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하나 152 ― 대학은 왜 대학다움을 잃었는가
 : 김예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책이름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글 : 김예슬
- 펴낸곳 : 느린걸음 (2010.4.14.)
- 책값 : 7500원


 (1) 이 나라에 무슨 배움터가 있는가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사진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그림을 배우는 학과를 다녔다고 해서 그림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마친 사람이 글작가이지 않습니다. 대학생일 때에 빼어난 작품을 내놓았으면 이때부터 작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등학생 때에 작가 소리를 듣고, 어느 사람은 예순이나 일흔 나이에 비로소 작가 소리를 듣습니다.

 사진 강좌를 들었다고 사진을 잘 찍을 수 없습니다. 출판 강좌를 들었다고 책을 잘 만들 수 없습니다. 요리 강좌를 들었다고 밥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 강의나 교육관 강좌란 지식을 차근차근 일러 주며 지식에 따라 하나하나 깨우치도록 이끄는 이야기나눔일 뿐입니다. 이러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어떠한 일을 잘 해내거나 훌륭히 해낼 수 없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가를 깨닫고 꾸준하게 한길을 걸을 때에 비로소 작가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책으로 담아야 하는가를 느끼며 차근차근 책을 만들어야 비로소 책쟁이입니다. 스스로 누구하고 어떻게 어느 자리에서 밥을 나누려 하는가를 살피며 국자나 칼을 들어야 비로소 밥하기(요리)를 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늘 우리 터전에서는 전문 직업인이 되자면 어쩔 수 없이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읽어 온 책을 그러모아 동네 한켠에서 조그맣게 도서관 하나를 열었습니다만, 우리 나라 법으로는 제가 연 도서관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을 뿐더러, 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도서관을 열고자 한다면 반드시 대학교 도서관학과를 마쳐야 하고 사서자격증까지 따 놓아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사랑하고 아끼며 깊이 보듬는 삶을 꾸린다고 해서 도서관을 열 수는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는 기자가 될 때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쳤으나 빛나는 넋과 밝은 눈과 굳센 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기자로 뽑아서 어깨동무하는 언론매체는 한 군데라도 있을는지요. 아무런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나 옳고 맑고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기자로 받아들여 손잡는 언론매체가 있는지요.

 의사라고 하는 일이든 법관이라 하는 일이든 공무원이라고 하는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내는 지식하고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만 참말로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지식을 다루는 마음이 없거나 지식을 펼칠 줄 아는 매무새를 살피지 않고 졸업장과 자격증만으로 전문 직업인을 쏟아내는 사회 얼거리란 얼마나 올바를는지 궁금합니다.

 교사를 가린다고 하는 교사 자격증이란 ‘어느 한 사람이 얼마나 교사다운가’ 하고 말해 주는 자격증이 될 만할까요.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옳고 바르고 아름다이 가르칠 수 있는가요. 교사 자격증이란, 교과서 지식을 학년과정에 맞추어 머리속에 알뜰히 집어넣을 수 있는 재주를 갖춘 사람임을 말하는 셈 아닌지요.

 초중고등학교를 열두 해 다닌 제 지난날을 헤아리면, 이동안 만난 교사들 가운데 몽둥이를 들지 않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은 교사란 다섯 손가락에 꼽기 어려울 만큼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인 우리한테 욕이나 거친 말을 쏟아내지 않은 교사 또한 다섯 손가락에 꼽기 힘들 만큼 아주 드뭅니다. 이들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모두 교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요, 교육대학교에서 교육을 배운 이들일 텐데, 아이와 마주한 자리에서 어른다움을 보여주며 스스로 본보기가 되지는 못했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아름다운 스승으로 서고자 마음을 쓰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열두 해에 걸쳐 학교라는 울타리 안쪽에서 아름다운 스승을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언제나 학교 안쪽에 머물 마음이 없었고 이무렵 학교에서 복닥인 이야기는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마음에 아로새겨질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학교에서는 느끼거나 얻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교사들은 왜 교과서 진도에 발목이 잡혀 있어야 할까요. 교과서는 우리한테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하며 멋지고 사랑스러운 책일까요. 교사가 학생한테 할 일은 교과서 지식 집어넣기가 끝인가요. 교사란 어떤 사람이요 어떻게 살아갈 사람일까요. 교사들은 으레 우리들 앞에서 “교사도 사람이야!” 하고 외치며 성을 내고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러면 몽둥이에 얻어맞을 뿐 아니라 머리카락이 잘리고 욕설을 듣고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갇혀 지내야 하는 “학생도 사람”일 텐데, 학생도 사람이라고 여긴 교사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2010년대로 접어든 오늘날, 학교라는 울타리가 지난날과 견주어 새롭게 바뀌었다거나 크게 달라졌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지난날 제 어릴 적에는 국민학생 때에 틈나는 대로 온갖 놀이를 즐겼습니다. 언니 오빠 형 누나 들한테서 온갖 놀이를 물려받으며 동생한테 온갖 놀이를 고스란히 물려주며 놀았습니다. 이 흐름은 중학교 문턱을 밟자마자 깨졌는데, 어린이일 때에 어린이 놀이가 가로막히면서 푸름이들이 푸름이 놀이를 즐기지 못하도록 하는 굴레를 여섯 해나 보내다 보니,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동무들이 즐긴다는 놀이란 고작 술ㆍ담배ㆍ당구뿐이었고, 참다운 사랑이 아닌 아랫도리 사랑뿐이었습니다. 올바로 배우도록 이끌지 못한 학교인 까닭에 올바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즐겁게 놀도록 풀어놓지 않은 학교인 터라 즐거이 놀 줄을 잊은 한편, 참다운 사랑을 나누지 않은 학교였기에 참다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마음씨를 잃었다고 하겠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가 아름답고 즐거우며 슬기롭고 신나는 열두 해로 자리매기지 못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리하여 고등학교를 마치고 들어간다는 대학교에서 아름답고 즐거우며 슬기롭고 신나는 새 배움과 새 사랑과 새 기쁨과 새 마음과 새 넋으로 이어지거나 거듭날 수 없구나 싶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갑작스레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간다고 사진작가가 되거나 예술가가 되겠습니까. 아름다운 밑바탕을 다지지 못한 지난 열두 해인데,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나누겠습니까. 마음껏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아랫도리) 사랑놀이에 빠질 줄은 알아도, 마음껏 배우고 실컷 (참) 사랑을 하며 기쁘게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어떻게 스스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대학교가 대학교다우려면 대학교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지만, 이에 앞서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가 올바르게 고쳐져야 합니다. 대학바라기 열두 해가 아닌, 초등은 초등대로 아름답고 알차며 즐거운 나날이요, 중등은 중등대로 훌륭하며 살갑고 기쁜 나날인 가운데, 고등은 고등대로 빛나며 멋지고 재미난 나날이 되도록 학교 얼거리가 싹 바뀌어야 합니다. 교과서란 교육과정을 돕는 교재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교사가 먼저 깨달아 학생한테 스스로 ‘책다운 책’을 찾아 읽도록 돕는 한편, 교사 또한 언제나 ‘책다운 책’을 바지런히 찾아 읽으며 슬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 너무 긴 나날을 보내지 않아야 하고, 학교 울타리 바깥쪽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과 동무를 널리 사귀고 마주하면서 우리 삶터를 깊고 넓게 헤아리는 눈썰미를 교사와 학생이 나란히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인 밥과 옷과 집을 내 손으로 스스로 일구어 얻을 수 있게끔 교사부터 살아내고 학생들 또한 집안에서 살림살이를 알뜰히 익히도록 어버이들이 가르치고 도와야 합니다. 교사와 어버이란 사람들은 이름만 ‘어른’이 아닌 속살 가득 참어른으로 살아내면서 아이들한테 좋은 삶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튼튼한 버팀나무이자 싱그러운 나무그늘 노릇을 하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교육이란, 그러니까 우리 말로 하자면 ‘배움’이란 바로 삶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어떻게 꾸리느냐가 바로 배움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삶을 어느 결에 따라 일구느냐가 바로 배움입니다. 우리 나라 교육기관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로 나뉘어 있지만, 정작 배움터다운 모습은 하나도 못 갖추고 있습니다.


 (2) 사람다이 살고픈 외침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 온 내가,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13∼14쪽).”고 외친 김예슬 님이 당신 생각을 책 하나로 갈무리했습니다. 김예슬 님에 앞서 대학교를 그만둔 사람이 많았고, 김예슬 님 뒤에 대학교를 그만둘 사람도 많을 텐데, 사람들은 ‘김예슬 선언’이라는 이름을 붙여 김예슬 님을 떠올리거나 이야기합니다.

 김예슬 님 생각이 담긴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125쪽짜리 작은 책입니다. 김예슬 님이 대자보 하나를 쓰고 1인시위를 하면서 그만둔 대학 삶을 ‘짤막한’ 대자보로는 모두 밝힐 수 없었기에 ‘조금 긴’ 글을 써서 책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자격증 장사를 하는 대학교이고, 소비중독으로 내모는 학습중독으로 젖어들도록 하며, 삶은 없이 학문만 가득한 지식인들 모습을 당신한테서 스스로 느끼는 가운데,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 없는데다가 우리들은 88만 원 세대가 아니라고 하는 외침을 한 올 두 올 담았습니다.

 작은 책, 그야말로 작은 책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작은 책에 담긴 이야기는 하나도 새롭지 않습니다. 이 조그마한 책에 담긴 줄거리는 어느 하나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이 수수한 책에 깃든 생각자락을 모르는 지식인은 하나도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조촐한 책에 서린 아픔과 생채기를 모를 여느 어른이나 교사나 어버이 또한 따로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다고 하는 대학 문제는 그치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는 대학 문제는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다들 알고 있다고 하면서 대학 문제를 비롯해 교육 문제를 푸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다들 느끼고 있다지만 정작 몸으로는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더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팍팍해지는 대학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말글학자로만 알고 있으나, 교육학자로 오랜 나날을 보냈던 최현배 님은 일제강점기에 ‘페스탈로찌 논문’을 썼고, 해방 뒤에는 《나라 건지는 교육》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말글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최현배 님은 1950년대에 진작 ‘대학입시가 큰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대학입시뿐 아니라 국민학교 입시 또한 몹시 큰 말썽거리였다니까,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느니 뭐를 더 가르치느니 하면서 떠들썩한 모양새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지난날에는 국민학교 입시 때문에 어린이들이 어린 나날부터 들볶여야 했고, 오늘날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알파벳을 가르친다고 법석이요 참다운 마음닦이를 하도록 이끌지 못하니, 예나 이제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들볶이기만 합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를 읽는 내내 최현배 님이 쓴 《나라 건지는 교육》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예순 해가 흐르는 동안 ‘먹고 입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물질문명은 더할 나위 없이 나아졌으나,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고 나누고 사랑하는’ 마음살이는 그지없이 뒷걸음을 치거나 나동그라지고 있구나 싶습니다. 참다이 나아지지 못하는 이 나라이니,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고, 참다운 넋과 얼이 발돋움하지 못하는 판이기에 곱고 맑은 꿈이 꽃피우기 어렵습니다.

 대학교는 대학교다워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합니다.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살림집은 살림집다워야 합니다. 동네는 동네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새로워진다고 이 하나가 제대로 새로워진다 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와 초중고등학교와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나란히 새로워지면서 올바른 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교사만 훌륭해진다고 학생들이 좋을 수 없습니다. 교사를 비롯해 여느 어른 모두와 어버이들이 다 함께 훌륭해져야 하고, 여느 자리 여느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훌륭히 가르친다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엉망진창이라거나 동네 삶터는 엉터리라 한다면 모든 배움이란 도루묵이요 부질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동네 삶터는 아름답거나 집안 살림살이는 훌륭하달지라도 학교가 엉터리라면 아이들은 아주 힘들고 벅찹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와 아이를 맡아 가르친다는 교사를 비롯해 동네 어른이자 형이자 언니이자 누나이자 오빠인 사람 모두 참되고 착하고 고운 길을 살피고 찾고 느끼며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나라 건지는 배움”이 이루어집니다. 이럴 때에 바야흐로 “대학교를 다녀도 좋고 대학교를 안 다녀도 좋은”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3) 되새겨 읽는 배움말


 김예슬 님 앞서 대학교를 그만두거나 처음부터 안 다닌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김예슬 님은 숱한 ‘고졸자’나 ‘중졸자’나 ‘국졸자’나 ‘무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력을 으뜸으로 치면서 경쟁주의와 1등주의가 넘실거리는 한국땅에서는 졸업장 하나 안 가지면서 받아야 할 불이익과 손해가 제법 큽니다. 가방끈 짧은 사람한테는 전문 직업인 길이란 거의 꽉 막혀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 직업인이 아닌 살림꾼 자리는 가방끈하고 하나도 얽히지 않습니다. 가방끈이 길어야 사랑을 잘하겠습니까. 가방끈이 짧으면 믿음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가방끈이 길어야 아이를 잘 낳을까요. 가방끈이 짧으면 농사를 못 짓겠습니까.

 김예슬 님으로서는 주류 권력층 자리에서 스스로 떨려 나왔는데, 주류 권력층을 생각하면 아쉽겠지만 낮은 자리와 가난한 자리를 헤아리면 한결 너르고 넉넉하며 너그러운 새 이웃과 동무를 만나고 사귈 수 있어 기쁠 수 있습니다. 주류를 살피지 않고 사람을 살피는 자리로 들어선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하고, 권력층을 기웃거리지 않고 못목숨을 사랑하는 자리에 한 발 디딘 김예슬 님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한 발을 디뎠을 뿐이지, 걸음을 걷는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막 디딘 한 발이 튼튼한 걸음걸이가 될 수 있게끔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디디는 한 발 두 발이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스스로 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가난한 배움에 가난한 몸에 가난한 마음에 가난한 믿음에 가난한 말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마더 데레사 님은 ‘말이 가난해야 하느님 뜻을 알아듣고 하느님 뜻을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살림과 배움과 몸과 마음과 믿음뿐 아니라 말까지 가난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음고리를 곰곰이 되짚으며 스스로 가난한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나눌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알알이 실린 말마디 몇 가지를 추려서 되새겨 봅니다. (4343.6.22.불.ㅎㄲㅅㄱ)


[20, 45쪽] 이상했다.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라고 물은 사람은 없었다 … 이 졸업장과 자격증은 도대체 누가 요구하는가?

[28, 40∼41, 58∼59쪽] 초등학교 때는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다. 중학교 때는 아직 평준화가 되기 전 명문고에 진입하기 위해 시험과 시험의 허들을 넘었다. 그렇게 들어간 명문고에서 다시 명문대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내달려 왔다 … 입시 전쟁을 치르고 나니 등록금 전쟁이 기다리고, 다시 취업 전쟁이 시작된다 … 점점 늘어나는 영어 강의는 얼마나 학문을 이해했는가보다 얼마나 알아들었는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

[30, 43쪽] 쉽게 더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을 찾아 들으며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피곤하게 논쟁할 일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우린 그냥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두기로 착하고 매너있게 관계를 유지하면 됐다. 대학생이 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그나마의 자유는, 그저 20년 동안 공부로 쌓인 것을 다 풀어내겠다는 듯 어른들의 밤거리를 닮은 대학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 …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세계화가 누구의 손에 돌아가고,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웰빙타령은 하면서도 내가 먹고 쓰는 게 어디에서 길러지고 누가 만드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제대로 연애할 줄도 모르고 자기를 성찰할 줄도 모른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삶에 닥친 수많은 실제적인 문제에 우리는 얼마나 당혹하고 무지한가? … 돈을 벌고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세상에 살면서, 그것 외의 모든 것에 스스로 무능해져 버렸다.

[52, 59, 62쪽] 대학은 이제부터 차라리 진리의 전당이기를 당당하게 포기 선언하고 취업고시 학원이라고 천명해야 하지 않은가. 그리고 취직도 안 된 청년들을 리콜하든지 손해배상하든지 해야 하지 않은가 … ‘자격증 장사 브로커’인 대학의 실체를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똑똑한 불량품’들의 존재가 죽은 대학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일 것이다 … 대졸자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소비에 대한 기대치는 부풀려지고, 과시적인 소비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진다 … 더 기계화되고 도시화될수록, 고유의 개성을 살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는 점점 더 박탈되고 있다.

[57, 65쪽] 신문, TV, 인터넷은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으로 평생학습 시대를 전파하며 광범위하게 지식을 판매하고 있다 … 직접 시를 쓰고 봉사를 하면서 그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충만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면서 인생 전체에 걸쳐 더 발전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

[69∼71, 79쪽]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과 언론이 대응하는 방식과 차원에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 사회과학적 진보는 있을지 몰라도 내 일상과 긴밀히 연결된 삶의 총제적 진보는 아닌 듯했다. 제도와 정책은 진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통해 이루어질 삶의 내용과 생활문화는 한참 후진 듯 다가왔다. 무엇보다 주장은 옳을지 몰라도 내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과 사람의 향기는 느낄 수 없었다 … 왜 ‘진짜’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민생고통은 커져만 가는데 생활민심과 멀어지기만 하는 걸까? … 내가 접혀 온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 지구 시대에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이 진정한 진보일까?.

[80, 94쪽] 대학을 나오지 않고 주류적으로 살지 않아도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다른 삶이 존중되는 사회적 가치를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대학을 거부한 나의 요구는 88만 원을 188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더 근원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 좋은 일로 성공까지 하겠다는 것도 또 하나의 성공경쟁이 아닌지. 기아 분쟁 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그이들의 존엄한 감정이 자신의 맑은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다른 사람들의 선함을 일깨울 수 있도록 좀 나직하게 나아갈 수 없을까.

[86∼87쪽] 정말 인문학인가? 나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과 ‘삶’ 사이는 머리와 가슴보다 더 멀지 않은가. 아무리 사랑‘학’을 전공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사랑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자기중심주의를 깨뜨린 삶의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머리속에 집중적으로 집어넣는 인문학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나는 나 자신과 친구들과 비판적 지식인들을 접하며 절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인문지식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지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삶과 실천의 흡수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100쪽] 세상 모든 좋은 부모님들께 부탁 드린다. 특히 진보적이라는 부모님들께 말씀 드린다 …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못 말리는 내 동생 난 책읽기가 좋아
도로시 에드워즈 지음, 조세현 옮김, 셜리 휴즈 그림 / 비룡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51 ― 고집장이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
 : 도로시 에드워즈,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책이름 :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글 : 도로시 에드워즈
- 옮긴이 : 최경림
- 펴낸곳 : 동서문화사 (1982.12.25.)
- 2007년에 ‘비룡소’에서 《못 말리는 내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옴.



 (1) 쉬지 않고 놀며 밥 안 먹는 아이


 2007년 6월에 옆지기하고 함께 살면서 충북 음성에 살고 계신 부모님 댁에 찾아갔습니다. 이날 아버지는 당신 아들이 당신한테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혼인해서 함께 산다고 한 옆지기와 저한테 몹시 못마땅하다 했고, 이때부터 2010년 4월까지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몇 차례 부모님 댁에 찾아갔으나 이때마다 아버지는 다른 데에 볼일이 있어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4월에 거의 세 해 만에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인천으로 찾아왔고, 이날 아버지는 당신 손녀인 딸아이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나이와 몸뚱이만으로 할아버지가 아니라 참으로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셔서 따로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 손녀 얼굴이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음성으로 자주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온 다음주에 음성으로 찾아가려 했으나 사진잔치하고 새로 낼 책에 시간을 쏟느라 인천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하고 어머니한테서 한 번씩 전화가 왔습니다. 온다고 하더니 왜 안 오느냐고.

 저저번 주말,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한 번 더 인천으로 찾아왔습니다. 제 사진잔치를 보러 오신다고 했으나, 사진잔치보다 손녀를 보고픈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머니는 아침에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뒤에 닿는다 했습니다. 애 아빠 된 저는 아이가 언제나 낮잠 없이 내내 놀자고 해대는 통에 몹시 고단하고 힘겨워 그예 곯아떨어져 있다가 이 전화를 받고는 벌떡 일어납니다. 집으로 오신다면 집을 치워야 하니까요.

 드디어 오늘 집식구가 즐거이 음성으로 마실을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와 그제에 걸쳐 아이랑 부대낀 하루가 그지없이 고단해 몸살이 걸립니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고 물을 만진다거나 뭘 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애 엄마는 오랫동안 몸이 아픈 사람이라 당신 몸 건사하기조차 벅찬 노릇입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겨우 방바닥을 쓸고 닦은 다음 빨래를 합니다. 아이가 하도 밥 투정을 하느라 밥 먹이기까지는 못하고 옆지기한테 맡깁니다. 고단하고 아픈 몸으로 아이 바깥바람을 쏘이고, 한동안 드러누웠다가 다시 아이하고 어울리며, 깜빡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아이는 여태 낮잠 없이 온 집안을 들쑤시며 놀다가 바지에 똥을 누었습니다.

 골골거리며 하루를 보내며 어느덧 저녁을 맞이합니다. 이제 하룻밤 자고 어찌 되든 음성으로 마실을 가려 하는데, 우리 아이는 언제쯤 잠들어 줄는지 모르겠습니다. 옷을 껴입고 끙끙거리며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 된 분이라고 쇳덩이로 만든 몸은 아니었을 텐데, 두 아들내미를 키우고 집살림하며 앓아누운 시아버지 병수발까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이 아플 때에 누가 돌봐 준 사람이 없었을 텐데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프면 수건을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한손으로 벽 짚고 한손으로 허리 두들기며 끝끝내 집일 모두 하고 시아버지 병수발과 똥오줌 치우기 모두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잠 없이 혼자 잘 논다 싶던 아이는 책을 밟고 창문가에 서서 인형을 들고 놀다가 갑자기 쭈그려앉더니 소리가 나도록 쉬를 갈깁니다. 틀림없이 스스로 오줌을 눌 줄 알면서 심통을 부리거나 졸리거나 골이 날 때 보여주는 몸짓입니다. 책과 바닥에 흐르는 오줌을 걸레로 훔치고 아이 바지를 갈아입히며 이마를 짚습니다. 한숨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얘야, 아빠가 어떡하면 좋겠니? 이 몸으로는 너무 힘들어 널 업어서 재워 주지 못하겠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 어린 날을 떠올려 봅니다. 어머니는 거의 성을 부리지 않았다고 느끼는데, 저하고 형이 다투었다든지 뭔가 말썽거리가 있으면 큰소리를 내며 꾸짖었고 구두주걱 따위로 엉덩이와 종아리를 후려갈겼습니다. 엉엉 울며 잘못했다고 빌어야 비로소 후려갈기기를 그치셨습니다.

 형은 집에서 낳고 저는 병원에서 낳았다는데, 형이나 제가 언제쯤 똥오줌을 가렸다거나 똥오줌을 아무렇게나 싸질러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여쭈면, 어머니는 그때가 언젠데 생각이 나느냐며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얼마나 말썽을 피웠다라든가, 제가 얼마나 걱정스러운 짓을 했다라든가 또한 생각나지 않으신답니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아기였을 때와 어린이였을 때만 고달플 아이키우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으면 나이를 먹는 대로 갖가지 어려움과 힘겨움이 있습니다. 아이를 다 길렀다 싶은 이웃 분들은 정작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직 멀었다고들 말씀합니다. 이즈음 보여주는 온갖 모습은 외려 귀엽고 재미있기까지 하답니다. 참말 그럴까 궁금하고, 아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나날이 부대끼는 삶만큼 앞날이 고단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단하다면 오늘 하루가 고단하지 다가올 모레나 글피가 고단하지 않습니다. 모레나 글피를 헤아릴 겨를이 없달까요.

 숨을 돌리고 싶어 아이는 집에 두고 혼자 구멍가게로 찾아가 먹는샘물 여섯 통을 사 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오르막길에서 아이를 안은 채 십이 리터들이 물통을 한손으로 들어야 하기에, 오늘처럼 아픈 몸으로는 아이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밖으로 나갈 낌새를 보이자 얼른 저도 따라 나서겠다며 신발을 찾습니다. 아빠는 쌀쌀맞게 문을 닫고 혼자 나갑니다. 아이는 문간에서 빽빽 소리를 지르며 왜 저는 두고 가느냐며 투덜거립니다.

 여느 때에는 한 번에 오르는 오르막을 여러 차례 쉬어 가며 오릅니다. 물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아픈 채 보내는 오늘 하루를 잊지 않으려고 오늘 일을 적바림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적바림해 놓지 않는다면 나 또한 우리 어머니처럼 우리 아이가 어릴 적 겪거나 치른 일을 하나도 못 떠올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옆지기는 아이 예전 사진을 보며 아이가 그렇게 더 어린 적이 있었느냐며 묻곤 합니다. 고작 한두 해 지난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머니한테는 사진기가 없었을 뿐더러 사진기가 있었어도 사진기로 당신 삶을 적바림할 틈을 못 내셨으리라 봅니다. 저한테는 사진기가 있고 글을 쓰는 셈틀이 있습니다. 허구헌날 아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투덜거리는 애 아빠 잔소리요, 아이 때문에 오늘 하루 또한 얼마나 고달프고 이마에 주름살이 늘었느냐는 푸념뿐입니다. 그래,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어찌 이토록 잔소리와 푸념만 가득한가 싶습니다. 아이를 찍은 사진을 혼자서 돌아보거나 옆지기랑 아이하고 함께 돌아보노라면 이 아이가 얼마나 곱고 착한가 하고 느끼면서, 정작 살을 부비고 있는 동안에는 고달프고 힘에 부친다는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제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를 고단하게 하던 모습이 오늘날 우리 아이가 저를 고단하게 하는 모습하고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제가 어머니한테 궁금하게 여기는 대목은 바로 오늘 하루 아주 실컷 느끼거나 배우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바깥으로 돈 벌러 나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식구들하고 내내 복닥이고 있기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힘겹고 벅차지만 힘겹고 벅찬 만큼 내 어린 삶을 되짚습니다. 우리 아이 어린 나날 삶을 적바림하여 둘레에 들려주면서 나중에 우리 아이가 더 클 무렵 ‘아이를 키우는 여느 어버이 삶과 넋’이 어떠한가를 조금이나마 짚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 키우기란 어버이 키우기요, 아이 키우기란 사람 키우기이며, 아이 키우기란 다름아닌 내 삶을 키우는 나날이라고 뼛속 깊이 느낍니다.
 





 (2) 어린이문학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1982년에 처음 우리 말로 옮겨진 뒤 2007년에 다시 나온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라는 어린이문학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이 책을 알아보던 지지난달, 무엇보다 책이름에 눈길이 이끌렸습니다. ‘고집장이’라. 나한테는 여동생이니 남동생이니 아무도 없지만, 바로 우리 아이야말로 고집장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퍽 오래된 서양 어린이문학인데,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숱한 어린이문학마냥 ‘판타지’가 아닙니다. 아주 수수한 ‘삶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겪었음직한 이야기요, 어디에서나 봄직한 이야기를 담은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입니다. 동생이 있어 본 사람이라면 으레 느꼈음직하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라면 늘 부대끼고 있음직한 이야기가 조곤조곤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에 나오는 고집장이 여동생은 한낱 고집장이이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때에는 벼락맞을 고집장이 짓을 하지만, 어느 때에는 둘도 없이 착하고 얌전한 아이 몸짓을 합니다. 여동생은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품과 가슴을 알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저를 미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눈길과 손길을 알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저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얌전합니다. 여동생은 저를 미워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끔찍하게 고집장이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우리 집 아이를 고집장이로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 아이가 먼저 고집장이일 리 없으나, 애 아빠 된 내가 툭하면 힘들다느니 걸핏하면 지친다느니 핑계를 잔뜩 늘어놓으며 아이하고 제대로 놀아 주지 않으니 아이가 자꾸자꾸 고집장이에다가 떼쟁이 짓을 하지 않느냐 싶어요.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에 나오는 어머니를 보면 이토록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이 어머니로구나 하며 새삼 깨닫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를 보면 이다지도 무뚝뚝하고 제 일거리만 찾는 사람이 어머니로구나 하며 남달리 배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부터 아이를 더 살가이 보듬지 못하면서 아이 탓만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리 힘들고 저리 고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힘든 만큼 보람 있고 고된 만큼 아름다운 삶임을 잊고 있기에 아이를 키우는 나날을 즐거이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른 누구한테 읽으라고 건넬 책이 아닌 저 스스로 여러 차례 거듭 읽을 책이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어 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어 주며 애 아빠 된 저 스스로 얼마나 고집장이 짓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쓰다듬고 품에 안고 어부바를 하면서 아이가 너르고 따순 사랑을 듬뿍 받아먹도록 할 노릇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요 부대끼는 몸짓에 따라 새로워지는 삶인데,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까닭을 살피고 아이가 고집을 피우는 뿌리를 헤아리며 곱게 손을 내밀어야지 싶습니다.


 (3) 조곤조곤 되읽는 말마디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라는 어린이문학에는 돋보이는 고빗사위는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몹시 부드럽습니다. 큰일이란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흔하고 너른 이야기만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린이문학은 몹시 재미있고 애틋합니다. 바로 이 어디에서나 흔하고 너른 이야기야말로 우리 삶을 북돋우는 이야기이며, 이와 같이 흔하고 너른 이야기를 사랑하는 가슴이 될 때에 우리 삶을 아끼고 돌보며 힘차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글월 하나하나에 웃음을 지으며 읽고, 글줄 하나하나마다 눈물을 지으며 덮습니다. 제가 앞으로 써야 할 글이라면 다름아닌 이런 이야기여야 한다고 새삼 느끼고, 나 스스로 날마다 복닥이는 삶을 제대로 사랑하고 알뜰히 건사하면서 저부터 참되고 착하고 고운 어버이로 자리잡도록 힘써야겠다고 다시금 곱씹습니다. (4343.5.17.달.ㅎㄲㅅㄱ)


[9, 12, 14, 16쪽] 사진을 찍을 때 웃으라고 하면 꼬마 여동생은, “난 웃기 싫어!”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같은 것을 주면 동생은, “고맙습니다!” 하고 생글생글 웃었읍니다 … “얘, 너의 꼬마 여동생이 물속에 들어갔다!” 큰일났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신과 양말도 벗지 않은 채 물속에 들어와 고기를 잡으려고 했읍니다 … “말 안 들으면 끌어낼 거야!” 그러자 동생은 물속에서 달아나려고 했읍니다. 동생은 정말 바보 같은 아이입니다. 물속에서 달아나려고 하다가 넘어져서 옷이 온통 젖고 말았읍니다 … 꼬마 여동생은 샌드위치를 다 먹어 버렸읍니다. 동생은 자기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내 샌드위치와 내 친구들의 샌드위치까지 다 먹어 버리고 말았읍니다. 다 먹고 나서는 또다시 엉엉 울었읍니다. 이번에는 꼬마 여동생에게 주스를 주었읍니다. 동생은 주스를 밭에 뿌려 버리고 또 엉엉 울었읍니다.

[20, 22∼23쪽]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내 꼬마 여동생은 늘 아침 식사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읍니다. 점심도 남김없이 다 먹었읍니다. 저녁도 남김없이 다 먹었읍니다. 무엇이든지 남기는 것이 없었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은 아침을 조금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 어머니는 동생에게 나들이할 때 입는 푸른색 새 드레스를 입히고 흰 양말에 새하얀 신을 신겼는데, 그 사이에도 동생은 조금도 어머니를 돕지 않았읍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다 알 거여요. 동생은 그냥 멍청히 선 채, 옷을 입혀도 소매에 팔을 넣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신을 신겨도 발을 들어 주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하셨읍니다. “할 수 없다. 너는 두고 가야 할 것 같다.” 그 말을 듣자 고집장이 꼬마 동생은 얼른 발을 들었읍니다.

[33, 36∼37, 40쪽] 동생은 우유배달 아저씨나 빵집 아저씨, 석탄집 아저씨나 유리창 닦는 아저씨, 그밖에 장사로 오는 사람들과 늘 이야기를 잘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면 방해가 될 만큼 잘도 재잘댑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고집장이 꼬마 동생을 좋아했읍니다 … “의사는 싫어!” 하면서 시트 아래에 얼굴을 묻었읍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린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동생이 좋아하는 우유배달 아저씨였읍니다. 우유배달 아저씨는 동생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는 옆줄이 쳐진 노트와 파란 연필을 두고 가면서, 말했읍니다. “빨리 나아야지.” … 유리창 닦는 아저씨도 지지 않았읍니다. “의사가 싫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데. 너는 가엾은 꼬마 아가씨로구나. 귀로 듣는 청진기도 입안에 넣는 체온계도 그리고 의사의 가방 속에 있는 그 많은 신기한 것들도 다 못 보고 말다니 정말 안 됐다…….”

[45∼46쪽] 동생은 도토리에 대해서는 나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읍니다. 혼자만 비밀로 간직했읍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고집장이 꼬마 동생은 도토리를 심은 곳에 가서는 돌멩이와 잎사귀와 가지를 보았읍니다 … “누구냐? 아빠의 꽃밭을 마구 파헤쳐 놓은 사람이?” 아빠가 물으셨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이 대답했읍니다. “아빠, 내가 그랬어요.” “그래? 그렇다면 너는 나쁜 아이다. 아빠가 뿌린 꽃씨를 다 못 쓰게 만들어 놓지 않았니.” 그러자, 동생이 말했읍니다. “꽃씨 같은 것은 아무려면 어때서요. 반짝이는 갈색 도토리를 심었는데요.”

[47, 51쪽] 정말 모르는 것이 없는 우리 어머니는 병에 물을 담고 어떻게 하면 병 아가리에 도토리를 심을 수 있는지를 동생에게 가르쳐 주었읍니다 … 동생이 나무를 심자, 어머니는 주위의 흙을 어떻게 눌러 주는지를 가르쳐 주었읍니다.

[66∼68쪽] 어머니는 화가 나셨읍니다. 동생 옆에 가서 인형을 뺏으려고 하셨읍니다 … 벌로 어머니는 동생을 자기 방에 가두어 버렸읍니다. 그렇게 나쁜 일을 했으니까 당연한 벌이지요. 나의 소중한 요정인형은 마당의 흙탕물 속에 거꾸로 처박혔읍니다 … 두 인형은 무척 예뻐져서 병원에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동생은 병원에서 돌아온 로지 프림로즈를 보더니 아주 실망했읍니다. 왜냐하면 로지 프림로즈는 몰라보게 고운,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아무것도 없던 머리에는 곱슬머리가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99∼102쪽] 꼬마 여동생이 날마다 존즈 아주머니네 집으로 갔기 때문에 존즈 아주머니네 아저씨는 우리 집과 아주머니네 집 사이에 조그만 문을 만들어 주었읍니다. 아저씨는 그 문 위에 조그만 아치를 만들고 그 문 위에 덩굴이 자라도록 덩굴 한 그루를 심었읍니다. 동생이 얼마나 행복했겠어요? 그래서 존즈 아주머니와 나의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과 아주 친하게 되었읍니다 … 어느 날이었읍니다. 코코아 존즈 아주머니가 고집장이 나의 꼬마 여동생에게 말했읍니다. “너, 뜨개질을 배우고 싶지 않으냐?” 그러자 동생이 대답했읍니다. “배우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겠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떠 줄 수 있단다. 크리스머스 선물도 만들 수 있고, 생일 선물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그 말을 듣자 꼬마 여동생은 뜨개질을 배우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읍니다. “그럼 배울래요. 진짜 배워 주는 거지요?”

[118∼119, 122∼123, 125쪽] 다음날 아침 동생은 일찍 일어나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옷을 입었읍니다. 정말이어요. 단추도 자기가 잠그고 양말도 자기가 신었읍니다. 자기가 얼마나 옷을 잘 입는가를 선생님께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침밥을 짓는 동안 마당에 나가 자기 꽃밭에서 꽃을 꺾어 예쁜 꽃다발을 만들었읍니다. 선생님에게 가져다 드리려고요. 그러니까 나의 꼬마 여동생도 가끔은 아주 착한 아이였읍니다 … 아이들은 대답하려고 손을 들었읍니다. 그러자 나의 꼬마 여동생도 덩달아 손을 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 웃었읍니다. 선생님이 말하셨읍니다. “웃으면 안 돼요.” 그리고 선생님은 나의 꼬마 여동생에게, 진짜 큰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생은 또박또박 맞는 대답을 했읍니다. 그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말하셨읍니다. “아주 좋은 대답을 했으니까 선생님은 90점을 주겠어요.” 학교에서 90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여러분도 잘 아시지요? 선생님은 동생을 위해서 손수 90점이라고 써서 진흙 바구니 옆에다 붙여 놓았읍니다 … 동생은 그날 참으로 좋은 아이였읍니다. 그런데 다음 시간에 우리가 교실에 돌아와서 책읽기를 시작했을 때 동생은 소리없이 가만히 있었읍니다. 왜 그런지 아셔요? 동생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린 것입니다.

[130쪽] 아버지는 의자와 책상을 마당으로 내갔읍니다. 꼬마 여동생도 마당으로 나갔읍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기 때문에 동생은 아주 얌전하게 놀았읍니다. 꽃밭에 들어가 마구 짓밟지도 않았고 꽃을 꺾지도 뽑지도 않았으며 나쁜 짓은 조금도 하지 않았읍니다. 동생은 아버지가 다시 화난 얼굴을 하시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 “아빠, 나 물 마시고 싶어요. 목이 말라요.”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것은 동생으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읍니다. 왜냐하면 동생은 가끔 빗물통에서 더러운 물을 마실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창 일을 하실 때였기 때문에 동생이 자주 귀찮게 구는 것이 싫으셨읍니다.

[139쪽]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동생을 내쫓았다고 우리를 무척 못마땅해 하고 있었읍니다.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도 내가 데려오려고 하자 화를 내며 말했읍니다. “싫어. 블레이크 할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이 더 좋아.”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동생에게 달걀을 삶아 주었고 신문지에 싼 빵과 치즈를 꺼내어 가죽 자르는 칼로 잘게 썰어 주기도 했읍니다. 어머니도 화가 나셨읍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맛있는 차를 끓여 마시려고 했는데, 동생을 찾느라고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화가 났읍니다. 나는 동생만 블레이크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즐겁게 지낸 것이 샘이 났기 때문입니다.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뿐이었읍니다. “아, 이제 살았다. 이제 장난꾸러기 딸에게 정신을 팔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지의 여행
신혜 글.그림 / 샨티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42 ― 힘든 앎, 힘든 사람, 힘든 뜻
 : 신혜, 《먼지의 여행》


- 책이름 : 먼지의 여행
- 글ㆍ그림ㆍ손글씨 : 신혜
- 펴낸곳 : 샨티 (2010.2.16.)
- 책값 : 12000원



 (1) 아이하고 보내는 하루란


 아이와 함께 바깥마실을 나오려고 했더니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아직 아이 비옷을 마련해 주지 못한 까닭에 아이를 걸릴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애 아빠가 아이를 한팔로 안고 우산을 받으며 걷습니다. 아이도 비 때문에 걸리지 못함을 알고 있는지 아빠한테 안겨 가면서도 내리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느 때라면 바둥바둥하면서 얼른 내려 달라 했을 테지만 아빠 품에 꼬옥 안긴 채 한손으로 우산대를 잡습니다. 아이는 품에 안겨 우산을 함께 잡으며 다니고 싶은가 봅니다.

 아이를 안고 우산을 받아 본 분은 알 텐데, 이러한 몸으로 몇 분 걸어도 팔이 저리고 힘듭니다만 한두 시간쯤을 이렇게 걷는다 한다면 내 팔은 내 팔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팔이 저리더라도 이렇게 걸을밖에 없고, 이렇게 걷는다고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팔은 저리지만 세 식구가 함께 바깥마실을 할 수 있으니 기쁩니다.

 생각해 보면 여느 식구들은 으레 자가용을 몰고 있으니,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날이 맑건 흐리건 이냥저냥 자동차에 타고 움직입니다. 추운 날에 추위를 느끼며 걸을 일이 없을 테고, 더운 날에 더위를 느끼며 걸을 일이 없겠지요. 눈이 오는 날 눈을 느끼며 걷는 요즘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비가 오는 날 비를 느끼며 걷는 오늘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워낙 아기수레 없이 아이를 키웠고, 자가용 또한 없이 아이와 살고 있습니다. 아이랑 바깥마실을 다닐라치면 아이 기저귀며 옷가지며 잔뜩 짊어지고 다닙니다. 21세기 한국에서 여느 식구라 한다면 자가용에 아기수레며 갖가지 물건이며 잔뜩 챙기고 다닐 테지만, 우리 식구는 아기 옷가지에 천가방을 여럿 챙기고 다닙니다. 걸어서 저잣거리를 찾아가고, 한참 둘러본 다음 물건을 장만하며, 장만한 물건은 등에 메는 가방과 어깨에 걸치는 천가방에 담아 집으로 걸어서 돌아옵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이라면 아이까지 품에 안고 우산을 받는 몸으로 걸어서 돌아옵니다.

 제 어린 날을 더듬어 봅니다. 더 어린 날은 떠오르지 않으나 일고여덟 살 적부터 떠오르는데, 어머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서 물건을 장만했습니다. 어머니가 물건 사러 나갈 때에 따라나서면 시내 구경도 하지만 길에서 무언가 얻어먹을 수 있고, 어머니랑 함께 어울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버스 타기 또한 신나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머니가 장만한 물건을 함께 나누어 들고 오는 일쯤이야 아무것 아닙니다. 시내 구경에 버스를 타고 주전부리를 할 수 있다면 무슨 심부름인들 못하겠습니까. 어린이일 때 어머니와 저잣거리 마실을 다닌 일이 몸과 마음에 생생히 아로새겨졌기 때문이라 할 수 없으나, 우리 아이하고 저잣거리 마실을 다닐 때에는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든 안 사든 바깥바람을 함께 쐬고 돌아오는 길이 즐겁습니다. 이래저래 몸이 고단하고 힘들어, 집으로 돌아온 뒤 그대로 나가떨어지거나 곯아떨어지더라도 저녁나절에 깨어나고 보면 개운하고 후련합니다.

 저잣거리에 나간다 한들 따로 무언가 가르치거나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그저 아이 스스로 이리 촐랑 저리 촐랑 들여다보고 구경하는 양을 지켜봅니다. 아이는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사람들한테 알은체를 하고 웃음을 띄우며 때때로 손을 들어 가리키며 “넌!” 하는 한 마디를 합니다. 저잣거리에서 아이를 귀엽게 바라보는 어른들은 사탕이나 만두나 국화빵이나 떡을 한 점 집어 주곤 합니다. 아직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할 줄 몰라 아이보고 “자,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하고 꼬박꼬박 말을 걸지만 두 번 가운데 한 번만 고개를 까딱까딱 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어린 날을 되새기노라면, 어머니를 따라나선 저잣거리 마실도 즐거웠고 홀로 심부름을 하던 일도 즐거웠습니다.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면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내리고 달음박질을 하며 가게로 갑니다. 어머니가 내어준 돈은 한손에 꼭 움켜쥐고 달립니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나, 주머니에 넣고 달리다가 빠진 적이 있습니다. 가게에 닿고 보니 돈이 없어 화들짝 놀라 오던 길을 헐레벌떡 돌아가 돈을 주워 다시 달린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가게에 들어서기 앞서 후욱 하고 큰숨을 들이쉬며 숨을 고릅니다. 가게 이곳저곳을 잽싸게 둘러보고서는 사야 할 물건을 얼른 골라 셈대에 올려놓습니다. 셈을 치를 때면 으레 가게 아주머니가 “심부름을 왔구나. 착하지.” 하면서 50원쯤 에누리를 해 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에누리를 해 주시면 10원이든 50원이든 몰래 감추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아 나중에 오락실에 가거나 군것질을 합니다. 때로는 만화책을 사고 어느 때에는 우표를 삽니다.

 퍽 이르다고 할는지 모르나, 집에서 스무 달짜리 우리 아이한테 심부름을 시킬 때가 있습니다. 엄마가 밥을 하며 먹을거리 한 점을 포크에 찍어 “자, 아빠 드시라고 해.” 할 때가 있고, 페트병에 담긴 물병을 아이한테 안기며 “자, 엄마한테 갖다 드리렴.”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아이는 스스로 걸상을 끌어 개수대 앞에 착 갖다 붙이고는 부엌살림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올라가서 이것저것 만지며 놀기를 좋아합니다. 방에 창문을 열어 놓으며 공기갈이를 할라치면 방까지 걸상을 들고 올 수 없으니 낑낑대면서 창가에 걸상을 대 달라고 합니다. 걸상을 번쩍 들어 창가에 대 놓으면 아이는 영차영차 기어올라가서는 창가에 착 붙고는 바깥바람을 쐬며 골목길을 내려다봅니다.

 하루 내내 아이하고 어울리며 지켜보면, 아이는 쉴새없이 뛰고 걷고 말하고 놀고 달려듭니다. 아직 스스로 오줌을 가리지 못하니 때 맞춰 쉬를 시킵니다. 배고파 할 즈음 밥을 차려서 먹이고, 하루에 두 번쯤 똥을 눌 때에 잘 받아서 치우고 닦입니다. 엊그제 아이가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요 며칠 못 씻기지만, 날마다 아침빨래를 하면서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깁니다. 그러고는 낮에는 낮잠을 한 번 재웁니다. 낮잠을 안 자고 놀 때가 있으나, 이렇게 낮잠 없이 놀면 저녁에는 아이가 부리는 짜증이 대단하며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데다가 새벽에 자꾸 깨며 칭얼거립니다. 어제 한 빨래가 다 말라서 갤 때쯤 아이는 어느새 다시 배가 고파 저녁을 차려야 하고, 저녁을 차리고 함께 먹고 치우고 하노라면 그만 하루해가 저뭅니다.

 이 나라 숱한 남자들이 몸소 ‘전업주부’ 노릇을 해 본 적이 없는 까닭에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빠듯하게 하루를 보내며 날짜를 모르는지’를 살피지 못합니다. 밥때는 왜 이리 금세 돌아오고, 빨래는 왜 날마다 수없이 쌓이며, 날마다 치우고 쓸고 닦아도 이튿날이 되면 어인 먼지가 이리 다시 쌓이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아이한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히고 바깥마실을 시킵니다. 혼잣몸으로 아이를 훌륭히 잘 돌보면서 돈벌이까지 척척 해내는 분이 있다지만, 이렇게 척척 해내는 분들은 스스로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기에 당신한테 쏟는 시간이 하나 없고,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면 갑작스레 몸이 무너지기 일쑤입니다.

 오늘도 아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안기고 하다가는 두 시간 만에 비로소 ‘혼자 놀기’를 합니다. 혼자 놀기란 온갖 인형과 놀잇감을 방바닥에 아무렇게나(어른이 보기에는 ‘아무렇게나’이고 아이한테는 아이 ‘나름대로’) 늘어놓는 놀이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늘어놓기만 하다가 요사이는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기도 하지만, 이렇게 돌려놓는 일은 드뭅니다. 인형을 통에서 다 끄집어 낸 다음 인형 담던 통에 아이가 들어가 쭈그려앉으며, 머리띠를 둘이나 셋이나 넷을 한꺼번에 머리에 씌우고 헤헤거리며 웃습니다. 아빠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 아이는 인형통에 들어가 쭈그려앉다가는 아빠 사진기를 끙끙대며 잡아당겨서는 켭니다. 그런데 또 끙끙대기에 “왜?” 하고 물으며 바라보니, 사진기에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 앞서 메모리카드를 비웠거든요. “미안해. 곧 사진 만들어 줄게. 엄마 사진 찍자.” 하면서 엄마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아이한테 사진기를 건넵니다. 지난주쯤 엄마가 팔찌 놀잇감을 아이한테 보여주었더니 아이는 길쭉한 종이를 팔찌처럼 팔에 감으며 놉니다. 그러고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하나를 들고 아빠한테 다가옵니다. 이 그림책을 펼쳐서 보여주고 읽어 달라며 “빠빠! 빠빠!” 합니다. 그림책을 두 번 읽어 주고, 길쭉한 종이를 아이 왼팔에 감싸 줍니다. 종이 팔찌를 아이가 벗기더니 끙끙거리기에 다시 팔찌를 만들어 주니 팔찌가 벗겨질세라 한쪽 팔을 가만히 든 채 사진기로 다가가 한 번 들여다보고는 엄마 무릎에 앉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 옹알옹알거리면서 온 방을 돌아다닙니다. 이제 곧 배고프다고 칭얼거릴 테니까 밥상을 차려야겠지요. 오늘 하루도 참으로 빠르게 한 시간 두 시간 지나갑니다. 어버이한테는 참으로 빠른 나날인데 아이한테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아이한테는 더없이 더딘 나날일까요. 어버이한테는 그지없이 고단하고 바쁘니 날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더 짧다고 느끼는 셈이고, 아이한테는 더 오래 많이 놀고픈데 엄마 아빠가 오래오래 저하고만 놀아 주지 않으니 지루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면서 길디긴 하루라고 느낄까요.


 (2) 힘들게 살며 힘들게 얻은 《먼지의 여행》


 1984년에 태어나 ‘여느’ 아이와 같이 여느 제도권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다음 대학교까지 마친 분이 어느 날 문득 ‘남들과 비슷하거나 똑같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비슷하거나 똑같이 살아야 하는 나날’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어 조용히 부모님 집을 떠납니다. 부모님 곁에서 떠나 홀로 돈 없이 나라밖을 돌아다닌 젊은 넋은 한 해 동안 일본과 인도와 네팔과 태국과 중국을 거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짧지 않은 나날을 나라밖에서 돈 없이 돌아다니며 마주한 사람과 삶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 젊은 넋은 도무지 ‘제도권 틀 그대로’ 살아갈 재주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라고 하는 목숨 하나는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면서, 이렇게 먼지와 같은 목숨이기에 참 좋고 가볍고 밝으며, 나한테도 남한테도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아님을 새삼 느낍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갈피잡지 못하고 있으나, “괜찮아. 다음 길은 다음 걸음에 보일 거야.” 하는 생각을 고이 품습니다.

 젊은 넋은 스스로 제도권에서 벗어나려고 용을 쓰던 나날과 굳이 용을 쓰지 않으면서 제 삶고리를 느끼며 보내던 나날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놓습니다.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제도권 울타리에서 하루하루 보냈을 때에는 구태여 제 삶을 글이든 그림이든 남길 까닭이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내 삶이든 네 삶이든 다 비슷비슷하니까요. 내 어버이 삶이든 동무 어버이 삶이든 거의 같거나 닮았으니까요. 이리 보거나 저리 보거나 엇비슷한 옷에 차림에 얼굴에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뿐이니까요.

 내 길이 아닌 제도권 길을 걷기에 무엇이 기쁨이고 무엇이 슬픔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아니, 알아야 할 까닭이 없고, 알지 않아도 되며, 알지 않더라도 잘못될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애써 눈을 두어 살피라고 하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남들이, 아니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바라거나 시키는 대로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나다운 삶을 나답게 찾거나 즐길 까닭이 없는 한편, 나다운 삶을 나답게 찾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좀더 높다 하는 대학교 졸업장을 움켜쥐면 되고, 이 졸업장으로 연봉을 한푼이라도 더 주는 큰 일터를 찾아서 들어가면 되며, 정 안 되면 집식구들이 꽤 잘사는 짝꿍을 찾아서 시집장가를 가면 되는 세상 얼거리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맞는 좋은 짝꿍을 찾아 빛나는 사랑을 꽃피우는 젊은 넋이 있습니다만, 이 나라 젊은 넋들 가운데 어릴 때부터 ‘빛나는 사랑’을 스스로 하도록 배운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이 나라 젊은 넋이나 푸른 넋이나 어린 넋 가운데, 제 둘레에 빛나는 사랑을 곱게 꽃피우는 어른을 마주하는 사람은 참 드뭅니다. 늘 보느니 돈바라기 어른이요, 으레 보느니 이름바라기 어른이며, 노상 보느니 힘바라기 어른입니다. 국가경쟁력이니 세계경쟁력이니 무한경쟁이니 하면서 나다운 내 삶을 찾는 길은 경쟁력이 하나도 없는 못난쟁이 헛놀음이라는 생각만 키울 뿐입니다. 주식이니 펀드이니 아파트이니 투자이니 처세이니 경영이니 자기계발이니 하면서 옳은 삶이나 바른 삶이나 예쁜 삶이나 멋진 삶하고는 동떨어진 채 살도록 내몰리고 있을 뿐입니다.

 힘겹게 떠돈 삶을 《먼지의 여행》이라는 책에 조촐히 담은 앳된 넋은, 여태껏 보낸 스물 몇 해를 훌훌 털어 보내면서 아무것도 또렷하지 않은 가시밭길을 가고자 다짐합니다. 아무래도 《먼지의 여행》을 쓴 젊은 넋을 키워 온 어버이한테는 가시밭길일 테지만, 이 책을 쓴 젊은 넋으로서는 풀숲길이리라 봅니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으며 한 해 두 해 온갖 풀이 돋아나고 자라난 길 없는 길이리라 봅니다. 왜, 사람들 떠난 자리이면 시골이든 도시이든 풀이 돋아나잖아요. 서너 해쯤 지나면 제법 큰 나무가 자라나 있고, 사람손을 하나도 안 탄 채 열 해쯤 되면 어느새 집 모양은 찾아볼 길이 없이 숲으로 바뀝니다. 《먼지의 여행》을 쓴 젊은 넋은 바로 이러한 풀숲길을 찾아서 걷고 있습니다. 때로는 풀숲길에 발자국을 남겨 젊은 넋 뒤로 누구나 따라올 수 있도록 할 수 있고, 때로는 젊은 넋 발자국 하나 안 남기면서 풀숲에 조용히 녹아들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몇 사람쯤 밟는다고 해서 풀숲은 꺾이거나 시들거나 사라지지 않거든요.

 곰곰이 헤아려 보면, 《먼지의 여행》을 쓴 젊은 넋은 이녁대로 반가운 풀숲에 들어가 풀빛을 온몸 가득 받으면서 푸른빛을 받아들인다고 하겠습니다. 전업주부이자 밥벌이하는 아빠로 살아가는 저로서는 저대로 살가운 풀숲에 들어가 제가 좋아하는 풀빛을 온마음 가득 껴안으면서 푸른결을 곰삭인다고 하겠습니다. 남이 걷는 길을 괜히 따라 걸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좋고 반가우며 살갑다면 남이 걷는 길을 따라 걷는 노릇이 아니라, 남이 걸었든 안 걸었든 내 깜냥껏 신나게 걷는 셈입니다. 내가 걷는 길이기에 가시밭길이어도 좋고 풀숲길이어도 좋으며 한길이어도 좋고 골목길이어도 좋습니다. 내가 바라는 삶이기에 혼자 살아도 좋고 옆지기를 만나 살을 섞어도 좋으며 아이를 낳아 복닥이며 살아도 좋습니다.

 안 힘들게 살아가면 안 힘들게 살아가는 대로 세상을 보면서 내 삶을 다스립니다. 힘들게 살아가면 힘들게 살아가는 대로 세상을 부대끼면서 내 삶을 추스릅니다. 주머니 넉넉한 채 살아가면 주머니 넉넉한 눈높이로 세상을 헤아리면서 내 삶을 보듬습니다. 가난한 몸뚱이로 살아가면 가난한 몸뚱이로 세상을 살피면서 내 삶을 어루만집니다.

 손글씨와 손그림이 정갈한 책 《먼지의 여행》을 덮으면서, 이 책을 일구어 낸 젊은 넋 ‘신혜’ 님이 앞으로 서른 살을 맞이할 때까지는 어떤 길을 얼마나 더 힘겹고 벅차게 부딪히고 뒹굴면서 새로운 얼굴과 몸빛으로 거듭날는지 궁금합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즐겁게 잘 싸우겠지요. 즐겁게 잘 싸우고 즐겁게 잘 어깨동무하며 즐겁게 잘 울고 잘 웃으며 하루하루를 뜻있게 되새길 테지요.


 (3) 힘들이지 않고 다시 읽는 글월


 유행처럼 나도는 손글씨나 손그림이 아니라, 젊은 넋 스스로 반가이 맞이했던 삶을 꾸밈없이 담아낸 손글씨와 손그림으로 이루어진 책 《먼지의 여행》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던 대목을 되읽습니다. 가슴에 아로새기는 책은 두 번 되읽고 세 번 곱읽을 때마다 새록새록 스며듭니다. 성경을 수없이 되읽고 곱읽는 분들은 어떤 교리나 주의주장이 아닌 당신 삶을 아름다이 가꾸고픈 마음으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수없이 되읽고 곱읽겠지요. 저는 저한테 반갑고 기쁘며 고마운 책을 하느님 말씀으로 삼으며 차근차근 되읽고 곱읽습니다. (4343.3.5.쇠.ㅎㄲㅅㄱ)


[11∼13, 18, 44∼45쪽] 이 느낌은 시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라며 고생도 해 보고 사람들과 정도 나누며 살아온 부모님은 이미 알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 살면서 시키는 공부만 하고 거래와 경쟁을 당연히 여기며 자란 나에게는 특별했습니다 … 대학을 졸업할 때쯤 사회와 부딪치며 다행히도, 내가 먼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16년 동안 책상에 앉아 공부했지만, 비싼 돈 들여 입시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건 배운 게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대학 졸업장과 각종 자격증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밖에 얻은 것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심한 허탈감을 느꼈다 … 아, 이렇게 길들여져 있었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낯설 정도로 하라는 것만 하고 배우라는 것만 배우도록. 권위자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교육받았던 것이다.

[13, 28∼29, 32쪽] 돈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돈이 먼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먼저가 되더군요 …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순수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느낌은 정말 뿌듯하고 기쁜 거였다 … 내 주변 친구들은 모두 바빠서 한 달에 한 번이나 겨우 만났다. 만나도 각자 고민거리가 많아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했다. 부모님과도 제대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의견 차이 때문에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 가진 게 없어서 오히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돈이 있으면 자기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면 되니까 그 이상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을 필요가 없었지만 돈이 없을 때는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어야 필요한 걸 얻을 수 있었다.

[50, 51, 136, 161쪽]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제일 바라는 건 그저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사는 건데, 그분들이 정해 놓은 길이 내 행복과 건강에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면, 부모님이 가장 바라는 것을 위해서라도 지금 갈등을 각오하는 게 낫지 않을까? … 난 부모님과 대화할 줄 몰랐다. 부모님도 나와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 … 아름다운 일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 거라고,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 콜카타에 있을 때 한 한국인 여행자가 말했다. “당신이 배우고 느낀 사랑을, 당신의 변화를, 부모님께도 느끼게 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다람살라에서 만난 여행자가 말했다. “네가 진실한 삶을 위해 사는 이상, 너의 부모님도 그런 삶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어.”

[80쪽]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 없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으면, 머리속이 점점 단순해졌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지금 내 마음을 사랑에 열어 두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 … 돈 가지고 여행하며 돈 계산, 여행 예산 짤 시간에 우리는 만족한 마음으로 많은 친구를 사귀며 멍하니 떠가는 구름을 볼 수 있었다.

[95, 124, 178쪽] 다행히, 길에서 순례자들에게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약을 나눠 주었다. 나의 고통을 자신들의 고통으로 느끼고 도와준 그들이 고마웠다 … 자신이 아무것도 없이 홀로일 때, 비로소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 내 마음을 따라 여행하면서, 없이 사는 것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됐다.

[133∼134쪽] 사진 찍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카메라가 없어서,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색연필로 초상화를 그려 주기로 했다. 카메라로 찰칵 찍고 말 순간을 천천히 그림으로 그리며, 나는 아이들과 친해지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아이들이 나를 오래 쳐다보고, 나도 아이들을 오래 바라봤다.

[189, 207쪽] 천국은 죽어서, 예수를 믿어야만 가는 게 아니었다. 예수가 말한 사랑을 실천하면, 살아 있는 그 순간이 천국이 되는 거였다 … 나를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 나아가는 것, 이게 진짜 예술이 아닐까? 이렇게 나의 삶이 예술이 되었을 때 내가 일상에서 표현하는 모든 것들도 예술이 될 거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건 글 그림 음악이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이 분열하지 않는 일, 하나가 되는 일, 그 길을 찾는 일이다.

[220쪽] 나에게 여행은 유명한 곳을 구경하려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 익숙한 영역,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필요한 걸 배우기 위해서였다.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색다른 쇼핑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쇼핑은 어디를 가나 비슷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 웅진책마을 52
오카 슈조 지음, 김정화 옮김, 이윤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만 사는 아파트숲에서 생각하는 자연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26] 오카 슈조,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



 도시 물질문명, 환경파괴, 입시지옥, 공장과 기계, 자동차와 아파트, 이기주의와 무관심,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 들이 얼크러져 자꾸자꾸 뒤틀리는 사람들 삶을 ‘동물 우화’ 틀로 담아낸 어린이문학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를 읽었습니다. 어린이문학에서 이 같이 무겁고 큰 이야기를 다룰 수 있구나 싶어 놀라운 한편, 곰곰이 헤아리면 오늘날은 어린이문학에서고 어른문학에서고 이와 같은 이야기는 잘 안 다루고 있으니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이라고 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즐겨 다룬 문학작품이 많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다룬 인문책이라고 얼마나 되겠습니까. 곧잘 나오기는 하지만 제대로 읽히는 일은 드물고, 더러 나오기는 하여도 밑바탕까지 샅샅이 살피며 다루어 내지는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우리 삶터를 좀더 낱낱이 깨달으며 하나하나 바로세우거나 아름다이 가꾸고자 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온갖 슬프고 씁쓸한 이야기를 꾸준히 다루면서 가다듬으리라 봅니다. 아쉬운 대목은 아쉬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바로잡을 테고, 반가운 대목은 반가운 그대로 껴안으면서 널리 나눌 테지요. 그러나 모두들 더없이 바쁜 나머지, 내 삶이 어디로 흐르는가를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다들 그지없이 힘들고 돈벌이에 매인 탓에, 나와 내 이웃 삶이 어떻게 엮이어 있는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 “아휴, 어떡해. 언제까지 여기 갇혀 있어야 하지? 다음주부터 학원에서 중학교 입시 수업이 시작되는데…….” 요시코가 한숨을 쉬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때 학원 걱정을 하다니, 난 기가 막혀서 요시코를 보았다. “중학교 입시? 아직 5학년인데?” “유명한 사립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지금도 좀 늦은 편이야. 넌 걱정 안 돼? 공부 뒤처질 텐데.” ..  (60쪽)


 우리는 어린이였을 때부터 신나게 뛰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어린이였을 때 골목이든 들판이든 갯벌이든 바다이든 산이든 어디이든 마음껏 쏘다니며 신나게 뛰어놀았다고 떠올리는 사람은 하나같이 나이가 제법 든 분들뿐입니다. 1980년대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나 1990년대 뒤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재미있고 거리낌없이 뛰놀던 어린 나날’을 되새길 만한 분이 얼마나 될는지요. 1970년대로 살짝 거슬러 올라가 헤아리면 또 얼마나 될는지요. 날짜를 앞당겨 2000년대에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한테는 놀이터가 얼마나 되지요? 2010년대에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랄 어린이한테는 놀이터가 마땅히 있다고 할 만한지요?

 아파트숲에 꽁꽁 갇힌 조막만한 놀이터에 햇볕과 바람과 무지개와 빗줄기와 눈발이 얼마나 깃들는지 궁금합니다. 쉴새없이 오가는 자동차들이 뿜는 배기가스와 시끄러운 소리가 어린이한테 얼마나 좋은 동무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한테 흙 한 줌이나 돌멩이 하나를 쥐어 보도록 할 만한 터가 어느 만큼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물수제비를 뜰 만한 물가나 바닷가가 아이들 보금자리 가까이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비롯하여 우리 아이들 모두한테 ‘좋은 어린 날’이 아닌 ‘더 이른 나이부터 공부에 매달려야 더 좋은 대학교에 남을 누르고 들어갈 수 있고, 대학교에서도 더 공부만 붙잡아야 더 크고 돈벌이 잘 되는 회사에 들어가 남을 내려다보며 값진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다’고 가르치거나 길들이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 아빠는 산에 오를 때는 늘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면서 옷과 스웨터, 비상 간식과 라이터를 반드시 배낭에 챙기게 했다. 솔직히 나는 그걸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아빠가 옳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건빵과 초콜릿으로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배고픔도 조금 덜하고 추위가 사라지자 어느 정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 산포도는 시었다. 으름은 달았지만 씨가 너무 많았다. 처음으로 날밤을 먹었다. 하지만 버섯은 날로 먹을 수가 없었다.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었지만 배는 조금도 부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동물들은 이런 것만 먹고도 참 팔팔하게 잘도 움직이는 것 같았다 ..  (14, 37쪽)


 빨래를 할 때면 늘 곁에 붙어서 아빠가 빨래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따라하는 우리 아이입니다. 빗자루를 들면 저도 빗자루질을 하고파 하고, 걸레질을 하면 저 또한 걸레질을 하고파 하는 우리 아이입니다. 이제는 키가 제법 자라 걸상에 혼자 낑낑거리고 올라서서는 엄마 아빠가 도마질을 하고 밥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하곤 합니다. 젓가락질이며 책읽기이며 볼펜 쥐기이며 옆에서 늘 바라보는 대로 배우고 따라하는 우리 아이입니다.

 백 마디 말로 가르칠 수도 있으나, 한 가지 몸짓보다 더 깊이 가르칠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아니, 몸짓이란 가르침이 아닙니다. 어버이가 살아가는 매무새는 고스란히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대물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어버이들이 살아가는 모양새를 고스란히 물려받으면서 저희들 삶을 새롭게 꾸린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어버이들께서는 당신 삶을 어떻게 꾸리고 있으온지요. 바삐바삐 살아가는 우리 어버이들은 우리 삶터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몸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으온지요.

 스무 달짜리 우리 아이는 사진기를 제법 잘 다룹니다. 가끔 고 자그마한 손으로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는 찰칵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셈틀을 켤 줄을 알고, 자판을 두들길 줄 압니다. 여느 집 아이였다면 텔레비전을 켤 줄을 알 테며 이리저리 다른 곳으로 돌릴 줄 알겠지요. 어버이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를 아이들이 귀로 가만히 들으면서 흥얼흥얼 따라하며 익힐 테고요.

 ‘신동’이라는 아이도 있겠으나, 아이일 때 곁에서 바라보는 그대로 쏙쏙 받아들이면서 배우고 커 가는 아이들이라 하겠습니다. 어버이들이 남녀평등을 잘 헤아리면서 살아간다든지, 이웃사랑을 즐거이 나누면서 살아간다든지, 잘못된 사회 얼거리를 바로잡는 데에 마음을 쏟는다든지, 동네를 곱게 여미는 데에 힘을 기울인다든지 한다면, 아이들은 이러한 어버이 매무새를 스스럼없이 바라보고 배우며 제 몸으로 삭여낸다고 느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버이가 보여주는 온갖 얄궂거나 짓궂거나 씁쓸한 모습 또한 아무렇지 않게 배우고 따르고 길들어 간다고 느낍니다.


.. 순간, 손 안에서 버둥거리던 새끼 토끼가 천이 찢어진 틈으로 머리를 쏙 내밀었다. 빨갛고 동그란 토끼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토끼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눈을 본 순간 도끼로 내리칠 기력이 푹 꺾여 버렸다. 하지만 이 토끼를 놓치면 나는 굶어서 꼼짝도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것은 죽음을 뜻했다. 가엾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토끼의 목숨을 빼앗는 수밖에 없었다 … 난생처음 내 손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서 먹으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무서운 짓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  (156∼157쪽)


 어린이문학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라는 작품은 이 땅 어버이들이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라고 일깨우고자 애씁니다. 아이들한테는 어버이들이 보여주는 얄딱구리한 모습을 고스란히 배우거나 물려받지는 말도록 깨우치려고 힘씁니다.

 ‘숲속 짐승들이 사람들을 잡아서 사람이 저지른 죄값을 따지는 대목’을 보면 멧돼지 검사는 “너는 마음에 걸렸고, 마땅찮았다고 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적은 없었어. 생각은 그렇게 했는지 몰라도 하나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어. 연구실에서 그저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고. 당신 연구는 대체 무엇을 위한 연구였지? 그저 당신은 자기가 좋은 일만 하면서 만족하고 살았지(98∼99쪽).” 하고 외칩니다. 멧돼지 검사는 농사꾼부터 학자와 도시사람과 어린이까지 무슨무슨 잘못을 저질러 숲을 망가뜨리거나 자연을 어지럽히거나 짐승들을 괴롭혔는지 이야기합니다. 이 지청구를 마무리하며 ‘자연 목장’에서 ‘원시 사람’으로 돌아가 살도록 판결을 내립니다. 자연 목장에서 목숨이란 무엇인가를 밑바탕부터 다시 생각하라고 이야기합니니다. 엉엉 울면서 자연 목장으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에는 한 해 두 해 세 해 흐르는 동안 옳은 길을 깨달아 풀려난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끝까지 옳은 길을 깨닫지 않으며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외치다가 죽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라는 작품은 아이한테나 어른한테나 가장 깊이 들여다보거나 돋보아야 할 대목이라면 바로 ‘자연’이요 ‘자연다운 삶’이요 ‘자연스러운 사람’이라고 소리높여 외칩니다.

 책을 덮으면서 《금수회의록》(안국선,1908)과 《동물농장》(조지 오웰,1945)이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한국사람이 쓴 《금수회의록》과 영국사람이 쓴 《동물농장》과 일본사람이 쓴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는 어슷비슷한 글감과 주제를 다룬다고 느낍니다. 영어권 사람들로서는 《금수회의록》과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를 읽을 일이 없겠지요. 일본사람들로서는 《금수회의록》이라는 작품을 볼 일이 없을 테고, 영어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사람이 빚은 작품 《금수회의록》부터 《동물농장》과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를 모두 읽을 수 있습니다. 세 가지를 함께 읽은 사람으로서, 세 작품은 저마다 다른 눈높이와 눈썰미로 우리 삶을 걱정하고 우리 앞날을 밝게 일구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었다고 느낍니다. 다만, 2010년에 번역된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는 그릇이 살짝 모자라고 번역 또한 조금 어설프구나 싶습니다.


.. 한여름 멱을 감으며 신나게 놀던 강도 이제 더러워져서 아이들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지요. 사람들을 위한 개발이었지만 오히려 개발로 인해서 사람들은 소중하고 풍요로운 자연을 잃고 말았어요. 이런 개발을 계속해서 밀어붙여도 괜찮을까요? 과연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거라 할 수 있을까요? ..  (글쓴이 말)


 우리 집은 신문을 안 보고 텔레비전이 없기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하고는 꽤 동떨어져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이라든지, 이름을 바꾸어 네 줄기 큰강을 손질한다는 일이라든지, 다가온다는 선거라든지, 겨울올림픽이라든지 거의 어느 일에도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아니, 눈길을 못 둔다고 할는지 눈길을 둘 값어치를 못 느낀달는지 그렇습니다. 밖에서 만나거나 어울리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곤 하는데, 이런 소식 저런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 나라는 참으로 갈 길이 멀다고 느낍니다. 아니, 이런저런 소식이 아니더라도 동사무소에 가 보고 무슨무슨 공공기관에 가 보면 이 나라는 참 아찔하다고 느낍니다. 아니, 저잣거리 마실을 다니고 큰길로 한 발자국 나서고 보면 이 나라는 참 무시무시하다고 느낍니다. 경부운하이든 4대강이든 정치판에서만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자락 구석구석에는 ‘또다른 이름으로’ 경부운하가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얽어매는 국가보안법은 언제나 ‘또다른 이름으로’ 우리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곤 합니다. 과자봉지를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는 아이들을 볼 때에도, 좁은 골목을 무섭게 내달리는 오토바이와 자가용을 볼 때에도, 번쩍번쩍하는 옷가게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볼 때에도, 커다란 할인매장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에도, 수없이 새로 짓는 아파트더미를 볼 때에도, 전철에서 먼저 타고 먼저 내리려는 사람들한테 밟히고 밀리면서도 늘 느낍니다. 우리 나라는 참 모질고 팍팍한 나라임에 틀림없다고.

 그런데 이렇게 모질고 팍팍한 나라인 까닭에 1908년에 일찌감치 《금수회의록》이라는 작품이 나왔고, 2010년에는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라는 작품이 번역됩니다. 뒤틀리는 우리 삶터가 더는 뒤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또한 어김없이 있어, 우리 모습을 우리 스스로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올바로 일구자고 용쓰는 사람들 땀방울이 하나둘 모입니다. 우리는 어영부영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인 한편으로, 아름답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한테는 바쁘고 힘든 삶 그냥저냥 맞추어 살자는 몸가짐 하나와, 바쁘고 힘들기에 더 즐겁고 알차게 살자는 매무새 하나가 함께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쪽 길을 고를지는 우리한테 달렸습니다. 내 삶을 어떻게 즐기면서 나눌지는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우리는 한결 곱고 맑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더욱 못나고 꾀죄죄한 사람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 달 벌이 다문 백만 원으로 기쁘고 벅찬 나날일 수 있고, 한 달 벌이 천만 원으로도 모자라고 어두운 나날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도 있고 숲속에도 있으며 우리 마음과 몸 속에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4343.3.4.나무.ㅎㄲㅅㄱ)


 ┌ 《신들이 사는 숲 속에서》(웅진주니어 펴냄,2010)
 ├ 글 : 오카 슈조
 ├ 옮긴이 : 김정화
 ├ 그림 : 이윤엽
 └ 책값 : 8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타델의 소년 카르페디엠 21
제임스 램지 울만 지음, 김민석 옮김 / 양철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37 ― 멋진 삶, 멋진 사람, 멋진 길
 : 제임스 램지 울만, 《시타델의 소년》



- 책이름 : 시타델의 소년
- 글 : 제임스 램지 울만
- 옮긴이 : 김민석
- 펴낸곳 : 양철북 (2009.10.29.)
- 책값 : 9500원



 (1) 세 사람이 함께 걷는 길


 한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세 식구이지만, 저와 옆지기는 서로 살아온 길이 다릅니다. 그런데 살아온 길만 다르지 않고 생각하는 길도 다릅니다. 좋아하는 길도 다르며 바라보는 길도 다릅니다. 어느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만, 다 다르게 살아오고 다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집에서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일이란 대단한 어깨동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못 느꼈습니다. 저와 형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일도 놀라운 어깨동무였습니다. 저와 형 스스로도 놀라운 일일 테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도 놀라운 일입니다. 제아무리 어버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당신하고 다른 사람이요 삶이니까요.

 날마다 아이를 보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이 아이가 옆지기하고 살을 섞은 다음 태어난 목숨이요 우리가 키우는 아이이지만, 이 아이가 스스로 꾸리는 삶이나 이 아이가 바라보는 삶은 엄마 아빠하고 다릅니다. 엄마 된 옆지기나 아빠 된 제가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눈길 그대로 아이가 바라보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읽기를 할 때가 있으나, 마음읽기를 한달지라도 서로 같은 길을 걷는 삶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용하게 세 식구가 어우러지며 한 집안을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더없이 재미나게 세 식구가 얼크러지며 한 살림을 꾸린다고 하겠습니다.

 아침에 옆지기가 빗자루를 들고는 집안을 청소하겠다고 외쳤습니다. 한 엿새쯤 서로 집 치우기를 못한 탓에 먼지가 꽤 쌓였고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날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힘들었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힘들어 여러 날 그냥 손 놓고 지냈습니다. 옆지기가 건넌방부터 슥슥 쓸기에, 바닥에 널브러진 이불을 안고 앞마당으로 나와서 탕탕 텁니다. 이불을 다 털고 나서는 걸레를 빨아 바닥을 훔칩니다. 쓸고 닦기를 마친 다음에는 국수를 끓여 아침 밥상을 차립니다. 밥을 안 먹고 땡깡 부리고 칭얼대기만 하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어 겨우 잠재웁니다. 애 아빠는 아침부터 여러모로 시달리고 바쁘기만 해서 아무 일손을 못 잡는다고 푸념합니다. 옆지기는 애 아빠 푸념을 듣고는 ‘내가 혼자 느긋하게 치우고 쓸고 닦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애 아빠가 걸레질을 하면 머리카락을 다 훔치지 않는다 합니다. 당신은 걸레를 새로 빨아 발로 슥슥 문지르면서 다시금 닦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라고 걸레질을 하며 새로 빨고 다시 닦기를 안 하겠습니까. 먼저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훔치려고 한 번 닦고, 한 번 빨아서 다시금 닦으며, 또 한 번 빨아 마무리 걸레질을 하곤 합니다. 서로서로 쓸고 닦기를 해 온 버릇이 다르니, 애 아빠는 애 아빠대로 옆지기 청소 매무새를 못마땅해 하고, 애 엄마는 애 엄마대로 애 아빠 청소 매무새를 마땅찮아 합니다. 그러나, 이모저모 헤아리면서 애 아빠 마음대로 집안 치우기를 하기보다는 애 엄마 마음이 홀가분하도록 집안 치우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이 다음에 함께 집안 치우기를 할 때에는 제 버릇을 조금씩 고쳐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집안을 쓸고 닦으면서 아이한테 일감 하나 맡길 수 있습니다. 아빠가 빨래를 할 때에 어느새 물소리를 듣고는 후다닥 달려와서 옆에서 빨래하는 시늉을 하며 물놀이를 하는데, 집안을 쓸고 닦을 때에도 아이가 쥘 만한 빗자루나 걸레를 따로 마련해 주면 더 좋겠지요. 그런데 애 아빠 된 사람은 ‘얼른 치우기를 마치고 아빠 일 좀 하자’는 생각으로 혼자 바빠맞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집안을 치울 때 무엇을 생각할까요?

 엊저녁 밤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옆지기가 한 마디를 합니다. “바쁘면 당신 먼저 집으로 들어가요.” 따로 바쁘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잘 안 따라온다고 골 부리는 모양새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듯 보인 듯합니다. 틀림없이 밀린 일이 많아 집에 돌아가면 아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함께 마실을 나올 때에는 ‘숱한 일이 더 밀리면 식구들이 다 잠든 결에 조용히 하면 되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아가고자 따로 여느 회사나 모임에 몸을 안 담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제 걸음 매무새는 ‘아주 바쁜 사람’으로만 보이겠구나 싶어, 걸음을 더 늦추고 옆지기 뒤로 처지며 밤골목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그런데 아빠를 앞질러 가던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아빠를 쳐다보며 “어! 어!” 하고 부릅니다. 아빠 왜 안 오느냐고 부르며 기다립니다. 아빠가 부르든 엄마가 부르든 저 보고픈 것 다 볼 때까지 꼼짝 않기 마련이고 저 가고픈 대로 가려고 발버둥이면서, 아빠가 저 뒤에서 뭔가 꾸물거린다고 부릅니다. 엄마 생각 다르고 아빠 생각 다르며 아이 생각 다릅니다.

 날마다 아이 사진을 서른∼마흔 장 남짓 찍고 있습니다만, 나중에 아이가 커서 이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철든 나이가 될 때에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아이 개인생활을 건드렸다거나 아이 인격과 인권을 쑤석거렸다고 아빠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을는지요. 왜 멋대로 이런 모습 저런 모습 안 가리고 다 찍어 놓았느냐고 성을 내지는 않을는지요. 애 아빠 된 몸으로 아이를 사랑한답시고 아이 사진을 누리사랑방(블로그) 같은 데에 올려놓는다지만, 아이 눈높이와 아이 삶으로 돌아볼 때에 이렇게 하는 일은 아이한테 못할 짓이 될 수 있겠다고 깨닫습니다. 아이는 저 스스로 바라지 않던 ‘제 모습 공개되기’가 사람들 앞에 떡하니 내보이는 셈이니까요.

 이제 고작 두 돌이 채 안 된 아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저런 생각을 하는 일이 섣부른지 모릅니다. 앞으로 아이가 자란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여길 만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은 하루하루 참으로 금세 지나갑니다. 몇 해 사이에 ‘엄마 아빠’라는 낱말 말고도 숱한 말을 재잘재잘 종알종알대는 어린이로 자라날 테고, 동무들하고 사귀며 뛰어논다며 어린이집에 보내 달라 할 터이며,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나날(또는 학교를 안 다니며 푸름이를 보내는 나날) 또한 화살과 같으리라 봅니다. 오늘이야 이 집에서 함께 뿌리내리며 살아간다지만, 앞으로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될 때에는 어엿하게 제금을 나며 따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아이 삶자락을 하루에 서른∼마흔 장쯤 담아내는 사진찍기는 마땅히 못 할 뿐 아니라, 한 달에 한두 장 담아내는 사진찍기마저 힘들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 삶을 꾸리는 아빠이기에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하겠지만,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 아빠한테만 좋자고 하는 일인지 아이와 함께 좋자고 하는 일인지 아이한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일인지 제대로 갈피를 잡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저대로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꿈을 품으며 살아가는 목숨 하나이면서 아빠 자리에 서야 하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당신이 사랑하는 뜻을 붙잡으며 살아가는 목숨 하나이면서 엄마 자리에 서야 할 테고, 아이는 아이대로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찾으며 살아가는 목숨 하나로 서야 하니까요.

 날마다 숱한 집일을 부대끼면서 ‘우리한테 아이가 없었다면?’ 하고 생각할 겨를이 있을 턱이 없으나, 밤에 아이가 잠든 뒤에 옆지기가 때때로 묻곤 합니다. ‘우리한테 아이가 있지 않던 때가 생각나요?’ 하고. ‘우리한테 아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고. 졸리고 고단하니 생각마저 귀찮습니다. 그러나 졸리고 고단해서라기보다 ‘아이가 없는 삶’을 꿈조차 꾸지 못합니다. ‘아이가 없는 삶’이었다면 그러한 삶결대로 우리 두 사람이 새로운 길을 다투기도 하고 어깨동무도 하면서 보냈겠으나, 고운 빛살 하나를 살뜰히 어루만지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 옆지기는 옆지기 나름대로 어루만졌겠지요.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나 살도록 짜맞추어진 애 아빠는 목숨 하나가 이루어지는 흐름과 목숨 하나를 느끼는 넋하고 목숨 하나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눈길이 무엇인지를 늘그막까지 옳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2) 《시타델의 소년》이라는 푸름이문학


 푸름이문학(청소년문학) 《시타델의 소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시타델’이라는 이름이 붙은 깎아지른 묏부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본 산쟁이가 아직 없던 지난날, 이 묏부리 꼭대기에 이르고자 했다가 죽은 사람네 어린 아들이 ‘산에서 부르는 소리’가 아닌 ‘산이 산 그대로 곱게 서 있으면서 보여주는 모습’에 차츰 젖어들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가까이 다가서는 삶을 보여주는 빼어난 문학작품입니다. 어린이한테든 푸름이한테든 저마다 가슴에 고이 껴안을 꿈이란 어떻게 다스리면 좋고, 이렇게 다스리는 꿈을 어떠한 결로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가를 살뜰히 보여주는 문학작품입니다. 저는 이 책 《시타델의 소년》을 덮으며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작품 《숲속 나라》가 떠올랐습니다. 다루는 줄거리가 다르고 이야기 펼침새가 다르며 나타내려는 넋이 다른 두 작품이지만, 두 작품을 읽을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보여주는 매무새는 매한가지입니다. 바로 ‘꿈’과 ‘사랑’과 ‘사람’과 ‘꽃’과 ‘어깨동무’입니다.

 꿈이란, 아이한테나 어른한테나 앞으로 맞이할 새날을 비롯해 오늘 하루요 어제까지 보낸 나날입니다. 머나먼 앞날에 이루어진다는 꿈이지만 않습니다. 지나온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차츰 마무를 수 있는 꿈입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면서 비로소 이루어 내는 꿈입니다.

 사랑이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가장 아름다울 마음입니다. 착함도 너그러움도 다소곳함도 따스함도 넉넉함도 바지런함도 올바름도 모두 사랑에서 샘솟습니다.

 사람이란, 아이이든 어른이든 똑같은 목숨이요 아름다운 숨결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도 사람, 어른도 사람입니다. 여덟 살배기도 사람, 여든 살 할매도 사람입니다. 우리들 누구나 사람이고, 우리들이 날마다 차려서 먹는 밥상에 오르는 풀이나 곡식이나 고기 또한 ‘사람과 같은 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문학이란, 서로서로 어우러지는 목숨고리를 깨닫도록 이끕니다.

 꽃이란, 아이하고 어른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바로 자연입니다.

 어깨동무란, 아이가 어른하고 같다는 소리, 곧 서로 평등하다는 소리입니다. 평등은 평화와 이어지고 평화는 통일하고 끈이 닿습니다. 통일은 민주하고 한동아리이고, 민주는 자유와 벗삼습니다.

 《시타델의 소년》이라는 작품은 시타델이라는 이름이 붙은 묏봉우리 하나를 바라보는 아이와 어른한테 꿈과 사랑과 사람과 꽃과 어깨동무는 어떻게 얽히고 설키면서 곱게 빛을 내는가 들려줍니다. 《숲속 나라》라는 작품은 아이들이 이루어 가는 ‘숲속 나라’와 이 숲속 나라를 망가뜨리려는 어른들을 견주어 보여주면서 허물과 스스럼이 없이 이룰 참답고 아름다운 꿈과 사랑과 사람과 꽃과 어깨동무는 어느 나라에서 어떠한 땀방울로 일굴 수 있는지 들려줍니다.

 멋진 삶이란 누가 언제 어떻게 꾸리는지를 보여줍니다. 멋진 사람이란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알려줍니다. 멋진 길은 어느 곳에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가를 밝히고 일러 줍니다.


 (3) 하나하나 곱새기며 읽기


 푸름이문학 《시타델의 소년》은 묏부리를 온몸으로 껴안는 산쟁이들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감은 묏부리와 산쟁이입니다. 그러나 묏부리와 산쟁이를 빌어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밑바탕에 무엇이 있는가를 차근차근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훌륭한 문학에서도 비슷할 텐데, 이야기감을 무엇으로 삼느냐는 그리 눈여겨볼 대목이 아니고, 이야기틀을 어떻게 다루느냐 또한 그다지 살펴볼 대목이 아닙니다. 판타지여야 더 훌륭하다거나 생활문학이라야 더 알차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곰곰이 돌아볼 대목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이고, 찬찬히 되새길 대목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좋은 문학이라면 바로 이 두 가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와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짚어내는 매무새가 알차면서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시타델의 소년》을 읽으며 가슴 깊이 뭉클하다고 느낀 글월을 한 줄 두 줄 되읽어 봅니다. (4343.2.13.흙.ㅎㄲㅅㄱ)


[12, 113쪽] 루디는 골짜기를 따라 솟구친 웅장한 봉우리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광경을 호텔 주방의 창문으로 보았다 … 루디는 마을 입구에 도착했고, 삼가 분 뒤에는 시냇물을 가로질러 맞은편 길을 따라 걸어갔다. 루디는 조명이 필요없었다. 별빛으로 충분했다. 풀밭의 거무스름한 비탈 사이로 어스름한 그림자가 보였다.

[15, 35, 90, 97쪽]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산을 정복했다 … “외삼촌은 아빠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럼. 프란츠 러너 씨는 네 아빠를 기억하지. 모두들 네 아빠를 기억해. 사람들은 네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한편으론 네 아빠가 미쳤다고 생각해.” 캡틴 윈터는 소리를 낮춰 웃었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그 사람들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 “하지만……, 그걸 메면 균형을 잃을 텐데요.” “그렇겠지. 이걸 메면 균형을 잃겠지. 실제 산행이라면 어떤 게 나을까? 균형을 조금 잃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니면 춥거나 배가 고파 죽는 게 낫겠어?” … “이제 알겠니?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지? 네 아빠는 산이 너무 가팔라서 죽은 게 아니야. 네 아빠는 정복욕이나 명예욕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었어. 네 아빠는 그 능선에서 산으로 오르내릴 정도의 힘은 남아 있었어. 하지만 자기를 고용한 에드워드 경을 버려 두고 갈 수 없었던 거야. 네 아빠는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 거야. 시타델 산의 정상에 나부껴야 할 네 아빠의 빨간 셔츠가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아니? 에드워드 스티븐슨 경한테서야. 네 아빠는 얼어죽어 가면서 셔츠를 벗어 스티븐슨 경의 몸을 덥혔지.”

[19∼20, 101쪽] 루디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루디는 빙하로 올라가서 살펴보고 연구하고 측정하는 일을 계속했다. 루디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교회 예배를 빼먹기도 했다. 지금은 호텔 주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루디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엄마는 눈물로 호소했고, 외삼촌 프란츠는 모진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디는 신경 쓰지 않았다 … 루디는 언제 두려움을 떨쳤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건 테오 아저씨가 암벽 아래에 매달린 채 어떻게든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칠 때였다. 그리고 테오 아저씨가 불평 한 마디 없이 자기 생명을 루디한테 맡겼을 때였다.

[37, 63, 219쪽] “젊을 때는 꿈을 꿔야 해.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 꿈을 잊지 말아야 하지.” … 테오 아저씨가 루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 가! 이 개구쟁이야! 네 아빠의 아들답게 산을 타지 못한다면 힘들게 돌아올 필요도 없어.” … “한 가지 더. 문제에 부딪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네 자신에게 물어 봐.”

[171쪽] 루디는 베낭을 둘러멘 뒤 등반을 시작했다. 루디는 혼자서 광대한 침묵을 뚫고 등반했다.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제 루디는 하느님 아버지와 진짜 아빠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 루디는 감정이 복받쳤다.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미친 듯이 기뻐하지도, 요들을 부르지도, 승리에 들떠 고함을 지르고 싶지도 않았다. 더 낮은 산을 정복하고 기뻐 날뛰던 때와는 달랐다. 그러기에는 너무 깊고 강력한 감정이었다. 루디가 마침내 도착한 높고 신비스러운 장소에서 고함을 지르는 건 불경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311쪽] “올라가. 목표를 향해. 승리를 향해. 쿠르탈 마을 사람들이 환호하며 네 이름을 부를 거야. 스위스가 네게 축하의 인사를 건넬 거야. 영웅이 되는 거야. 시타델 산을 정복한 영웅 말이야. 네 아빠가 못 이룬 꿈을 이루는 거야.” 아빠가 못 이룬 꿈을 이룬다. 루디가 눈길을 떨구었다. 시타델 산의 정상은 사라졌다. 꿈도 사라졌다. 무감각한 꿈의 세계가 서서히 걷히며 현실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실의 세계는 산에서 바라보는 하늘만큼이나 깊고, 차갑고, 깨끗했다. 루디는 고개를 돌려 삭소를 쳐다본 뒤,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팔걸이 붕대를 만들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함께 내려가는 거예요.” 루디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