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손이 아닌 마음으로 찍고, 눈이 아닌 사랑으로 보고, 종이가 아닌 빛으로 새기고, 예술이 아닌 이야기로 편다. 2001.1.2.


사진 2

글이 아닌 삶을 쓴다. 그림이 아닌 삶을 그린다. 사진이 아닌 삶을 찍는다. 노랫가락이 아닌 삶을 부른다. 밥이 아닌 삶을 먹는다. 책이 아닌 삶을 읽는다. 빨래가 아닌 삶을 한다. 모두 삶이다. 삶이 아닌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노랫가락이나 밥이나 책이나 빨래란 없더라. 2002.3.5.


사진 3

사진을 찍고 싶으면 글을 써 보면 된다. 글을 쓰고 싶으면 사진을 찍어 보면 된다. 밥을 맛있게 짓고 싶으면 밭을 살뜰히 지으면 된다. 밭을 살뜰히 짓고 싶으면 밥을 맛있게 지으면 된다. 아이를 돌보고 싶으면 어른이 되면 된다. 어른으로 곧게 서고 싶으면 아이를 돌보면 된다. 별을 읽고 싶으면 우리가 사는 지구가 별인 줄 알면서 귀를 숲바닥에 가만히 대면 된다. 지구를 읽고 싶으면 우리가 바라보는 별빛이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는지 눈을 감고서 들으면 된다. 사진 찍기 참 쉽다. 글을 쓰기 참 수월하다. 서로 얽어서 하면 수수께끼를 바로 풀 수 있다. 2005.5.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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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

몸에 난 사마귀를 없애는 길이 한 가지 있다. 사마귀를 안 쳐다보면서 잊기. 손톱으로 뜯든 칼로 도려내든 마구마구 파내려 하든, 사마귀를 사라질 낌새가 없기 마련이다. 사마귀를 자꾸 쳐다보면서 마음을 쓰노라면, 사마귀를 손으로 파내려 하면, 사마귀는 악착같이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퍼지려 한다. 이런 사마귀를 만지지도 건드리지도 쳐다보지도 알은체도 안 하면서 까맣게 잊으면 감쪽같이 며칠 만에 사라진다. 여덟 해 앞서 어느 날, 내 오른손등에 처음 사마귀 하나가 돋았는데, 이 아이를 파내니 셋이 늘었고, 세 아이를 파내니 아홉으로 늘었고, 여덟 해 동안 오른손등뿐 아니라 왼손등으로, 또 오른발등으로까지 번지더라. 그런데 이 사마귀를 이레 앞서 눈 질끈 감고서 안 만지고 안 쳐다보고 까맣게 잊기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이레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깜짝 놀랐다. 사마귀는 우리 눈길을 먹고 자랐구나. 우리는 어디에 눈길을 두면서 우리 기운을 쏟는 하루일까? 우리는 무엇에 우리 기운을 바치는 살림일까? 2008.8.1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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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3

우리 집 밭자락에 씨앗을 뿌려 푸르게 가꾼다. 내 마음자락에 씨앗을 심어 푸르게 돌본다. 같이 일구는 보금자리 삶자락에 씨앗을 묻어 푸르게 짓는다. 모두 아름다운 지구라는 별자락에 씨앗을 두어 푸르게 피어난다. 이제부터 온누리가 새롭게 피어나도록 우리가 눈을 뜨고 씨앗을 뿌린다. 동시란 씨앗 한 톨이네. 2019.2.2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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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로쓰기 1

누가 나한테 “‘우리말 바로쓰기’를 하면서 글을 써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곧바로 대꾸한다. “왜 그렇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이렇게 되물으면 으레 “이녁은 늘 ‘우리말 바로쓰기’로 글을 쓰지 않나요?” 하고 다시 물을 텐데, 나는 또다시 “참말로 제가 쓰는 글이 ‘우리말 바로쓰기’라고 여기시나요?” 하고 되물으면 더 묻지 못하곤 한다. 나는 말장난을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글쓰기를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다. 내 글쓰기는 ‘우리말 바로쓰기’가 아니다. 나는 늘 새롭게 배워서 이 삶으로 익힌 말을 골라서 쓸 수 있을 뿐이다.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 사이에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헤아려 본 적이 있으나 매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벅찼다. 그때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바르게 배워서 쓰겠다고 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가 하고. 이렇게 생각하며 길을 찾다 보니 실마리하고 수수께끼를 한 꺼풀씩 벗길 수 있었다. 첫째, 나는 국민학교에 든 여덟 살부터 학교에서 말다운 말을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다. 둘째, 나는 국민학교에 든 때부터 교과서로는 글다운 글을 배우거나 읽은 적이 없다. 셋째,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익혀서 스스로 책을 읽은 뒤로, 책에서 말다운 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넷째, 나는 어릴 적에 방송을 보면서 말다운 말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다섯째, 나는 군대하고 사회를 맴도는 동안 이웃들이 말다운 말로 슬기롭게 생각을 밝혀 살림을 짓는 길을 좀처럼 마주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말다운 말이나 글다운 글을 마주하기 어려우니, 내가 쓰는 글이 말답거나 글다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말하고 글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고, ㄱ부터 ㅎ까지 새롭게 익혀야 했다. 이제 마무리말을 해본다. “저는 제가 나아가려는 삶·살림·사랑에 걸맞게 배우는 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저는 삶하고 살림하고 사랑을 즐거우면서 곱고 재미나게 짓고 싶은 마음으로 말하고 글을 늘 새롭게 익혀서 제 노래가 되도록 펴려는 몸짓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2017.12.29. ㅅㄴㄹ


우리말 바로쓰기 2

말을 바르게 쓴다고 할 적에는 삶을 바르게 짓는다는 뜻. 지식이나 정보로 말만 바르게 꾸미지 못한다. 언제나 즐거우면서 곱게 삶을 짓는 길이라면, 말은 저절로 빛난다. 저절로 빛나는 말을 뭣하러 바르게 쓴다면서 가다듬을까? 따로 “우리말 바로쓰기”를 안 해도 된다. 아니, 할 일이 없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짓고, 곱게 가꾸며, 넉넉하게 지피면 넉넉하다. 삶이 곱게 서면 말이 곱게 선다. 삶이 노래라면 말이 노래가 된다. 삶이 사랑이라면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무슨 바로쓰기고 자시고이고 해야 하겠는가. 2019.2.2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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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모든 좋다는 것이 다 모인 서울이다.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서울에는 똑똑한 사람도 잘난 사람도 많다. 이 왁자지껄한 서울에서 좋다는 것을 가득 품고서 서울을 떠나 시골로 가면 재미있으리라. 이렇게 하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면 나라 곳곳에 좋은 살림이 무럭무럭 자라고 퍼질 테지. 사람을 서울로 보내거나 서울에서 키워 아름다이 빛난다면, 이때에 이렇게 아름다이 빛나는 사람을 나라 곳곳으로 가도록 발판을 마련해서, 온누리가 눈부시게 확 바뀌도록 해볼 만하겠지. 2000.12.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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