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돌리는 때



  국민학교를 다니며 방학을 맞이하면 집에서 하루 내내 보내기도 한다. 동네 동무들과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뛰놀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함께 놀 동무가 아무도 없어서 그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조차 안 나가기도 한다. 이런 날은 어머니 심부름조차 없기 일쑤이다. 이런 날에는 으레 어머니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본다. 조그마한 집이었으니 어머니가 무엇을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볼 수 있었고, 여느 날에도 어머니는 이렇게 하루를 보내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쯤 허리를 펴면서 비로소 숨을 돌리는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낮 두어 시쯤 되면 비로소 숨을 돌리면서 “아이고, 이제 나도 커피 한 잔 마셔야지!” 하신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주 짧아, 이내 다시 일손을 잡으니,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어머니가 숨을 돌리는 겨를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하다. 베틀을 밟고 다듬잇돌을 두들기며 길쌈을 하고 절구를 빻던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더욱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소한테 죽을 쑤어 주던 지난날을 헤아린다면, 이 땅에서 어머니라는 사람이 등허리를 펴거나 숨을 돌리는 겨를은 없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숨을 돌릴 겨를이 없이 지내도 어머니는 늘 노래를 부른다. 대중노래이건 유행노래이건 노래를 부른다. 이웃 아주머니도 그렇다. 하루 내내 숨을 돌릴 겨를이 없이 지내도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일손을 잡는다. 옛사람은 스스로 노래를 지어서 불렀고, 오늘 이곳에서 사는 사람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아무튼, 노래를 부르기에 일을 할 수 있고, 노래를 부르면서 웃을 수 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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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차돌 같은 아이들



  한겨울에도 아이들은 맨발로 놀기를 즐깁니다. 맨발로 얼음장을 밟고 싶습니다. 맨손을 찬물에 담가 놀고 싶습니다. 한겨울에 맨발과 맨손으로 놀다가 어느새 아이들은 손발이 꽁꽁 업니다. 빨갛고 차갑지요. 그런데 이런 손발로도 놀이를 그치지 않습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때와 철을 가리지 않고 놉니다. 마냥 놉니다. 더워도 놀고 추워도 놀아요. 더운 철에는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놉니다. 추운 철에는 온몸이 꽁꽁 얼어도 놉니다. 어른이 된 사람도 어릴 적에는 이렇게 놀았고, 오늘날 아이도 이렇게 놀며,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아이도 이렇게 놀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이들은 온몸으로 바람과 햇볕과 물과 바람과 흙과 풀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지식이나 말로 알려주어서 알거나 배우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찬바람도 쐬고 땡볕도 받으면서 새롭게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언제나 놀아야 합니다. 추운 날에는 콧물이 얼어붙도록 놀고, 더운 날에는 땀에 젖은 옷을 하루에도 여러 벌 갈아입을 만큼 놀아야 합니다.


  전북 익산에서 조용히 삶을 짓는 문영이 할머님이 쓴 산문책 《내 뜰 가득 숨탄것들》(지식산업사,2014)을 읽습니다. 흰머리 할머니가 되어 지난날을 찬찬히 돌이키면서 쓴 글이 정갈합니다. 할머니는 “신접살이 어느 해였던가 그 집장 맛을 못 잊어 메주 한 덩이로 담그기 쉬운 찌엄장을 소꿉놀이하듯 담가 놓고, 고만고만한 아이들 손 잡고 봄마중 나물 찾으러 들에 나갔다. 옆집 아주머니는 우리 아이들은 고뿔 한 번 앓지 않는데서 ‘차돌’이라 불렀다(8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문득 그리운 낱말 ‘차돌’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요즈음에는 아이들을 가리켜 ‘차돌’이라 부르는 어른은 매우 드뭅니다. 아이들한테 ‘장군’이나 ‘공주’라고는 말해도, ‘차돌’이라 말하는 어른은 찾아볼 길이 없어요.


  도시이든 시골이든 길바닥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 보기 어려운 탓일까요. 이제는 흙으로 된 골목이나 고샅이 없어서, 그저 시멘트나 아스팔트만 있기 때문일까요. 아이들이 어디에서나 돌을 주워서 돌치기(비석치기)도 하고, 땅바닥에 돌멩이로 금을 긋도 온갖 놀이를 하던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이쁘장한 돌은 주머니에 넣고 하루 내내 기쁘게 웃는 아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바닷가에 가야 비로소 조약돌을 구경할 수 있는 메마른 도시 문명 사회가 되었기 때문일까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수수합니다. 할머니는 이런 학문이나 저런 이론을 들먹이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오직 이녁 삶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이든 어른이 젊은이와 어린이한테 이녁 슬기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글줄마다 알뜰합니다. “어느 해 산기슭에 박 한 붓을 놓고 늦가을에 가 보니 풀한테 잡혀 겨우 박 한 덩이가 열린 채 덩굴까지 말랐다. 그 박을 삶아 보니 예전에 보던 박처럼 결이 곱고 단단했다. ‘아하! 국수나무가 청정지역 지표수이듯, 바가지가 맑은 공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래서 요즘 박은 겉은 고운데 속이 거칠어, 누구를 선뜻 부를 수가 없어 몇 해째 박 농사가 시들해졌다(91쪽).”


  할머니 이야기에 나오는 ‘박 한 붓’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아주 어릴 적에 이 말마디를 얼핏 들은 듯합니다. 그렇지만 한국말사전에는 ‘붓’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습니다. 글씨를 쓰는 연장을 가리키는 붓은 있으나, 박씨를 땅에 묻는 일을 가리키는 붓은 안 나옵니다. ‘박 한 붓’을 아는 할머니가 흙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도 사라질 테고, 이러한 한국말이 있는지 떠올릴 수 있는 사람도 없겠구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박씨를 심어서 바가지를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사라질 테지요. 바가지를 얻고 싶어서 박씨를 심을 사람도 사라질 테지요. 공장에서 찍는 플라스틱 조각만 바가지인 줄 아는 사람만 있을 테지요.


  할머니 이야기는 수수하면서 투박합니다. 흔하면서 너른 이야기입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더 흔하지 않은 이야기요, 이제는 그리 너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손수 들이나 숲에 가서 꽃다지를 캐서 나물로 삼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꽃다지가 노래에만 있는 나물이 된 것처럼 이제 엉겅퀴마저 자취를 감추는가 싶어 애답다. 독일은 들에 난 풀 한 포기도 마음대로 손대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는다고 한다. 우리 나라도 보호할 나무와 풀을 정하고 지킬 일이라고 생각한다(175쪽).” 독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갯벌도 냇물도 바다도 땅도 숲도 나무도 모두 살뜰히 건사하려고 몹시 애씁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일자리 만들기’와 ‘경제개발’만 된다면 무엇이든 모조리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립니다. 4대강사업 한 가지를 들자면, 이런 뻘짓을 하느라 수십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퍼부었는데, 이를 다시 바로잡자면 또 수십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퍼부을 테지요. 오직 토목공사에만 이 같은 돈을 퍼붓습니다.


  돈을 바라보니까 오직 돈만 따지는 셈일 텐데, 돈을 바라본대서 돈이 우리한테 오지 않습니다. 삶을 알차게 가꾸면서 곱게 일굴 때에 비로소 삶이 살아나면서 돈은 돈대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공장을 잔뜩 지어서 다른 나라에 수십억 원어치 상품을 내다 팔면 언뜻 보기에는 경제성장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공장을 짓느라 숲과 들을 망가뜨리고, 공장을 돌리느라 매연과 폐수가 쏟아지며, 공장으로 원재료를 실어나르고 공장에서 물건을 옮기느라 찻길을 닦고 비행기를 띄울 테니, 다시금 들과 숲이 망가지면서 매연과 폐수가 쏟아집니다. 수십억 원어치 상품을 파는 동안 우리가 잃거나 잊거나 무너지는 삶터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다른 나라에 아무것도 팔지 않으면서 모든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어서 누릴 때를 생각해 봅니다. 이때에는 경제성장은 없으나 수입도 수출도 없을 뿐 아니라, 무역에 기댈 까닭이 없는데다가, 맑은 물과 바람을 늘 마십니다. 몸이 아플 일이 없고, 우리 삶터는 아주 깨끗합니다.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으나 튼튼한 몸과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언제나 즐겁지요. 튼튼한 몸과 아름다운 마음에서는 노래가 절로 샘솟고, 노래가 샘솟는 삶에서는 이야기를 기쁘게 지어요. 이 이야기는 문학이 될 수 있고 춤이나 연극이나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공장을 지어 경제성장을 하고 토목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든다고 할 적에는 아무런 문학도 문화도 삶도 사랑도 꿈도 없습니다. 그저 돈만 있습니다. 돈만 있는 나라에서는 매캐한 바람과 지저분한 물이 흐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몸이 망가질 테고 병원에 기대야 할 테며 삶에서 웃음과 노래가 사그라질 테지요.


  삶을 짓는 어른이 차돌 같은 아이를 낳아서 돌봅니다.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어른이 차돌 같은 아이를 키우면서 웃습니다. 삶을 꿈으로 일구는 어른이 차돌 같은 아이한테 맑고 밝은 이야기를 물려줍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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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권은 언제까지 읽히는가



  한때 백만 권이 팔리는 소설책이나 시집이 있습니다. 한때 수많은 독자나 평론가를 거느리면서 사랑받는 문학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책이나 시집 가운데 백 해나 이백 해를 거뜬히 읽히는 작품은 얼마나 될까 하고 손을 꼽아 보면, 몇 가지를 들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책이나 시집은 사회 흐름과 맞물리면서 읽힌다고 느낍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문학과 달리 사회 흐름과 거의 맞물리지 않습니다. 백 해 넘게 사랑받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사회 흐름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바로 ‘사랑’을 생각하고, ‘꿈’을 생각하며, ‘삶’을 생각합니다. 사랑과 꿈과 삶을 이야기로 엮어서 들려주려는 그림책이요 동화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새로 나오는 퍽 많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생활 이야기’라는 이름을 빌어, 이를테면 ‘생활동화’ 같은 이름을 빌어 사회 흐름을 좇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지하철 이야기나 버스 이야기를 다룬다든지, 학교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부부싸움과 이혼 때문에 아픈 아이들 이야기를 다룬다든지, 학교폭력이라든지 숱한 사회 흐름과 맞물리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이때마다 ‘생활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여요.


  무엇이 삶일까요? 싸움과 다툼이 삶일까요? 입시지옥과 따돌림과 폭력이 삶일까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하루가 삶이 아닌지요?


  생활동화 같은 작품이 어느 한때 잘 팔리거나 읽힐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은 한때에 읽힐는지 모르나, 스무 해를 잇기 어렵고, 서른 해나 마흔 해는 이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회 흐름은 스무 해가 아닌 열 해 만에 달라지기도 하고, 다섯 해 만에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회 흐름은 한 해 만에 달라지기도 하고, 다달이 달라지거나 날마다 달라질 수 있어요. 이런 흐름을 좇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라면 ‘유행을 좇아 장삿속을 살피는 작품’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오래도록 읽히는 소설책이나 시집은 사회 흐름을 좇거나 건드리지 않습니다. 조지 오웰 같은 사람이 쓴 작품은 언뜻 보기에 사회 흐름을 좇거나 건드린다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외려 이분 작품은 사회 흐름하고 동떨어집니다. 삶이 어디에서 흐르는가를 살피려고 밑바닥을 돌아보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꿈으로 지어서 그립니다. 삶과 꿈과 사랑이 내내 흐르는 글을 썼기에 조지 오웰 같은 분들 작품은 두고두고 읽힙니다.


  사회 흐름을 좇는다고 해서 나쁜 작품이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사회 흐름을 좇을 뿐입니다. 그리고, 사회 흐름을 좇는 작품에서는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찾기 어려우니, 이러한 작품으로는 아이들과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뿐입니다.


  아이들은 ‘사회성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회성을 길러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야 하고, 둘레 다른 어른한테서도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을 받을’ 아이들이 아니라 ‘사랑을 받을’ 아이들입니다. ‘점수따기 시험지옥에 휩쓸릴’ 아이들이 아니라 ‘꿈을 지어서 삶을 가꿀’ 아이들입니다. 그러니, 먼 옛날부터 아이들한테 오직 삶·사랑·꿈 세 가지만으로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줍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림책과 동화책은 언제나 삶·사랑·꿈 세 가지만 이야기로 엮어서 보여줍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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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말입니다.저도 제 아이가 팍팍한 세상얘기나 듣고있는 건 싫답니다.
좀 더 꿈꾸고 좀 더 예쁘고 조금이라도 더 아이다운 세상에서 머물었으면..바라지요.

파란놀 2015-01-13 10:44   좋아요 0 | URL
다른 어른이 안 해 주어도
어버이가 아이한테 해 주면
아이는 씩씩하게 잘 크리라 믿어요 ^^

[그장소] 2015-01-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젠..이제 그런 옛 정서를 옮겨다 정성껏 가꾸고 살펴줄 어른이 부재하다는 사실..이요.
그게 아픈거구나..하고 알지 못하는 여기...산재한 현실앞에

파란놀 2015-01-13 10:44   좋아요 0 | URL
삶과 사랑과 꿈은
옛 정서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숨결이니
그장소 님이 즐겁게 가꾸어서 물려주셔요~

[그장소] 2015-01-1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전읽기를 권하고 있지만 제가 그러고 커보니 세상은 동화같지도 책속의 유종의 미˝ 같은 곳도 아니었더란거죠..내가 좋아야 남에게도 잘 설명하고 설득도 할 수있는데..그 좋아하는 책읽기를..저는 폐인같이 하고..그런 저를 보며..넌 너무 이상만 그린다나요..?그게..한 때 사회생활을 잘 하던 그때 듣던 말이라는 거죠..이상을 꿈꿔서..그랬을지..현실에 발 못붙인 것이 책탓 같은데..아닙니다.
그건 책조차 읽지않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탓..그럼에도 섞여가려면..정말..방법이없나..!

파란놀 2015-01-13 10:46   좋아요 0 | URL
사회는 동화 같을 수 없어요.
그러나, 내 삶은 내 마음대로 아름답게 지을 수 있어요.
다른 사회를 바라보기보다
내 삶을 스스로 즐겁게 마주하면서
하나하나 일구면 되리라 느껴요 ^^

낭만인생 2015-01-1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이 아니라 사랑 받아야 한다는 말에 백배공감입니다

파란놀 2015-01-13 10:45   좋아요 0 | URL
아이도 어른도 모두
사랑을 받을 적에
아름답게 살아가지 싶어요 ^^

[그장소] 2015-01-1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받아봐야 줄줄도 안다...그말..일견..옳습니다.
무언가의 사랑이라도 받으면...그럼...

[그장소] 2015-01-1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살기님 저..위에 제글이 등록이 따로따로노는건
제 손이 오늘 불편해..그리된거예요..^^
그냥 한 글로 보시면 되는데..일일이 답을...ㅎㅎ
 
은빛 숟가락 7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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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49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 은빛 숟가락 7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12.8.



  해가 바뀌어 여덟 살로 접어든 큰아이가 문득 묻습니다. “아버지, 벼리 이제 여덟 살이야?” “응, 여덟 살이야.” 지난해 이맘때를 떠올립니다. 그러께 이맘때도 떠올립니다. 다섯 살에서 여섯 살로 접어들 무렵에는, ‘여섯 살’이 아니고 ‘다섯 살’이라고 박박 우겼습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로 접어들 무렵에는 박박 우기지는 않았으나, 살짝 못마땅하다는 느낌이면서도 이내 새로운 숫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여덟 살로 접어든 큰아이한테 숫자읽기나 한글읽기를 따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큰아이가 궁금해 하면 비로소 살짝 알려줍니다. 요즈막에 시곗바늘에 퍽 눈길을 두기에 굵고 짧은 바늘과 가늘고 긴 바늘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주고, 두 바늘이 지나가는 숫자판은 똑같지만, 똑같은 숫자판을 다르게 읽는다고 알려줍니다. 다만, 여느 어른들이 으레 말하듯이 “여섯 시 육 분”처럼 알려주지는 않고, “여섯하고 여섯이야.” 하고만 알려줍니다.


  어느덧 큰아이와 여덟 해째 맞이하며 누리는 나날을 돌아보니, 어버이는 참말 아이한테 꼬치꼬치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가르칠 일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내 삶을 슬기롭게 가꾸면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제 삶을 슬기롭게 가꿉니다. 어버이 스스로 내 삶을 엉성하게 팽개치면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아무렇게나 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버이가 제 삶을 팽개치더라도, 아이는 어버이와 달라 아이 나름대로 기운을 내어 새로우면서 즐겁게 삶을 지으려 하기도 합니다.





- “오늘은 ‘형아 유치원’에서 뭐 해?” “그림책 가져왔어. ‘크리스마스 전날 밤’.” (13쪽)

- “나, 나는, 나 있잖아, 정말은 산타 할아버지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했어!” “그럼, 오늘은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자.” (15∼16쪽)

- ‘세상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지만 나한테는 생일이기도 해서, 차마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할 수는 없어. 다만,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좋으니까 알려줬으면 좋겠어.’ (18쪽)



  일거리가 많은 날에는 아이만 먼저 재운 뒤, 늦도록 일손을 붙잡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먼저 잠들고 싶지 않아, 자꾸 아버지를 부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자니, 아이끼리 재우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일은 일이되 나중에 하자고 생각하면서, 먼저 오늘 이곳에서는 아이와 잠자리를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열이면 열 언제나 아이 쪽으로 움직입니다.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이불깃을 여미고 조잘조잘 떠들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 안겨 노래를 부르는 삶이란 대단히 기쁘며 놀랍구나.


  테이프나 시디나 인터넷으로 노래를 틀면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이쁘장하거나 듣기 좋다는 어린이노래라 하더라도 기곗소리를 한 시간 넘게 듣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마 웬만한 기곗소리 노래물결은 사람 귀에 썩 내키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내가 입으로 소리를 내어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한 시간이 아닌 서너 시간 노래를 불러도 따분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너덧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 기차나 버스를 타야 할 적에, 이 아이들이 기차나 버스에서 따분해 하거나 멀미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니까 그저 즐겁게 먼먼 마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참말 그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작은아이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바퀴나 기차 바퀴 구르는 소리를 딱히 거슬려 하지 않지만, 큰아이는 이런 소리를 꽤 거슬려 합니다. “버스 소리 시끄러워”라든지 “기차 소리 시끄러워” 하고 말하는데, 큰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이런 소리를 한귀로 흘립니다. 못 들은 척해요. 이러면서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소리가 나건 저런 소리가 시끄럽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하고 자꾸 읊으면 우리한테는 ‘시끄러워’만 찾아오더군요. 조잘조잘 떠들거나 놀이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우리한테는 이야기와 놀이와 노래가 찾아와요.





- “그나저나 두 사람은 언제나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을 먹더군요.” “이거요? 형이 만들어 주는 거예요.” (25쪽)

- “배고프지? 밥 먹을까? 오므라이스야.” “오므라이스?” “응. 리츠가 너만 할 때에 무척 좋아하던 음식이란다. 넌?” “좋아해요!” (121쪽)

- “하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는 건 기쁘지만, 곤란할 때에 아무것도 의논하지 않는 건 쓸쓸해.” “떳떳하지 못해서 얘기하지 못했어요.” “바보구나.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125∼126쪽)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4) 일곱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열째 권이 진작에 나왔으니, 번역이 퍽 더딥니다. 일본말로 된 책을 ‘일본 아마존’에서 살까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일본에서 나온 여덟째 권 겉그림이나 아홉째 권 겉그림을 보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헤아릴 만합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올 이야기는 앞이 모두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서 어떤 사랑을 길어올리는가 하는 대목이 또렷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알 만하니, 이 만화책은 안 보아도 될 만할까요? 흔한 말로 ‘뻔한 줄거리’라 할 만하니, 이 만화책은 대수롭지 않을까요?


  《은빛 숟가락》을 천천히 두 차례 읽고 나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짓는 사랑은 어느 하루도 뻔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나, 아이가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은 뻔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밥을 지어서 먹이는 마음이나, 아이가 어버이와 함께 밥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치와 경제와 스포츠와 문학과 예술은 뻔합니다. 교육과 학문과 철학과 종교는 뻔합니다. 전쟁무기를 건사하는 군부대 이야기라든지, 대통령이나 정치꾼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이 기자를 불러모아 읊는 이야기는 모두 뻔합니다. 신문에 나오고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말 뻔합니다.





- ‘기쁜 듯이 돕는 루카와 내 어린 시절이 겹쳐졌다.’ (127쪽)

- ‘형제끼리 둘러앉은 식탁은 활기차고 북적였으며 즐거웠다. 돌아갈 때는 이미, 집을 뛰쳐나왔을 때의 기분 따위는 잊어버렸다.’ (155쪽)

- “나, 아빠랑 엄마가 매일 밤 심각하게 얘기하시기에 신경 쓰여서 몰래 엿들었더니 아빠가 진 빚 갚는 얘기였어. 진심으로 안 듣는 게 좋았다고 생각했지.” (156쪽)



  아이들 사이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듭니다. 이제껏 여덟 해를 이렇게 삽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리라 생각합니다.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깰 때에는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찬 때입니다. 두 아이가 훨씬 어릴 적에는 기저귀를 갈거나 밤오줌을 누이려고 삼십 분마다 잠에서 깼습니다. 두 아이 모두 밤오줌을 잘 가려 주니 밤마다 한시름을 덜되, 요새는 이불깃 여미느라 부산합니다.


  아이들은 자다가 잠꼬대를 하더라도 바로 옆에 어버이가 있는 줄 알기에 다시 깊이 잠듭니다. 꿈에서 무슨 놀이를 하다가 놀라더라도 바로 옆에 어버이가 가슴을 토닥이면 다시 새근새근 꿈나라로 돌아갑니다.


  어제 낮에 큰아이를 씻길 적에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도 어릴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씻겨 주었어? 몇 살 적에 씻겨 주었어?” 머지않아 큰아이는 혼자 씻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큰아이는 이제 혼자 씻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버이 손길을 받지 않더라도 혼자 씻고 싶으니 늘 이러한 생각을 하고, 이러한 생각대로 몸이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랍니다. 큰아이가 혼자 씻을 수 있을 때라면, 아마 큰아이가 도마질도 하고 다른 부엌일도 야무지게 거들 수 있을 때가 되리라 느낍니다. 큰아이가 혼자 두발자전거를 탈 무렵 혼자 씻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큰아이가 혼자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올 수 있다면, 아마 그즈음 혼자 씻을는지 모릅니다.





- “무슨 사정인데요?” “그만둬.” “뭐?” “오빠를 낳아 준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 마.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 오빠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어. 왜냐면 나한테 오빠는 앞으로도 쭉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오빠인걸.” (177∼178쪽)

-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식탁 풍경이었다. 형이 핏줄이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았든, 그런 일이 있든 없든, 밥은 맛있고 딸기는 새콤달콤하고, 역시 가족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83쪽)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사는 곁님입니다. 두 어버이는 서로 곁님이고, 아이와 어버이도 서로 곁님입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나무도 곁님이고, 작은 들풀과 들꽃도 곁님입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참새와 딱새도 곁님이요, 구름과 냇물과 바람도 곁님입니다.


  밤이 깊으면서 별빛은 더욱 밝고, 밤이 깊으니 아이들 숨소리는 한결 고릅니다. 하루는 기쁘게 저문 뒤, 다시금 기쁘게 찾아옵니다. 날이 밝으면 온갖 작은 새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재잘거리듯이 큰아이가 먼저 깨고 작은아이가 곧바로 깰 테지요. 두 아이는 ‘오늘은 무엇을 하며 놀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열 테지요. 언제나 이곳에서 함께. 4347.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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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쌓이는 책



  책방마다 책이 쌓인다. 미처 팔리지 못한 책이 쌓이고, 아직 새로운 책손을 만나지 못한 책이 쌓인다. 누군가한테는 보물이라 할 만한 책이지만, 다른 누군가한테는 눈길조차 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이 모든 책은 우리가 만든다. 읽힐 만한 값이 있다고 여겨 책 한 권을 빚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에 책 한 권을 엮는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빽빽하게 우거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제법 빽빽하게 나무가 자라는 듯싶지만, 쉰 해 백 해 오백 해가 흐르면서 조용히 쓰러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가 많다. 숲에는 오랫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푸른 숨결을 나누어 줄 나무가 남는다. 책방에 쌓이는 책 가운데에도 조용히 이곳에서 사라지면서 새로운 종이로 되살아날 책이 있을 테고, 이 모습 그대로 새로운 책손을 만나서 두고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책이 있을 테지.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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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홀릭 2015-01-13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퍼 공감
하나 둘 쌓여서 어느새 처치곤란
책 모으는 취미는 없는데

파란놀 2015-01-13 09:50   좋아요 0 | URL
그럴 때는 가까운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하시거나,
가까운 헌책방에 즐겁게 내놓으시면 되지요~ ^^

리더홀릭 2015-01-1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전 동네 도서관에 기증 ^^
불행히도 책 갖겠다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파란놀 2015-01-13 10:4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 도서관에서 부디 책을 잘 건사해야 할 텐데요.
한국에서는 대출실적이 없으면 도서관에서도 책을 버리니까요 ㅠ.ㅜ

낭만인생 2015-01-1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그냥 좋습니다. 짐이 되긴 하지만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홀릭 2015-01-13 10:31   좋아요 0 | URL
최상의 생각 ^^

파란놀 2015-01-13 10:43   좋아요 0 | URL
언제나 즐겁게 책을 잘 돌보면서 아껴 주셔요.
책도 낭만인생 님을 좋아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