잔디밭에 드러누워 읽으면 더욱 좋겠지.


  꼭 어느 건물 어느 책상맡에서만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다. 숲속에서, 샘가에서, 냇가에서, 나무그늘에서, 잔디밭이나 풀밭에서, 바람과 햇살을 고루 느끼면서 읽어도 아름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책은 이렇게 숲을 느끼고 햇살을 마시는 데에서 읽어야 참다이 헤아리며 받아들일 수 있지 않으랴 싶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 읽는 책하고 숲에서 읽는 책은 느낌이 다르다. 시끌벅적한 찻길에서 동무 기다리며 읽는 책하고 들새와 멧새 노래하는 숲에서 읽는 책은 맛이 다르다. 자동차 배기가스 맡으며 도시에서 읽는 책하고 개구리와 풀벌레 노래하는 숲에서 숲바람 들이켜며 읽는 책은 멋이 다르다.


  사람들이 책 읽는 맛과 멋과 숨을 새삼스레 느낀다면 좋으리라. 사람들이 책을 읽어 삶을 가꾸는 맛과 멋과 숨을 새롭게 깨닫는다면 좋으리라.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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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들보라의 뽀로로 고무신도, 도서관에 예쁘게 있네요.~
정말 아이들에게 즐거운 도서관이지요~? 장기놀이도 하고.~
어제 돌아오는 빼곡한 지하철 안에서도 짬짬이 카톡을 하는 일행을 보고
참 끊임없이 실시간으로 결국은, 남의 삶만 들여다보는 일에 푹 빠졌구나..하는 아쉬움이.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 보고 살피는 시간을 점점 잃어버리고 사는구나, 싶었어요..
책을 숲속 책상 걸상에 앉아 읽으면 진짜 근사하고 더 신날 것 같아요. *^^*

숲노래 2013-05-26 11:26   좋아요 0 | URL
그런데,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는걸요.
지하철에서 무얼 하겠어요.
시끄러운 '쇠바퀴 찢어지는 소리'를 견디며
책을 읽으라 하는 말은...
어쩌면 '고문'일는지 몰라요.

나중에 이런 이야기도 한 번 써 봐야겠네요.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니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으려 하지만,
여느 사람들은 귀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니,
힘든 머리를 잊으려고 그렇게 스마트폰에 매달리지 않느냐 싶어요...

appletreeje 2013-05-26 11:4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군요..
저는 바쁜 시간대나 주말엔, 지하철을 타는 일이 적어서 그 생각을 못 했어요.
다만 어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그 새를 못 참고 자꾸 전화기를 들여다 보고 가는 일행의 모습에서
작은 안타까움이 생겼던 듯 합니다. ^^

숲노래 2013-05-26 14:23   좋아요 0 | URL
그런 버릇도 여느 때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살짝살짝 느긋하게 쉬면서
둘레를 바라보는 말미를
거의 잊어버린 모습이라고 느껴요.

전화기 안 터지는 숲속이나 두멧시골로 오면
아예 안 터지니까 잊을 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느긋해지기란 참 어렵지 싶어요..
 

전남 고흥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에서 내놓는 1인잡지 "함께살기" 7권이

오늘 막 닿았습니다. 《함께살기 7 - 우리 말 살려쓰기·하나》입니다.

 

투박하고 또 투박하게,

수수하고 또 수수하게,

이 두 가지 생각으로

엮으려 했는데,

이 1인잡지 받아보시는 도서관 지킴이들 보시기에

잘 읽을 만하리라 믿어 봅니다.

잘 읽어 주셔요~

 

이제 오늘부터 바지런히 봉투에 담아

우체국으로 자전거 몰고 아이들과 찾아가서

땀 뻘뻘 흘리면서 부쳐야겠습니다.

 

오늘과 이듬날 햇볕은

아주아주 뜨거울 듯하군요.

살갗 익는 소리 지글지글 납니다 @.@

 

 

 

 

 

'도서관 지킴이' 되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라도 쪽글 남겨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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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5-2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

숲노래 2013-05-24 03:4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__)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지킴이만 받아볼 수 있는 1인잡지 《함께살기》 7호 곧 나옵니다. 오늘 인쇄소에 파일을 넘겼으니,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책을 받습니다. 이번에 내놓는 《함께살기》 7호는 《우리 말 살려쓰기-하나》입니다. 지난 2011~2012년 사이 꾸준히 쓴 '말사랑 글꽃 삶빛'이라는 우리 말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이에요.

 

도서관 지킴이한테만 드리려고 꼭 80부만 찍습니다. 80부 한정판인 셈이니, 이 책 받아보는 도서관 지킴이들 모두 즐겁고 남다른 보람 누리시기를 빌어요. 좋은 출판사에서 이 책을 예쁘게 여겨 새롭게 펴내 줄 수 있으면, 그때에는 도서관 지킴이 아닌 분들도 새책방에서 구경하실 수 있겠지요. 1인잡지 《함께살기》를 받고 싶은 분들은 언제라도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움이가 되어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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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톱질 (도서관일기 2013.5.1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몸이 후끈 달아오른 큰아이를 품에 안고 한밤 새운 탓인지 내 몸도 후끈 달아오르며 기운이 쏙 빠진다. 그래도 도서관 일을 하자 생각하며, 집안에 잔뜩 있는 책을 상자에 담아 도서관으로 간다. 아이들은 집에서 놀고, 오늘은 아버지 혼자 도서관으로 간다. 집에서 가져온 책은 나중에 꽂기로 하고, 새로 들인 나무책꽂이 자리를 잡는다. 긴 나무막대기를 벽과 책꽂이 옆에 대어 단단히 여민다. 나무책꽂이 사이를 지르는 칸나무 없어, 긴 나무판을 알맞게 잘라서 댄다. 꽤 튼튼한 나무책꽂이인 만큼 그냥 써도 나쁠 일 없으리라 느끼지만, 칸나무를 하나씩 지르면 책꽂이는 훨씬 튼튼하다.


  어지러운 머리를 가누며 톱질을 한다. 한 칸 두 칸 사잇나무를 대고 책을 꽂는다. 책을 꽂기 앞서 바닥에 신문종이 한 장 깔고, 공공기관 철지난 간행물을 책꽂이 뒤쪽에 댄다. 이렇게 하고서 책을 꽂는다. 책이 조금 더 숨을 잘 쉬고, 책이 조금 더 오래도록 잘 지내기를 바란다.


  이윽고, 곰팡이 잘 피는 압축합판 책꽂이 하나를 뺀다. 곰팡이 잘 피는 압축합판은 창가에 붙여서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창가에 붙여놓아 늘 해바라기하도록 하면서, 이 자리에는 기념물이라든지 재미난 볼거리를 둘 수 있고, 사진을 붙일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몸이 좀 아프니 책꽂이 하나 들어서 나르면서도 꽤 벅차다. 나는 혼자 모든 일 맡는 도서관지기이니, 톱질도 하고, 책꽂이도 나르고, 청소도 하고, 책도 장만하고, 책을 읽어 소개글 쓰고, 소식지 만들고, …… 또 도서관 도움이 될 분들 찾으려고 알림글 쓰고, 이것저것 꾸린다.


  그래도 좋으니까 이 길을 걷겠지. 참말 이 삶 즐거우니까 이렇게 일하겠지. 우리 도서관이 꾸준히 얼마나 예쁘게 달라지고 거듭나는지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리라 느끼지만, 나는 나 혼자 우리 도서관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호젓하고 한갓지며 느긋하게 책을 아끼며 사랑하고픈 분이라면 앞으로 언제라도 도서관마실 기쁘게 하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책은 스스로 느긋하게 말미를 내어 읽지, 바쁜 일 사이사이 읽지 못한다. 책은 스스로 호젓한 넋이 될 때에 짬을 내어 읽지, 돈벌이에 지치거나 삶에 힘겨운 이들은 책을 읽지 못한다. 찔레꽃 잎사귀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간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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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책 (도서관일기 2013.5.1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2007년 4월에 인천에 처음으로 ‘사진책도서관’을 열면서 가장 깊이 살핀 책 갈래는 사진책보다 환경책이었다. 사진책을 알뜰히 갖추는 도서관으로 꾸리려는 마음이면서도, 사진과 책과 사진책 헤아리는 사람들 마음밭에 ‘환경책 돌아보고 아끼는 숨결’ 깃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 도서관에 들어오는 책손이 맨 먼저 들여다보는 책꽂이에는 환경책을 꽂았고, 사진책을 보여주기 앞서 환경책을 보도록 이끌었다.


  전남 고흥에서 씩씩하게 잇는 도서관에서는 예전처럼 환경책을 맨 먼저 보여주지 못한다. 인천에서는 마흔 평쯤 되는 건물 한 층만 쓸 수 있었고, 고흥에서는 옛 흥양초등학교 교실 넉 칸을 쓰기에, 이제 환경책은 두 번째 교실로 들어오고, 두 번째 교실에는 환경책과 문화책과 예술책과 종교책과 국어사전과 한국말 자료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곳에 있다.


  새로 들인 나무책꽂이에 환경책을 옮겨 꽂는다. 환경책과 등을 맞댄 나무책꽂이에는 ‘묵은 책’을 꽂는다. 쉰 해를 묵는다든지 일흔 해를 묵는다든지 하면서 오랜 나날 살아낸 ‘묵은 책’을 등 맞댄 자리에 꽂는다.


  환경책을 한 자리에 널따랗게 꽂고 보니 시원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시원하다. 갓 나올 적에 장만한 환경책, 판이 끊겨 사라진 녀석을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환경책, 나라밖에서 나온 환경책, 여러 가지 골고루 섞는다. 나무책꽂이 한쪽은 너비가 좁아, 이곳에는 책을 안 꽂기로 한다. 이것저것 아기자기한 물건을 놓자고 생각한다.


  이라크에 군인 보내지 말자고 외치던 분들이 ‘밥굶기싸움’을 하던 때 나누어 주던 노란 수건을 나무책꽂이 두 칸 빈틈에 박는다. 이 노란 수건을 여러 해 자전거에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오래도록 비바람 맞으며 애썼으니 도서관 책꽂이 한쪽에서 조용히 쉬렴.


  큰아이는 바퀴칠판에 그린 그림을 지웠다가 새로 그린다. 작은아이는 누나 꽁무니 졸졸 좇으며 논다. 큰아이가 동생한테 그림책 읽어 주기도 한다. 아버지 눈치 슬슬 보면서 무언가 개구진 장난을 치기도 한다. 다 좋은데 마실 물은 엎지르지 말자. 아직 우리 도서관에서는 전기도 물도 못 쓰잖니. 물 엎으면 다시 길어와야 해. 게다가 너희들 도서관에서 물놀이 하다가 물잔 하나 깨뜨렸어.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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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1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이, 오늘따라 더욱 환하고 시원합니다.~
벼리와 보라는, 오늘도 여전히 즐겁고 기쁘게 놀고 있군요.~^^
정말 행복한 아이들이에요. ^^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야되는데요..
ㅎㅎ 산들보라는 오늘 누나의 머리띠를 했네요~? 하얀 고무신도 이쁜 궁둥이도 너무 귀여워요. ㅋㅋ

숲노래 2013-05-16 00:10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들도,
모든 어른들도
즐겁고 가벼운 마음 되어
하루 누릴 수 있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