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숟가락 7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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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49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 은빛 숟가락 7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12.8.



  해가 바뀌어 여덟 살로 접어든 큰아이가 문득 묻습니다. “아버지, 벼리 이제 여덟 살이야?” “응, 여덟 살이야.” 지난해 이맘때를 떠올립니다. 그러께 이맘때도 떠올립니다. 다섯 살에서 여섯 살로 접어들 무렵에는, ‘여섯 살’이 아니고 ‘다섯 살’이라고 박박 우겼습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로 접어들 무렵에는 박박 우기지는 않았으나, 살짝 못마땅하다는 느낌이면서도 이내 새로운 숫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여덟 살로 접어든 큰아이한테 숫자읽기나 한글읽기를 따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큰아이가 궁금해 하면 비로소 살짝 알려줍니다. 요즈막에 시곗바늘에 퍽 눈길을 두기에 굵고 짧은 바늘과 가늘고 긴 바늘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주고, 두 바늘이 지나가는 숫자판은 똑같지만, 똑같은 숫자판을 다르게 읽는다고 알려줍니다. 다만, 여느 어른들이 으레 말하듯이 “여섯 시 육 분”처럼 알려주지는 않고, “여섯하고 여섯이야.” 하고만 알려줍니다.


  어느덧 큰아이와 여덟 해째 맞이하며 누리는 나날을 돌아보니, 어버이는 참말 아이한테 꼬치꼬치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가르칠 일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내 삶을 슬기롭게 가꾸면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제 삶을 슬기롭게 가꿉니다. 어버이 스스로 내 삶을 엉성하게 팽개치면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아무렇게나 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버이가 제 삶을 팽개치더라도, 아이는 어버이와 달라 아이 나름대로 기운을 내어 새로우면서 즐겁게 삶을 지으려 하기도 합니다.





- “오늘은 ‘형아 유치원’에서 뭐 해?” “그림책 가져왔어. ‘크리스마스 전날 밤’.” (13쪽)

- “나, 나는, 나 있잖아, 정말은 산타 할아버지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했어!” “그럼, 오늘은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자.” (15∼16쪽)

- ‘세상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지만 나한테는 생일이기도 해서, 차마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할 수는 없어. 다만,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좋으니까 알려줬으면 좋겠어.’ (18쪽)



  일거리가 많은 날에는 아이만 먼저 재운 뒤, 늦도록 일손을 붙잡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먼저 잠들고 싶지 않아, 자꾸 아버지를 부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자니, 아이끼리 재우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일은 일이되 나중에 하자고 생각하면서, 먼저 오늘 이곳에서는 아이와 잠자리를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열이면 열 언제나 아이 쪽으로 움직입니다.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이불깃을 여미고 조잘조잘 떠들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 안겨 노래를 부르는 삶이란 대단히 기쁘며 놀랍구나.


  테이프나 시디나 인터넷으로 노래를 틀면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이쁘장하거나 듣기 좋다는 어린이노래라 하더라도 기곗소리를 한 시간 넘게 듣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마 웬만한 기곗소리 노래물결은 사람 귀에 썩 내키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내가 입으로 소리를 내어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한 시간이 아닌 서너 시간 노래를 불러도 따분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너덧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기차나 버스를 타야 할 적에, 이 아이들이 기차나 버스에서 따분해 하거나 멀미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니까 그저 즐겁게 먼먼 마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참말 그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작은아이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바퀴나 기차 바퀴 구르는 소리를 딱히 거슬려 하지 않지만, 큰아이는 이런 소리를 꽤 거슬려 합니다. “버스 소리 시끄러워”라든지 “기차 소리 시끄러워” 하고 말하는데, 큰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이런 소리를 한귀로 흘립니다. 못 들은 척해요. 이러면서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소리가 나건 저런 소리가 시끄럽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하고 자꾸 읊으면 우리한테는 ‘시끄러워’만 찾아오더군요. 조잘조잘 떠들거나 놀이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우리한테는 이야기와 놀이와 노래가 찾아와요.





- “그나저나 두 사람은 언제나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을 먹더군요.” “이거요? 형이 만들어 주는 거예요.” (25쪽)

- “배고프지? 밥 먹을까? 오므라이스야.” “오므라이스?” “응. 리츠가 너만 할 때에 무척 좋아하던 음식이란다. 넌?” “좋아해요!” (121쪽)

- “하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는 건 기쁘지만, 곤란할 때에 아무것도 의논하지 않는 건 쓸쓸해.” “떳떳하지 못해서 얘기하지 못했어요.” “바보구나.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125∼126쪽)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4) 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열째 권이 진작에 나왔으니, 번역이 퍽 더딥니다. 일본말로 된 책을 ‘일본 아마존’에서 살까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일본에서 나온 여덟째 권 겉그림이나 아홉째 권 겉그림을 보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헤아릴 만합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올 이야기는 앞이 모두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서 어떤 사랑을 길어올리는가 하는 대목이 또렷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알 만하니, 이 만화책은 안 보아도 될 만할까요? 흔한 말로 ‘뻔한 줄거리’라 할 만하니, 이 만화책은 대수롭지 않을까요?


  《은빛 숟가락》을 천천히 두 차례 읽고 나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짓는 사랑은 어느 하루도 뻔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나, 아이가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은 뻔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밥을 지어서 먹이는 마음이나, 아이가 어버이와 함께 밥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치와 경제와 스포츠와 문학과 예술은 뻔합니다. 교육과 학문과 철학과 종교는 뻔합니다. 전쟁무기를 건사하는 군부대 이야기라든지, 대통령이나 정치꾼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이 기자를 불러모아 읊는 이야기는 모두 뻔합니다. 신문에 나오고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말 뻔합니다.





- ‘기쁜 듯이 돕는 루카와 내 어린 시절이 겹쳐졌다.’ (127쪽)

- ‘형제끼리 둘러앉은 식탁은 활기차고 북적였으며 즐거웠다. 돌아갈 때는 이미, 집을 뛰쳐나왔을 때의 기분 따위는 잊어버렸다.’ (155쪽)

- “나, 아빠랑 엄마가 매일 밤 심각하게 얘기하시기에 신경 쓰여서 몰래 엿들었더니 아빠가 진 빚 갚는 얘기였어. 진심으로 안 듣는 게 좋았다고 생각했지.” (156쪽)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듭니다. 이제껏 여덟 해를 이렇게 삽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리라 생각합니다.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깰 때에는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찬 때입니다. 두 아이가 훨씬 어릴 적에는 기저귀를 갈거나 밤오줌을 누이려고 삼십 분마다 잠에서 깼습니다. 두 아이 모두 밤오줌을 잘 가려 주니 밤마다 한시름을 덜되, 요새는 이불깃 여미느라 부산합니다.


  아이들은 자다가 잠꼬대를 하더라도 바로 옆에 어버이가 있는 줄 알기에 다시 깊이 잠듭니다. 꿈에서 무슨 놀이를 하다가 놀라더라도 바로 옆에 어버이가 가슴을 토닥이면 다시 새근새근 꿈나라로 돌아갑니다.


  어제 낮에 큰아이를 씻길 적에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도 어릴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씻겨 주었어? 몇 살 적에 씻겨 주었어?” 머지않아 큰아이는 혼자 씻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큰아이는 이제 혼자 씻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버이 손길을 받지 않더라도 혼자 씻고 싶으니 늘 이러한 생각을 하고, 이러한 생각대로 몸이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랍니다. 큰아이가 혼자 씻을 수 있을 때라면, 아마 큰아이가 도마질도 하고 다른 부엌일도 야무지게 거들 수 있을 때가 되리라 느낍니다. 큰아이가 혼자 두발자전거를 탈 무렵 혼자 씻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큰아이가 혼자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올 수 있다면, 아마 그즈음 혼자 씻을는지 모릅니다.





- “무슨 사정인데요?” “그만둬.” “뭐?” “오빠를 낳아 준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 마.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 오빠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 왜냐면 나한테 오빠는 앞으로도 쭉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오빠인걸.” (177∼178쪽)

-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식탁 풍경이었다. 형이 핏줄이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았든, 그런 일이 있든 없든, 밥은 맛있고 딸기는 새콤달콤하고, 역시 가족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83쪽)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사는 곁님입니다. 두 어버이는 서로 곁님이고, 아이와 어버이도 서로 곁님입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나무도 곁님이고, 작은 들풀과 들꽃도 곁님입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참새와 딱새도 곁님이요, 구름과 냇물과 바람도 곁님입니다.


  밤이 깊으면서 별빛은 더욱 밝고, 밤이 깊으니 아이들 숨소리는 한결 고릅니다. 하루는 기쁘게 저문 뒤, 다시금 기쁘게 찾아옵니다. 날이 밝으면 온갖 작은 새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재잘거리듯이 큰아이가 먼저 깨고 작은아이가 곧바로 깰 테지요. 두 아이는 ‘오늘은 무엇을 하며 놀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열 테지요.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4347.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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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쌓이는 책



  책방마다 책이 쌓인다. 미처 팔리지 못한 책이 쌓이고, 아직 새로운 책손을 만나지 못한 책이 쌓인다. 누군가한테는 보물이라 할 만한 책이지만, 다른 누군가한테는 눈길조차 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이 모든 책은 우리가 만든다. 읽힐 만한 값이 있다고 여겨 책 한 권을 빚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책 한 권을 엮는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빽빽하게 우거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제법 빽빽하게 나무가 자라는 듯싶지만, 쉰 해 백 해 오백 해가 흐르면서 조용히 쓰러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가 많다. 숲에는 오랫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푸른 숨결을 나누어 줄 나무가 남는다. 책방에 쌓이는 책 가운데에도 조용히 이곳에서 사라지면서 새로운 종이로 되살아날 책이 있을 테고, 이 모습 그대로 새로운 책손을 만나서 두고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책이 있을 테지.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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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홀릭 2015-01-13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퍼 공감
하나 둘 쌓여서 어느새 처치곤란
책 모으는 취미는 없는데

파란놀 2015-01-13 09:50   좋아요 0 | URL
그럴 때는 가까운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하시거나,
가까운 헌책방에 즐겁게 내놓으시면 되지요~ ^^

리더홀릭 2015-01-1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전 동네 도서관에 기증 ^^
불행히도 책 갖겠다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파란놀 2015-01-13 10:4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 도서관에서 부디 책을 잘 건사해야 할 텐데요.
한국에서는 대출실적이 없으면 도서관에서도 책을 버리니까요 ㅠ.ㅜ

낭만인생 2015-01-1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그냥 좋습니다. 짐이 되긴 하지만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홀릭 2015-01-13 10:31   좋아요 0 | URL
최상의 생각 ^^

파란놀 2015-01-13 10:43   좋아요 0 | URL
언제나 즐겁게 책을 잘 돌보면서 아껴 주셔요.
책도 낭만인생 님을 좋아하겠지요~
 

빨래터놀이 23 - 섣달 그믐날 물놀이



  한 해가 저무는 섣달 그믐날에 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는다. 동짓날을 지나서 해가 살짝 길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바람이 차기에 옷을 단단히 입힌다. 아버지가 혼자서 맨발로 물에 들어가서 치우는 동안 두 아이는 빨래터와 샘터를 오락가락하면서 놀더니, “아버지, 발 안 시려?” “아버지, 손 안 시려?” 하고 묻다가는, “보라야, 우리 아버지 도와주자.” 하고 말하면서 막대솔로 신나게 물을 민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 하나에다가, 이 겨울에도 물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 있었을 테지. 해가 높이 솟아 빨래터나 샘터로 볕이 비추면 물이 따슨데, 해가 기울면서 볕이 안 비추면 물이 얼음장 같다. 손발이 시려서 한참 물이끼를 걷다가 해 나는 곳으로 나와서 손발을 녹였는데, 이 아이들은 긴신을 꿰고는 옷이 젖든 말든 물을 실컷 튀기면서 논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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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34) 안의 1


“초밥은 초밥요리사에게 맡기라고? 우물 안의 개구리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테라사와 다이수케/서현아 옮김-미스터 초밥왕 10》(학산문화사,2003) 212쪽


 우물 안의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 갇힌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 빠진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서 노는 개구리 주제에

→ 우물 개구리 주제에

 …



  아이도 알 만한 옛말은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우리는 예부터 “우물 안 개구리”를 말했지, 토씨 ‘-의’를 붙인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이하여 토씨 ‘-의’를 이런 데에다가도 붙일까요. 이처럼 토씨를 잘못 붙이는 말투를 어이하여 자꾸 퍼질 뿐, 바로잡히지 못할까요. 잘 된 말보다 잘 안 된 말을 자꾸 듣다가 버릇이 될까요. 올바르게 쓰는 말보다 올바르지 않게 쓰는 말을 신문이나 책이나 방송에서 흔히 읽거나 듣다가 이렇게 굳어 버릴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동네 개구리”나 “웅덩이 개구리”처럼 말합니다. “동네 안 개구리”나 “웅덩이 안 개구리”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우물’을 떠올리면, 깊이 안쪽으로 파고든 곳이기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쓸 수 있겠구나 싶은데, 다른 자리에서는 ‘안’을 따로 안 넣습니다. “동네 축구”나 “동네 야구”나 “동네 선생님”처럼 쓸 뿐, “동네 안 축구”나 “동네 안 야구”나 “동네 안 선생님”처럼 쓰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썼다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쓰기는 쓰되, 이 말투도 “우물 개구리”로 다듬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아니면 “우물에 갇힌 개구리”나 “우물에서 노는 개구리”처럼 뜻이나 느낌을 더욱 똑똑히 밝혀서 적어야지 싶습니다. 4339.9.13.물/434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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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은 초밥요리사한테 맡기라고? 우물 개구리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한국말사전을 보면, ‘-한테’는 입말로 쓰는 토씨요, ‘-에게’는 글말로 쓰는 토씨라고 밝힙니다. 이 보기글은 서로 입으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그러면, 입말일 테지요? 입말이라면, 토씨를 ‘-에게’가 아닌 ‘-한테’로 붙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더 헤아리면,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은 모두 입말입니다. 글말이 아닙니다. 예부터 한국말은 모두 입말일 뿐, 글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에게’라는 토씨를 붙일 일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18) 안의 2


아파트 안의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히로세 다카시/육후연 옮김-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11쪽


 아파트 안의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 아파트는 더 시끄러워졌다

→ 아파트는 자꾸자꾸 시끄러워졌다

→ 아파트는 갈수록 어수선해졌다

→ 아파트는 더더욱 뒤죽박죽이 되었다

 …



  이 자리에서는 ‘소란’이 아닌 ‘어수선하다’나 ‘시끄럽다’를 넣었다면 토씨 ‘-의’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몰라요. “아파트 안의 시끄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처럼 쓸는지 모르니까요. 이처럼 써야 문학이 되는 줄 잘못 알 수 있으니까요.


  시끄러워지거나 어수선해지는 곳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안”이 시끄러워지지 않습니다. 다른 보기를 들자면, “숲이 시끄럽다”고 말할 뿐, “숲 안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놀이터가 시끄럽다”고 말할 뿐, “놀이터 안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실이 시끄럽다”나 “객실이 시끄럽다”처럼 말할 뿐, “교실 안”이나 “객실 안”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4339.11.25.흙/4338.1.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파트는 갈수록 어수선해졌다


“시끄럽고 어수선함”을 뜻한다는 한자말 ‘소란(騷亂)’입니다. 한국말로 ‘시끄럽다’나 ‘어수선하다’라고만 쓰면 되는 셈입니다. ‘어지럽다’도 어울립니다.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조금씩’이나 ‘자꾸’로 고쳐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14) 안의 3


나는 엄마 품 안의 / 초승달이다 / 품 안에서 점점 / 보름달로 자란다

《최명란-수박씨》(창비,2008) 39쪽


 엄마 품 안의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 안긴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 싸인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노는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 초승달이다

 …



  토씨 ‘-의’를 붙여서 얄궂은 말투이기도 하지만, ‘안’이라는 낱말을 얄궂게 쓴 말투이기도 합니다. 이 보기글은 아이한테 읽히는 동시입니다. 동시를 쓰면서 토씨 ‘-의’를 붙이는 일도 얄궂고, ‘안’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대목도 얄굽습니다.


  잘 헤아려야 합니다. 태양계에 해와 달과 지구가 있습니다. “태양계 안”에 있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어항에서 헤엄칩니다. “어항 속”이나 “어항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깁니다. 아이를 안을 적에 “품 안”에 안지도 않고, 어머니한테 안길 적에 “품 안”에 안기지도 않습니다.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 뿐, “부처님 손바닥 안”이나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지 않습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어머니 품에 안긴 / 초승달이다 / 품에서 차츰 / 보름달로 자란다


“품에 안깁”니다. “품 안에 안기”지 않습니다. “손에 물건을 쥘” 뿐, “손 안에” 물건을 쥐지 않습니다. ‘안’은 아무 자리에나 쓰지 않습니다.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찬찬히’나 ‘천천히’로 다듬습니다. ‘엄마’는 아기한테 쓰는 낱말이니, ‘어머니’로 바로잡습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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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는 힘들어 (카도노 에이코·다루이시 마코) 웅진주니어 펴냄, 2005.3.14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놀기를 바란다. 어떤 놀이를 하든 아이는 모두 반긴다. 오늘 이곳에 함께 있기를 바라고, 언제나 함께 맑은 바람과 볕을 누릴 수 있기를 반긴다. 그림책 《보물찾기는 힘들어》는 어머니가 아이한테 아주 조그마한 선물 하나를 맡기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그마한 선물은 밥상이나 책상에 올려놓을 수 있지만, 일부러 숨바꼭질을 하듯이 아이가 놀이 삼아 찾아보도록 이끌 수 있다. 아이는 선물을 찾으면서 집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동안 못 느낀 모습을 다시 보고, 우리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집 곳곳에 깃든 수많은 숨결을 알아보면서 도란도란 어울린다. 어른은 어떠할는지 모르나, 아이는 도깨비가 무섭지 않다. 도깨비도 동무이고, 옆집 아이도 동무이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동무이다. 왜냐하면, 껍데기가 아닌 속내로 살피면 모두 같은 숨결이기 때문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퍽 어린 아이는 선물(보물)을 끝끝내 찾는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인데 혼자서 씩씩하게 집을 본다. 어버이를 믿는 마음이니, 이렇게 멋지면서 대견스럽겠지.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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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는 힘들어
다루이시 마코 그림, 카도노 에이코 글,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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