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는 힘들어 웅진 세계그림책 78
다루이시 마코 그림, 카도노 에이코 글,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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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1



어버이와 함께 지내고 싶은 아이

― 보물찾기는 힘들어

 카도노 에이코 글

 다루이시 마코 그림

 김난주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5.3.14



  그림책 《보물찾기는 힘들어》(웅진주니어,2005)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할머니 병문안을 간다고 합니다. 이때에 아이는 혼자 집을 보라고 합니다. 어머니 혼자 병원에 다녀오실 듯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한테 가면 할머니가 한결 기뻐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림책 줄거리를 보면 아이는 할머니한테 함께 가겠노라 말하지 않고, 어머니도 아이한테 할머니한테 함께 가자고 묻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할머니를 돌보러 가는 길이라서 어머니가 혼자 가시려는 듯싶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간다면, 늙거나 힘들거나 아픈 할머니를 어머니가 어떻게 돌보는지 곁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작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심부름을 할 수 있습니다. 심부름을 못하더라도 말동무가 될 수 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할머니로서도 아이가 짓는 웃음을 볼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 “준호야, 할머니 병문안 다녀올 테니까 집 좀 보고 있어, 응.” “또야, 나 싫어.” 준호는 입이 툭 튀어나왔어요. “참, 보물찾기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다. 엄마가 아주 좋은 거 숨겨 놓을게.” ..  (2쪽)




  아이는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늘 어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을 바랍니다. 함께 밥을 먹기를 바랍니다. 함께 잠들기를 바랍니다. 함께 놀기를 바랍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책을 읽으며, 함께 그림을 그리기를 바랍니다.


  어버이가 아이하고 함께 안 하고 자꾸 학교에만 맡겨 버릇하면, 아이는 천천히 집하고 멀어지지요.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삶을 누리지 않으면,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해요.


  아이는 학교에서 지식을 배울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는 삶을 아름답게 밝히는 슬기를 배울 목숨입니다. 아이는 더 높은 학교를 다니다가, 돈을 더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갈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아서 꿈을 키울 사람입니다.



.. 준호가 뒤돌아보자 집은 텅 비어 있고,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준호는 계단을 올라가 살며시 2층의 방문을 열었어요. 방을 휘 돌아보니 이불장이 조금 열려 있고, 이불 사이에 가느다란 꼬리가 늘어져 있었어요 ..  (6쪽)





  카도노 에이코 님이 글을 쓰고, 다루이시 마코 님이 그림을 넣은 《보물찾기는 힘들어》를 가만히 읽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혼자 집을 보도록 하되, 집에서 보물찾기를 하도록 이끕니다. 아마 다른 날에는 아이와 함께 마실을 갔을 테지요. 아이는 어머니 없이 혼자 집을 보면서 씩씩하게 놀기도 할 테지요. 둘은 서로 믿으리라 생각합니다. 둘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혼자 씩씩하게 집을 본 아이한테 멋진 선물을 마련해서 돌아오는 어머니입니다.


  아무튼, 아이한테는 장난감도 멋진 선물이지만, 비가 오는 날 함께 손을 잡고 우산을 쓰면서 다니는 마실도 멋진 선물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빗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할머니한테 찾아가는 일도 멋진 선물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어머니가 예전에 겪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멋진 선물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누리는 삶은 언제나 멋진 선물입니다.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이란 늘 멋진 선물이지요.



.. “쳇, 이제 보물찾기 안 할 거야.” 준호는 골이 나서 방바닥에 벌렁 누웠어요. 그런데 서랍장 위, 모자 상자에 꼬리가 보였어요 ..  (26쪽)



  아이 눈빛을 읽습니다.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아이 눈빛을 읽습니다. 아이 눈망울을 읽습니다. 함께 노래하고 싶어 하는 아이 눈망울을 읽습니다. 아이 눈동자를 읽습니다. 함께 춤추면서 뛰놀고 싶어 하는 아이 눈동자를 읽습니다.


  노는 아이가 예쁘고, 노는 아이와 함께 놀 줄 아는 어른이 아름답습니다. 노는 아이가 사랑스럽고, 노는 아이와 함께 놀 줄 아는 어른이 믿음직합니다. 보물찾기도 재미있고, 숨바꼭질도 즐겁습니다. 윷놀이도 재미있고, 소꿉놀이도 즐겁습니다. 종이 한 장을 접어도 재미있고, 그림을 살살 그려도 즐겁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하면 재미있으면서 즐겁습니다. 풀을 뜯어도, 설거지를 해도 언제나 재미있으면서 즐거운 하루입니다. 재봉틀이 있고 과자를 손수 구워서 주는 삶이 가만히 드러나는 그림책이 따사롭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어머니가 손수 깁고 짓는 옷과 가방을 받아서 쓰리라 생각합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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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에서 1월 15일로 넘어가는 00시 40분,

그러니까 목요일 00시 40분에

KBS 1TV에서 <전라도닷컴>이라는 월간문화잡지를 소개하는 방송이

40분에 걸쳐서 나옵니다.


전남 광주에서 올해로 열다섯 해째 꾸준하게 나오는

<전라도닷컴>은 전라도 시골사람 이야기를 수수하고 구성지게 담는

아주 뜻있는 잡지입니다.

서울말이나 표준말이 아닌 '전라말'을 고스란히 실어서

지역문화와 시골살이를 사랑스럽게 보여주는 잡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전라도닷컴>을 빼고는

고장말로 잡지를 엮어서 다달이 꾸준히 내는 매체가 없습니다.

어떤 잡지이기에 열다섯 해나 이 한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이 한길을 걸으려 하는지

방송으로 보시거나 인터넷으로 보시기를 빌어요.


그리고, <전라도닷컴> 정기구독자가 되어

이 멋진 잡지를 달마다 받아보면서

'서울 표준말'이 아닌 '한국 고장말'이 얼마나 살갑고 맛깔스러운가를 느껴서

'내 말 찾기'에도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http://jeonlado.com/v3/


전라도도 경상도도 경기도도 황해도도

서울도 부산도 인천도

모두 즐거운 삶자리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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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801) 매일같이(매일처럼) 1


“어떤 경우에도 비굴하면 안 된다” 그 말을 매일같이 들을 무렵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김규항-비급 좌파》(야간비행,2001) 67쪽


 그 말을 매일같이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날마다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늘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으레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수없이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듣고 또 들을 무렵엔

 …



  한자말 ‘매일(每日)’은 한국말로 ‘날마다’나 ‘하루마다’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날마다’나 ‘하루마다’로 적으면 됩니다. ‘매일같이’라든지 ‘매일처럼’처럼 쓸 일이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날마다처럼’이나 ‘하루마다같이’와 같은 꼴로 말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백 년을 하루같이”라든지 “즈믄 해를 하루처럼”과 같은 꼴로 말을 할 뿐입니다.


  날마다 듣기에 ‘날마다’로 적습니다.날마다 듣지는 않고 자주 듣는다면 ‘자주’로 적습니다. 자주 듣되 거의 날마다 듣는다면 ‘거의 날마다’로 적습니다. 어떤 모습을 나타내려고 하는지 찬찬히 헤아리면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6.29.불/4348.1.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떤 때에도 굽히면 안 된다” 그 말을 날마다 들을 무렵엔 그 말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다


‘경우(境遇)’는 ‘때’나 ‘자리’로 손질하고, ‘비굴(卑屈)하면’은 ‘굽히면’이나 ‘굽실거리면’으로 손질합니다. ‘온전(穩全)히’는 ‘제대로’나 ‘오롯이’로 손보고, ‘이해(理解)할’은 ‘알아들을’이나 ‘알’이나 ‘알아차릴’이나 ‘헤아릴’로 손봅니다.



매일(每日)

1. 각각의 개별적인 나날

   - 황진이에 대한 집념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2. 하루하루마다

   - 그는 매일 밤잠을 설쳤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56) 매일같이(매일처럼) 2


새들이 먹이를 찾으면서 내는 소리와 밤새 안녕한지를 묻는 소리가 매일처럼 나를 맞이한다

《남효창-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청림출판,2004) 머리말


 매일처럼 나를 맞이한다

→ 날마다 나를 맞이한다

→ 언제나 나를 맞이한다

→ 늘 나를 맞이한다

 …



  ‘매일’이라는 낱말을 쓰고 싶다면 쓸 노릇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을 쓰면서 한국말은 힘을 잃습니다. 왜 힘을 잃느냐 하면, 때와 곳과 흐름에 따라 다 다르게 쓰던 수많은 말마디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입니다.


  ‘늘·노상·언제나’는 뜻과 느낌이 조금씩 다릅니다. ‘날마다·나날이’는 같은 뜻이지만 느낌을 살짝 달리하면서 쓸 수 있습니다. ‘한결같이·꾸준히·자꾸’ 같은 낱말을 얼마든지 쓸 만하지만, 이런 낱말도 쓰임새를 잃습니다.


  이 보기글을 실은 책에 붙은 이름은 “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입니다. 이처럼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숲으로 일하러 가는 분이라면 으레 아침에 갈 테지요. 그러니, “나는 아침마다 숲으로 간다”라든지 “나는 아침에 숲으로 간다”처럼 쓸 만해요. 말넋을 한 번 더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38.11.9.물/4348.1.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새들이 먹이를 찾으면서 내는 소리와 밤새 잘 잤는지를 묻는 소리가 날마다 나를 맞이한다


‘안녕(安寧)한지를’은 ‘잘 잤는지를’이나 ‘잘 있었는지를’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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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9) 분粉 1


항아리에 / 쌀이 담겨 있으면 / 쌀분이 배어 나오고 / 소금이 담겨 있으면 / 소금분이 배어 나와요 / 내 마음 항아리엔 / 어떤 분이 배어 나올까요

《최명란-수박씨》(창비,2008) 77쪽


 쌀분 → 쌀가루

 소금분 → 소금가루

 어떤 분이 → 어떤 가루가



  화장품을 가리키는 ‘분’이라면 그대로 써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굴에 바른다고 하는 화장품을 ‘분’이라 가리킨 까닭은 ‘가루’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한테는 그저 ‘가루’일 뿐인데, 화장품을 만든 사람과 이를 퍼뜨린 사람은 한국말 ‘가루’가 아닌 한자 ‘粉’을 빌어서 쓴 셈입니다.


 분을 바르다

→ 가루를 바르다

→ 화장가루를 바르다

→ 얼굴가루를 바르다


  화장품을 가리키는 가루라 한다면 ‘화장가루’처럼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화장가루는 얼굴에 바르니 ‘얼굴가루’처럼 적을 만합니다. 그냥 ‘가루’로 써도 됩니다. 얼굴에 무엇을 바를 적에 가루를 ‘가루’라 말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粉’이라는 외마디 한자말은 곳곳에 또아리를 틀리라 느낍니다.


  이 보기글은 동시입니다. 동시를 쓴 이가 ‘쌀분’이나 ‘소금분’처럼 글을 쓰는데, 이런 말마디를 어린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어른은 ‘고추분’이라는 말마디를 쓰기도 합니다. ‘쌀분·소금분’뿐 아니라 ‘고추분’도 아주 뜬금없는 낱말입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은 ‘쌀가루·소금가루·고춧가루’이니까요.


  밀을 빻으면 ‘밀가루’이고, 콩을 빻으면 ‘콩가루’입니다. 누구나 알아듣도록 쓰지 않는다면 한국말이 아닌데, ‘밀분·콩분’처럼 쓰면, 이런 말을 알아들을 사람도 매우 드물 테지요. 4348.1.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항아리에 / 쌀이 담기면 / 쌀가루가 배어 나오고 / 소금이 담기면 / 소금가루가 배어 나와요 / 내 마음 항아리엔 / 어떤 가루가 배어 나올까요


“담겨 있으면”은 “담기면”으로 바로잡습니다. 이처럼 쓰는 현재진행형 꼴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분(粉)

1.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의 하나

   - 분을 바르다 /엷은 분 냄새가 풍겼다

2. = 가루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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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3 16:49   좋아요 0 | URL
들어 알지만 저는 번역체의 오류인 일본어체..랄까요..현재진행형을 옮겨놓은 그 행태가 썩 밉게 여겨지진 않아요.
어떻게 해서든 가 닿으려는 ..몸부림이..우리말은 익고 설고 차이일수있지만 그 들에겐 도˝의 깨달음에 같았을 ..순간이잖아요..느끼고 스스로 알라..가 아닌 주먹으로 옆구릴 주지름에 다가오는 선!...마저도 옮기려 애쓰니까요.어여삐 여길 건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주제넘지만..^^

파란놀 2015-01-13 19:17   좋아요 0 | URL
그 말투를 쓰든 말든
쓰는 사람 자유이지만,
잘못된 말투는 잘못된 말투일 뿐입니다.

작가가 잘못된 말투를 쓰든
공무원이 잘못된 정책을 펼치든
모두 그 사람들 자유이기 때문에 무어라 할 수 없으나,
다만 한 가지,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지요.

[그장소] 2015-01-13 19:28   좋아요 0 | URL
틀리다.한것이 아니라는건 아시죠? 무조건 좋다..받아들이자..그러는 것도 아니고요.
오해는 마십시오.저도..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칠건 고쳐야한다는걸 압니다.
음..불쾌하게 하려 고 한 의도는 아니었는데..생각해보니..열심히 잘 해놓은 글에 제가 뭘..그런걸..하는걸로 보였을 수도 있었겠어요.아닙니다...
얼른 잘못했다고 말하고 길게 변명 말라는
..신호가..저..마음 바닥에서 올라옵니다.
예..^^ 한번만 너그럽게 넘어가주세요.
다음부턴 쓸데없는 말 안도록하겠습니다...
(정색하고 계실듯해..진땀흘리고 있는 중입니다) 화가 나신게 아니면 좋겠습니다. 부디..요!..

파란놀 2015-01-13 20:21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는 그저 수수하게 적은 댓글입니다 ^^

`잘못을 잘못이라 말한 뒤, 손질해서 쓰고 싶으면 손질하고, 손질하고 싶지 않으면 손질하지 마시되, 잘못이 잘못인 줄은 알기 바란다`고 늘 말하는데,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쓰겠노라 하면서 무엇이 `잘못`인 줄 헤아리지 않는 분이 아주 많아요.

빗대어 한 가지 이야기를 붙였습니다만, 말을 말답게 쓰지 못하면서, 정책을 정책답게 펴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늘 궁금하게 여겨요.

사람은 말만 깨끗하게 할 수 없고, 일만 옳게 할 수 없으며, 밥만 정갈하게 먹을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이 한동아리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말투는 `익숙하게 굳은 버릇`이라면서 안 고치는 한국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논리가 된다면, 악법도 그냥 법이니까, 독재자가 나와서 잘못된 정책을 마구 펼쳐도 `악법도 법`이니 그대로 따라야 하는 셈이 되지요.

말 한 마디는 내 생각과 마음을 짓는 바탕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할 수 없기 마련이에요. 밥 한 그릇은 내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내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니, 아무 밥이나 마구 먹을 수 없기 마련입니다.

다 똑같은 흐름이고 얼거리인데, 한국에서는 `말` 이야기를 놓고는, 생각이 갇히거나 닫힌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뿐이지요 ^^;;;

생각을 열어, 말을 곱게 다스릴 사람은 곱게 다스리고, 생각을 안 열려고 하면, 그냥 생각을 안 열고 살아야지, 다른 수가 없는 노릇이에요.

2015-01-13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4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1-13 21:33   좋아요 0 | URL
웹으로 글을 써야겠다..싶어.잠시..비웁니다.!

[그장소] 2015-01-14 15:19   좋아요 0 | URL
중간에 오타를 지워야하나..이러고 있습니다.
어제는 저것이 안보였는데..말입니다.
뭐에 홀린것 같이 정신이 빠져있었지..그럽니다.
넋과 삶.살아있어야..넋이라도 있고 없고..할텐데..숨쉬고 있는데
이리 얼빠져있으니..큰일이구나..싶어지네요.
넋두리입니다.^^

파란놀 2015-01-14 19:31   좋아요 0 | URL
저도 곧잘 오탈자가 나오는데,
고칠 수 있으면 고쳐 놓으려 하지만,
오탈자란... 귀여운 티끌이라고 느껴요.

그리고, 저는 글을 읽을 적에 오탈자나 `잘못 쓴 말`은
그냥 다 지나쳐요.

글에 담은 이야기만 보려고 해요.
다만, 책을 읽다가 `너무 안 되겠구나 싶은 대목`은
꼭 눈에 들어와서 이런 대목만 손질하려고 하지요~

2015-01-14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전라도닷컴> 2015년 1월호에 실은 도서관일기입니다 ..

http://jeonlado.com/v3/

<전라도닷컴>은 이쁘장한 잡지입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시골에서 이웃 되기



  마을에 문을 걸어 잠그는 집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시골에서 훔칠 것이라면 쌀이나 고구마나 배추쯤 될 텐데, 집집마다 이런 풀열매나 푸성귀는 다 있으니 굳이 훔칠 일이 없습니다. 마을사람끼리 오간다면 시골마을에서 ‘다른 사람 것을 바보스레 노리는 짓’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가용이나 짐차를 몰고 마을에 들어오는 낯선 사람이라든지, 사진기를 어깨에 건 사람이라든지, 종교를 퍼뜨리려는 사람이 얼씬거린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마을사람 사이에서만 ‘서리’입니다. 마을사람이 아니면 ‘서리’가 아닙니다. 관광객은 시골마을을 이웃으로 여길까요. 여행객은 시골마을을 동무로 삼을까요. 관광을 앞세워 시골숲을 파헤칩니다. 여행 뒤끝에는 쓰레기가 뒹굽니다. 도시에 생활·문화공간을 늘리면서 위해시설은 줄이려 하니, 커다란 발전소나 폐기물 처리장을 시골에 짓고 송전탑을 박습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대문’을 두지 않았습니다. ‘大門’이라는 낱말부터 한국말이 아닙니다. 기와를 얹은 집에다가 담을 빙 두른 양반과 권력자와 부자 몇몇 사람 집에만 한자로 지은 낱말 ‘大門’을 두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한겨레 여느 마을 수수한 시골집에는 울타리조차 따로 없고 바깥 큰문이란 처음부터 없습니다. 한겨레 살림집에는 ‘미닫이’와 ‘여닫이’만 있습니다. 바람을 가리려고 돌울을 쌓기는 하되, 큰 숲짐승을 가리려고 탱자나무나 찔레나무로 울타리를 두르기는 하되, 이웃과 동무가 거리끼지 않고 드나드는 집이었어요.


  도시에서 집집마다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 잠그는 까닭은 ‘이웃’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집집마다 울타리를 높게 쌓고, 건물마다 문지기를 두는 까닭은 ‘동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있더라도 이웃이 아니거나 동무가 아닌 훨씬 많은 사람이 무섭거나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겨울에 마을 샘터와 빨래터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물이끼를 막대솔로 걷어냅니다. 두 아이는 빨래터 담벼락에 걸터앉아서 “아버지, 힘내라!” 하고 북돋웁니다. 한겨울이니 옷을 적시면서 물놀이를 하지는 말라 했더니, 큰아이는 연필과 종이를 챙겨 그림놀이를 합니다. 마을 할배가 빨래터 옆을 지나가다가 “이 추운데 뭐 하요?” 하시면서 “이녁 집에 떡 갖다 놨으니 아(아이)들이랑 자쇼.” 하고 덧붙입니다. 한겨울이어도 한낮에는 볕이 포근해서 빨래터에 맨발로 들어가서 물이끼를 걷을 만합니다. 마을 할매는 우리가 빨래터에 있느라 우리 집에서 아뭇소리가 안 나더라도 대청마루에 떡을 놓고 가신 듯합니다. 이웃이니까 스스럼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서로 이웃이면서 마을에서 막내이니, 한겨울 빨래터 치우는 몫을 기쁘게 맡습니다.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면서 고샅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들은 제삿떡을 먹고, 나는 ‘영국에 있는 이웃’이 선물로 보낸 책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2014)를 읽습니다. 영국 브루더후프 공동체에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삶을 배우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요구하는 학업 프로그램 탓에 아이들은 놀며 배울 기회를 점점 더 빼앗기고 교사들은 과도한 서류 작업에 짓눌리고 있다(37쪽).” 같은 글줄을 읽으며 밑줄을 살며시 긋습니다. 참말 아이들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못 놉니다. 시골에 있는 학교라 하더라도 몇 군데 학교를 빼고는 ‘운동장에서 맨몸으로 뒹굴며 노는 아이’를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운동장에서 맨몸으로 뒹굴며 노는 아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합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눈길과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다가 ‘면소재지 초등학생’이나 ‘읍내 중·고등학생’을 만나면, 열이면 아홉은 두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하거나 ‘쪽글 수다’를 떠느라 부산합니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은 숲이 없어서 숲을 못 봅니다. 시골에 있는 아이들은 숲이 있어도 ‘보기 싫어’서 숲을 안 봅니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은 책으로 숲을 봅니다. 시골에 있는 아이들은 ‘지겨워’서 숲을 눈으로도 책으로도 안 보려 하면서 고개를 돌립니다. 도시에 있는 대학교나 공장이나 기업에 가지 않고, 시골에 뿌리를 내리면서 숲을 가꾸고 들을 돌보겠노라 하고 씩씩하게 말할 줄 아는 시골아이는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시골에서 ‘농고’를 찾기 어려운 만큼, 시골 초·중·고등학교에서조차 시골아이한테 ‘시골일’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알리는 일도 못 하겠구나 싶지만, ‘농작물 산업(농업)’이 아닌 ‘시골살이’와 ‘숲살이’를 꿈꿀 줄 아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왜 못 태어날까요.


  “아이들에게 평생 남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부모가 주는 사랑이다(92쪽).” 같은 글줄을 읽다가 밑줄을 천천히 긋고 책을 덮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입시지식이 아닌 춤과 노래를 가르칠 수 있기를 빕니다. 집에서는 아이를 학교나 학원에 보낼 생각은 부디 그치고 웃음과 사랑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우리가 물려주거나 물려받을 것은 오직 사랑일 테니까요.


  2015년이 되면 우리 집 큰아이는 여덟 살입니다. 여덟 살이 될 큰아이하고 새해에는 ‘우리 집 학교’를 열자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을 학교로 삼고, 우리가 꾸리는 사진책도서관을 ‘도서관 학교’로 삼으려 합니다. 오직 한 아이를 생각하는 학교입니다. 오직 한 아이를 생각해서 가르치면서 어버이가 함께 배우는 곳입니다. 곁님과 나는 어버이요 교사가 되면서, 곁님과 나는 아이한테서 이야기를 새롭게 배우는 동무요 학생이 됩니다.


  ‘우리 집 학교’ 이름을 셋이서 함께 지을 생각입니다. ‘우리 집 학교’ 이름을 지으면 간판도 셋이서 짤 생각입니다. 작은아이는 옆에서 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테지요. 밥과 옷과 집을 손수 다루고, 불과 나무와 흙과 풀을 몸소 건사하며, 하늘과 해와 별과 바람과 비를 오롯이 마주할 때에, 즐겁게 놀면서 배울 보금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집 학교’를 씩씩하게 가꾸면, 우리 집 네 사람이 시골마을 ‘젊은 이웃’이 되어 새로운 다른 이웃을 부를 수 있을 테지요. 4347.12.15.달.ㅎㄲㅅㄱ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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