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1

어느 한 가지 책이 100만 권 팔리기보다 100가지 책이 1만 권씩 팔려야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늘었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이가 드물었다. 예전에는 으레 잘 팔리는 책만 말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자. 100만 가지 책이 100만 권씩 팔리면 어떨까? 무척 재미나지 않을까? 1000만 가지 책이 1000만 권씩 팔리면 또 어떨까? 몹시 놀랍지 않을까? 1억 가지 책이 1억 권씩 팔린다면 숲이 안 남아나겠다고 여길는지 모른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책은 종이책만이 아니다. 누리책이 있다. 사람책이 있고, 삶책과 사랑책이 있다. 나무하고 풀하고 꽃도 저마다 책이다. 나비하고 풀벌레하고 새도 따로따로 책이다. 이야기를 펼 수 있기에 책이다.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널리 물려줄 수 있으니 책이다. 바람이라는 책을 1억 사람이나 10억 사람이 읽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별이라는 책을, 바다라는 책을, 숲이라는 책을, 구름하고 비라는 책을, 이슬하고 눈물이라는 책을, 춤하고 웃음이라는 책을, 100억 사람이 함께 읽으면 얼마나 멋스러울까? 2006.9.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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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그만두는

이 나라에서는 ‘초·중·고등학교 그만두기’하고 ‘대학교 그만두기’는 하늘하고 땅처럼 다르다. 앞길은 알아주는 이도 없지만 이미 기득권이 없는 이가 그나마 손에 쥘 만한 생존권마저 버리는 일로 여긴다. 뒷길은 기득권이 있거나 누릴 이가 기득권을 스스로 내버리는 일로 여긴다. 내가 더는 대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이제 참말로 그만둬야겠다고 여겨 이를 대놓고 말할 적에 둘레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생각이야?” 하고 물었다. 대학교를 안 마쳤다고 해서, 대학교 졸업장이 없대서 이 나라에서는 굶어죽어야 하는가? 설마? 어떤 이는 나더러 “배가 불렀군!” 하면서 비아냥댔다. 어버이가 대주는 돈으로 졸업장을 따면 수월할 텐데 ‘배가 불러’서 대학교를 그만두는 줄 여기더라. 어느 분은 아예 “미친 놈!”이라고 삿대질을 했다. 1997년 12월 31일에 군대를 마쳤다. 군대 밖으로 돌아오면서 곧장 휴학계를 자퇴서로 바꾸려 했다. 어머니가 뜯어말렸다. “얘야, 한 해만 더 다녀 보고, 그래도 다닐 만하지 않으면 그때 그만두면 어떻겠니?” 눈물젖은 어머니 말씀에 한 해를 더 다니기로 했다. 바로 그만두지는 못하고 한 해를 더 다니면서 새삼스레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적어 보련다. 첫째, 대학 강의가 너무 널널하다. 둘째, 널널한 대학 강의조차 빠지거나 졸며, 시험을 치를 적에 훔쳐쓰는 이가 매우 많다. 셋째, 널널한 강의인데 숙제를 다들 너무 안 하고, 강의 교재조차 안 읽기 일쑤요, 다른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 이를 거의 못 만났다. 게다가 얼마 없는 숙제조차 베끼는 이는 왜 그리도 많은지. 넷째, ‘학점 없이 청강’을 하는 이는 눈씻고 찾기 어려우며, 받아주는 교사나 강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섯째, 책 사서 배울 적에는 돈 천 원도 아깝다 여기더니, 옷 사고 술 사고 담배 사고 여관 갈 적에는 다들 돈을 잘 쓰더라. 한 해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교시를 꾹꾹 눌러서 신문방송학과 네 해치 강의를 몽땅 들었다. 이러고도 시간표가 비어 나머지는 교양 강의로 빈틈을 메웠다. 다시 말해서, 한 해면 너끈히 다 배울 네 해치 대학 강의인 셈이요, 조금 더 조이면 한 학기로도 넉넉하다. 더 조인다면 두어 달 만에도 ‘대학교 네 해 배움길’을 마칠 테고, 더더욱 조이면 한 달 만에도 ‘대학교 네 해치 배움길’을 마칠 만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정작 숱한 대학생은 졸업장을 손에 쥐어 기득권을 같이 나누는 데에 힘을 쓰더라. 나는 삶을 배우고, 삶을 짓는 슬기를 배우고 싶어서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이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틀을 찾을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 따사로운 사랑이 흐르지 않으니 더 다닐 수 없더라. 줄세우기에 길들도록 내모는데 그만둘 수밖에 없더라. 등록금이나 학비에 들어갈 목돈이라면, 이 돈으로 스스로 배움길에 나서면 되겠더라. 해마다 대학교에 바쳐야 하는 돈이라면, 그 돈으로 아름다운 책을 사서 읽고 골골샅샅 걸어서 마실을 다니면서 깊고 너른 삶을 새삼스레 배울 수 있겠더라. “남들 다 가지는 졸업장 하나 네가 안 가진대서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겠니?” 하고 묻는 이웃이 있었다. “네, 안 바뀔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런 나라라면 저는 더더욱 대학교 졸업장을 안 갖고 싶습니다. 아니 그런 나라라면 짐을 싸든지, 나라를 갈아엎어야지요.” 하고 대꾸했다. 이 이웃은 그 뒤로 나랑 멀어졌다. 나는 졸업장이나 학번을 안 묻는, 아니 졸업장이나 학번을 모르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생각이다. 대학교를 그만둔다는 뜻은, 삶을 새롭게 가꾸면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려는 마음이다. 1999.8.3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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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글

참이 참인 줄 아직 모를 적에는 이 참을 찾아나서거나 깨닫거나 붙잡거나 내 것으로 삼으려 하겠지. 참을 찾아내거나 알아내거나 깨닫거나 붙잡아서 내 것으로 삼는다면, 참은 더는 참이 아닌 삶이다. 삶이 된 참은 굳이 참이라는 이름을 붙일 일이 없다. 그저 즐겁게 하루를 누리면 된다.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고 밤을 고이 쉬면 넉넉하다. 참글이란, 아직 삶이 되지 못한 글이라고 느낀다. 삶글이라면,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하루를 쓰는 글이요, 아침에 새로우며 밤에 고이 빛나는 글이겠지. 꾸밀 일이란 없다. 그저 즐겁게 쓰니 노래가 되는 삶글이다. 대학교에 다니거나 강의를 찾아들을 까닭이 없이, 스스로 살아가는 결을 손수 옮기면 될 삶글일 텐데, 이 삶글은 제빛으로 환하다. 남빛이 아니다. ‘남빛’이란 남을 흉내내거나 다른 이 것을 훔친 빛일 테니 아무런 빛이 나지 않는다. 참글은, 스스로 삶을 찾거나 익히거나 깨닫고 싶기에 나아가는 길에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거나 갈고닦으면서 짓는 글이지 싶다. 숲에서 살림하는 사랑이라면 처음부터 삶글이자 숲글이겠지. 아직 숲에서 살림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생각을 가다듬거나 갈고닦는 길을 걷고 걸어가는 끝에 차츰 참글을 헤아리면서 삶글로 거듭나는 허물벗기를 할 테고. 2019.2.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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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못한 글쓰기



배우지 못한 채 글을 쓰면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마련이다. 배우지 못한 채 글을 썼기에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스스로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줄 모르면서 바보짓을 일삼는 사람이 꾸밈없이 글을 쓰면 그이가 그동안 했던 갖가지 추레한 모습이 글에 잘 드러난다. 지난날 ‘글쟁이 사내’는 가시내를 집적거리거나 노리개로 삼는 이야기를 흔히 글로 썼고, 이를 자랑으로 삼기까지 했다. 이제 이런 ‘배우지 못한 글쓰기’는 곧바로 뭇매질을 받을 텐데, 배우지 못한 채 글을 쓰던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고개숙여 배우고 나서 새롭게 글을 쓰려나, 아니면 고개숙여 배우는 살림길을 걸으면서 흙을 만지고 호미를 손에 쥘 수 있을까?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글을 쓰기에 이웃을 함부로 노리개로 삼으려 든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나날을 그대로 흘러왔으니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부터 모르곤 한다. 배우지 못한 사람을 나무랄 까닭은 없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 이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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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자리에서 바로



글종이로 서른 쪽쯤 되는 글을 한 자락 써 주면 좋겠다고 하는 글월을 받고서, 이내 글 한 자락을 마무리해서 보낸다. 글 한 자락을 보내고서 돌아보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라 더 글을 쓰기로 하다가, 어느새 두 자락을 더 쓴다. 4월치에 실을 글을 마무리짓자마자 5월치 글하고 6월치 글까지 더 쓴 셈이다. 앉은자리에서 뚝딱 글종이 아흔 쪽을 써냈다. 더 쓸까 하다가 멈춘다. 이 글만 쓰면 안 되기에, 이튿날 마감할 다른 글이 한 꼭지 있고, 며칠 사이에 끝낼 글종이 천 쪽 즈음 될 다른 꾸러미가 있다. 마치기로 한 글을 신나게 마치고서 더 마음이 피어나면 그때에 또 써 보자. 그런데 앉은자리에서 줄줄이 갖가지 이야기가 샘솟는 글감이다 보니 자꾸자꾸 쓰고 싶네. 즐겁게 나눌 이야기는 언제나 참으로 부드러이 샘솟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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