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는 동생 소매 걷어 주지



  동생도 이럭저럭 소매를 걷을 줄 알지만 잘 못하곤 한다. 이때 누나 사름벼리는 아주 따사로운 목소리로 “보라야, 자 이렇게 소매 걷어야지. 누나가 해 줄게.” 하면서 걷어 준다. 얼마나 예쁘며 사랑스러운 손길인가. 누나가 이렇게 아끼는데 칭얼칭얼거리지 말고 즐겁게 놀자.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래터놀이 12 - 물을 밟고 난다



  네 살 작은아이는 네 발로 빨래터 바닥을 기고, 일곱 살 큰아이는 두 발로 물을 밟고 통통 하늘을 난다. 작은아이는 언제나 누나를 따라하며 노는데, 빨래터에서만큼은 서로 놀이가 다르다. 제비처럼 나비처럼 날고 싶은 꿈을 키우는 사름벼리는 어디에서라도 훨훨 날듯이 뛰논다.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래터놀이 11 - 네 발로 바닥 기기



  빨래터이자 샘터를 다 치운다. 다 치우고 나서 한숨을 돌리는 동안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네 살 산들보라는 네 발로 척척 기는 놀이를 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엉금엉금 오락가락하면서 논다. 두 손과 두 발로 물살을 느끼며 걷는 놀이가 몹시 재미나구나.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아듣기를 바라는 마음



  알아듣기를 바라면서 글을 한 줄 적습니다. 이 글을 알아들을 분은 한 줄만 읽어도 알아들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들을 마음이 없거나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백 차례 되읽어도 못 알아들으리라 느낍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고단한 몸으로 짤막하게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 마음을 알까요? 아이들 스스로 알려 하면 알 테고, 아이들 스스로 알려 하지 않으면 모를 테지요. 나는 이런 글을 하나 썼습니다. 4347.4.24.나무.ㅎㄲㅅㄱ



○ ○


예방접종과 농약과 종교는 똑같습니다.


본질을 생각해 보시면

스스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본질을 잘 모르겠다면

‘과학’으로 슬기롭게 공부하면

차근차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스승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도 있고,

마음으로 안 되면

과학으로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도 과학으로도 느끼지 못한다면

스승을 배울 수 없겠지요.


예방접종과 농약과 종교도

두 가지 모두로 바라보지 못하면

도무지 이런 이야기를 놓고

아무런 것도 나눌 수 없습니다.


지구에 풀이 없으면 모두 죽습니다.

왜 풀이 없으면 죽을까요?

풀은 어떻게 지구별에 있을까요?

스승한테 물어 보기 앞서

스스로한테 물어 보시기를 빌어요.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4-04-25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4-25 05:28   좋아요 0 | URL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와 문화가 흐르는데,
사회와 문화가 강요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스스로 삶을 가꾸지 못하고 제도권에서 톱니바퀴 부품이나 노예가 되어
끝내 제 넋을 찾지 못하기 일쑤예요.

농약을 쓰면 풀만 죽지 않고 사람도 죽는데,
아직도 어디에서나 농약을 쓰고
농약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줄 여기며,
우리가 먹는 모든 밥과 빵과 과자에
엄청난 농약이 깃들어요.

예방접종이 병을 미리 막는다고 하지만,
도시 문명사회가 병을 부르는 줄 깨닫지 않고,
이런 병을 병원에서 돈을 내고 고친다고 하나
병을 고치는 일은 도무지 없이
아픔만 누그러뜨리는 것뿐인데
이런 굴레와 쳇바퀴에서 스스로 내려와서
삶을 짓지 않으면...
예배당에 나가지 않아도 문명사회를 맹신하는 종교일 뿐이겠지요.

농약이라는 종교
예방접종이라는 종교
대학교와 학벌이라는 종교
재산과 연봉과 지위와 신분이라는 종교
도시 생활이라는 종교
자가용이라는 종교
문화생활과 여가선용과 여행이라는 종교
... 온통 종교투성이예요.

오늘날 사람들이 과일을 그렇게 많이 먹어도
몸이 즐겁거나 좋아지지 않는 까닭은
오늘날 과일은 모두 농약과 비료로 키우기 때문에
과일 살점이 아닌 농약과 비료를 먹기 때문인데
이런 대목을 깨닫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참 쓸쓸한 일일 텐데......
 
비밀의 계단 찔레꽃 울타리
질 바클렘 지음, 강경혜 옮김 / 마루벌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9



​이야기가 샘솟는 흙

― 비밀의 계단

 질 바클렘 글·그림

 강경혜 옮김

 마루벌 펴냄, 1997.5.1.



  오늘날에는 풀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풀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만 사람들이 풀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풀과 사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풀이 자라는 데에서 살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일하고 놀고 어울리는 곳에는 풀이 돋지 않습니다. 늘 풀을 안 보고 살다 보니, 상추를 먹으면서 상추가 풀인 줄 느끼지 못하고, 민들레가 풀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풀을 풀로 여기지 못하는 삶이기에, 골목길뿐 아니라 아스팔트길 사이사이에 풀이 돋아도 풀인 줄 느끼지 않아요. 도시 한복판 길거리에 심은 나무 둘레에 풀이 자라도 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다 들여다보는 이가 있어도 ‘잡초’라 말할 뿐입니다.



..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찔레꽃울타리 마을의 들쥐들은 부지런히 일하며 삽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덤불 속과 주변 들판에서 꽃, 열매, 과일, 견과 들을 모아 말리거나 맛있는 잼, 절임 등을 만들어 다가올 추운 겨울을 위해 저장 창고에 잘 간직해 둡니다 ..  (1쪽)



  이 지구별에는 잡풀이 없습니다. 모두 그저 풀입니다. 쓸모가 없는 풀은 없습니다. 쓸모없이 태어나는 풀은 없습니다. 너무 마땅한 일이에요. 쓸모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쓸모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쓸모가 있고 빛과 값과 넋과 사랑이 있어요. 이를 알아채거나 느끼는 사람이 있고, 이를 안 알아채거나 못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풀마다 자라는 땅이 다릅니다.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오르는 풀이 있습니다. 풀을 잊거나 모르는 사람은 망초나 쇠비름이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뻗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다 합니다. 그러나 그뿐이에요. 망초나 쇠비름은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뻗은 뒤 이듬해에 다시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망초나 쇠비름은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스스로 쓰러지고 나서 봄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느새 망초잎이나 쇠비름잎은 자취조차 없습니다. 모두 흙이 됩니다. 망초잎과 쇠비름잎이 흙으로 돌아가면서, 메마르던 땅이 조금 나아지고, 조금 나아진 땅에서는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새로운 풀은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말라죽으면서 흙으로 돌아가 봄부터 또 다른 새 풀이 돋을 흙이 되어 줍니다. 해마다 땅은 천천히 기름진 흙으로 바뀝니다. 기름진 흙으로 바뀌면서, 이런 땅에 나무씨앗이 드리워 천천히 나무가 자라면서, 어느새 숲이 이루어지지요.




  흙이 되살아난 곳이 숲이 되기까지 제법 기나긴 해가 걸립니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은 풀과 흙이 서로 어떤 사이인지 모르기 일쑤요, 생각조차 않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큰나무를 베어 장작이나 기둥이나 종이로 만들어 쓸 생각은 하지만, 이 나무가 다시 자라기까지 숲에 어떤 일이 있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못해요.


  다만, 이렇게 해마다 차츰 나아지는 흙인데, 농약을 함부로 뿌리거나 비료를 마구 치면 흙은 죽고 맙니다. 흙은 풀을 받아들여 흙이 되지, 농약이나 비료를 받아들이면 사막이 됩니다. 농약이나 비료는 흙을 죽음터로 바꾸어 놓습니다.



.. 앵초와 머위는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둘만이 아는 비밀의 계단을 올라가서 재미있게 놀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곧 두 아이는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고 그러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  (30쪽)



  질 바클렘 님이 빚은 그림책 《비밀의 계단》(마루벌,1997)을 읽습니다. 들쥐를 사람에 빗대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목숨은 모두 들쥐이지만, 이 들쥐가 살아가는 모습은 사람들 하루입니다. 겉모습만 들쥐요, 모두 사람살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을 숲에서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숲에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숲에서 얻으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며 잔치를 자주 열어요. 언제나 기쁨이요 사랑이니 언제나 잔치입니다. 흥청망청 노닥거리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노래하면서 웃음꽃으로 춤추는 잔치입니다. 술에 저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즐기면서 어깨동무하는 잔치입니다.


  어른은 삶을 물려줍니다. 아이는 삶을 물려받습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아름답다고 여긴 삶을 누리면서 물려줍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른한테서 아름답구나 싶은 삶을 가려서 물려받습니다.


  어떤 삶을 물려주고 싶은가요. 어떤 삶을 물려받고 싶은가요. 어떤 땅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름다운가요. 어떤 흙을 우리 곁에 두어 어떤 풀이 돋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고 싶은가요. 흙을 알 때에 풀을 알고, 풀을 알 때에 나무를 알며, 나무를 알 때에 숲을 알아, 숲을 알 때에 삶을 압니다. 삶을 알아야 사랑을 알고, 사랑을 알아야 사람을 알며, 사람을 알 때에 마음을 아는데, 마음을 알면서 비로소 이야기를 알고, 이야기를 아는 사이에 시나브로 흙을 깨닫습니다. 이야기가 샘솟는 흙을 깨닫지요.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