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햇볕길을 (2025.5.8.)

― 부산 〈읽는 마음〉



  어버이날 새벽에 논두렁을 달려서 옆마을에 닿습니다. 첫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갔고, 순천을 거쳐서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탑니다. 등허리를 폅니다. 석 달째 조금씩 쓰는 글꽃(동화) 한 자락을 더 씁니다. 사상나루에서 내려 사직으로 갑니다. 2025년 5월 7일에 연 〈읽는 마음〉을 바라보며 골목길을 걷습니다.


  부산은 다른 고장을 헤아리면 책집이 너무 적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알뜰히 새터를 차리는 분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책 한 자락으로 이 고장 한켠을 밝히면서, 마을사람 스스로 이곳을 사랑하는 이야기씨앗을 심는다고 느낍니다.


  높은자리에서 내려다보면 “고작 작은책집 하나”입니다. 살림자리에서 마주보면 “바로 작은책집 하나”입니다. “이 작은 곳”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느냐고 핀잔하는 분도 있으나, 언제나 “이 작은 곳”이 첫발입니다. 크고작은 모든 푸른숲은 작은씨앗 한 톨에서 비롯했어요. 마을도 고을도 고장도 나라도 바로 “이 작은 한 사람”부터 마음을 가꾸면서 시나브로 바꾸게 마련입니다.


  지난 2000년부터 꼬박꼬박 부산을 드나듭니다. 천천히 느슨히 부산 여러 골목과 마을을 거닐면서 새롭게 만나고 돌아봅니다. 아늑하고 알뜰한 골목집이 사라지면 안타깝지만, 꿋꿋이 골목밭과 꽃그릇밭을 일구는 이웃이 있기에 반갑습니다. 저는 굳이 꽃뜨락(식물원)을 안 갑니다. 시골에서는 들숲메가 꽃밭이요, 큰고장에서는 골목길이 꽃길입니다.


  마을책집 〈읽는 마음〉을 돌보는 책집지기님이 부산에서 꾸준히 이야기밭을 일구셨다고 합니다. 부산에 있는 작은펴냄터에서 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살림하며 살아가는 손길로 여민 작은책이 반짝입니다.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를 알아보는 책동무는 아직 적은 듯하지만, 이제부터 늘어나기를 바라요. 부산에서 두 아이를 돌본 어느 분이 여민 《그래봤자 꼴랑 어른》이라는 이야기책도 놀랍도록 아기자기하면서 반짝반짝합니다. 부산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도 “일하고 살림하는 아줌마 눈길”로 태어나는 작은꾸러미가 차분히 작은씨앗 구실을 할 테지요. ‘나(어른)’를 마주하면서 ‘너(아이)’를 품습니다. 나(어른)부터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너(아이)를 나란히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대단하거나 커다란 모습이어야 나라나 마을이나 책집이지 않습니다. 이곳은 큰나라나 큰고장이지 않아도 됩니다. 큰집에서 살거나 큰쇠(중·대형차)를 거느리지 않아도 됩니다. 큰이름을 얻거나 큰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살림집에서 살고, 살림수레를 거느리고, 살림이름을 나누고, 살림돈을 펴면 넉넉합니다.


《날마다, 도서관》(강원임, 싱긋, 2025.4.12.)

《날마다, 지하철》(전혜성, 싱긋, 2021.11.11.)

《화가들의 꽃》(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안진이 옮김, 푸른숲, 2025.3.11.첫/2025.4.15.4벌)

#theBookoftheFlower #FlowersinArt #AngusHyland #KendraWilson

《어느 날, 마녀가 된 엄마》(김주미, 글이, 2022.8.8.)

《그래봤자 꼴랑 어른》(한주형, 글이, 2020.5.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11.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글, 얼룩소, 2024.2.28.



두 아이랑 하루쓰기를 이으면서 돌아본다. 우리 보금숲은 하루 내내 새소리를 듣고 바람소리와 푸른내음을 누린다. 밤이면 별을 보고, 여름개구리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이러한 터전은 까맣게 모르는 채 하루를 보낼 서울내기(도시인)라면 마음에 무엇을 담을까? 철이란 “석 달”만 가리키지 않는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 갈래뿐 아니라, 다달이 다르고 나날이 새롭기에 철이다. 철빛이란 언제나 한결같이 새롭게 피어나는 숨결을 품는 넋이라고 할 만하다. 서울에서는 여름겨울이 거의 똑같은 차림새이다. 여름에는 춥고 겨울에는 더운 버스·전철·일터·집이지 않은가? 큰아이하고 저잣마실을 다녀온다. 저잣짐을 함께 나른 큰아이가 대견하다.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를 읽었다. 그런데 갑자기 판이 끊어졌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펴냄터를 옮겨서 2025년 6월에 새로 나온다. 부디 작은목소리를 섣불리 누르거나 밟지 않기를 빈다. ‘무안참사 특검’도 여태 안 하는데, 이렇게 쭉쭉 갈라서는 나라인 채 안 바꾼다면, 아프거나 다치는 사람은 앞으로도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흉과 허물은 달게 값을 치를 일이다. 잘잘못을 낱낱이 밝히고서 바보들한테 호미 한 자루에 바늘 한 쌈을 쥐여주고서 밭일을 시키고 바느질을 시켜야 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10.


《냉전의 벽》

 김려실과 일곱 사람 글, 호밀밭, 2023.6.25.



집으로 돌아왔으니 저잣마실을 나갈까 했으나 그만둔다. 하루를 푹 쉬면서 여러 일을 돌본다. 집안일을 하고 빨래를 한다. 늦은낮에는 큰아이하고 앵두를 따면서 새소리를 듣는다. 둘이서 어느새 큰들이를 채운다. 이튿날 더 하면 큰들이 하나를 더 얻을 만하다. 구름이 짙다가도, 이슬비를 뿌리다가도, 새삼스레 해가 나면서 싱그럽고 따사로운 여름이다. 여름이되 덥지 않고 따사롭다. 워낙 새여름은 안 덥던 날씨이다. 구름 없는 한낮이라면 조금 덥더라도 바람과 구름이 이내 식히는 길목이다. 《냉전의 벽》을 읽었다. “차가운 담”은 남이 쌓지 않는다. 큰나라가 끼어들었다고 여기되, 우리가 큰나라 등쌀과 옷자락에 휘둘리기에 “얼음담”을 쌓는다. 옆에서 쑤석거리는 놈이 있기에 “겨울담벼락”이 생길 수도 있되, 모든 겨울담은 우리가 스스로 녹이고 허물 만하다. 이제는 우리가 할 때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치우고 걷어낼 노릇이다. 높녘(북)에도 ‘사람’이 살지만, 꼭두각시와 허깨비가 무시무시하게 도사린다. 마녘(남)은 어떤가? 우리는 서로 ‘사람’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이미 마녘에서도 서로 차갑게 담벼락을 높다랗게 세우면서 싸우는가? 민낯을 고스란히 바라볼 때라야 응어리도 고름도 생채기도 하나하나 달랠 수 있다.


ㅍㄹ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6. 알못 못알



  누구나 그때그때 배울 이야기를 따라서 낱말 한 자락이 찾아온다. 좋거나 나쁜 낱말이 아닌 배울거리인 낱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나한테 온 낱말”을 고요히 돌아보고서 차분히 짚을 적에 스스로 길을 연다.


  ‘알못’이라는 낱말을 예전에 처음 듣고서 “알꼴로 둥근 머리인 못”인가 하고 갸우뚱했는데 “알지 못하다”를 줄인 낱말이라고 해서 빙그레 웃었다. 대못·잔못이 아니었구나.


  아이들은 ‘안’이나 ‘못’을 앞에 놓는다. 아이들 말씨라면 ‘못알’이다. “못알 = 못 알다 = 모르다”이다. 오랜 우리말씨라면 ‘못알’이라 해야 알맞은데, 워낙 오늘 우리가 스스로 우리말씨를 잊은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못알이라서 알아가고 알아보고 알아들으려고 하는 아이라면, 먼저 못알에서 ‘알’로 나아가서 ‘알깨기(알아차리기)’로 거듭난 사람이 ‘어른’이다. 아이어른은 한 사람 몸마음에 나란히 있다. 두 빛인 넋과 얼이 한덩이로 밝기에 ‘숨’이다. 이 숨을 살리기에 ‘사람’이고, 사람이 서로 살리는 숨결이 ‘사랑’으로 넘어간다.


  좋고나쁨과 옳고그름을 다 놓아야 비로소 삶을 느끼고 보고 배운다. 배우는 길에 서기에 가만히 익힐 틈을 낸다. 배우고서 익히는 틈과 짬을 누리기에 눈을 뜬다. 눈을 뜨기에 철이 들고, 철이 들면서 찬찬히 나이를 머금으니 바야흐로 어른이란 이름으로 일어선다. 나이를 알맞게 머금으며 무르익는 사람을 지켜볼 수 있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논다. 아이는 어른 곁에서 놀이랑 노래를 누리고 짓는다. 어른은 아이 곁에서 일이랑 살림을 돌보고 나눈다.


  모르기에 배우는 길에 선다. 하나를 알기에, 이 하나를 씨앗으로 새로 묻고서 즐겁게 다시 배우는 길을 걷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4. 돼지



  ‘고기돼지’가 아닌, 우리에 갇힌 돼지가 아닌, 들이며 숲을 가로지르면서 아름다이 노래하는 돼지를 만나거나 사귀면서 함께 하루를 짓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렇게 믿던 사람이 무시무시한 칼이나 도끼를 들고서 저한테 다가와 마구 휘두르니, 돼지는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요. 누가 사람 목을 무서운 칼이나 도끼로 내리치려고 하면, 사람도 “사람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숨을 거둘 테지요. 우리는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아닌 “돼지가 풀숲에서 고르릉고르릉 기쁘게 노래하는 소리”를 나눌 수 있는 살림길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더 많이 먹으려고 더 모질게 좁고 어둡고 답답한 우리에 가두어서 착하고 상냥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고기돼지라는 길은 끝내기로 해요. 느긋하며 아늑할 뿐 아니라 착하고 참하면서 곱게 숲을 같이 누리는 따사로운 길을 나아가야지 싶어요. 사람을 사람답게 보려면 나무를 나무답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개미를 개미답게 마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돼지를 돼지답게 끌어안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돼지는 노래하고 싶습니다. 돼지는 멱을 따이고 싶지 않습니다. 돼지는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돼지는 좁은 잿바닥(시멘트바닥)에 갇힌 채 흙도 풀도 나무도 꽃도 없는 곳에서 찌꺼기로 배를 채울 생각이 없습니다. 돼지는 풀잎을 사랑해요. 돼지는 풀벌레하고 동무하면서 놀고 싶어요.



돼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