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르다

‘꽃바르다’ 같은 낱말은 아직 없겠지만, 더욱이 사전에도 안 오른 낱말이겠지만, 나는 ‘꽃바르다’ 같은 낱말을 불현듯 짓는다. ‘정의롭다’를 걸러낸다든지, ‘화장하다’를 풀어내는 낱말은 아니다. 새롭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즐겁게 쓰려는 낱말이다. 꽃처럼 바른 길을 걷는 넋이나 몸짓을 나타내고 싶어 ‘꽃바르다’를 혀에 얹는다. 꽃을 바르는 꿈이나 손짓을 그리고 싶어 ‘꽃바르다’를 손에 쥐어 연필을 놀린다. 2019.2.2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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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거리

글로 쓸 거리는 누구나 우리한테 알려준다. 글쓰기 강사나 이름난 글꾼이 알려주지 않는다. 살아가며 부대끼거나 겪거나 맞이하는 모든 자리에서 온갖 쓸거리가 비롯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머리카락이 긴 사내가 꽃치마를 좋아해서 치마차림으로 다닐 수 있다. 뒤에서 이 ‘치마사내’를 가시내로 알아본 사람이 “앞에 가시는 여자 분?” 하고 부르는 일을 겪을 수 있다.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바지 입기를 좋아하는 가시내를 어떤 사람이 사내로 잘못 여겨 “옆에 계신 남자 분?” 하고 엉뚱하게 부르는 일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일을 짜증이나 우스개로 여길 수 있고, 글쓸거리로 삼을 수 있다. 기쁜 삶도, 슬픈 살림도, 아픈 하루도, 신나는 일도, 무덤덤한 얘기도, 늘 해먹는 밥차림도 얼마든지 글쓸거리가 된다. 마음을 열어 바라보면 모든 삶을 수수하게도 쓰고 뾰족하게도 쓰고 삿대질로도 쓰고 헛발질로도 쓰고 노래로도 쓰고 다툼질로도 쓴다. 받아들여서 삭이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걸음걸이는 글쓸거리로 피어난다. 1995.12.3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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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옷

중학교 들며, 또 고등학교 들며, 모든 푸름이한테 똑같이 맞춰 입히려는 옷을 사는 데에 들이는 30만 원 + 30만 원이라면, 푸름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할 옷을 몇 벌쯤 마련할 수 있을까? 그 돈으로 실바늘을 장만한다면 손수 몸에 맞춰 새옷을 몇 벌 지을 만하고, 둘레에 몇 벌을 선물할 만할까? 학교옷을 고작 세 해 입고서 버린다. 옷감부터 썩 안 좋고, 다 다른 아이들을 다 같은 틀에 가둔다. 60만 원이라는 돈으로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르면서 좋고 고운 실바늘이나 천을 장만하면, 예순 해를 넉넉히 입고서 물려주는 옷을 손수 지을 수 있다. 이러면서 살림짓기를 익히는 살림꽃으로 피어나겠지. 학교란 곳은 푸름이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도록 가르치는가? 학교란 터는 푸름이가 옷을 어떻게 바라보며 돌보거나 짓도록 알려주는가? 학교란 자리는 푸름이가 살림자리를 어떤 손길로 어떻게 품도록 이끄는가? 2009.2.2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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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쓰는 재미

‘읽을 만한 국어사전이 없다’고 느껴, ‘언젠가는 내가 스스로 국어사전을 만들어야겠어’ 하고 생각한 때가 1994년이다. 이때부터 어느덧 스무 해 흐른다. 2013년 한여름, 올 한글날에 내놓을 ‘어린이 우리 말 이야기책’에 넣을 ‘낱말풀이’를 한참 달다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는다. 벌써 이렇게 흘렀나 싶어 부랴부랴 일을 마무리짓는다. 곁님이 미국으로 배움마실을 떠났기에 홀로 집일을 건사하면서 아이들이랑 놀며 지내야 하는데, 밤을 지새우고 새벽까지 잠들지 않으면, 아침이 힘들다. 낮에 더 일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려 한다. 그런데 ‘낱말풀이 새롭게 붙여서 쓰는’ 일이 아주 재미있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주 빠르게 흐른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일 테지. 스무 해 동안 벼르면서 꿈꾸던 일을 비로소 붙잡기 때문일 테지. 스무 살 적에 마흔 살이 언제 다가오는가 하고 손꼽으면서, 마흔이 되는 날까지 씩씩하게 한길을 달리자고 생각한 대로 스무 해를 살았다. 지난 스무 해에 걸쳐 한국말을 익히고 가다듬은 결을 살려 2014년에는 ‘어린이 첫 한국말사전’ 하나를 기쁜 웃음꽃 피우면서 신나게 쓰자. 2013.7.30. (* 덧말 : 이 책은 2014년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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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돌보기

지켜보고 기다리는 몸짓을 어버이로서 익힐 줄 알면, 아이는 아이 스스로 돌보는 길을 배운다. 어른이 뭘 해주어야 돌보는 몸짓이 아니다. 어른은 따스한 눈빛이 되어 사랑어린 슬기로 지켜보고 기다릴 줄 알면 된다.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기쁘게 알아내고 신나게 해내며 곱게 가르친다. 2019.2.2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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