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5.29.

숨은책 706


《韓國 아름다운 미지의 나라》

 비르질 게오르규 글

 민희식 옮김

 평음사

 1987.12.15.



  언제 처음 버스를 탔는 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1980년으로 접어들 즈음을 어림하면 그때 우리 어머니나 이웃 아주머니 모두 저잣마실을 다녀올 적조차 으레 걸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걸어다녔습니다. 맨몸이건 짐이 잔뜩 있건 따지지 않고 걸었습니다. 누구나 걷던 그무렵에는 빠른길(고속도로) 어귀요 짐배(화물선)하고 짐차가 끝없이 오가던 인천 한켠에도 제비가 찾아들고 저녁에 숨바꼭질을 하자면 박쥐하고 얼크러졌습니다. 요새는 제비는커녕 참새조차 못 보기 쉬운 나라로 바뀝니다. 걸어서 오가던 길을 부릉부릉 매캐한 쇳덩이가 차지하면서 어느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아름빛하고 등졌다고 느낍니다. 《韓國 아름다운 미지의 나라》를 쓴 루마니아 글님은 1919년에 태어나 1992년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한 이분은 하고많은 한겨레 가운데 ‘전두환’을 만났고, ‘경제성장·올림픽’이라는 모습을 보면서 ‘놀랍고 아름답게 크는 나라’를 ‘깨끗한 싸울아비(군인)가 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분이 문익환이나 고정희를 만났으면 글을 달리 썼을까요, 그때에도 똑같았을까요? 한 손에 총칼을 쥔 이는 다른 손에 거짓말을 쥡니다. 한 손에 붓을 쥐었다면, 다른 손에 ‘호미랑 부엌칼’을 쥘 노릇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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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19.

숨은책 703


《리라국민학교 글짓기장》

 강정미 글

 리라국민학교

 1975∼1976.



  1975∼76년 사이 배움터 모습을 찍어 겉에 담은 《리라국민학교 글짓기장》에는 “분식하면 허약없고 혼식하면 가난없다”는 걸개글이 큼직하게 붙습니다. 이때뿐 아니라 열 해 뒤인 1985∼86년에도 똑같은 걸개글이 온나라에 붙었고, 아이들은 “도시락 검사”를 받으며 얻어맞았습니다. 흰쌀은 1/3을 넘기면 안 되고, 보리나 콩이나 조나 귀리를 꼭 섞어야 했습니다. 어린이도 어른 눈치를 보느라 꾸밈글을 쓸 때가 있으나, 어린이라서 스스럼없이 삶을 옮겨놓습니다. 어제를 어린이 눈길로 되새기고 오늘을 어린이 마음으로 가꾼다면 우리 삶터는 확 달라지리라 봅니다.



전화가 왔는데 사무실에 있는 언니가 탱크가 지나간다고 빨리 오라고 했다. 동생과 같이 뛰었다 …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언젠가는 남북통일이 되어 평화스러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1975.10.1.)


언니가 4명 오빠가 2명 동생이 1명이다 … 사춘오빠와 사무실사람 4명, 또 일하는 언니 둘, 세들은 사람까지 다 합하면 18명이나 된다 … 우리 집에 세들은 흑인 아저씨는 마음도 착하고 … (1976.10.12.)


그때는 아빠가 한강주유소를 하셨는데 그 주유소에 갔다가 주유소 바로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 가서 사탕이랑 과자를 사 가지고 나오는데 … 택시랑 정면으로 받았다. 그 장면을 본 엄마는 “내 딸 죽었구나” 하시며 엉엉 울며 뛰어오자 그 택시가 뺑소니를 치려해 겨우 붙잡았는데 내가 차밑에서 기어나오며 “에이씨 옷 다 버렸어. 어떻게 엄마” 하며 옷이 온통 흙탕물에 범벅이 되어 웃으며 기어나왔다 한다. (1976.10.12.)


“그게 아퍼? 남자가 뭐가 아프대 그 까짓걸 가지고” 하고 한마디 하면 “남자는 무조건 안 아퍼? 남자는 아무리 맞아도 안 아프냔 말이야. 때려 놓고서는 큰소리야. 여자라고 봐주니깐” 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뱃는다. ‘여자라고 봐주니깐’이란 소리가 머리에 남는다. 나는 그런 소리가 가장 듣기 싫다. (1976.1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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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10.

숨은책 694


《New Housekeeping Textbook 最新家事敎本 3》

 김창준 엮음

 삼창문화출판사·라사라양재학원

 1975.4.5.



  사내로 태어났으나 곱상하게 생겼대서 둘레에서는 돌이가 아닌 순이로 여기는 분이 많았습니다. “요놈 참말로 사내가 맞는지 고추 좀 잡아 보자.” 하면서 달려드는 아주머니가 왜 이리 많던지요. 우리 어머니하고 이웃 아주머니는 뜨개질을 할 때면 “쟤가 가시내면 이쁜 옷을 날마다 떠서 줄 텐데.” 하고 말씀합니다. 그때 그런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으나, 《New Housekeeping Textbook 最新家事敎本 3》 같은 책을 뒤적이며 뜨개말(뜨개질 용어)을 살피다가 문득 알았어요. 어릴 적에는 뜨개그림(뜨개질 도안)을 따로 주는(별책부록) 달책(월간잡지)이 나오면 어머니 심부름으로 마을책집(이라기보다 문방구)에 달려가서 줄을 섰습니다. 어머니는 뜨개그림이 담긴 책을 넘기면서 “다 가시내옷이네. 사내옷은 없어.” 하면서 한숨을 쉬었어요. 뜨개책을 보면 참말로 가시내옷잔치입니다. 사내옷은 드문드문 있으나,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나온 거의 모두라 할 뜨개책은 일본책을 그대로 베끼거나 훔쳤습니다. 요새는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뜨개그림을 짜는 분이 나옵니다만, 지난날 우리는 순 훔침쟁이였어요. 알고 보면 지난날 아이들이 입은 뜨개옷은 온통 일본 뜨개옷이던 셈입니다. 창피한 줄을 몰랐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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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65


《박정희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박정희 글

 문화공보부

 1976.1.16.



  1976년 1월 15일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했다는 연두 기자 회견을 모두 담았다는 85쪽짜리 책을 하루 만인 1월 16일에 내놓으면서 책뒤에 “이 책을 다 읽으시면 이웃에도 돌려 여러분이 보실 수 있도록 합시다”라고 적으며, 안쪽에는 ‘회람’ 칸까지 마련합니다. ‘회람’이라는 말이 무섭습니다. 참 그랬지요. 어슴푸레 떠오르는데, 어머니는 이웃 아주머니한테서 ‘회람판’을 받아 이름을 적으셨고, 이 회람판을 다른 이웃집에 건네셨습니다. 어머니가 집일로 바쁘시면 제가 어머니 이름을 슥슥 적어 이웃집에 건네주었습니다. 아마 다른 집에서도 바쁜 어머니보다는 그 집 아이가 슥슥 이름을 적어 회람판을 꾹꾹 채웠지 싶습니다. 반상회장도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 테고요. 다만 어른 글씨 아닌 아이 글씨인 줄 눈치를 채면 따로 우리 집에 찾아와서 물어요. “이 댁 이 회람글 다 읽었나요?” “그럼요, 다 읽었지요.” 반상회장이 돌아가면 낮게 한말씀 합니다. “읽기는. 바쁜데 언제 그걸 다 읽어?” 어머니가 반상회에 가시는 날 더러 따라가 보곤 했는데, 한두 시간쯤 꾸벅꾸벅 졸며 자리를 지키셔야 했습니다. 다른 아주머니도 똑같이. 우두머리 아닌 나라지기라면, 아니 나라일꾼이라면 그네 말씀을 책으로 묶지 않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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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5.9.

숨은책 692


《학급문집 물또래》

 강원도 봉정분교 어린이 글·그림

 임길택 엮음

 종로서적

 1987.2.28.



  지난날 〈종로서적〉은 펴냄터 노릇을 함께했어요. 여느 펴냄터에서 내놓기 어려운 삶책·살림책을 알뜰히 여미고, 가난한 책벌레가 수월하게 책빛을 누리도록 손바닥책을 알차게 엮었습니다. 책과 삶 이야기를 담은 알림책(사외보)를 내면서 ‘책으로 얻은 보람을 책으로 돌려주는 몫’을 톡톡히 합니다. 여기에 어린이책을 몇 자락 선보이는데, 이오덕 님이 도움말을 들려주고 여러 어린글꽃지기(아동문학가)한테서 글을 받아 이어주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이글을 펴내도록 북돋았다지요. ‘종울림 소년문고’에는 어린이글이 셋 있어요. 《물또래》랑 《해 뜨는 교실》이랑 《들꽃》입니다. 《학급문집 물또래》는 강원도 멧자락에서 멧바람을 마시면서 하루를 보내는 어린이가 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글그림을 들려줍니다. 1985∼86년에도 베짜기를 하고 들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저는 이 책을 2001년에 헌책집에서 만났어요. 마침 《보리 국어사전》을 짓는 일꾼이었기에 ‘어른이 쓴 글’보다는 ‘어린이가 쓴 글’을 낱말책 보기글로 삼자고 얘기했습니다. 나라 곳곳 배움터에서 내는 배움글집(학급문집)을 잔뜩 모아 보기글을 뽑았지요. 그러나 이런 땀방울이 낱말책에 제대로 담기지는 않더군요. 어린이글을 얕보는 눈이 아직 깊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밑줄 그은 낱말은

어린이 낱말책(보리 국어사전)에 

보기글로 넣을 밑글입니다.


낱말책에 싣는 보기글은

이렇게 책을 죽 읽으며

밑낱말을 모아서

신나게 글로 옮겨놓고서

낱말에 따라 알맞게 넣지요.


그러나 이렇게 모은 밑낱말이

제대로 사전에 실렸는지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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