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씨 (최명란) 창비 펴냄, 2008.4.30.



  동시집 《수박씨》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이 동시집은 글쓴이 말대로 아이들 목소리를 담으려고 애썼구나 싶고, 글쓴이 스스로 무척 재미있게 썼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이 동시집을 읽으면서 어쩐지 허전하다. 우리 집 아이가 스스로 이 책을 우리 집 책꽂이에서 찾아내어 읽는다면 말리지 않겠으나, 내가 먼저 이 동시집을 우리 집 아이한테 줄 일은 없겠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어린 눈높이’로 ‘재미있게’ 바라보려는 마음과 눈썰미는 있지만, 왜 어린 눈높이로 가려 하는가 하는 마음결을 찾기 어렵고, 재미를 어디에서 누구와 누리려 하는가 하는 실마리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현대 도시 문명이다. 시골에는 아이들이 몇 없고,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 곳이 없다. 흙을 만지면서 자라는 아이가 도시이든 시골이든 아주 드물며, 나무와 동무가 되는 아이는 그야말로 찾아볼 수 없다. 이 동시집을 펴낸 분이 흙을 좀 만져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흙을 만져 보아도 달라질 일이 없을는지 모르나, 참말 흙을 만지면서 아이와 놀다가 옷과 몸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는 하루를 한 해 내내 누리고 나서 동시를 쓰면 어떤 이야기가 태어날까 궁금하다.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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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씨- 최명란 동시집
최명란 지음, 김동수 그림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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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두 달에 한 차례 내는 문화잡지 2015년 1~2월호에 싣는 글입니다.


..


말넋 45. ‘눈결’에 깃든 이야기를 읽는다

― 함께 놀며 지은 말을 물려준다



  시를 쓰던 김남주 님이 있습니다. 1994년에 숨을 거두었는데,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고 싶다는 꿈을 키우다가 몸이 너무 나빠서 쉰 살이 안 되어 죽었습니다. 이녁 동생은 시인이 나고 자란 전남 해남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면서 산다 하고, 《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철수와영희,2014)라는 조그마한 책에 이녁 동생 목소리가 전남 해남 고장말로 찬찬히 흐릅니다. 25쪽을 보니 “우리 논 옆으로 조그마한 똘(실개천)이 항시 흘러요.” 같은 말마디가 나옵니다.


  책에서는 묶음표를 치고 ‘실개천’이라 덧붙입니다. ‘실개천’과 같은 뜻이라는 소리일 테지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개천(-川)’은 “개골창 물이 흘러 나가도록 길게 판 내”라 하고, ‘개골창’은 “수챗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이라 해요. 그러니, ‘개천’은 “수챗물이 흐르는 도랑이 이어지도록 판 물줄기” 를 가리켜요. 요즈음은 도시가 커지면서 개천이나 개골창을 보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이밖에 다른 물줄기를 구경하기도 퍽 어려워요. 이를테면, 시내와 내와 도랑과 개울과 가람과 개를 보기란 아주 어렵지요.


  ‘시내’는 “조그마한 내”를 가리킵니다. ‘내’는 “‘시내’보다 크지만 ‘가람(강)’보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킵니다. ‘가람(강)’은 “넓고 크게 흐르는 물줄기”를 가리키고, ‘개’는 “가람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가리켜요. ‘도랑’은 “매우 작고 좁은 개울”을 가리키고, ‘개울’은 “골짜기나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키지요.


  도랑은 시내가 되고, 시내는 내가 되며, 내는 가람이 됩니다. 가람은 개를 거쳐 바다로 갑니다. 물줄기는 흐릅니다. 골골샅샅 다른 물줄기가 흐릅니다. 예부터 물을 아주 알뜰히 여기고 고이 건사했기에 물줄기를 가리키는 이름이 여러 가지입니다. 조그마한 개울은 ‘실개울’이고, 논에는 ‘논도랑’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냇물이 꽁꽁 얼어요. 실개울도 개울도 도랑도 얼어붙습니다. 겨울논에 물을 대면 논에는 얼음판이 널찍하게 생깁니다. 추운 고장에서는 겨울볕에도 ‘논얼음판’이 꺼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얼음이 언 곳을 찾아서 발을 지치느라 부산합니다. 신발 바닥에 쇳날을 박지 않아도 얼음을 슬슬 지치면서 즐겁습니다. 솜씨 좋은 언니나 오빠가 있으면 나무를 만져서 썰매를 만듭니다. 썰매에는 한 사람이 탈 수 있고 둘이 탈 수 있습니다. 서로 갈마들면서 놀 수 있습니다.


  도시에는 논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개울도 실개울도 시냇물도 냇물도 없습니다. 사람이 헤엄치기 어려운 ‘가람(강)’이 흐르기는 하지만, 겨울에 이곳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기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도시에서도 아이들이 골목 한쪽을 놀이터로 삼아서 비료 푸대를 타든 맨몸으로든 눈놀이를 했어요.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고, 눈을 굴려 눈사람을 빚으며, 눈길을 타며 눈썰매 놀이를 즐깁니다. 그런데, 이제는 ‘눈놀이’가 아니에요. 요새는 도시에서 따로 시설을 지은 ‘눈썰매장(-場)’이라든지 ‘스노우파크(snowpark)’를 찾아간다고 합니다. 노는 곳이기에 ‘놀이터’이듯 눈썰매를 탄다면 ‘눈썰매터’여야 할 텐데, 이처럼 이름을 짓지 못합니다. 겨울에 눈놀이를 즐기는 곳이라면 ‘눈놀이터’여야 할 테지만, 이렇게 이름을 짓지 않고 ‘스노우파크’가 되어요. 그러고 보면, 도시에 있는 시골에서는 여름에 ‘여름놀이’나 ‘물놀이’라 하지 않고 ‘워터파크(waterpark)’라 해요.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2014)라는 책을 읽으니, 33쪽에 “아이들에게는 긴장을 풀고 숨을 쉴 여유가 필요하다. 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참말 아이들은 놀 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쉴 틈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 틈이 있어야 하고, 어른들은 마음껏 쉴 틈이 있어야 합니다. 따로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시설에서가 아니라, 집이나 일터나 학교 둘레에서 넉넉히 뛰놀거나 쉴 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을 돌아보면, 마을이나 동네마다 있던 커다란 나무그늘이 여름날 놀이터요 쉼터입니다. 시내와 개울과 도랑도 놀이터이면서 쉼터입니다. 어른은 시내와 개울과 도랑에서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면서 일하지만, 일하면서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어버이 곁을 졸랑졸랑 따라다니면서 물놀이를 하고 까르르 웃습니다.


  요즈음에는 어른도 아이도 ‘개울’이라는 낱말이나 ‘눈싸움’이라는 낱말이나 ‘시냇물’이라는 낱말이나 ‘눈사람’이라는 낱말을 입에 굴리기 어렵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이나 그림으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막상 맨눈으로는 삶자리 둘레에서 못 보거든요.


  우리가 늘 쓰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에서 늘 마주하고 만나며 부대끼는 말입니다. 책으로만 읽은 말은 머리에 안 남습니다. 살면서 몸으로 겪는 말이 머리에 남습니다. 책에서만 본 꽃은 냄새나 빛깔을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들이나 숲이나 밭에서 만나는 꽃을 살그마니 쓰다듬을 적에 꽃내음과 꽃빛을 제대로 압니다. 맨눈으로 보고 맨손으로 만지며 맨몸으로 마주하는 꽃은 오래도록 이름을 떠올려요. 개울을 집 둘레에서 못 보고 사전이나 도감에서만 본다면, 동네에서 골목을 자동차한테 빼앗겨 동무들과 눈싸움을 하지 못하고, 동무들 모두 학원에 다니느라 바빠 어쩌다가 스노우파크에 나들이를 간다면, 겨울과 눈과 썰매와 고드름을 제대로 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얼굴이나 손바닥으로 받으면 차가운 느낌이 상큼할 뿐 아니라, 눈이 녹아서 물방울이 되기 앞서 어여쁜 무늬(결정)를 볼 수 있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내려온 ‘눈결’이나 ‘눈무늬’라 할 텐데, 지난날에도 오늘날에도 앞날에도 이 눈결이나 눈무늬는 이어가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먼 옛날부터 수많은 어버이와 아이가 어우러지면서 지은 낱말입니다. 우리는 옛 어버이와 아이한테서 ‘개울’과 ‘썰매’와 ‘놀이터’라는 낱말을 물려받았는데, 앞으로 어떤 낱말을 뒷사람한테 물려줄 수 있을까요. 4347.12.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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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4] 어린이노래



  우리 집 아이들과 노래를 부를 적에는 늘 ‘노래’라는 낱말만 씁니다. 따로 ‘동요(童謠)’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우리 집 아이들과 글쓰기를 할 적에는 늘 ‘글’이라는 낱말만 씁니다. 따로 ‘동시(童詩)’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어린이노래’나 ‘어린이시’ 같은 말을 쓸 수도 있지만, 아이만 부를 노래가 아니기에 ‘노래’라 말하며, 아이만 즐길 시가 아니기에 ‘글’이라 말합니다.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로 가르자면 이런저런 말을 새로 지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은 책이나 전시관에 갇히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리고 즐길 때에 비로소 문학이고 문화요 예술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한테는 ‘문학·문화·예술’ 같은 말을 안 써도 됩니다. 모두 다 놀이요, 삶이며, 하루입니다. 놀면서 노래하고, 웃으면서 살고, 춤추면서 하루가 흐릅니다. “자, 우리 그림 그리면서 놀까?” 하고 말할 뿐, “자, 우리 회화예술이나 행위예술을 할까?”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갈래를 나누어야 하기에 새롭게 이름을 붙여야 하면 ‘어린이노래’라 하면 되고, 여느 삶자리에서는 수수하면서 투박하고 단출하게 말합니다.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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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44. 2014.12.30. 몸을 따뜻이


  밥 한 그릇에 담은 따뜻한 기운을 받아먹자. 이 겨울에 따뜻하게 끓인 국을 먼저 몸에 천천히 넣자. 마당에서 놀며 땀을 내더라도 찬바람을 마시면서 볼과 손과 몸이 차갑지. 국그릇을 살며시 쥐면서 손을 녹이고, 수저를 들어 한입 떠먹으면서 몸을 풀자. 새롭게 기운을 얻어 더 신나게 뛰놀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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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1 13:08   좋아요 0 | URL
맛나겠다..숟가락들고.가도 됩니까?!
2인분 추가요!!^^

파란놀 2015-01-12 04:02   좋아요 0 | URL
고흥에 오신다면 얼마든지 드셔요~ ^^;
 

깊게 파헤치듯이 읽는 책



  우물을 깊게 파야 겨울에 안 얼고 여름에 시원합니다. 우물을 파기 앞서 어느 곳이 우물 자리로 마땅하거나 알맞은지 살펴야 합니다. 아무 데나 우물을 판다면, 제아무리 깊게 판들 물줄기를 못 찾습니다. 그러니까, 한길을 오래도록 깊이 살피거나 파헤치는 이들이 외려 눈먼 사람처럼 되는 까닭은, 깊이 파고들 줄만 알지, 삶을 두루 헤아릴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우물을 파거나 한길을 걷자면, 먼저 삶을 두루 살피거나 넓게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두루 살피지 않으면서 한우물만 판다면, 그야말로 한우물은 팔는지 모르나 삶에는 눈이 멉니다. 삶을 넓게 헤아리지 않으면서 한길만 걷는다면, 그야말로 한길은 걸을는지 모르나 삶은 하나도 모릅니다.


  예부터 스승은 아무렇게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스승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할 적에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부터 몸소 익히도록 이끕니다. 솜씨와 재주를 처음부터 가르치는 스승은 없습니다. 손놀림이나 손재주를 익히도록 이끄는 사람은 스승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를 돌아보면,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솜씨와 재주만 가르칩니다. 아니, 솜씨와 재주를 키우는 지식만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열여섯 해에 걸쳐 이녁 삶을 스스로 바라보고 느끼면서 깨닫도록 이끌거나 북돋우지 못합니다. 머릿속에 온갖 지식을 가득 채우도록 해서 ‘직업인’이나 ‘기술인’이나 ‘전문가’가 되도록 하는 교사와 교수일 뿐, 아이들이 삶을 두루 헤아리면서 즐겁게 맞아들이도록 이끌지 못해요.


  지식인은 많지만 살림꾼은 매우 드뭅니다. 전문가는 많지만 사랑둥이는 아주 드뭅니다. 교사와 교수는 많지만 일꾼은 무척 드뭅니다.


  삶이 이루어지는 얼거리를 몸과 마음으로 두루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배웁니다. 사랑이 태어나고 자라는 삶을 몸과 마음으로 고루 돌아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배웁니다. 삶과 사랑을 모르고서는 꿈을 짓지 못합니다. 꿈을 짓지 못하는 사람한테 재주와 솜씨가 있다 한들, 재주와 솜씨를 슬기롭거나 아름답게 다루지 못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는 일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강의나 강좌를 알뜰히 챙기는 일은 훌륭하지 않습니다. 책과 학교와 강의나 강좌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얽히면서 밑바탕이 되는가 하는 대목을 먼저 바라보고 느껴서 깨달은 뒤에 배울 수 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읽어야 하고,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일굴 줄 알아야 하며, 밥과 옷과 집을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게 건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을 건너뛰면서 학교와 학원만 다닌다면, 우리는 그저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쳇바퀴 삶을 되풀이할 테지요. 인문책을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삶은 못 지을 테지요.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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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1 13:04   좋아요 0 | URL
절로 끄덕여지는 고개..네..그럼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부모는 자식이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부모˝라는 말과도
일맥이 아닐까...합니다.
세상이 변했다 해도 밥을 대신 먹고 배불러 줄 수 없는 것같이...
겨울이나 여름이나 우물의 상시 온도는 같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필요에
의해 변온은 스스로 하고도 우물이 그리 한냥.. 힘을 실어 주는지도 모를 일 입니다.
어릴 때 지하수를 연결한 수도에 물을 틀면
어리던 엹은 수증기..연기 같던..그 물의 마술...오늘도 함께살기 님과 더불어 사는
하루..될 것 입니다. 많이 웃으시길~^^

파란놀 2015-01-11 17:32   좋아요 0 | URL
저희 식구가 사는 마을에는
마을 어귀에 샘터와 빨래터가 있어요.
이곳에 흐르는 물을 보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요.

샘터 물이 겨울에 따뜻한 줄은
시골에서 살며 처음 알았지요.
그래서 예부터 시골에서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기저귀를 빨 수 있기도 했겠네
하고 돌아보곤 해요.

그러고 보면, 겨울에 얼지 않는 물은
따뜻하기 때문일 테지요...

[그장소] 2015-01-11 17:43   좋아요 0 | URL
저도 체험상 겨울물이 특히 지하수를 쓴 경험자기에..알아요..^^
내 경험은 그런데..그랬단 말이지..하게되는 일반 상식..체험을 뚫지는 못하기에 저는 겨울이면 따듯하다는
그 샘터의 물을 믿어요.다른 이는 몰라도 장담하는 거죠.
경험이 과학을 이기는 것도 있고..증명이 안된다 해도 그기억마저 속일 수는 없다고요..
그런 마을은 보통 우물 정자 가 들어가는 이름을 갖던데..그곳 이름이..궁금해집니다.

얼지않느니..부지런하고 따뜻한 물일 거라고..믿습니다.부러운 곳에..사시는...ㅎㅎ

파란놀 2015-01-11 17:51   좋아요 0 | URL
저희 마을은
전남 고흥 도화면에 있는 동백마을입니다.
마을에 샘터와 빨래터가 두 군데씩 있어요.
이제는 빨래터를 아무도 안 써서
제가 두 아이하고 보름에 한 차례씩
물이끼 걷으려고 청소를 하는데,
한겨울에도 맨발로 들어가서 춥지 않게 물이끼를 걷습니다 ^^

마을 할매도 푸성귀를 다듬을 적에 빨래터로 가지고 와서 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