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5.9.

숨은책 33


《광부 아저씨와 꽃게》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1985.3.31.



  어린이가 쓰는 글은 어른이 쓴 글을 고스란히 따르지 싶습니다. 어린이가 처음에는 수수하고 티없이 글을 쓰더라도, 이 수수하고 티없는 글을 읽은 어른이 자꾸 꾸중하고 꿀밤을 먹이면 어린이는 어느새 제 눈길이나 삶길이나 글길을 잊거나 잃어요.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테지요. 배움수렁(입시지옥)은 푸름이뿐 아니라 어린이를 길들입니다. 어릴 적부터 길든 글길이 어른이 되어 풀려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둘레(사회)에 길들지 않으려는 어른이 있어 드문드문 삶책이 나오지만, 이러한 책이 돋보이면서 어린이 손까지 닿기란 몹시 어렵더군요. 배움수렁에서 살아남거나 동무를 이기고 올라서도록 북돋우는 곁배움책(참고서)을 아이들한테 내미는 어른인걸요. 한창 사슬(독재)이 춤추던 1985년 무렵 태어난 《광부 아저씨와 꽃게》는 그무렵에 어린이 손에 얼마나 닿았을까요? 이오덕 어른은 어른을 일깨워 어린이가 글이며 말이며 삶에서 홀가분하기를 바랐지만, 이 꿈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멀지 싶습니다. 어린이 글을 묶은 이 꾸러미는 임길택·주중식·이기주 세 길잡이(교사)가 탄광마을·시골마을·바닷마을 어린이를 이끈 자취가 짙은데, 이 가운데 임길택 님이 이끈 탄광마을 어린이 글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눈물겹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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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8.

숨은책 691


《개역 셩경》

 허엽 옮김

 셩셔공회

 1938./1939.



  우리글이 없던 무렵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던 삶책이 있고, 중국글을 빌려서 적은 책이 있고, 일본글을 담은 책이 있고, 일본글·중국글 너울에 끼었어도 한글이란 이름을 새로 얻어 비로소 선보인 책이 있어요. 나라지기는 여느 사람이 읽을 책을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이 나라를 집어삼킨 뒤에도 살피지 않았어요.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세워 ‘한겨레를 잡아먹을 뜻을 담아 한글책에 조선어사전까지 엮어냈’지만, 정작 이 나라 우두머리는 팔짱이었습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하느님 말씀’을 퍼뜨리려고 먼나라에서 찾아온 이들이 《한영자전》에 《조선어 첫걸음》을 일찌감치 냈고 《개역 셩경》(改譯 聖經)까지 냅니다. “구약 셩경”하고 “신약 셩경”을 앞뒤로 담는데, “The Holy Bible in Korea”라는 이 책은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London’이라 적힌 글월로 보건대 영국에서 찍어서 들여왔지 싶어요. 거룩책(성경)을 우리말로 옮긴 사람은 허엽(許曄/토마스 홉스Thomas Hobbs)이라는 분이고, 1880년에 태어나 1910년에 이 땅에 발을 디디고서 1941년에 조선총독부가 쫓아낼 때까지 온사랑을 바쳤다지요. 그런데 우리글 거룩책을 처음 옮긴 분 끝삶을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모르니 더욱 딱한 노릇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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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6.

숨은책 680


《李守一과 沈順愛》

 허문영 글

 선경도서출판사

 1972.4.15.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려니 모든 책을 안 가립니다. 곳곳에서 우리말을 어찌 쓰나 살핍니다. 《李守一과 沈順愛》를 헌책집에서 만나던 날, 굳이 살펴야 하나 싶어 지나치려다가 뽑아들었어요. 책끝에 “一九七二年八月二十三日, 南大門驛前에서 金八十五원에 買入”이란 손글씨가 깃들어요. 1972년에 갓 나온 책을 싼값에 넘긴 셈이라 알쏭하더군요. 곰곰이 짚자니, 조중환 씨가 1913∼15년에 〈매일신보〉에 실은 《장한몽(長恨夢)》이요, 이 글은 일본사람 오자키 코요(尾崎紅葉) 씨가 1897∼1902년에 〈讀賣新聞〉(요미우리신문)에 실은 《金色夜叉》를 훔쳤다는데, 이 글은 또 영국사람 버서 클레이(Bertha M.Clay) 씨가 쓴 《Weaker than a woman》를 훔쳤다지요. ‘오늘눈’으로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도둑놈입니다. ‘어제눈’으로는 아랑곳않았다지만, 오늘뿐 아니라 어제에도 ‘내 글’을 쓸 생각을 안 하고 ‘남 글’을 슬쩍하는 짓을 거리끼지 않는다면, 그이 자취는 창피한 얼굴로 남을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내면서 살림을 짓는 눈빛이라면 두고두고 읽힐 이야기요 노래를 펴기에 사랑을 물려줄 만해요. 이웃을 달래고 아끼는 손길일 적에 스스로 삶글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낸 곳마저 또 도둑질이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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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681


《共産主義를 벗어난 인물들》

 리쳐아드 크로스먼 엮음

 편집부 옮김

 을유문화사

 1952.9.10.



  1950년에 싸울아비하고 총칼이 마녘으로 물결치던 무렵, 집이며 마을을 버리고 걸어서 더 마녘으로 떠난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싸울아비하고 총칼이 높녘으로 밀어붙일 적에도 시골집 높녘 사람들은 똑같이 봇짐을 이고 지며 더 높녘으로 걸어서 떠나야 했지요. 미국하고 소련이 쪼갠 우리나라로 여기지만, 우두머리를 노린 이들이 스스로 갈라서며 둘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共産主義를 벗어난 인물들》은 봇짐을 들고 부산으로 옮긴 을유출판사가 “臨時事務所·釜山市光復洞一街六一”에 깃들고서 선보입니다. 한겨레싸움(한국전쟁)이 한창일 적에는 함살림(공산주의)을 나무라는 줄거리가 잘팔릴 만하겠지요. 나라에서도 이 책을 북돋았을 테고, 붓바치도 이 책을 읽으라고 읊었을 테고요. 총칼사슬에 억눌린 탓에 우리 말글로 우리 넋을 가꾸지 못한 잎망울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길이 아닌 서로 미워하는 싹을 책으로까지 심었습니다. 이 책은 앞뒤에 “通義洞 116番地 通仁書店”이라 찍힙니다. 언제 어떻게 서울 통인동 책집에 흘러들고, 누구 손을 거쳐 용산 헌책집에 닿았을까요. 내세우는 말(주의·주장·이론)은 싸움으로 치닫고, 나누는 말(대화·소통·논의)은 살림으로 나아갑니다. 말조차 없이 총칼을 들면 죽음으로 떨어지고요.


#TheGodThatFailed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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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5.

숨은책 679


《學習便覽 理科辭典》

 學習社 編輯所 엮음

 學習社

 1933.2.15.첫/1935.8.1.고침17벌



  경남 진주로 책마실을 간 길에 〈동훈서점〉에서 겉그림(표지)에 책자취(판권)가 모두 뜯겼으나 다른 종이를 댄 “理科辭典”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권말부록’을 싣는 바로 앞쪽 귀퉁이에 으레 ‘終’이라 적고서 책이름을 넣는 줄 알기에 겨우 “이과사전”인 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더는 어떤 “이과사전”이거나 어디에서 언제 펴냈는지 알 길이 없다가, 스무 해쯤 앞서 서울 용산 헌책집에서 겉그림하고 책자취가 멀쩡한 《學習便覽 理科辭典》을 장만해서 갖추어 놓은 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건사한 책이 커다란 더미로 겹겹 쌓이면 스스로 어느 책이 어디에 있는지 ‘집에서조차 잃거나 잊는’데, 뜻밖에 아주 잘 보이는 데에 1933년치 작은 꾸러미를 얌전히 올려놓았더군요. 겉에 “理科の知識すべて分る!”하고 “最近の科學この一冊に!”처럼 적은 이 책을 죽 넘기다가 “朝鮮大邱府 中央通 春江堂書店”에 “優良圖書, 釜山六八二四番”란 글씨를 보았습니다. ‘대구 중앙통’은 대구에서 오랜 한길이자 저잣길이요 책골목입니다만, 이제 이 거리에서 책집은 자취를 감춥니다. 삽질로 다 밀어냈거든요. 우리는 어떤 어제를 살았고, 어떤 오늘을 살며, 어떤 모레를 그리는 하루일까요? 배우고 나누며 쥐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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