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 오사무 님이 그린 《나의 손오공》은 〈서유기〉라는 작품을 이녁 나름대로 읽고 헤아리면서 풀어낸 만화이다. 〈서유기〉에 깃든 넋을 아이들한테 한결 쉽게 알려주려는 뜻을 담고, 만화란 얼마나 깊고 넓게 사람들한테 다가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빛이 있다. 《나의 손오공》에 나오는 손오공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손오공 둘레에서 사람이란 목숨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말하지만, 손오공은 굳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손오공은 굳이 사람이 되어야 했을까? 아니, 손오공은 처음부터 사람과는 다른 숨결이요 사람이 따를 수 없는 자리에 있다 할 수 있을 텐데, 마음으로 품은 꿈을 이루려고 애쓰면서 삶을 새로 짓고 아름답게 가꾸는 길을 걷는 셈이려나.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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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오공 1
데즈카 오사무 지음, 이정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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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 - 혀로 배우는 인간과 생명의 역사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3
권은중 지음, 심상윤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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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4



밥 한 그릇을 먹으려고

―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

 권은중 글

 심상윤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4.4.19.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절구질을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흙을 일구면서 한 해를 기다렸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땠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흙과 돌을 써서 집을 짓고 부엌을 만들며 무쇠로 솥을 지었을 뿐 아니라, 키로 쌀을 까부르고는 조리로 일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만들고 그릇을 만들었으며 밥상을 만들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흙을 북돋우고 풀을 아꼈으며 나무를 사랑했습니다.



.. 쌀밥 한 그릇과 같은 음식에는 45억 년 전 지구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엄청난 생명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근대사는 음식이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 문제는 기계 덕분에 사람이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영국이 대량으로 값싼 면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면직물 가격이 폭락합니다.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의 인도인이 실업자 신세가 되어 굶어죽게 돼요. 그 과정에서 영국은 잔인한 계략을 쓰기도 합니다. 경쟁국을 견제하고자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인도 방직 기술자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랐죠 ..  (17, 20쪽)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돈을 법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밥집에 가거나 전화를 걸어 시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전기밥솥이나 여러 가지 기계를 씁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가시내한테 한 마디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서른 살이 되어도 밥을 지을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흔 살이건만 밥과 국과 반찬을 정갈하게 차릴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 한 그릇 얻기까지 어떤 땀과 품과 손길을 들이는지 모르기 일쑤입니다. 날마다 세 끼니 꼬박꼬박 밥을 먹는다지만, 정작 밥 한 그릇이 어떤 숨결이요 넋인지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 햇빛과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만 있다면 식물은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는 포식 행위 없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생명체를 키울 수 있는 깨끗한 산소를 내놓습니다 … 저는 요즘 아이들에게 아토피가 많아지는 것도 음식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학 첨가제가 잔뜩 들어간 과자와 사탕을 입에 달고 사니까요. 우리 몸의 신장이나 간은 이런 합성물질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거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떻게든 이물질을 밖으로 내보내려는 과정에서 보이는 몸의 과민함이 바로 아토피라고 합니다. 아토피는 사실상 약이 없어요. 음식물에 쓰이는 각종 화학 첨가물은 아토피뿐 아니라 ADHD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  (54, 130쪽)



  남이 지은 나락을 빻은 쌀하고 내가 지은 나락을 빻은 쌀은 맛이 다릅니다. 그만큼 사랑과 숨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은 나락은 내 온 사랑이 깃듭니다. 내 숨결과 손길이 고스란히 감돕니다. 내가 지은 나락을 내 손으로 밥으로 지어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습니다. 남이 지은 나락으로 밥을 짓는대서 맛이 없지는 않으나, 내가 손수 거둔 쌀하고 맛을 견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낚은 물고기하고 남이 낚은 물고기하고 맛이 같을 수 없어요. 내가 뜯은 나물하고 남이 뜯은 나물은 맛이 같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 스스로 손길을 들일 때에 가장 맛있습니다. 언제나 우리 손빛을 담을 때에 가장 몸에 좋습니다.


  이모나 고모가 아이를 잘 돌봐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살가운 이모와 사랑스러운 고모보다도 제 어버이한테서 살갑고 사랑스러운 손길을 받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늘 기다립니다. 곁에서 어버이가 가장 아름답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저희를 어루만질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흔히 ‘어머니 손맛’이라고 하지만, 꼭 어머니 손맛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손맛이나 아버지 손맛이나 똑같습니다. 할머니 손맛이나 할아버지 손맛이나 똑같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베풀면서 물려주는 손맛일 때에 즐겁고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손맛’이란 내 어버이가 물려주는 삶맛입니다. 손맛이란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베풀면서 내가 우리 아이한테 이어줄 사랑맛입니다.



.. 독립국이 된 미국은 영국의 비싼 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요. 당시 커피를 생산하던 중남미와 지리적으로 훨씬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이 먹는 감자를 만들어 낸 그들의 손, 자신을 닮은 그들의 손이 부각되게 그렸다”라고 말합니다. 먹는 표정과 속도만 부각시키는 요즘의 ‘먹방’과 달리 고흐는 먹는 사람의 마음마저 헤아렸던 것이죠 ..  (176, 181쪽)



  권은중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철수와영희,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을 살피면 우리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어떻게 먹었는가 하고 돌아보면 우리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야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아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리는 밥상을 살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즐기는 밥상을 보면, 우리 문화와 역사를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요리나 음식과 얽힌 문화는 궁중에 없습니다. 요리나 음식과 잇닿는 역사는 책에 없습니다. 우리 혀에 문화가 있어요. 우리 눈과 손에 역사가 있어요.


  먼먼 옛날인 거의 오천 해 앞서인 때부터 쑥과 마늘이 있었다고 해요. 쑥은 들에서 나는 풀을 대표하고, 마늘은 사람이 손수 심는 풀을 대표해요. 들에서 스스로 자라는 풀을 먹는 한편, 사람이 사랑으로 심어서 꿈을 담아 돌보는 풀을 먹을 때에 비로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뜻을 옛 신화에서 들려준다고 느껴요. 쑥떡을 먹고 마늘장아찌를 먹는 한겨레는 스스로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길을 걸으려는 몸짓이지 싶어요.


  대단한 요리를 해서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 1등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날마다 가장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차리면 됩니다. 밥 한 그릇을 언제나 웃으면서 차리고 노래하면서 먹으면 됩니다.



..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곰팡이는 생명체를 키우고 다시 순수한 원자 자체로 돌립니다. 원자에서 시작해 생명으로 그리고 생명이 다해 다시 원자로 돌아가는 그 긴 과정을 곰팡이들은 함께합니다 … 콜라는 출발부터 다릅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음식들이 농부나 어부의 손에서 시작했다면 콜라는 ‘공장’에서 출발한 ‘상품’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대지나 바다가 아니라 공장에서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 세계 최장수 지역으로 꼽혀 온 일본 오키나와에도 햄버거와 피자를 판매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이 들어온 이후 평균 수명이 일본 본토보다 떨어졌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  (195, 202, 221쪽)



  푸름이와 함께 읽는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인문책은 한겨레 문화와 역사보다는 서양 문화와 역사를 더 다루기 마련이라, 이 책도 서양 요리 문화와 역사를 더 깊이 돌아봅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온 여느 사람들 손길과 손빛과 손맛이 깃든 작고 살가운 밥 한 그릇을 이야기하지는 못해요.


  그러나, 푸름이가 스스로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밥 문화는 책에 없습니다. 우리 밥 역사는 교과서에 없습니다. 우리 밥 예술은 요리전문가가 알려줄 수 없습니다.


  잘 알아야 할 일인데, 배추김치가 한겨레 반찬이 된 지는 아직 얼마 안 되었습니다.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한겨레가 쓴 지는 이제 겨우 백 해가 될락 말락 합니다. 배추를 한겨레가 먹은 지도 천 해가 될까 말까 한다고 해요.


  우리는 무엇을 먹었을까요. 우리 옛사람은 지난날에 배를 곯았을까요? 우리 옛사람은 배추도 무도 감자도 고구마도 오이도 몰랐을 지난날에 어떤 밥을 먹으면서 어떤 삶을 노래했을까요? 고추도 수박도 토마토도 당근도 양파도 없었을 지난날에 우리 한겨레는 무엇을 들과 숲에서 얻으면서 몸을 살찌우고 삶을 빚었을까요?



..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는 어머니표 밥상, 저에겐 나이가 들면서 가장 소중하고 그리운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지식을 외우기보다 감자 샐러드나 멸치 국물을 내는 요리를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쉬운 요리를 하나씩 하다 보면 금세 연관된 요리를 몇 가지 더 할 수 있습니다. “학원 가느라 바쁜데 어떻게 요리를 해요”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리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건강과 감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  (221, 237쪽)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라는 책이 우리 겨레 밥살이를 더 돌아보면서 찬찬히 다루었다면 훨씬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쓰신 분뿐 아니라, 오늘날 여느 어버이와 수많은 아이들은 아직 한겨레다운 삶을 모릅니다. 겉보기로는 한겨레요 한국사람이지만, 늘 먹는 밥이 ‘한국 밥’이라고 할 만한지 알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흐른 뒤를 생각해 보셔요. 2200년이나 2300년에 오늘날 한국을 돌아볼 적에 ‘한겨레 밥 문화’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이 누리는 밥이란 얼마나 우리 문화요 역사이며 삶이라 할 만할까요?


  밥 한 그릇을 먹으려고 예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밥 한 그릇을 나누려고 예부터 사람들은 서로서로 돕고 어깨동무하면서 웃었습니다. 요즈음 이 나라 국민소득이 꽤 높지요? 그렇지만 아직도 굶는 사람은 많고, 가난한 이웃도 많아요. 게다가 북녘에서 나고 자라는 한겨레는 너무 배고플 뿐 아니라 너무 괴롭습니다. 이와 달리 남녘에서는 밥쓰레기가 해마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져요.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한국사람은 어떤 밥 문화를 누리는가요.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입시교육에만 매달리면 될까요? 밥 한 그릇 냄비밥으로 끓일 줄 모를 뿐 아니라, 배를 곯거나 굶어죽는 한겨레가 있는 줄 모르는 채 ‘한국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는 대학교’에 척 하니 붙으면 그만일까요? 밥과 문화와 역사란 무엇일까요? 오늘 이곳에서 열예닐곱 나이로 살아가는 어여쁜 푸름이가 ‘새로운 밥 이야기’를 써서 새로운 책으로 선보일 수 있기를 빕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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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두 아이



  작은아이는 큰아이를 늘 따라한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면서 물려준다.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하는 말대로 말할 뿐 아니라, 큰아이가 보여주는 움직임을 고스란히 따른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제 말을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알려준다. 둘이 함께 있으면 언제나 복닥복닥 조잘조잘 소리가 크다. 두 아이는 서로 새로운 이야기를 빚는다. 둘 가운데 하나가 자거나 하나가 따로 있으면 아주 조용하다. 움직임이 잦아들고 소리도 가라앉는다. 동생은 누나를 바라보면서 큰다. 누나는 동생을 마주하면서 자란다. 둘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일군다. 이러한 얼거리 그대로 어버이와 아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는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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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50. 물이 흐른다


  어느 시골이든 샘터나 우물터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과 풀이 있어야 해요. 이 다섯 가지가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목숨도 이 다섯 가지가 없으면 죽습니다. 햇볕이 없으면 지구별은 꽁꽁 얼어붙으니 어떤 목숨도 살지 못해요. 바람이 없으면 아무도 숨을 쉴 수 없으니 어떤 목숨도 살 수 없습니다. 비가 오거나 냇물이 흐르거나 샘이 솟지 않으면 모든 목숨은 메말라 죽습니다. 흙이 있어야 발을 디디면서 살아가고, 흙에서 풀이 돋아 모든 목숨이 밥을 얻어요. 이 다섯 가지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가지가 태어나요. 흙과 풀이 있는 곳에서 나무가 자라고, 나무는 우리한테 집이 되면서 열매를 줍니다. 나무는 드센 바람을 가려 줄 뿐 아니라, 나무를 잘라 배를 무어 고기잡이를 하거나 냇물을 건넙니다. 나무로 낫자루나 지게를 만들어요. 옷장을 짜고 책걸상을 만듭니다. 나무가 있은 뒤에 돌과 쇠를 얻어 낫날이나 호미날이나 쟁기날로 삼지요. 돌은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고,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누름돌이 되며, 마루로 올라서는 섬돌이 됩니다.

  도시가 생기고 댐을 지으면서 시골이 물에 잠깁니다. 도시에서는 샘터나 우물터가 없어도 수도를 이어 수돗물을 마십니다. 도시는 햇볕이 들지 않아도 지하상가나 건물에서 전깃불을 켭니다. 도시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과 발전소 전자파와 방사능이 춤추어도 환풍기를 쓰고 정화기를 씁니다. 도시에는 흙도 풀도 나무도 없으나 시골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이고, 시골에서 키운 꽃과 나무를 사다가 심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한 달에 두 차례쯤 마을 샘터이자 빨래터를 치웁니다. 예전에는 모든 마을사람이 이곳에서 물을 긷고 아이를 씻기며 빨래를 했으나, 이제는 집집마다 땅을 파서 골짝물을 쓰니 샘터이자 빨래터에는 물이끼가 잔뜩 낍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아무도 안 쓰는 샘터이자 빨래터는 나그네나 길손이 지나가다 들여다보면 볼썽사납대서 예전부터 마을 할매들이 틈틈이 치우셨어요.

  마을에 샘터와 빨래터가 있어도 이곳에서 물을 긷거나 빨래하는 사람이 죄 사라진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는 물을 긷는 모습이나 빨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인도나 버마나 부탄이나 베트남쯤 가면 물을 긷거나 빨래하는 수수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는지 모르나, 이제 한국에서는 도시나 시골 모두 빨래기계를 쓰니, 참말 빨래살이를 사진으로도 글로도 그림으로도 옮기지 못합니다.

  손으로 모를 내는 사람이 거의 없고 기계를 쓰니, 모내기를 사진으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가을걷이를 기계로 하고 나락털기도 기계로 하니, 가을빛을 사진으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기계와 농약과 비료가 춤추는 시골이기에 제비가 돌아올 흙집 처마 밑이 사라져 제비가 선보이는 멋진 춤과 날갯짓을 사진으로 찍을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삶을 잃거나 잊으면서 어떤 삶을 짓거나 일구는가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모습을 버리거나 등지면서 어떤 삶을 누리거나 가꾸는가요. 우리가 찍는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읽는 사진에는 우리 삶이 어느 만큼 살갑거나 사랑스럽거나 살뜰히 깃들 수 있을까요.

  마을 샘터를 치웁니다. 물이끼를 모두 걷습니다. 다시 깨끗한 샘터요 빨래터가 되고, 우리 집 아이들은 샘터 바닥을 네 발로 척척 기듯 다니면서 놉니다. 물이 맑게 흐르고, 바람이 싱그럽게 붑니다. 햇볕은 알맞게 따스합니다. 멧새가 하늘을 가르며 예쁘게 노래합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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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49. 꽃밥을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면 온몸이 싱그럽습니다. 자동차 없고 아파트 없으며 고속도로도 골프장도 발전소도 없는 깨끗한 숲에 깃들어 숨을 크게 들이켜면 온몸이 해맑고 푸른 빛으로 거듭납니다. 맑은 바람은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맑게 다스립니다. 숲마실을 즐기는 이들이 숲빛을 사진으로 찍는 까닭을 쉬 알 만합니다. 숲에서 숲바람을 마시면 참말 숲빛이 이렇게 곱네 하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매캐한 바람을 마시면 온몸이 찌뿌둥합니다. 귀가 째지도록 시끄럽고 어수선한 곳에서 여러 시간 나들이를 하거나 일을 해야 하면, 나들이나 일을 마치고 난 뒤 머리가 멍하기 일쑤입니다. 시끄럽거나 어수선한 데에서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하루가 삶이라면 몸과 마음이 늘 찌뿌둥하면서 어지럽기 마련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흘러야 하는 삶일 때에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은,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과 다릅니다.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유학을 다녀온 뒤 사진을 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은, 시골에서 중·고등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치고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과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 서건, 우리는 늘 삶이고 사랑이며 사진입니다. 맑고 깨끗한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 바라보는 모습에도 고운 빛이 서리면서 사진이 됩니다. 매캐하며 시끄러운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 마주하는 모습에도 예쁜 빛이 감돌면서 사진이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먹는 밥을 차리면서 늘 ‘꽃밥’을 그립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언제나 꽃밥이라고 생각합니다. 들꽃을 하나 꺾어 밥그릇에 살짝 얹곤 합니다. 꽃송이가 매달린 들풀을 나물 삼아서 밥상에 올리곤 합니다. 들꽃을 먹으면서 우리 몸이 들꽃이 되기를 바랍니다. 들꽃을 먹으면 우리 몸이 들꽃과 같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들꽃을 사진으로 찍으면 우리 눈도 들꽃처럼 되리라 생각합니다. 숲을 사진으로 찍거나 바다를 사진으로 찍으면, 우리 눈길과 눈빛도 숲과 바다처럼 맑고 푸르며 시원하고 싱그러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랑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내 눈과 넋과 몸이 사랑스레 거듭납니다. 살가운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살가운 이웃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내 눈길과 삶길과 손길이 살가이 거듭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구경꾼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음에 이야기를 아로새기면서 스스로 새롭게 하루하루 일굽니다. 아름답게 살고픈 빛을 사진 한 장에 싣고, 사랑스레 손잡고 싶은 꿈을 사진 두 장에 담습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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