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사계절 1318 문고 3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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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문학이 있는 삶자리
 : 박상률,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 책이름 :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 글쓴이 : 박상률
- 펴낸곳 : 사계절 (2006.4.15.)
- 책값 : 8500원



 (1) 배추값


 한 해 두 해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자꾸자꾸 늘어납니다. 아니, 굳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누리에서 시끌벅쩍 떠드는 이야기가 늘어납니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느는 한편, 이웃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늘어납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는 동안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보거나 인터넷을 뒤적일 일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돌아볼 겨를이란 없고, 산골자락 바깥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가에 굳이 눈길을 둘 틈을 마련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옆지기 식구들 살아가는 일산집에 모처럼 마실을 가서 함께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 텔레비전은 스물네 시간 내내 쉴 겨를을 주지 않고 볼거리를 베풉니다. 그야말로 스물네 시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합니다. 옆에 앉은 사람하고 말을 섞을 일이 없고, 밥술을 뜨면서 이 밥술에 얹힌 밥이나 반찬을 마련하고자 어머님이 얼마나 애쓰고 품을 들였는가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저 화면에 눈이 꽂힐 뿐입니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개혁이든 수구이든 무어이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갖가지 지식과 정보가 넘실넘실합니다.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재미나게 이야기하자면 연속극이나 영화나 운동경기 이야기를 들어 빗댈 노릇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통령 자리에 앉은 분이 ‘배추값이 비싸면 양배추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대목을 꼬투리 잡으며 겨우 ‘푸성귀 값이 올랐음’을 들먹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농사짓는 사람한테는 ‘껑충 오른 푸성귀 값에 걸맞게 땅을 부치며 땀을 흘린 보람을 얻었는지 못 얻었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푸성귀 값이 쌌을 때이든 비쌀 때이든 농사꾼 살림살이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값이 쌀 때에는 싼 대로 등허리가 휘고, 값이 오를 때에는 오르는 대로 힘겹습니다. 왜냐하면 푸성귀 값이 오를 때에는 어디에서나 농사가 엉망이 되었을 때이니 값이 제아무리 올랐다 한들 얼마나 내다 팔 수 있겠습니까. 값이 쌀 때이든 비쌀 때이든 노상 ‘샛장수’ 노릇을 하는 농협이나 할인매장에서만 돈을 법니다.

 배추값 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배추 한 포기에 5000원은 조금도 비싸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배추씨를 심어 길러 보면 배추 한 포기 값으로 얼마를 쳐야 하는가를 어렵잖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가 소담스레 자라기까지 며칠이 걸리고, 이동안 얼마만 한 땅에 배추를 심으며 물과 거름은 어떻게 주고 벌레는 언제 잡으며 김은 어느 만큼 매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심은 배추씨가 모두 싹이 트는지를 헤아려야 하고, 농사짓는 동안 들인 품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애호박 하나에 1800원도 하고 2500원도 하며 3000원도 합니다. 얼마 앞서까지는 애호박 셋에 1000원도 했습니다. 참 오르락내리락입니다. 그런데 2000년에는 애호박 값이 얼마였나요. 1990년과 1980년에는 또 애호박 값이 얼마였지요. 배추는 2000년에 얼마였고 1990년과 1980년에 얼마였을까요. 1980년과 1990년과 2000년에 버스삯은 얼마에서 얼마로 올랐고, 여느 일터 일꾼 일삯은 이동안 어느 만큼 올랐는지요. 기름값은 얼마에서 얼마가 되었고, 자동차 한 대 값은 얼마에서 얼마나 되었습니까. 전세집이든 달삯집이든 얼마를 치러야 네 식구 살림집을 마련할 수 있는지요. 지난 스무 해에 걸쳐 쌀값은 어떠한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파 한 묶음 값, 무 한 뿌리 값, 양파 한 알 값이란 지난 스무 해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 너는 난리통에 변을 당했다. 난리통, 난리통이었다. 8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 거대한 도시가 열흘 간이나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고, 전쟁도 아닌데 군인들이 완전무장한 장갑차를 앞세워 사람들을 총으로 쏘고 칼로 쑤시고 곤봉으로 내리쳤다면 분명 난리통은 난리통이었다 … 그것도 햇살 좋고 바람 좋고 하늘 빛깔까지 고운 5월에 ..  (52∼53쪽)


 초등학교를 다니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건, 오늘날 한국땅에서 도시에 살거나 시골에 살거나 농사일을 어느 만큼 거든다거나 헤아리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 어버이가 농사를 짓더라도 농사일에 눈길이나 마음길을 쏟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몹시 드뭅니다. 농사일을 못 거든다 하여도 농사를 해서 얻는 곡식과 푸성귀 값이 얼마쯤 하는가를 살피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은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교과서와 제도권교육과 인터넷과 방송과 대학입시 들로 쏟아부으니까요. 아이들 스스로 제 넋을 차릴 수 없게끔 머리속을 갖가지 지식과 정보로 꽉꽉 채워 넣으니까요. 숱한 지식과 정보에 가로막혀 내 삶과 내 이웃 삶과 내 동무 삶을 돌아볼 줄 모르니까요.

 수학능력시험 문제로 안 나오는 과목은 아예 안 배워도 괜찮다고 여기도록 이끄는 교육 행정입니다. 정치권력은 정치권력대로 아이들을 더 바보가 되도록 닦달하고, 머리통만 굵은 멍청이가 되도록 내몹니다. 스스로 진보라 밝히든 보수라 밝히든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아가도록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밥하기 한 번 시키는 어버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 스스로 마땅히 개도록 가르치거나 몸소 보여주는 어버이란 만나기 어려우며, 아이들이 먹는 온갖 먹을거리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하고 손질하여 밥상에 오르는지를 들려주는 어버이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배추 한 포기는 값이 얼마여야 알맞을까?’를 생각하도록 이끌지 못하면서, 아이들 또한 바보스러운 어른과 마찬가지로 ‘배추값이 너무 비싸!’ 하고 생각하도록 내몰고 맙니다.


 (2) 사람값


 볼일을 보러 읍내로 자전거나 시골버스를 타고 찾아가 보면, 읍내 중고등학교 아이들 치마가 참 짧습니다. 인천에 살던 때에는 인천 아이들 치마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도록 하며 그리 짧지 않고, 서울 아이들은 살짝 나폴거리며 짧았는데 시골 아이들 치마는 서울 아이들보다 훨씬 짧습니다. 인천이나 서울이나 시골 사내아이 바지나 웃도리는 제 눈으로는 퍽 우스꽝스럽습니다. 키 훤칠하고 얼굴 갸름하며 뚱뚱한 몸집 거의 없이 좀 마르다 싶은 아이들한테 걸맞을 옷을 제대로 입은 아이들을 만나기 참 힘듭니다.

 똑같이 맞춰서 입히는 학교옷이기에 다 다른 아이들 몸에 알맞도록 입히는 옷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제 몸이 어떠한가를 옳게 헤아리지 못하며, 제 몸에 알맞을 옷을 옳게 가누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은 푸름이들이 얼굴차림하고 옷차림에 눈길을 많이 둘밖에 없는데에도 이렇습니다. 학교옷이란 하나같이 칙칙한 빛깔에 우중충한 느낌이요, 한껏 푸르게 피어날 넋을 고우며 맑게 어루만지지 못합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이와 같기 때문일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생각하고 힘껏 뛰놀며 재주껏 꿈을 키우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이들을 ‘제복과 머리길이 굴레’에 가두어 놓고는 이 굴레에서 부처님 손바닥 손오공처럼만 바둥거리도록 붙잡기 때문인지요.


.. 가서 보니 학생이 가르쳐 준 곳은 대학 본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에게 야간대학, 아니 이부대학 건물을 물었다. 젊은이는 월산댁을 한 번 훑어보더니 이부대학이 어디 있는지 일러 주었다. 월산댁은 젊은이가 훑어보는 게 마땅찮았지만 내색을 하진 않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옷은 매끄롬하게 차려입었음시롱, 젊은것이 버르장머리는 디럽게 없네잉. 뭐 잠 물어 보면 보드랍게 갈쳐 주면 안 되는 것이여?’ ..  (83쪽)


 중학교는 왜 중학교이고 고등학교는 왜 고등학교인지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갈라 놓는 까닭을 알 길이 없습니다. 교과서를 엮으며 학교에 몸담으며 교과서를 가르치는 어른은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과 사귀거나 어울리는지 궁금합니다. 바깥에는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는데,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시멘트 교실에 왜 아이들을 잔뜩 몰아넣고는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대놓고 책상에 엎어져 자도록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볕 좋은 날 골목마실을 하면서 언제나 느낍니다. 이 좋은 볕을 듬뿍 받으며 ‘내가 사는 동네’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우는 동네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볕이 좋든 말든 동네 푸름이들은 후미진 골목을 찾아 담배 피우기에 바쁩니다. 아이들로서는 후미진 골목일 테지만,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골목 할매와 할배가 어여삐 꽃그릇 마련하거나 텃밭을 일구며 푸른빛이 살아숨쉬도록 마련한 쉼터입니다. 아이들은 꽃을 보면서 꽃이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예쁘다거나 남다르게 생겼다거나 이름이 궁금하다거나 느끼지 않습니다. 꽃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꽃이 몇 송이 있다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깨닫지 않습니다.

 후미진 골목에서 담배 태우는 푸름이들 얘기를 했습니다만, 푸름이들만 이와 같지 않습니다. 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틀림없이 어른들 매무새 그대로 푸름이들이 따릅니다. 어김없이 어른들 몸짓 그대로 푸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은 한길에서 담배 뻑뻑 피우며 걷다가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립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담배 빡빡 피우며 구시렁거리다가 할매 할배가 아리땁게 가꾼 꽃그릇이나 텃밭에 아무렇지 않게 꽁초를 버립니다.

 아이들 서넛쯤일 때에는 골목마실을 하는 저를 슬금슬금 곁눈질을 하며 다른 데로 내뺍니다. 대여섯쯤이거나 예닐곱을 넘으면 버젓이 드러내고 담배공장을 차립니다. 끼리끼리 놀 뿐 아니라 힘여린 이를 무리지어 괴롭히는 어른들 슬픈 얼굴을 아이들 몸가짐에서 낱낱이 느낍니다. 이 아이들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머리길이를 짧게 다그치고 물을 못 들이도록 하며 수염은 하얗게 밀도록 닦달하면서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담배를 못 피우게 꽁꽁 옥죄어 놓는들, 기껏 열여덟이나 열아홉까지입니다. 열아홉이 되고 스물이 되면 그야말로 깽판이며 막놀이판입니다. ‘공부 좀 했다’는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고, ‘공부를 조금 더 했다’는 아이들이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간다는데, 대학생들 술담배 사랑놀이 하며 노는 짓과 이름있다는 대학교 앞 술집거리 엉망진창 꼬락서니를 보면 이 나라 제도권 교육이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해대는지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을 사람답게 가르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사람다운 길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아이들한테 사람답고 아름다운 삶을 깨닫도록 안 하는 안타까운 곳을 가리켜 배움터라 할 수는 없다고 늘 느낍니다.


 (3) 아이들한테 역사를 보여주는 문학


 어린이문학을 하는 박상률 님이 쓴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을 읽습니다. 어른문학에서는 곧잘 다루지만 어린이문학에서는 좀처럼 못 다루는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낸 책입니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1980년 5월 광주를 들려주는데, 피가 튀거나 곤봉이 춤추는 이야기는 하나도 깃들지 않으나 눈에 그리듯 이와 같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제법 읽거나 아는 어른으로서 ‘눈에 그리듯 떠올릴’ 뿐입니다.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모르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아로새길 수 있을는지요. 책을 덮으며 《달맞이 언덕에 뜨는 달》(정해천 씀,일과놀이 펴냄,1994)이라는 책을 떠올립니다. 아직 《달맞이 언덕에 뜨는 달》처럼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풀어낸 고운 책을 찾기란 어렵지만, 1980년 5월 광주뿐 아니라 숱한 다른 이 나라 삶자락 이야기를 이 책만큼 알뜰히 다룬 책 또한 찾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또한 옳게 풀어내지 못하며, 1970년 11월 청계천 이야기도 참다이 풀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2002년 미선이와 효순이 이야기를 살뜰히 풀어내지 못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나라밖에서 나라밖 역사를 알뜰살뜰 풀어낸 이야기책은 신나게 옮기기는 하는데, 나라안에서 나라안 역사를 한 올 두 올 다잡거나 다스리는 이야기책은 열 해에 한 권조차 못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 “근데 대통령은 할아버지가 다 되어 가지고도 배우고 가수고 맘에 드는 여자 있으면 불러다가 같이 술 마시고 데리고 놀아도 되는 거야? 우리 같은 젊은 청춘들은 여학생하고 어울려 극장에도 못 가게 하면서?” “히! 그런다고 네가 여학생하고 극장 안 갔냐? 몰래 할 건 다 했으면서 뭘 그래.” ..  (97쪽)


 어린이하고든 푸름이하고든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비롯해 이 나라 여느 자리 여느 삶터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기란 퍽 어렵습니다. 고속철도 여승무원 이야기라든지 천성산과 낙동강 지율 스님 이야기를 오늘날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얼마나 오붓이 나눌 수 있는가요. 골목동네를 허물며 아파트만 올려대면서 ‘가난하다지만 가난하다 여기지 않고 알뜰살뜰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오늘날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얼마나 살가이 주고받을 수 있는지요.

 다시금 생각하면,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랑 푸름이하고만 못 나눌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여느 어른하고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교장선생님들은, 구청장님들은, 시의원님들은, 산부인과 의사님이나 국정 변호사님들은 …… 우리 둘레 낮은 자리 낮은 사람들 삶을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서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마주하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기자님들은, 작가님들은, 학자님들은, 교수님들은, 시민단체 활동가님들은 …… 얼마나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들하고 손을 맞잡으며 울고 웃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하나만을 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터전이 한결 아름다울 때라야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또한 한결 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 한국땅 사람들 삶이 한껏 아름다이 거듭날 때라야 1980년 5월 광주를 비롯하여 이 땅 아픔과 생채기와 눈물과 얼룩을 살포시 담아낼 빛나는 문학이 태어납니다.

 문학은 대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을 뿐더러 어떤 글쟁이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문학은 바로 우리 삶터에서 여느 어버이들이 여느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으며,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아이가 여느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4343.10.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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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스 높새바람 5
안니 M.G. 슈미트 지음, 경히 언니 그림, 김경태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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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어른으로 살아갈 우리들
 안니 M.G.슈미트, 《미노스》



- 책이름 : 미노스
- 글 : 안니 M.G. 슈미트
- 옮긴이 : 김경태
- 펴낸곳 : 바람의아이들 (2004.7.15.)
- 책값 : 7800원


 (1) 내 둘레에서 마주하는 말과 이야기


 동무나 이웃이나 둘레 사람들이 자동차 이야기를 하면 저는 거의 알아듣지 못합니다. 골프 이야기를 할 때에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아파트나 주식이나 펀드 이야기를 하면 하품이 나옵니다. 서울 홍대 앞 무슨 카페라든지 옷 상표라든지 이야기할라치면 조금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리 아이는 엄마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가루젖을 먹지 않았고, 딱히 가루젖을 먹일 까닭이 없이 자랐습니다. 둘레에서 무슨무슨 가루젖 회사 무슨무슨 물건을 이야기하면 저로서는 알아들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천기저귀를 댔으니 종이기저귀 값이 어떠하고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 식구는 빨래기계 없이 살아갑니다. 천기저귀를 빨든 이불을 빨든 신을 빨든 손으로 빨래합니다. 손으로 빨래하며 빨래비누 한 장을 쓰니까 무슨무슨 세제라든지 표백제라든지 이야기하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거꾸로, 동무나 이웃이나 둘레 사람들한테 자전거 이야기를 들려주면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어떻게 장만하고 어찌어찌 손질하는가를 이야기하면 마치 전문가들만 아는 테두리에서 말하는 양 생각합니다. 자동차를 닦듯 자전거를 닦을 뿐이고, 손쉬운 자동차 손질처럼 손쉬운 자전거 손질이 있습니다만, 이러한 대목을 살피는 분이 무척 드뭅니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샌다든지 브레이크슈가 다 닳았을 때에 손수 고칠 줄 아는 분은 매우 적습니다. 이 나라 적잖은 여느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여느 회사 출퇴근을 한다든지 학교를 오간다든지 하는 일이란 거의 꿈조차 꾸지 않고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를 돌보며 키운다는 삶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동무나 이웃이나 둘레 사람은 드물게 있습니다. 참으로 드물게 있습니다. 제아무리 남녀평등이니 여남평등이니를 들먹이고, 육아휴직을 외친다 할지라도, 아이를 돌보는 몫이 엄마와 아빠 모두한테 있음을 헤아리는 지식인이나 지성인이나 대학생이나 전문가나 교사나 어른이나 몹시 드뭅니다. 아이를 돌보는 몫뿐 아니라 집안일을 하거나 집살림을 꾸릴 때에 서로서로 돕고 거들며 함께하는 길을 살피는 이 또한 대단히 드뭅니다. 아이는 엄마 품이 따스하다고 느낀다지만, 아이가 아빠 품을 따스하게 안 느낄 까닭이란 없습니다. 어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일컫는 말이지 어머니 혼자만 어버이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아버지 몫을 제대로 하는 셈이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애 아빠인 제가 집에서 애 엄마랑 함께 아이를 돌보는 한편, 숱한 집살림을 함께 나누어 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곧이 받아들인다든지 스스럼없이 헤아린다든지 하는 이웃을 만나기는 힘듭니다. 으레 ‘왜 애 엄마가 할 일을 애 아빠가 하지?’ 하고 묻거나 ‘애 아빠가 밖에 나가서 돈 좀 벌어와야 하지 않아?’ 하고 묻습니다. 하다못해, 애 엄마보고 ‘애 엄마가 밖에 나가 돈 좀 벌어와요.’ 하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습니다.

 손빨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손빨래하는 고단함과 즐거움을 느끼기란 어렵습니다. 즐거움과 함께 고단함이 있고, 고단하면서 즐거운 손빨래인 줄 느끼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다른 집살림도 마찬가지인데, 집살림이란 참으로 고단하면서 즐겁습니다. 홀가분하면서 괴롭습니다. 멋지면서 슬프고, 사랑스러우면서 얄궂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슬슬 밀며 다닐 수 있겠지만, 아이를 한 팔에 안고 다른 한 팔에는 저잣거리에서 장만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 끙끙대며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삼십 분을 거닐다 보면 아주 팔이 빠질 듯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잠든 아이를 안거나 업고 삼십 분 남짓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라치면 애 엄마 아빠나 아이나 온몸이 땀투성이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땀투성이가 되는 몸으로 부대끼는 삶과 사람과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땀투성이가 되는 몸뚱이가 느낄 고단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 한 사람으로 고운 목숨 선물받아 꾸리는 삶을 아낌없이 누리는 하루하루란, 이와 같이 살아가며 몸으로 복닥이는 사람끼리 오순도순 나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집일 할 사람을 돈을 주어 둔다든지, 아이를 안고 다닐 짬에 자동차를 몰며 차에 아이를 싣고 다닌다든지, 포대기를 넣을 가방에 화장품이나 책을 넣는다든지, 아이 얼굴을 닦아 줄 손수건을 넣을 주머니에 디엠비나 엠피셋을 넣는다든지 하는 이들하고는 아이랑 복닥이는 삶을 나눌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읽는 숱한 사람들한테는 박세리라는 이는 골프여왕이라 할 만하고, 박찬호라는 이는 이름난 야구선수라 할 만하며, 박지성이라는 이는 잘나가는 축구선수라 할 만하며, 박태환이라는 이는 손꼽히는 수영선수라 할 터이며, 김연아라는 이는 빼어난 피겨선수라 하겠지요. 그러면 텔레비전을 안 보고 신문을 읽지 않으면서 땅을 부치고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한테는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주노동자들한테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신문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켤 때에 따로 무슨무슨 새소식을 읽지 않습니다. 정치이든 경제이든 사회이든 문화이든 종교이든 운동이든 이런저런 새소식을 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식구 둘레에 기쁘며 슬프고, 재미나며 지루하고, 반가우며 구지레한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 있기 때문입니다.

 바깥마실을 하다가 때때로, 밥집이나 술집이나 이웃집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밥집이나 술집이나 이웃집에 놓인 신문을 들춰봅니다. 우리 누리를 옳고 바르게 일구겠다고 외치는 이들이 엮는 매체라 할지라도 ‘이주노동자 눈길’로 기사를 다루거나 쓰는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농사꾼과 여느 공장노동자 눈매’로 기사를 만지거나 가꾸는 모습을 마주하기 힘듭니다. ‘고졸자나 가정주부 눈높이’로 기사를 꾸리거나 엮는 모습을 만날 길은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론은 있고 주장은 있는 신문이요 방송이며 책입니다. 학문으로 갈고닦았고 사상으로 서 있는 신문이고 방송이며 책입니다. 그렇지만, 뜨거운 땀방울과 따순 손길과 너그러운 넋으로 이루어진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란 더없이 드물거나 찾을 길이 없습니다. 살가운 손짓과 고운 사랑과 애틋한 마음씨로 어우러진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란 참으로 없거나 마주할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나비 한 마리를 이야기할 때에도 ‘나비 이야기를 참 잘 엮은 좋은 그림책’을 읽으며 나비를 이야기하지, 우리 둘레에서 팔랑거리는 나비와 부대낀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엊저녁 갑작스레 퍼붓는 빗줄기를 따라 나비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살며시 들어왔는데, 비를 그으려고 여느 살림집으로 들어온 나비 한 마리를 놓고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일구는 몸짓을 둘레에서 마주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두들 나비 도감을 보고 나비 그림책만 보며 나비 다큐멘터리를 볼 뿐입니다.

 여느 사람들 삶이 살가이 복닥이는 이야기를 담은 좋은 그림책 《엄마의 의자》(베라 윌리엄스,시공주니어,1999)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는 참 쉽습니다. 고되게 일하는 엄마가 느긋하게 쉬는 걸상 하나를 어렵사리 다시 마련했다는 줄거리입니다. 집에 난데없이 불이 나서 걸상이고 뭐고 다 타고 말아 잿더미가 되었는데, 이웃집에서 이것저것 도와주어 다시 살림을 꾸렸고, 그림책 주인공은 한 푼 두 푼 모아서 드디어 푹신한 걸상 하나 새로 장만한다는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쉬운 줄거리 흔한 이야기를 그림책 아닌 우리 삶에서 마주하려고 하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멋진 이야기를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스포츠중계 아니고서는 찾지 못하는 요즈음 우리들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화나 책 아니고서는 마주하지 못하는 요즈막 우리들입니다.

 이야기는 없는데 사람은 득시글합니다. 이야기는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는데 돈은 흘러넘칩니다.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으나 자동차며 아파트며 경제성장이며 우뚝우뚝 치솟습니다.


 (2) 어린이책 《미노스》 읽기


 어린이책 《미노스》를 읽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책을 애써 읽을 생각이 없었으나, 아이 엄마와 함께 책방마실을 할 때에 아이 엄마가 골랐습니다. 네덜란드사람이 고양이를 글감 삼아서 쓴 《미노스》이기에, 저보고 이 책이 어떠할 듯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흘끗 살피며 “고양이 이야기네.” 하다가는 한낱 고양이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느끼며 함께 책값을 셈했고, 아이 엄마보다 제가 먼저 읽었습니다. 책 겉에는 글쓴이가 네덜란드에서 아주 손꼽히는 어린이책 작가이며, ‘어린이책에서 노벨상으로 일컫는 안데르센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곳곳에 적혀 있습니다. 아무래도 ‘안데르센’ 같은 이름이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안니 M.G. 슈미트’ 같은 이름은 알아볼 이가 아주 드물 테지요. 아니, 우리 나라에는 이분 책이 고작 세 권 옮겨졌을 뿐이요, 그나마 하나는 예전에 판이 끊어졌고, 다른 하나는 2009년에 나왔습니다. 《미노스》(2004)라는 책을 내놓은 출판사로서는 이 작품이 아무리 빼어나고 재미있다 할지라도 선뜻 작품만으로 사람들한테 알리거나 나누기는 힘들었으리라 봅니다.

 늘 그렇지만, 이 작품 《미노스》를 써낸 ‘안니 M.G.슈미트’라는 네덜란드사람이 네덜란드에서 아주 손꼽히는 분이기 때문에 이 작품 《미노스》가 읽을 만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책에서 노벨상으로 일컫는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 작품 《미노스》가 훌륭하다거나 재미있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삶은 삶이며 작품은 작품입니다. ‘자선단체에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일 수 없고, 널리 이름난 사람이라 해서 아름다운 사람일 수 없습니다. 착하고 참되며 곱게 제 한길을 걷는 가운데 사랑과 믿음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나누는 사람일 때라야 비로소 훌륭합니다. 권정생 할아버지 같은 분은 더도 덜도 아닌 돈을 그때그때 이웃돕기로 내놓으며 살아왔습니다. 누구처럼 몇 백 몇 천만 원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십만 원 이십만 원씩 푼푼이 퍽 자주 내놓았습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어디이든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을 내놓는 사람 이름은 실어 주지 않습니다. 싣는다 할지라도 코딱지만큼 자잘한 글씨로 한 귀퉁이에 실어 놓으니 권정생이든 박정생이든 최정생이든 누구이든 알아볼 수 있지 않아요. 누군가를 돕는 삶이란 나 스스로를 돕는 삶이고, 누군가한테 사랑을 나누는 손길이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손길입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시골 저잣거리에 마실을 다니며 먹을거리를 손수 장만하면서 당신 삶을 꾸리는 가운데 시골 저잣거리 장사꾼들마다 장사하는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린이책 《미노스》에 나오는 ‘미노스’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입니다. 고양이 가운데 도시 골목동네 한켠에서 살아가는 골목고양이입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 미노스는 무슨 화학 실험실 곁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다가 쓰레기통에 있던 무언가를 먹으며 사람이 되고 맙니다. 꿈 같은 소리라 여길 만합니다만, 오늘날 과학자들이 벌이는 숱한 실험이란 몹씨 끔찍할 뿐 아니라 사람 유전자까지 건드리고 있음을 돌아본다면, 그저 문학책에서 ‘거짓말처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닌 ‘참말처럼’ 우리 삶터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따이이따이병이나 미나마따병 피해자들이라든지, 미국 군인이 베트남에 뿌려댄 고엽제 때문에 2세와 3세가 받는 피해를 살피면, 사람이 벌인 생화학 실험과 과학 실험과 무기 실험과 전쟁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 몸이 뒤틀리거나 비틀리며 엉망이 됩니다. 이뿐 아니라 푸나무와 짐승마저 엉망이 되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 가운데 ‘유전자 안 건드린 곡식’이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고기 가운데 ‘유전자 건드린 곡식으로 만든 사료와 항생제’를 안 먹고 큰 돼지나 닭이나 소 들이란 거의 없습니다.

 고양이 미노스는 사람이 저지른 끔찍한 일 때문에 얼결에 사람 모양이 되고 맙니다. 사람 말을 하고 사람처럼 걷고 움직입니다. 미노스는 사람 꼴이 되었어도 스스로 고양이요 고양이 말을 하고 고양이 노래를 부릅니다. 고양이처럼 새를 잡아먹으려 하고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며 고양이처럼 나무를 타고 지붕을 타며 잠을 잡니다. 그런데 미노스는 고양이 꼴이 아닌 사람 꼴인 까닭에, 미노스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미노스를 얄궂게 바라봅니다. 미노스한테 ‘고양이 짓’이 아닌 ‘사람 짓’을 하라고 들볶습니다. 똑같은 틀에 똑같은 울타리에 똑같은 고리를 채우려 합니다.

 둘레 사람들이 들볶는 가운데에도 ‘사람고양이(또는 고양이사람)’ 미노스는 고양이하고 사귀며 지냅니다. 고양이하고 사귀며 지내다가 당신 몸 하나를 건사해 주고 밥(먹이)을 챙겨 주는 토마한테서 따스함과 넉넉함을 느낍니다. 미노스는 사람들한테 잔뜩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사람내음을 살가이 받아들이거나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고양이인 이녁을 꾸밈없이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는 토마라고 하는 사람 하나한테 이끌립니다. 미노스로서는, 고양이 몸에 고양이 삶일 때이든 사람 몸에 고양이 삶일 때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제 목숨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즐길 뿐입니다. 사람 껍데기를 썼다고 해서 제 삶을 잃거나 버리지 않아요. 고양이 껍데기를 쓴다고 해서 제 삶이 더 아름답거나 알차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떤 껍데기이든, 어디에서 지내든, 누구하고 어울리든, 미노스 스스로 미노스를 사랑하고 아끼는 길을 깨닫습니다. 아직 어린 고양이였던 미노스는 사랑과 삶과 웃음과 눈물을 고이 헤아리면서 ‘어른’ 고양이사람(또는 어른 사람고양이)인 이녁으로 새로 태어나는 나날을 누립니다.

 삶을 따져야지 가방끈이라는 학력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사랑을 살펴야지 얼굴이나 몸매를 살필 일이 아닙니다. 믿음을 섬겨야지 이름값 따위를 섬길 노릇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찾아야지 돈을 찾을 노릇이 아닙니다. 눈물과 웃음을 골고루 맞아들여야지 권력이라는 주먹다짐을 맞아들일 노릇이 아니에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우리들입니다. 좋은 어른이 될 우리들입니다. 좋은 삶을 사랑할 우리들입니다. 좋은 이웃하고 어깨동무할 우리들입니다. 좋은 일과 좋은 놀이를 붙잡을 우리들입니다. 좋은 밥과 좋은 집이란 돈이 아닌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며 따스함과 넉넉함으로 장만할 수 있음을 깨달을 우리들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를 더 먹었다고 더 어른이지 않습니다. 나이값을 해야 어른이고, 나이에 따라 알맞춤하게 값을 하는 아름다운 삶이어야 바야흐로 아름다운 어른입니다. 아름답게 살아가야 아름다운 사람이면서 아른다운 어린이나 어른으로 자리잡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지 않으면서 ‘경로우대’만을 바란다면 참으로 슬픕니다. 어른이란, 아니 모든 사람이란, 저마다 제 땅 제 터전 제 누리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땀흘리고 손을 맞잡는 사람들이에요. 《미노스》에 나오는 미노스는 아름다움이라는 열매를 찾고 즐기고 누리며 나누는 살가운 길을 부드럽고 맛깔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사람은 왜 ‘고양이 말’을 듣지 못하는가


 어린이책 《미노스》를 읽다 보면, 사람은 왜 고양이 말을 듣지 못하는가 하고 자꾸자꾸 고개를 갸웃할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사람들 가운데 고양이 말을 듣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개 말을 듣는다거나 새 말을 듣는다거나 보리 말을 듣는다거나 복숭아 말을 듣는다고 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뭅니다. 쉬리가 하는 말이라든지 송사리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밤나무가 하는 말이라든지 봉숭아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모두들 돈이 들려주는 말만 들으려 합니다. 저마다 아파트가 들려주는 말만 들으려 합니다. 자꾸자꾸 자가용이 들려주는 말 아니고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우리 아이가 들려주는 말뿐 아니라 이웃 아이가 노래하는 말은 아예 귀담아듣지 못하기까지 합니다.

 《미노스》라는 책을 읽을 때에는, 사람들 말인지 고양이들 말인지, 아니면 우리가 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말인지를 찬찬히 가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따로 고양이 말이라든지 사람 말로 가른다기보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뭇목숨 말마디라고 느끼며 새삼스레 《미노스》를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 (4343.8.4.물.ㅎㄲㅅㄱ)


[11∼12쪽] “이 봐. 내가 자네 좋아하는 거 알지? 자넨 아주 똑똑한 친구고. 재미있는 기사도 쓸 줄 알아. 하지만 여긴 신문사야. 신문에는 뉴스가 나와야 하는 법이야.” “뉴스라면 이미 신문에 많이 나와 있는걸요! 전쟁 소식도 있고. 뭐 그 비슷한 다른 소식들도 있고요. 살인 사건도 있잖아요! 제 생각엔, 사람들이 가끔 고양이나 새로 난 잎에 대한 얘기를 읽으면서 서로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는 것도 뉴스를 읽는 것만큼 좋은 일인 것 같은데요 …….”

[19쪽] “벌써 생선 냄새를 맡았구나! 부엌으로 가자. 요리해서 같이 먹어야지. 플루프(고양이 이름). 생선 한 마리 통째로 줄게. 너한테 생선을 사 주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왜냐면 말이지. 내일. 나 해고당할 거거든!  길거리에 나앉을 거야! 쫓겨나고 말 거라고! 그러면 돈 한 푼 못 벌고, 너랑 나랑 같이 구걸이나 해야겠지.” “야옹!”

[53쪽] “가지 마! 떠돌이 고양이로 살라고! 자유롭게 말야! 그렇지 않으면 한 달만 지나도 주사를 맞으러 동물병원에 다니는 신세가 될 거야.”

[59쪽] 그는 예전처럼 숫기가 없었다. 이 뉴스는 모두 고양이들한테서 들은 것이었다. 그는 받아적었을 뿐이다. 그것 말고 다른 일을 한 게 있다면 …… 아주 부지런히, 고양이들이 얘기한 것이 정말로 사실인지 확인해 보는 것 정도였다.

[65쪽] “토마 씨, 그건 못하겠어요! 사람들이 무섭거든요.” “바보같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미노스는 긴 눈을 가늘게 드고는 잠시 그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어색해져서 얼굴을 돌렸다. 토마는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얘길 할 수 있지? 나도 수줍음 많고 겁 많은데! 나 역시 사람들보다 고양이들을 만나는 게 좋은데 말야!’

[93쪽] “저 여자가 바로 그 토마 시네 여자래!” “비서래요 …… 상자 안에서 잔다는!” “밤에는 지붕 위를 걸어다닌다지!” “정말 이상한 여자야!” 빵집 주인이 그 얘기를 다 듣고는 말했다.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나한테는 은인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면 됐지요. 호밀빵 반 덩이 달라고 하셨나요?”

[116∼117쪽] “시장님인가요?” 미노스가 속삭였다. “아뇨. 탈취제 공장 사장 말베르 씨예요. 아주 유명한 사람이죠. 좋은 일을 많이 하거든요.” “어떤 종류의 좋은 일인데요?” 미노스가 궁금해했다. “자선 단체에 돈을 내죠.”

[188쪽] “기사를 스실 건가요?” “예.” “어머! 그 기사를 쓰신다고요? 말베르에 관해서요?” “맞아요. 증거가 있든 없든 신경 안 쓸래요. 증인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아요!”

[217쪽] “사진이 잘못됐습니다!” 강당 안이 술렁거렸다. 그때 다음 슬라이드가 나타났는데 이번엔 아주 분명하게 말베르 씨가 개를 때리는 채찍으로 외퀴메니 고양이를 때리는 장면이었다. 말베르 씨는 정말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건 우리 고양이예요!” 목사가 소리쳤다.

[239쪽] 플루프는 그에게 몸을 비벼대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다. 고양이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게 그렇게 안타까운 적이 없었다! 어쨌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건 알 수 있었다!

[250쪽] “고양이들이 하는 평범한 짓은 뭐든지 다시 할 수 있어! 뭘 생각하고 망설이는 거야?”

[270쪽] 토마는 부엌 창 밖으로 몸을 빼고 소리쳤다. “아침 식사 준비 다 됐어요! 고양이랑 사람이랑 모두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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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들의 주머니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최정인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눈물과 웃음이 없다면 학교일 수 없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41] 하이타니 겐지로, 《악동들의 주머니》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자니 팔뚝이 근지러워 비비다가 모기 한 마리를 잡습니다. 모기는 제 팔뚝에 앉아 피를 빨아먹으려다가 그만 으스러지고 맙니다.

 며칠 앞서부터 모기가 하나둘 보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맘때면 모기 때문에 못 살겠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끔찍했는데, 올해에는 좀처럼 모기 구경이 어려웠습니다.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으니 모기라는 녀석이 퍽 늦게 깨어나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제 저녁이나 그제 저녁에는 달빛이 무척 밝았습니다. 보름달이 아닌 반달이었으나 집안으로 달빛이 곱다시 비쳐들더군요. 보름달 빛이었다면 집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았겠구나 싶습니다. 반달 빛으로는 책을 읽기에는 모자라지만, 길가에 켜 놓는 등불만큼은 밝다고 느낍니다.

 우리 세 식구 깃든 산골마을에는 둘레 길가에 따로 등불이 없으니까 오로지 달빛에 기댑니다. 따로 손전등을 켜고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어두운 길에서는 얼마쯤 기다리고 있으면 밤눈이 트여 다 보이기에 굳이 손전등이 없어도 됩니다. 손전등을 켜면 오히려 잘 보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지낼 때에도 달은 늘 올려다보기는 했으나,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달빛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깊은 밤에도 길마다 등불이 환히 켜져 있기 때문입니다. 등불 하나 없이 깜깜한 골목이란 어디에도 없기에, 그나마 좀 어둡겠다 싶으면 자동차 불빛이 들이치면서 어두움다운 어두움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밝은 낮에도 얼마나 어떻게 왜 밝은가를 느끼지 못하는 도시요, 어두울 저녁에도 얼마나 어떻게 왜 어두워야 하는가를 느낄 수 없는 도시인 셈입니다.

 요즈음 같은 찜통 더위에는 그야말로 푹푹 찌는 더위를 느껴야 할 텐데, 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후줄근하게 땀을 쏟으며 더위를 느낄 테지만, 건물 안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너무 낮게 맞춘 에어컨 때문에 긴소매에 긴바지를 입어도 춥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시골이라 해서 이런 날씨가 다르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도 건물 안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건물 안팎 느낌이 지나치게 다릅니다. 시골에서 차를 몰 때에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면 될 텐데, 시골에서 차를 몰며 창문을 열고 알맞게 달리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우리 스스로 살짝이나마 생각하는 기운이 남아 있다면, 우리가 이토록 에어컨을 많이 쓴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리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여름날 ‘더위를 식히려’고 도시사람이 찾아가던 곳은 은행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관공서조차 에어컨을 들여놓고 펑펑 틀어대지 못했어요. 고작 1980년대를 헤아리고 1970년대를 더듬자면, 선풍기 한 대 들여놓는 일마저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1994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동안 대학교를 다녔는데, 이무렵 인천에서 서울로 전철을 타고 오가면서 ‘에어컨 달린 국철’은 타 보지 못했습니다. 이무렵 국철은 ‘선풍기 달린 국철’이었고, 선풍기조차 안 달려 있어 창문을 여는 국철이 수두룩했고, 선풍기가 달려 있어도 망가져 있거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언제나 창문을 열고 다녔습니다(이무렵 서울 지하철은 모두 에어컨이 달려 있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부채로 더위를 식혔고, 등물을 한다든지 모시옷을 입는다든지 제철 열매를 먹는다든지 하면서 땀을 식히려 했습니다. 모두모두 선풍기나 에어컨을 쓰는 삶이 아닌, 거의 모두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더위를 받아들이는 삶이 우리 삶이었습니다. 지난날에도 오늘날처럼 도시가 있었으나, 도시라 할지라도 전기이며 물질이며 되도록 쓰지 않는 가운데 서로서로 엇비슷하게 가난하면서 오붓한 살림살이였습니다.


.. “이 아이들은 1학년 동생들이 정성껏 기르는 화분을 발로 차서 깨뜨리고 지나갔어요. 대체 이 아이들한테도 따뜻한 마음이 있을까요?” 1학년 주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때는 어벙이가 어쩌다 화분에 발이 걸려 화분을 깨뜨려 버렸어. 어벙이 혼자 야단맞으면 너무 불쌍하니까 우리도 같이 화분을 찬 것뿐이라고. 하지만 변명 따윈 안 해 선생한테 변명하는 녀석은 인간쓰레기야.’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아이들은 저희 반 아이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돈을 빼앗은 적이 있어요. 그 아이는 워낙 성격이 소심해 그 뒤로는 겁이 나서 학교에도 잘 나오지 못할 정도라고요.” 5학년 주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 자식은 집에서 몰래 돈을 갖고 나와 아이들한테 한턱 쓰고는 그 아이들을 자기 부하처럼 부려먹는 나쁜 놈이란 말야. 그래서 우리가 대신 벌을 준 것뿐이라고. 하지만 변명 따윈 안해. 선생한테 변명을 하면 그 자식이랑 똑같아져 버리니까.’ 아이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  (15∼16쪽)


 여름날 흙길을 걸어가며 느끼는 더위하고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길을 걸으며 느끼는 더위는 사뭇 다릅니다. 숲길을 거닐 때 느끼는 더위 또한 크게 다릅니다. 더 많은 돈과 끝없는 경제개발을 바라면서 온 나라가 도시로 바뀌고 갖가지 회사가 생겨납니다. 농사지을 터전은 줄고, 농사짓겠다는 사람 또한 줄며, 회사일 하겠다는 사람이나 셈틀 자판 만지작거리겠다는 사람은 늡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시험 공부만을 시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참다운 환경 공부를 시키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라든지 기후변화 같은 낱말을 가르치고, 이러한 환경 문제를 지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만, 정작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풀어낼 길을 우리 삶에서 우리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찾아 고치거나 다독여야 할는지를 일깨우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모조리 부자가 되어 ‘더 많이 벌어들인 돈’으로 ‘생태에너지’를 만들거나 ‘환경 지키기에 투자’를 한다고 해서 우리 터전이 나아질 수 없습니다만, 학교에서 이러한 틀거리를 올곧게 가르치거나 받아들이는 적은 없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농업고등학교’는 몇 군데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아도, 농업고등학교라 해서 농사꾼 되는 길을 가르친 학교는 드물었습니다. 시골학교조차 농사꾼을 키우는 배움마당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온통 도시로 나아가도록 내몰고,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전문지식인이 되도록 몰아쳤을 뿐입니다.

 사람들 누구나 몸으로 내 삶을 느끼거나 헤아리며 내 삶을 아름다이 가꿀 길을 찾도록 이끄는 학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안학교라 할지라도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전문지식인 노릇을 하는 사람이 되는 길로 나아가지, 대안학교 가운데 농사꾼을 말하거나 농사꾼으로 가르치는 곳이 몇 군데 있을까요. 당신 아이를 대안학교로 보내면서 ‘우리 아이는 흙과 물과 바람과 벌레와 풀을 사랑하는 농사꾼이 되면 좋겠어요’ 하고 꿈꾸는 어버이는 있기나 있는지요. 아니, 어버이부터 스스로 농사꾼이 되고자 꿈꾸기는 하는지요.


.. 수수깡은 엄마와 단둘이 산다. 수수깡의 아버지는 공해병을 앓았지만 공해병 환자로 인정받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병원에서 공해병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지 않은 탓에 보상도 전혀 받지 못했다. 수수깡은 키가 작고 야윈 것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너는 정말 효녀구나.” 수수깡은 엄마한테 이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수수깡은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공부가 아닌 다른 것으로 엄마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디선가 먹을 것이 생기면 반은 자기가 먹고 반은 반드시 집에 가져가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었다 ..  (17∼18쪽)


 우리 나라 사람들 거의 모두가 살아가면서 돈을 벌고 일자리를 찾는 가운데, 사람을 사귀고 문화와 예술을 누리는 한편, 보금자리를 빌라나 아파트로 마련하는 도시라고 하는 터전입니다. 이러한 도시인 탓에 도시 학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데에 알맞춤한 지식을 베풀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우리들은 모두 사람입니다. 목숨 하나 곱게 선물받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사람다이 살아가는 길을 학교에서 익히고 배우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목숨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어야지, 돈만 잘 번다거나 이름값만 드높인다거나 권력을 움켜쥔다거나 해서 무슨 즐거움이나 보람이 있을는지요. 다 같이 물을 사다 마시는 도시 삶터가 아닌, 모두 다 물을 ‘흐르는 냇물에서 얻어 마시는’ 시골 삶터로 거듭날 수 없을는지요.

 학교는 언제까지 모든 아이들한테 지식조각만 쑤셔넣는 감옥소 같은 데로 남아 있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학교는 왜 모든 아이들한테 교과서와 몇 가지 권장도서만 읽히며 아이들 넋과 얼을 짓누르는 감옥소 노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학교는 이름 그대로 ‘배우는 터전’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 “우리, 공부는 못 하지만 쓸모없지는 않아.” 다보가 말했다. “공부 못 하는 게 반을 욕먹이는 짓이냐? 말도 안 돼.” 오탸양도 맞장구를 쳤다. “선생한테 알랑방구나 뀌고 시험 점수를 잘 받으려고 만날 낑낑대기나 하지. 자기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건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자식이 큰소리치기는. 그런 자식이야말로 쓸모없는 인간 아니냐? 바보, 머저리 아니냐고!” 세이조는 화가 점점 더 치미는 모양이었다. “가바시마 선생님은 우리를 나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겠지?” ..  (31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쓴 짤막한 어린이책 《악동들의 주머니》라는 작품을 읽으면, 1970년대 일본 가난한 마을 아이들이 학교에서 복닥이는 삶이 고스란히 나와 있습니다. 2010년대 한국 아이들이라면 겪기 힘들 만한 삶이요, 2010년대 한국땅 가난한 마을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느끼기 어려운 삶이 아니랴 싶은데, 이웃나라 지난날 삶이든 이웃나라 가난한 마을 아이들 삶이든 그곳에서나 이곳에서나 똑같이 마주할 법한 사람내음 묻어나는 삶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놓인 자리와 살아가는 자리는 틀림없이 다르지만, 학교가 학교답지 못한 곳이라면 사회가 사회답지 못할 뿐더러 사람들이 사람들답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던져 놓는다고 아이들이 온갖 지식을 잘 받아들여 시험 잘 치르는 아이가 되겠습니까.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 놓고 돈벌이를 하는 어른들은 스스로 아름다이 꾸리는 삶이 되겠습니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 스스로 당신 살림터와 마을에서 언제나 아이들하고 오붓하고 살가이 어깨동무하고 있어야 합니다. 굳이 학교라는 데에 보내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씩씩하고 튼튼하며 슬기롭게 자라날 수 있는 배움마당을 늘 베풀어 놓고 있어야 합니다. 따로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되는 마을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야 참다이 배우고 올바로 배움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지 않다면 학교는 감옥소에 머물 테니까요. 이렇게 할 수 없다면 학교는 감옥소 노릇만 알뜰히 할 테니까요. 생김새도 감옥소이고, 아이들한테 붙이는 이름(번호) 또한 감옥소다우며, 아이들한테 시키는 공부 또한 감옥소 얼거리입니다. 하루 내내 시멘트 교실에 가두어 놓은 채 바깥바람 쐴 겨를조차 주지 않기 일쑤인 학교 아닙니까. 교사와 학생이 즐겁게 앎과 슬기를 나누는 열린 터전이 아닌, 교사가 학생한테 온갖 지식을 쑤셔박는 외곬 늪이 아닙니까. 아이 하나하나를 골고루 헤아리는 학교를 본 적이란 없습니다. 아이가 서른이든 예순이든, 서른 아이이든 예순 아이이든 저마다 다른 삶이고 목숨이며 넋입니다. 이 다 다른 아이들이 똑같은 회사원이나 전문지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아름다운 일꾼이 되고 살림꾼이 되며 어른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할머니는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에게 똑같이 나눠 주었다. 그런데 음식을 모두 열 개씩 샀기 때문에 종류마다 하나씩 남았다. “할머니, 그건 할머니 아들 몫이야?” “오냐.” 할머니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할머니. 다음에 할머니 아들이 외국에서 돌아오면 꼭 같이 살아야 돼요.” 하고 도메코가 말했다. “오래오래.” 세이조도 말했다. “아아아아, 아아, 아아…….” “오냐오냐.” ..  (136쪽)


 《악동들의 주머니》에 나오는 ‘악동’들은 교사가 붙여 준 이름대로 ‘악동’입니다. 이 악동들은 저희 스스로라든지 마을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착한 ‘아이’입니다.

 이 나라 숱한 제도권학교는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고 푸름이를 푸름이로 보지 않습니다. 이 나라 대학교 가운데 젊은이를 젊은이 그대로 바라보는 곳이 한 군데라도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이는 이 나라 대안학교 또한 엇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아이이지, 학생이 아닙니다. 푸름이는 푸름이이지 학생이 아니며, 젊은이는 젊은이이지 학생이 아닙니다.

 학생만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교사 또한 배우는 사람입니다. 서로 배우는 사람이고, 서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학교라는 곳이 배움마당이라는 이름을 얻은 까닭은, 교사라고 하는 전문지식인이 학생이라고 하는 덜 여문 풋내기한테 숱한 지식을 집어넣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서로서로 어른과 아이, 또는 어른과 푸름이, 또는 늙은이(어르신)와 젊은이라는 사이로 만나면서 서로서로 다른 삶과 넋과 말을 느끼는 가운데 서로서로 아름다울 길을 깨달아 다 함께 발돋움하며 즐거울 터전이 되기 때문에 배움마당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 “깡패도 착한 깡패, 나쁜 깡패가 있어?” “당연하지. 아양 형은 착한 깡패야. 이것 봐, 우리한테 초콜릿도 주잖아. 선생들이 우리한테 초콜릿 준 적 있어?” ‘치, 거기서 초콜릿 이야기가 왜 나와? 그치만 아양 오빠는 늘 우리 친구였어. 선생님 중에 우리 친구는 한 명도 없어.’ 하고 도메코는 생각했다. “그치만 세상에 정말로 착한 깡패가 있을까?” ..  (37∼38쪽)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 교사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하며 함께 배우고 함께 즐길 수 있어야 교사입니다. 무엇이든 모르고 있는 학생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하며 함께 배우고 함께 즐기는 마음을 키우는 학생입니다.

 제도권학교 열두 해를 다니며 내 동무하고 이웃하고 살붙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을 배운 적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열두 해를 거쳐 들어갔던 대학교에서도 ‘함께’ 살아가며 어깨동무하는 삶을 배울 수 없었다고 느낍니다. 중학교라는 문턱을 밟자마자 이런 곳은 곧바로 때려치워야 한다고 느꼈으나 여섯 해를 마지못해 참았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네 해를 더 감옥소살이를 해야 한다고 느끼니 몹시 아찔했습니다. 대학교라는 곳은 아주 마땅히 다니지 말아야 할 곳이어서, 다섯 학기까지 참다가 그예 그만두었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 학교라는 곳은 내 동무와 이웃과 살붙이하고 아름다이 부대낄 삶을 가로막는 슬픈 울 안이라고 느낍니다. 기쁜 열린 마당이 될 수 있고, 신나는 열린 배움터가 될 수 있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더 많은 돈과 큰 힘과 높은 이름을 꿈꾸면서 학교를 자꾸자꾸 더 굳센 감옥소로 다져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눈물을 잃고 웃음을 버리고 있습니다. (4343.7.22.나무.ㅎㄲㅅㄱ)


 ┌ 《악동들의 주머니》(양철북,2006)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그림 : 최정인
 └ 책값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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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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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52 ― 대학은 왜 대학다움을 잃었는가
 : 김예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책이름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글 : 김예슬
- 펴낸곳 : 느린걸음 (2010.4.14.)
- 책값 : 7500원


 (1) 이 나라에 무슨 배움터가 있는가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사진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그림을 배우는 학과를 다녔다고 해서 그림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마친 사람이 글작가이지 않습니다. 대학생일 때에 빼어난 작품을 내놓았으면 이때부터 작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등학생 때에 작가 소리를 듣고, 어느 사람은 예순이나 일흔 나이에 비로소 작가 소리를 듣습니다.

 사진 강좌를 들었다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습니다. 출판 강좌를 들었다고 책을 잘 만들 수 없습니다. 요리 강좌를 들었다고 밥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 강의나 교육관 강좌란 지식을 차근차근 일러 주며 지식에 따라 하나하나 깨우치도록 이끄는 이야기나눔일 뿐입니다. 이러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어떠한 일을 잘 해내거나 훌륭히 해낼 수 없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가를 깨닫고 꾸준하게 한길을 걸을 때에 비로소 작가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책으로 담아야 하는가를 느끼며 차근차근 책을 만들어야 비로소 책쟁이입니다. 스스로 누구하고 어떻게 어느 자리에서 밥을 나누려 하는가를 살피며 국자나 칼을 들어야 비로소 밥하기(요리)를 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늘 우리 터전에서는 전문 직업인이 되자면 어쩔 수 없이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읽어 온 책을 그러모아 동네 한켠에서 조그맣게 도서관 하나를 열었습니다만, 우리 나라 법으로는 제가 연 도서관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을 뿐더러, 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도서관을 열고자 한다면 반드시 대학교 도서관학과를 마쳐야 하고 사서자격증까지 따 놓아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사랑하고 아끼며 깊이 보듬는 삶을 꾸린다고 해서 도서관을 열 수는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는 기자가 될 때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쳤으나 빛나는 넋과 밝은 눈과 굳센 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기자로 뽑아서 어깨동무하는 언론매체는 한 군데라도 있을는지요. 아무런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나 옳고 맑고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기자로 받아들여 손잡는 언론매체가 있는지요.

 의사라고 하는 일이든 법관이라 하는 일이든 공무원이라고 하는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내는 지식하고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만 참말로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지식을 다루는 마음이 없거나 지식을 펼칠 줄 아는 매무새를 살피지 않고 졸업장과 자격증만으로 전문 직업인을 쏟아내는 사회 얼거리란 얼마나 올바를는지 궁금합니다.

 교사를 가린다고 하는 교사 자격증이란 ‘어느 한 사람이 얼마나 교사다운가’ 하고 말해 주는 자격증이 될 만할까요.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옳고 바르고 아름다이 가르칠 수 있는가요. 교사 자격증이란, 교과서 지식을 학년과정에 맞추어 머리속에 알뜰히 집어넣을 수 있는 재주를 갖춘 사람임을 말하는 셈 아닌지요.

 초중고등학교를 열두 해 다닌 제 지난날을 헤아리면, 이동안 만난 교사들 가운데 몽둥이를 들지 않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은 교사란 다섯 손가락에 꼽기 어려울 만큼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인 우리한테 욕이나 거친 말을 쏟아내지 않은 교사 또한 다섯 손가락에 꼽기 힘들 만큼 아주 드뭅니다. 이들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모두 교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요, 교육대학교에서 교육을 배운 이들일 텐데, 아이와 마주한 자리에서 어른다움을 보여주며 스스로 본보기가 되지는 못했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아름다운 스승으로 서고자 마음을 쓰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열두 해에 걸쳐 학교라는 울타리 안쪽에서 아름다운 스승을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언제나 학교 안쪽에 머물 마음이 없었고 이무렵 학교에서 복닥인 이야기는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마음에 아로새겨질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학교에서는 느끼거나 얻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교사들은 왜 교과서 진도에 발목이 잡혀 있어야 할까요. 교과서는 우리한테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하며 멋지고 사랑스러운 책일까요. 교사가 학생한테 할 일은 교과서 지식 집어넣기가 끝인가요. 교사란 어떤 사람이요 어떻게 살아갈 사람일까요. 교사들은 으레 우리들 앞에서 “교사도 사람이야!” 하고 외치며 성을 내고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러면 몽둥이에 얻어맞을 뿐 아니라 머리카락이 잘리고 욕설을 듣고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갇혀 지내야 하는 “학생도 사람”일 텐데, 학생도 사람이라고 여긴 교사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2010년대로 접어든 오늘날, 학교라는 울타리가 지난날과 견주어 새롭게 바뀌었다거나 크게 달라졌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지난날 제 어릴 적에는 국민학생 때에 틈나는 대로 온갖 놀이를 즐겼습니다. 언니 오빠 형 누나 들한테서 온갖 놀이를 물려받으며 동생한테 온갖 놀이를 고스란히 물려주며 놀았습니다. 이 흐름은 중학교 문턱을 밟자마자 깨졌는데,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 놀이가 가로막히면서 푸름이들이 푸름이 놀이를 즐기지 못하도록 하는 굴레를 여섯 해나 보내다 보니,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동무들이 즐긴다는 놀이란 고작 술ㆍ담배ㆍ당구뿐이었고, 참다운 사랑이 아닌 아랫도리 사랑뿐이었습니다. 올바로 배우도록 이끌지 못한 학교인 까닭에 올바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즐겁게 놀도록 풀어놓지 않은 학교인 터라 즐거이 놀 줄을 잊은 한편, 참다운 사랑을 나누지 않은 학교였기에 참다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마음씨를 잃었다고 하겠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가 아름답고 즐거우며 슬기롭고 신나는 열두 해로 자리매기지 못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리하여 고등학교를 마치고 들어간다는 대학교에서 아름답고 즐거우며 슬기롭고 신나는 새 배움과 새 사랑과 새 기쁨과 새 마음과 새 넋으로 이어지거나 거듭날 수 없구나 싶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갑작스레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간다고 사진작가가 되거나 예술가가 되겠습니까. 아름다운 밑바탕을 다지지 못한 지난 열두 해인데,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나누겠습니까. 마음껏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아랫도리) 사랑놀이에 빠질 줄은 알아도, 마음껏 배우고 실컷 (참) 사랑을 하며 기쁘게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어떻게 스스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대학교가 대학교다우려면 대학교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지만, 이에 앞서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가 올바르게 고쳐져야 합니다. 대학바라기 열두 해가 아닌, 초등은 초등대로 아름답고 알차며 즐거운 나날이요, 중등은 중등대로 훌륭하며 살갑고 기쁜 나날인 가운데, 고등은 고등대로 빛나며 멋지고 재미난 나날이 되도록 학교 얼거리가 싹 바뀌어야 합니다. 교과서란 교육과정을 돕는 교재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교사가 먼저 깨달아 학생한테 스스로 ‘책다운 책’을 찾아 읽도록 돕는 한편, 교사 또한 언제나 ‘책다운 책’을 바지런히 찾아 읽으며 슬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 너무 긴 나날을 보내지 않아야 하고, 학교 울타리 바깥쪽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과 동무를 널리 사귀고 마주하면서 우리 삶터를 깊고 넓게 헤아리는 눈썰미를 교사와 학생이 나란히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인 밥과 옷과 집을 내 손으로 스스로 일구어 얻을 수 있게끔 교사부터 살아내고 학생들 또한 집안에서 살림살이를 알뜰히 익히도록 어버이들이 가르치고 도와야 합니다. 교사와 어버이란 사람들은 이름만 ‘어른’이 아닌 속살 가득 참어른으로 살아내면서 아이들한테 좋은 삶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튼튼한 버팀나무이자 싱그러운 나무그늘 노릇을 하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교육이란, 그러니까 우리 말로 하자면 ‘배움’이란 바로 삶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어떻게 꾸리느냐가 바로 배움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삶을 어느 결에 따라 일구느냐가 바로 배움입니다. 우리 나라 교육기관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로 나뉘어 있지만, 정작 배움터다운 모습은 하나도 못 갖추고 있습니다.


 (2) 사람다이 살고픈 외침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 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13∼14쪽).”고 외친 김예슬 님이 당신 생각을 책 하나로 갈무리했습니다. 김예슬 님에 앞서 대학교를 그만둔 사람이 많았고, 김예슬 님 뒤에 대학교를 그만둘 사람도 많을 텐데, 사람들은 ‘김예슬 선언’이라는 이름을 붙여 김예슬 님을 떠올리거나 이야기합니다.

 김예슬 님 생각이 담긴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125쪽짜리 작은 책입니다. 김예슬 님이 대자보 하나를 쓰고 1인시위를 하면서 그만둔 대학 삶을 ‘짤막한’ 대자보로는 모두 밝힐 수 없었기에 ‘조금 긴’ 글을 써서 책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자격증 장사를 하는 대학교이고, 소비중독으로 내모는 학습중독으로 젖어들도록 하며, 삶은 없이 학문만 가득한 지식인들 모습을 당신한테서 스스로 느끼는 가운데,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 없는데다가 우리들은 88만 원 세대가 아니라고 하는 외침을 한 올 두 올 담았습니다.

 작은 책, 그야말로 작은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작은 책에 담긴 이야기는 하나도 새롭지 않습니다. 이 조그마한 책에 담긴 줄거리는 어느 하나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이 수수한 책에 깃든 생각자락을 모르는 지식인은 하나도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조촐한 책에 서린 아픔과 생채기를 모를 여느 어른이나 교사나 어버이 또한 따로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다고 하는 대학 문제는 그치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는 대학 문제는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다들 알고 있다고 하면서 대학 문제를 비롯해 교육 문제를 푸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지만 정작 몸으로는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더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팍팍해지는 대학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말글학자로만 알고 있으나, 교육학자로 오랜 나날을 보냈던 최현배 님은 일제강점기에 ‘페스탈로찌 논문’을 썼고, 해방 뒤에는 《나라 건지는 교육》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말글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최현배 님은 1950년대에 진작 ‘대학입시가 큰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대학입시뿐 아니라 국민학교 입시 또한 몹시 큰 말썽거리였다니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느니 뭐를 더 가르치느니 하면서 떠들썩한 모양새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지난날에는 국민학교 입시 때문에 어린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들볶여야 했고, 오늘날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알파벳을 가르친다고 법석이요 참다운 마음닦이를 하도록 이끌지 못하니, 예나 이제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들볶이기만 합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는 내내 최현배 님이 쓴 《나라 건지는 교육》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예순 해가 흐르는 동안 ‘먹고 입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물질문명은 더할 나위 없이 나아졌으나,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고 나누고 사랑하는’ 마음살이는 그지없이 뒷걸음을 치거나 나동그라지고 있구나 싶습니다. 참다이 나아지지 못하는 이 나라이니,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고,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는 판이기에 곱고 맑은 꿈이 꽃피우기 어렵습니다.

 대학교는 대학교다워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합니다.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살림집은 살림집다워야 합니다. 동네는 동네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새로워진다고 이 하나가 제대로 새로워진다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와 초중고등학교와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나란히 새로워지면서 올바른 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교사만 훌륭해진다고 학생들이 좋을 수 없습니다. 교사를 비롯해 여느 어른 모두와 어버이들이 다 함께 훌륭해져야 하고, 여느 자리 여느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훌륭히 가르친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엉망진창이라거나 동네 삶터는 엉터리라 한다면 모든 배움이란 도루묵이요 부질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동네 삶터는 아름답거나 집안 살림살이는 훌륭하달지라도 학교가 엉터리라면 아이들은 아주 힘들고 벅찹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와 아이를 맡아 가르친다는 교사를 비롯해 동네 어른이자 형이자 언니이자 누나이자 오빠인 사람 모두 참되고 착하고 고운 길을 살피고 찾고 느끼며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나라 건지는 배움”이 이루어집니다. 이럴 때에 바야흐로 “대학교를 다녀도 좋고 대학교를 안 다녀도 좋은”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3) 되새겨 읽는 배움말


 김예슬 님 앞서 대학교를 그만두거나 처음부터 안 다닌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김예슬 님은 숱한 ‘고졸자’나 ‘중졸자’나 ‘국졸자’나 ‘무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력을 으뜸으로 치면서 경쟁주의와 1등주의가 넘실거리는 한국땅에서는 졸업장 하나 안 가지면서 받아야 할 불이익과 손해가 제법 큽니다. 가방끈 짧은 사람한테는 전문 직업인 길이란 거의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 직업인이 아닌 살림꾼 자리는 가방끈하고 하나도 얽히지 않습니다. 가방끈이 길어야 사랑을 잘하겠습니까. 가방끈이 짧으면 믿음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가방끈이 길어야 아이를 잘 낳을까요. 가방끈이 짧으면 농사를 못 짓겠습니까.

 김예슬 님으로서는 주류 권력층 자리에서 스스로 떨려 나왔는데, 주류 권력층을 생각하면 아쉽겠지만 낮은 자리와 가난한 자리를 헤아리면 한결 너르고 넉넉하며 너그러운 새 이웃과 동무를 만나고 사귈 수 있어 기쁠 수 있습니다. 주류를 살피지 않고 사람을 살피는 자리로 들어선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하고, 권력층을 기웃거리지 않고 못목숨을 사랑하는 자리에 한 발 디딘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한 발을 디뎠을 뿐이지, 걸음을 걷는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막 디딘 한 발이 튼튼한 걸음걸이가 될 수 있게끔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디디는 한 발 두 발이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스스로 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가난한 배움에 가난한 몸에 가난한 마음에 가난한 믿음에 가난한 말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마더 데레사 님은 ‘말이 가난해야 하느님 뜻을 알아듣고 하느님 뜻을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살림과 배움과 몸과 마음과 믿음뿐 아니라 말까지 가난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음고리를 곰곰이 되짚으며 스스로 가난한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나눌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알알이 실린 말마디 몇 가지를 추려서 되새겨 봅니다. (4343.6.22.불.ㅎㄲㅅㄱ)


[20, 45쪽] 이상했다.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은 사람은 없었다 … 이 졸업장과 자격증은 도대체 누가 요구하는가?

[28, 40∼41, 58∼59쪽] 초등학교 때는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다. 중학교 때는 아직 평준화가 되기 전 명문고에 진입하기 위해 시험과 시험의 허들을 넘었다. 그렇게 들어간 명문고에서 다시 명문대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내달려 왔다 … 입시 전쟁을 치르고 나니 등록금 전쟁이 기다리고, 다시 취업 전쟁이 시작된다 … 점점 늘어나는 영어 강의는 얼마나 학문을 이해했는가보다 얼마나 알아들었는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

[30, 43쪽] 쉽게 더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을 찾아 들으며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피곤하게 논쟁할 일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린 그냥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두기로 착하고 매너있게 관계를 유지하면 됐다. 대학생이 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그나마의 자유는, 그저 20년 동안 공부로 쌓인 것을 다 풀어내겠다는 듯 어른들의 밤거리를 닮은 대학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 …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세계화가 누구의 손에 돌아가고,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웰빙타령은 하면서도 내가 먹고 쓰는 게 어디에서 길러지고 누가 만드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제대로 연애할 줄도 모르고 자기를 성찰할 줄도 모른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삶에 닥친 수많은 실제적인 문제에 우리는 얼마나 당혹하고 무지한가? … 돈을 벌고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세상에 살면서, 그것 외의 모든 것에 스스로 무능해져 버렸다.

[52, 59, 62쪽] 대학은 이제부터 차라리 진리의 전당이기를 당당하게 포기 선언하고 취업고시 학원이라고 천명해야 하지 않은가. 그리고 취직도 안 된 청년들을 리콜하든지 손해배상하든지 해야 하지 않은가 … ‘자격증 장사 브로커’인 대학의 실체를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똑똑한 불량품’들의 존재가 죽은 대학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일 것이다 … 대졸자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소비에 대한 기대치는 부풀려지고, 과시적인 소비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진다 … 더 기계화되고 도시화될수록, 고유의 개성을 살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는 점점 더 박탈되고 있다.

[57, 65쪽] 신문, TV, 인터넷은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으로 평생학습 시대를 전파하며 광범위하게 지식을 판매하고 있다 … 직접 시를 쓰고 봉사를 하면서 그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충만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면서 인생 전체에 걸쳐 더 발전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

[69∼71, 79쪽]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과 언론이 대응하는 방식과 차원에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 사회과학적 진보는 있을지 몰라도 내 일상과 긴밀히 연결된 삶의 총제적 진보는 아닌 듯했다. 제도와 정책은 진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통해 이루어질 삶의 내용과 생활문화는 한참 후진 듯 다가왔다. 무엇보다 주장은 옳을지 몰라도 내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과 사람의 향기는 느낄 수 없었다 … 왜 ‘진짜’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민생고통은 커져만 가는데 생활민심과 멀어지기만 하는 걸까? … 내가 접혀 온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 지구 시대에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이 진정한 진보일까?.

[80, 94쪽] 대학을 나오지 않고 주류적으로 살지 않아도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다른 삶이 존중되는 사회적 가치를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대학을 거부한 나의 요구는 88만 원을 188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더 근원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 좋은 일로 성공까지 하겠다는 것도 또 하나의 성공경쟁이 아닌지. 기아 분쟁 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그이들의 존엄한 감정이 자신의 맑은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다른 사람들의 선함을 일깨울 수 있도록 좀 나직하게 나아갈 수 없을까.

[86∼87쪽] 정말 인문학인가? 나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과 ‘삶’ 사이는 머리와 가슴보다 더 멀지 않은가. 아무리 사랑‘학’을 전공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사랑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자기중심주의를 깨뜨린 삶의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머리속에 집중적으로 집어넣는 인문학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나는 나 자신과 친구들과 비판적 지식인들을 접하며 절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인문지식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지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삶과 실천의 흡수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100쪽] 세상 모든 좋은 부모님들께 부탁 드린다. 특히 진보적이라는 부모님들께 말씀 드린다 …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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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내 동생 난 책읽기가 좋아
도로시 에드워즈 지음, 조세현 옮김, 셜리 휴즈 그림 / 비룡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51 ― 고집장이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
 : 도로시 에드워즈,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책이름 :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글 : 도로시 에드워즈
- 옮긴이 : 최경림
- 펴낸곳 : 동서문화사 (1982.12.25.)
- 2007년에 ‘비룡소’에서 《못 말리는 내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옴.



 (1) 쉬지 않고 놀며 밥 안 먹는 아이


 2007년 6월에 옆지기하고 함께 살면서 충북 음성에 살고 계신 부모님 댁에 찾아갔습니다. 이날 아버지는 당신 아들이 당신한테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혼인해서 함께 산다고 한 옆지기와 저한테 몹시 못마땅하다 했고, 이때부터 2010년 4월까지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몇 차례 부모님 댁에 찾아갔으나 이때마다 아버지는 다른 데에 볼일이 있어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4월에 거의 세 해 만에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인천으로 찾아왔고, 이날 아버지는 당신 손녀인 딸아이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나이와 몸뚱이만으로 할아버지가 아니라 참으로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셔서 따로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 손녀 얼굴이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음성으로 자주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온 다음주에 음성으로 찾아가려 했으나 사진잔치하고 새로 낼 책에 시간을 쏟느라 인천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하고 어머니한테서 한 번씩 전화가 왔습니다. 온다고 하더니 왜 안 오느냐고.

 저저번 주말,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한 번 더 인천으로 찾아왔습니다. 제 사진잔치를 보러 오신다고 했으나, 사진잔치보다 손녀를 보고픈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머니는 아침에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뒤에 닿는다 했습니다. 애 아빠 된 저는 아이가 언제나 낮잠 없이 내내 놀자고 해대는 통에 몹시 고단하고 힘겨워 그예 곯아떨어져 있다가 이 전화를 받고는 벌떡 일어납니다. 집으로 오신다면 집을 치워야 하니까요.

 드디어 오늘 집식구가 즐거이 음성으로 마실을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와 그제에 걸쳐 아이랑 부대낀 하루가 그지없이 고단해 몸살이 걸립니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고 물을 만진다거나 뭘 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애 엄마는 오랫동안 몸이 아픈 사람이라 당신 몸 건사하기조차 벅찬 노릇입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겨우 방바닥을 쓸고 닦은 다음 빨래를 합니다. 아이가 하도 밥 투정을 하느라 밥 먹이기까지는 못하고 옆지기한테 맡깁니다. 고단하고 아픈 몸으로 아이 바깥바람을 쏘이고, 한동안 드러누웠다가 다시 아이하고 어울리며, 깜빡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아이는 여태 낮잠 없이 온 집안을 들쑤시며 놀다가 바지에 똥을 누었습니다.

 골골거리며 하루를 보내며 어느덧 저녁을 맞이합니다. 이제 하룻밤 자고 어찌 되든 음성으로 마실을 가려 하는데, 우리 아이는 언제쯤 잠들어 줄는지 모르겠습니다. 옷을 껴입고 끙끙거리며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 된 분이라고 쇳덩이로 만든 몸은 아니었을 텐데, 두 아들내미를 키우고 집살림하며 앓아누운 시아버지 병수발까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이 아플 때에 누가 돌봐 준 사람이 없었을 텐데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프면 수건을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한손으로 벽 짚고 한손으로 허리 두들기며 끝끝내 집일 모두 하고 시아버지 병수발과 똥오줌 치우기 모두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잠 없이 혼자 잘 논다 싶던 아이는 책을 밟고 창문가에 서서 인형을 들고 놀다가 갑자기 쭈그려앉더니 소리가 나도록 쉬를 갈깁니다. 틀림없이 스스로 오줌을 눌 줄 알면서 심통을 부리거나 졸리거나 골이 날 때 보여주는 몸짓입니다. 책과 바닥에 흐르는 오줌을 걸레로 훔치고 아이 바지를 갈아입히며 이마를 짚습니다. 한숨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얘야, 아빠가 어떡하면 좋겠니? 이 몸으로는 너무 힘들어 널 업어서 재워 주지 못하겠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 어린 날을 떠올려 봅니다. 어머니는 거의 성을 부리지 않았다고 느끼는데, 저하고 형이 다투었다든지 뭔가 말썽거리가 있으면 큰소리를 내며 꾸짖었고 구두주걱 따위로 엉덩이와 종아리를 후려갈겼습니다. 엉엉 울며 잘못했다고 빌어야 비로소 후려갈기기를 그치셨습니다.

 형은 집에서 낳고 저는 병원에서 낳았다는데, 형이나 제가 언제쯤 똥오줌을 가렸다거나 똥오줌을 아무렇게나 싸질러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여쭈면, 어머니는 그때가 언젠데 생각이 나느냐며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얼마나 말썽을 피웠다라든가, 제가 얼마나 걱정스러운 짓을 했다라든가 또한 생각나지 않으신답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아기였을 때와 어린이였을 때만 고달플 아이키우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으면 나이를 먹는 대로 갖가지 어려움과 힘겨움이 있습니다. 아이를 다 길렀다 싶은 이웃 분들은 정작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직 멀었다고들 말씀합니다. 이즈음 보여주는 온갖 모습은 외려 귀엽고 재미있기까지 하답니다. 참말 그럴까 궁금하고, 아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나날이 부대끼는 삶만큼 앞날이 고단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단하다면 오늘 하루가 고단하지 다가올 모레나 글피가 고단하지 않습니다. 모레나 글피를 헤아릴 겨를이 없달까요.

 숨을 돌리고 싶어 아이는 집에 두고 혼자 구멍가게로 찾아가 먹는샘물 여섯 통을 사 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오르막길에서 아이를 안은 채 십이 리터들이 물통을 한손으로 들어야 하기에, 오늘처럼 아픈 몸으로는 아이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밖으로 나갈 낌새를 보이자 얼른 저도 따라 나서겠다며 신발을 찾습니다. 아빠는 쌀쌀맞게 문을 닫고 혼자 나갑니다. 아이는 문간에서 빽빽 소리를 지르며 왜 저는 두고 가느냐며 투덜거립니다.

 여느 때에는 한 번에 오르는 오르막을 여러 차례 쉬어 가며 오릅니다. 물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아픈 채 보내는 오늘 하루를 잊지 않으려고 오늘 일을 적바림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적바림해 놓지 않는다면 나 또한 우리 어머니처럼 우리 아이가 어릴 적 겪거나 치른 일을 하나도 못 떠올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옆지기는 아이 예전 사진을 보며 아이가 그렇게 더 어린 적이 있었느냐며 묻곤 합니다. 고작 한두 해 지난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머니한테는 사진기가 없었을 뿐더러 사진기가 있었어도 사진기로 당신 삶을 적바림할 틈을 못 내셨으리라 봅니다. 저한테는 사진기가 있고 글을 쓰는 셈틀이 있습니다. 허구헌날 아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투덜거리는 애 아빠 잔소리요, 아이 때문에 오늘 하루 또한 얼마나 고달프고 이마에 주름살이 늘었느냐는 푸념뿐입니다. 그래,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어찌 이토록 잔소리와 푸념만 가득한가 싶습니다. 아이를 찍은 사진을 혼자서 돌아보거나 옆지기랑 아이하고 함께 돌아보노라면 이 아이가 얼마나 곱고 착한가 하고 느끼면서, 정작 살을 부비고 있는 동안에는 고달프고 힘에 부친다는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제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를 고단하게 하던 모습이 오늘날 우리 아이가 저를 고단하게 하는 모습하고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제가 어머니한테 궁금하게 여기는 대목은 바로 오늘 하루 아주 실컷 느끼거나 배우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바깥으로 돈 벌러 나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식구들하고 내내 복닥이고 있기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힘겹고 벅차지만 힘겹고 벅찬 만큼 내 어린 삶을 되짚습니다. 우리 아이 어린 나날 삶을 적바림하여 둘레에 들려주면서 나중에 우리 아이가 더 클 무렵 ‘아이를 키우는 여느 어버이 삶과 넋’이 어떠한가를 조금이나마 짚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 키우기란 어버이 키우기요, 아이 키우기란 사람 키우기이며, 아이 키우기란 다름아닌 내 삶을 키우는 나날이라고 뼛속 깊이 느낍니다.
 





 (2) 어린이문학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1982년에 처음 우리 말로 옮겨진 뒤 2007년에 다시 나온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라는 어린이문학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이 책을 알아보던 지지난달, 무엇보다 책이름에 눈길이 이끌렸습니다. ‘고집장이’라. 나한테는 여동생이니 남동생이니 아무도 없지만, 바로 우리 아이야말로 고집장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퍽 오래된 서양 어린이문학인데,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숱한 어린이문학마냥 ‘판타지’가 아닙니다. 아주 수수한 ‘삶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겪었음직한 이야기요, 어디에서나 봄직한 이야기를 담은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입니다. 동생이 있어 본 사람이라면 으레 느꼈음직하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라면 늘 부대끼고 있음직한 이야기가 조곤조곤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에 나오는 고집장이 여동생은 한낱 고집장이이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때에는 벼락맞을 고집장이 짓을 하지만, 어느 때에는 둘도 없이 착하고 얌전한 아이 몸짓을 합니다. 여동생은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품과 가슴을 알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저를 미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눈길과 손길을 알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저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얌전합니다. 여동생은 저를 미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끔찍하게 고집장이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우리 집 아이를 고집장이로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 아이가 먼저 고집장이일 리 없으나, 애 아빠 된 내가 툭하면 힘들다느니 걸핏하면 지친다느니 핑계를 잔뜩 늘어놓으며 아이하고 제대로 놀아 주지 않으니 아이가 자꾸자꾸 고집장이에다가 떼쟁이 짓을 하지 않느냐 싶어요.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에 나오는 어머니를 보면 이토록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이 어머니로구나 하며 새삼 깨닫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를 보면 이다지도 무뚝뚝하고 제 일거리만 찾는 사람이 어머니로구나 하며 남달리 배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부터 아이를 더 살가이 보듬지 못하면서 아이 탓만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리 힘들고 저리 고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힘든 만큼 보람 있고 고된 만큼 아름다운 삶임을 잊고 있기에 아이를 키우는 나날을 즐거이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른 누구한테 읽으라고 건넬 책이 아닌 저 스스로 여러 차례 거듭 읽을 책이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어 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어 주며 애 아빠 된 저 스스로 얼마나 고집장이 짓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쓰다듬고 품에 안고 어부바를 하면서 아이가 너르고 따순 사랑을 듬뿍 받아먹도록 할 노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요 부대끼는 몸짓에 따라 새로워지는 삶인데,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까닭을 살피고 아이가 고집을 피우는 뿌리를 헤아리며 곱게 손을 내밀어야지 싶습니다.


 (3) 조곤조곤 되읽는 말마디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라는 어린이문학에는 돋보이는 고빗사위는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몹시 부드럽습니다. 큰일이란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흔하고 너른 이야기만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린이문학은 몹시 재미있고 애틋합니다. 바로 이 어디에서나 흔하고 너른 이야기야말로 우리 삶을 북돋우는 이야기이며, 이와 같이 흔하고 너른 이야기를 사랑하는 가슴이 될 때에 우리 삶을 아끼고 돌보며 힘차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글월 하나하나에 웃음을 지으며 읽고, 글줄 하나하나마다 눈물을 지으며 덮습니다. 제가 앞으로 써야 할 글이라면 다름아닌 이런 이야기여야 한다고 새삼 느끼고, 나 스스로 날마다 복닥이는 삶을 제대로 사랑하고 알뜰히 건사하면서 저부터 참되고 착하고 고운 어버이로 자리잡도록 힘써야겠다고 다시금 곱씹습니다. (4343.5.17.달.ㅎㄲㅅㄱ)


[9, 12, 14, 16쪽] 사진을 찍을 때 웃으라고 하면 꼬마 여동생은, “난 웃기 싫어!”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같은 것을 주면 동생은, “고맙습니다!” 하고 생글생글 웃었읍니다 … “얘, 너의 꼬마 여동생이 물속에 들어갔다!” 큰일났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신과 양말도 벗지 않은 채 물속에 들어와 고기를 잡으려고 했읍니다 … “말 안 들으면 끌어낼 거야!” 그러자 동생은 물속에서 달아나려고 했읍니다. 동생은 정말 바보 같은 아이입니다. 물속에서 달아나려고 하다가 넘어져서 옷이 온통 젖고 말았읍니다 … 꼬마 여동생은 샌드위치를 다 먹어 버렸읍니다. 동생은 자기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내 샌드위치와 내 친구들의 샌드위치까지 다 먹어 버리고 말았읍니다. 다 먹고 나서는 또다시 엉엉 울었읍니다. 이번에는 꼬마 여동생에게 주스를 주었읍니다. 동생은 주스를 밭에 뿌려 버리고 또 엉엉 울었읍니다.

[20, 22∼23쪽]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내 꼬마 여동생은 늘 아침 식사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읍니다. 점심도 남김없이 다 먹었읍니다. 저녁도 남김없이 다 먹었읍니다. 무엇이든지 남기는 것이 없었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아침을 조금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 어머니는 동생에게 나들이할 때 입는 푸른색 새 드레스를 입히고 흰 양말에 새하얀 신을 신겼는데, 그 사이에도 동생은 조금도 어머니를 돕지 않았읍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다 알 거여요. 동생은 그냥 멍청히 선 채, 옷을 입혀도 소매에 팔을 넣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신을 신겨도 발을 들어 주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하셨읍니다. “할 수 없다. 너는 두고 가야 할 것 같다.” 그 말을 듣자 고집장이 꼬마 동생은 얼른 발을 들었읍니다.

[33, 36∼37, 40쪽] 동생은 우유배달 아저씨나 빵집 아저씨, 석탄집 아저씨나 유리창 닦는 아저씨, 그밖에 장사로 오는 사람들과 늘 이야기를 잘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면 방해가 될 만큼 잘도 재잘댑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고집장이 꼬마 동생을 좋아했읍니다 … “의사는 싫어!” 하면서 시트 아래에 얼굴을 묻었읍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린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동생이 좋아하는 우유배달 아저씨였읍니다. 우유배달 아저씨는 동생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는 옆줄이 쳐진 노트와 파란 연필을 두고 가면서, 말했읍니다. “빨리 나아야지.” … 유리창 닦는 아저씨도 지지 않았읍니다. “의사가 싫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데. 너는 가엾은 꼬마 아가씨로구나. 귀로 듣는 청진기도 입안에 넣는 체온계도 그리고 의사의 가방 속에 있는 그 많은 신기한 것들도 다 못 보고 말다니 정말 안 됐다…….”

[45∼46쪽] 동생은 도토리에 대해서는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읍니다. 혼자만 비밀로 간직했읍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고집장이 꼬마 동생은 도토리를 심은 곳에 가서는 돌멩이와 잎사귀와 가지를 보았읍니다 … “누구냐? 아빠의 꽃밭을 마구 파헤쳐 놓은 사람이?” 아빠가 물으셨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 대답했읍니다. “아빠, 내가 그랬어요.” “그래? 그렇다면 너는 나쁜 아이다. 아빠가 뿌린 꽃씨를 다 못 쓰게 만들어 놓지 않았니.” 그러자, 동생이 말했읍니다. “꽃씨 같은 것은 아무려면 어때서요. 반짝이는 갈색 도토리를 심었는데요.”

[47, 51쪽] 정말 모르는 것이 없는 우리 어머니는 병에 물을 담고 어떻게 하면 병 아가리에 도토리를 심을 수 있는지를 동생에게 가르쳐 주었읍니다 … 동생이 나무를 심자, 어머니는 주위의 흙을 어떻게 눌러 주는지를 가르쳐 주었읍니다.

[66∼68쪽] 어머니는 화가 나셨읍니다. 동생 옆에 가서 인형을 뺏으려고 하셨읍니다 … 벌로 어머니는 동생을 자기 방에 가두어 버렸읍니다. 그렇게 나쁜 일을 했으니까 당연한 벌이지요. 나의 소중한 요정인형은 마당의 흙탕물 속에 거꾸로 처박혔읍니다 … 두 인형은 무척 예뻐져서 병원에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동생은 병원에서 돌아온 로지 프림로즈를 보더니 아주 실망했읍니다. 왜냐하면 로지 프림로즈는 몰라보게 고운,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아무것도 없던 머리에는 곱슬머리가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99∼102쪽] 꼬마 여동생이 날마다 존즈 아주머니네 집으로 갔기 때문에 존즈 아주머니네 아저씨는 우리 집과 아주머니네 집 사이에 조그만 문을 만들어 주었읍니다. 아저씨는 그 문 위에 조그만 아치를 만들고 그 문 위에 덩굴이 자라도록 덩굴 한 그루를 심었읍니다. 동생이 얼마나 행복했겠어요? 그래서 존즈 아주머니와 나의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과 아주 친하게 되었읍니다 … 어느 날이었읍니다. 코코아 존즈 아주머니가 고집장이 나의 꼬마 여동생에게 말했읍니다. “너, 뜨개질을 배우고 싶지 않으냐?” 그러자 동생이 대답했읍니다. “배우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떠 줄 수 있단다. 크리스머스 선물도 만들 수 있고, 생일 선물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그 말을 듣자 꼬마 여동생은 뜨개질을 배우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읍니다. “그럼 배울래요. 진짜 배워 주는 거지요?”

[118∼119, 122∼123, 125쪽] 다음날 아침 동생은 일찍 일어나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옷을 입었읍니다. 정말이어요. 단추도 자기가 잠그고 양말도 자기가 신었읍니다. 자기가 얼마나 옷을 잘 입는가를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는 동안 마당에 나가 자기 꽃밭에서 꽃을 꺾어 예쁜 꽃다발을 만들었읍니다. 선생님에게 가져다 드리려고요. 그러니까 나의 꼬마 여동생도 가끔은 아주 착한 아이였읍니다 … 아이들은 대답하려고 손을 들었읍니다. 그러자 나의 꼬마 여동생도 덩달아 손을 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 웃었읍니다. 선생님이 말하셨읍니다. “웃으면 안 돼요.” 그리고 선생님은 나의 꼬마 여동생에게, 진짜 큰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생은 또박또박 맞는 대답을 했읍니다. 그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말하셨읍니다. “아주 좋은 대답을 했으니까 선생님은 90점을 주겠어요.” 학교에서 90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여러분도 잘 아시지요? 선생님은 동생을 위해서 손수 90점이라고 써서 진흙 바구니 옆에다 붙여 놓았읍니다 … 동생은 그날 참으로 좋은 아이였읍니다. 그런데 다음 시간에 우리가 교실에 돌아와서 책읽기를 시작했을 때 동생은 소리없이 가만히 있었읍니다. 왜 그런지 아셔요? 동생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린 것입니다.

[130쪽] 아버지는 의자와 책상을 마당으로 내갔읍니다. 꼬마 여동생도 마당으로 나갔읍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기 때문에 동생은 아주 얌전하게 놀았읍니다. 꽃밭에 들어가 마구 짓밟지도 않았고 꽃을 꺾지도 뽑지도 않았으며 나쁜 짓은 조금도 하지 않았읍니다. 동생은 아버지가 다시 화난 얼굴을 하시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 “아빠, 나 물 마시고 싶어요. 목이 말라요.”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것은 동생으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읍니다. 왜냐하면 동생은 가끔 빗물통에서 더러운 물을 마실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창 일을 하실 때였기 때문에 동생이 자주 귀찮게 구는 것이 싫으셨읍니다.

[139쪽]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동생을 내쫓았다고 우리를 무척 못마땅해 하고 있었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도 내가 데려오려고 하자 화를 내며 말했읍니다. “싫어. 블레이크 할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이 더 좋아.”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달걀을 삶아 주었고 신문지에 싼 빵과 치즈를 꺼내어 가죽 자르는 칼로 잘게 썰어 주기도 했읍니다. 어머니도 화가 나셨읍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맛있는 차를 끓여 마시려고 했는데, 동생을 찾느라고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화가 났읍니다. 나는 동생만 블레이크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즐겁게 지낸 것이 샘이 났기 때문입니다.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뿐이었읍니다. “아, 이제 살았다. 이제 장난꾸러기 딸에게 정신을 팔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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