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책읽기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시골집을 누릴 수 있기를 꿈꾼 적 있는가 곰곰이 돌아본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 하는 꿈은 틀림없이 꾸었다. 다만 ‘이렇게 살아가면 좋겠지만 집은 어떻게 얻나?’ 하는 마음이 으레 뒤잇곤 했다. 걱정하는 꿈이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데, 왜 걱정을 뒤잇는 꿈을 꾸었을까. 꿈을 생각하는 삶을 스스로 찾지 않았기 때문일까. 제도권 학교를 탓하거나 누군가를 탓하면서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자운영 꽃잎을 바라본다. 봄 들판에 봄빛을 알리던 들꽃을 헤아리니, 맨 처음은 옅은파랑이었고(봄까지꽃), 뒤이어 하양이었으며(별꽃), 다음으로 옅은빨강(광대나물)이었다. 이윽고 보라였고(제비꽃), 노랑이었으며(유채꽃·갓꽃), 옅은하양이나 하양이 갈마들었다(매화꽃). 자운영꽃은 이 가운데 보라빛 제비꽃과 함께 찾아왔다.


  어느 꽃이든 꽃잎이 참 작다. 어느 들꽃이든 키가 작달막하다. 유채꽃은 좀 멀대 같다 할 만하지만, 그리 큰 키라 하기 어렵다. 흔히 유채꽃 흐드러진 들판을 헤아리지만, 사람들이 따로 씨앗을 잔뜩 뿌려 유채밭이 되지, 유채 스스로 처음부터 떼로 몰려 피어나지는 않았다. 아니, 유채도 먼먼 옛날에는 스스로 곳곳에 무리지은 보금자리를 마련했겠지.


  들꽃이 피어나는 자리는 다 다르지만, 차례차례 피어나는 꽃이 좁다란 흙뙈기에 나란히 어깨동무하곤 한다. 흙 한 줌은 수많은 들꽃한테 보금자리가 된다. 서로 즐거이 꽃잎을 벌린다. 언뜻 보자면 서로 제 씨앗을 더 많이 더 널리 퍼뜨리려고 애쓰는 듯 여길는지 모르나, 서로 알맞게 제 씨앗을 남길 뿐, 누가 더 넓게 이 땅을 차지하려 든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이 꽃이 피고 나면 저 꽃이 피고, 저 꽃이 피고 나면 그 꽃이 핀다. 숱한 들꽃이 찬찬히 피고 지면서 들판을 알록달록 어여삐 일군다.


  논둑과 도랑 둘레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자운영 꽃잎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너 자운영을 바라보며 무슨 빛깔이라 이름을 붙여야 하겠니. 어떤 빛이름이 너한테 어울리겠니. 별꽃이 흰빛이라 하더라도 아무래도 ‘별꽃빛’ 아니고는 도무지 나타낼 수 없듯, 자운영꽃 또한 그 어떤 빛이름보다 ‘자운영빛’ 아니고는 참말 나타낼 수 없겠지. (4345.4.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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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아이 책읽기

 


  둘째 아이가 한손에 볼펜을 쥐고 다른 한손에 빈책을 쥐며 논다. 마치 제 누나가 둘째 아이 무렵일 때에 놀던 모습하고 같다. 아이들은 어버이 모습을 늘 곁에서 지켜보며 하나하나 배운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다면 어린이집 어른들이나 동무들을 바라보면서 또 무언가를 배울 테지. 아이들하고 나란히 들판에 들놀이나 들마실을 간다면 아이들은 들을 바라보고 느끼며 배우리라. 아이들이랑 뒤꼍 밭뙈기 흙을 갈거나 씨앗 한 알 심는다면 아이들은 흙삶을 바라보고 느끼며 배우리라.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면 아이들은 자전거 타는 삶을 바라보고 느끼며 배우겠지.


  내 모든 좋은 모습을 아이들이 바라보고 느끼며 배운다. 내 모든 궂은 모습 또한 아이들이 바라보고 느끼며 배운다. 곧, 나 스스로 오늘 하루를 어느 만큼 아끼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아이들 또한 스스로 아끼고 사랑할 하루가 달라진다. 나 스스로 내 꿈을 즐겁게 빚는다면 아이들 또한 저희 꿈을 즐겁게 빚는다. 나부터 예쁜 넋이요 고운 말이라면 아이들은 시나브로 예쁜 넋이랑 고운 말로 저희 마음을 빛내리라.


  둘째 아이도 첫째 아이도 새삼스럽게 새로 배우고픈 이야기가 많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옆지기와 나 또한 새삼스럽게 새로 배울 이야기가 많다. 아름다운 삶을 새로 일구면서 배우고, 좋은 사랑을 새로 지으면서 배운다. 따스한 봄날이 하루하루 이어진다. (4345.4.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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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과 새꽃 책읽기

 


  모과꽃을 며칠 뒤부터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집 뒤꼍 모과나무는 키가 작습니다. 처음부터 작은 키는 아니었고, 지난해 새로 보금자리를 틀며 우리 집 뒤꼍에 있던 모과나무 한 그루 가지치기를 하며 키가 줄었습니다. 모과나무 한 그루는 이내 키가 자라겠지요. 가지치기를 했어도 가지마다 새눈이 틉니다. 겨우내 새눈이 아주 작게 맺힌 모습을 보았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부터 새눈이 터도 좋으련만, 모과나무는 춥디추운 겨울부터 새눈이 작게 고개를 내밀며 옹크렸고, 새봄을 맞이해 하루하루 따스해지자 새눈이 조금씩 부풀면서 이내 한 잎 두 잎 환하게 터집니다.


  아직은 우리 아이들 손톱보다도 작은 여리며 보드라운 잎사귀입니다. 머잖아 새꽃이 송이송이 어여쁘게 터질 무렵에는 나뭇잎 또한 천천히 자라며 한결 굵고 큼지막하게 자랄 테지요.


  모과는 열매가 참 커다란데 꽃잎이 참 작습니다. 꽃잎이 작은 모과나무이기 때문인지 앙 다물며 곧 터질 듯 말 듯하는 봉우리는 더욱 작습니다. 호박은 꽃도 크고 열매도 큰데, 아니 호박꽃 크기를 헤아리면 호박열매가 그만 한 크기가 되겠구나 싶고, 모과꽃 크기를 살피면 모과열매가 그만 한 크기가 될 수 있겠구나 싶고. 그런데, 매화꽃은 그만 한 크기에 고만고만한 열매인데, 벚꽃은 그만 한 크기에 자그마한 열매인데.


  호박은 호박대로 꽃이 예쁘고 열매가 소담스럽습니다. 모과는 모과대로 꽃이 예쁘장하고 열매가 소담소담합니다. 눈부신 열매 맺는 꽃송이들 푸른 들판에 차근차근 고운 무늬를 입힙니다. (4345.4.14.흙.ㅎㄲㅅㄱ)

 

..

 

모과꽃 어떻게 맺는지 궁금하신 분은 이곳으로~

http://blog.aladin.co.kr/hbooks/4784763

 

지난봄,

충청북도 음성에서 맞이한 모과꽃 이야기가 있어요.

지난해에는 모과꽃 이야기를 5월 13일에 썼네요 @.@

 

아아, 전라남도 고흥 봄이란 참 빠르고

참 따뜻하군요.

모과꽃 이야기가

자그마치 한 달이나 빠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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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억이라 하는 돈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12.

 


  국회의원 선거는 끝나고, 붙은 사람과 떨어진 사람이 갈린다. 다른 곳은 어떠한지 나로서는 모르고,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을 돌이키면, 이 작은 시골마을에 국회의원 되겠다고 나선 후보자는 자그마치 여섯이다. 게다가 예비후보자로 나와 애쓰던 이들이 꽤 많았다. 국회의원 후보자로 나오더라도 십 억이니 이십 억이니를 가볍게 써야 한다는데, 예비후보자로 나오더라도 몇 억쯤 되는 돈을 가벼이 쓸밖에 없으리라. 모두 해서 열 사람쯤 친다면, 이들이 선거철에 쓴 돈이란 수십 억, 또는 백 억까지 될 수 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 아닌 전남 고흥이라는 자그마한 시골에서.


  이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할까. 국회의원이 되어야만 나라를 아름답게 바꾸거나 고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 되지 않고서는 나라를 아름답게 바꾸거나 고칠 수 없을까. 금배지를 안 달고 시골마을 흙일꾼으로 살아가며 이 나라를 아름답게 바꾸거나 고칠 길을 보여주거나 함께할 수 없을까.


  몇 억이라 하는 돈이라면 시골 논밭을 꽤 넓게 장만할 수 있다. 얕은 멧자락 하나쯤 장만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 이 논밭이나 멧자락을 아주 예쁘게 돌보면 된다. 풀약이나 비료를 먹이지 않고 아주 깨끗하게 땀방울만 쏟고 똥오줌 거름을 내면서 흙을 살찌우고 멧자락을 보듬으면 된다. 시골 흙일꾼은 법을 만들지 못하지만, 법이 없어도 즐겁고 착하게 살아간다. 시골 흙일꾼은 신문이나 방송에 날 일이 없다지만, 도시나 시골 어디에서나 좋은 숨결 마시고 좋은 밥 먹을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누어 준다. 시골 흙일꾼은 역사책에 이름이 안 남을 테지만, 지구별 뭇사람한테 예쁜 사랑씨앗을 남길 수 있다.


  선거철마다 지역구에서 예닐곱 사람쯤 몇 억을 들여 논밭이랑 멧자락을 장만해 예쁘게 일구는 삶을 헤아린다면, 전국을 통틀어 천 사람은 넘을 테고, 열 해쯤 지나면 만 사람이 넘을 테며, 백 해쯤 지나면 백만 사람이 훌쩍 넘겠지. 이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정치판 아닌 흙땅 품에 안기며 좋은 사랑을 일굴 수 있겠지.

 

 ..


  우리 식구한테 몇 억이라 하는 돈이 들어오기를 꿈꾼다. 내가 쓴 책이 여러모로 잘 읽히며 글삯을 벌 수 있기를 꿈꾼다. 시골마을 우리 도서관 터를 기쁘게 장만해서 이곳 운동장은 숲으로 돌보고, 낡은 건물은 손질해서 책터로 살찌우며, 텅 빈 관사는 살림집으로 북돋우면 오래오래 이 시골마을 예쁜 사랑 감도는 보금자리로 일굴 만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려는 사람들한테도 바란다. 부디 국회의원 같은 자리를 꾀하지 말고, 그 돈과 품과 넋으로 이 좋은 시골마을에서 스스로 좋은 흙일꾼 삶을 일구어 이녁 아이들한테 좋은 흙일꾼 사랑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기름지게 일군 논밭을 아이들한테 물려준다면, 이보다 더 멋진 선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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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읽는 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8.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영어를 배우며 교사들한테서 들은 말 가운데 하나는, 또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독일말을 배우며 교사들한테서 들은 말 가운데 하나는, 서양사람은 한국 나이 청소년 즈음 되면 보리술을 홀가분하게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보리술은 술로 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보리술을 어린이한테 마시도록 하지는 않으나, 열서너 살 즈음 되면 스스로 알아서 가리거나 즐긴다고 했다. 더군다나, 독일이나 여러 나라에서는 버스기사가 더운 여름날 보리술 한잔을 들며 버스를 몬다고도 했다.


  나는 내가 몸소 서양 여러 나라를 찾아간 적 없기 때문에, 참말 이렇게 하는가를 두 눈으로 지켜보지 못해 모른다. 스스로 지켜본 일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지만,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교수라는 이들한테서 들은 말 가운데 하나는, 네덜란드는 마약이 자유라고 했다. 누구라도 법에 얽매이지 않고 마약을 즐길 수 있다 했는데, 네덜란드는 마약 범죄가 그닥 생기지 않는댔다. 이 또한 나로서는 한국땅에서 학문으로 네덜란드를 배우고 살폈으니까 이렇게 들었을 뿐, 나 스스로 네덜란드를 찾아가서 겪지 못했으니 모르는 일이다.


  나는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를 이렁저렁 다니면서 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부럽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나라 한국이 좀 많이 ‘부끄러’웠다. 너무 막히고 너무 갇히며 너무 얽매이니까. 그런데, 이 나라는 사회나 정치나 경제만 얽매이지 않는다. 얽매여 괴롭다고 말하는 대학생도 스스로 학생회를 얽매어 놓는다. 학생운동하고 등진 이들 또한 스스로를 또 다른 굴레에 얽매어 놓는다. 홀가분하게 삶을 사랑하지 못한다. 홀가분하게 서로를 껴안지 못한다.


  보리술 한잔 걸치며 버스를 몬대서 더 좋거나 부러울 까닭이 없다. 보리술 한잔 걸치며 버스를 몰 수 있다면, 책을 읽으며 버스를 몰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노래를 부르며 버스를 몰 수 있고, 옆이나 뒤에 앉은 할머니하고 이야기꽃 피우며 버스를 몰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우리 시골마을 군내버스 일꾼 가운데에는 버스를 나긋나긋 몰면서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버스를 거칠게 몰면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낮춤말을 찍찍 내뱉는 사람이 쏠쏠히 있다.


  한 해 만에 드디어 책끈에서 풀리며 책꽂이에 꽂히는 책들을 살살 쓰다듬는다. 더 찬찬히 갈무리하며 꽂을 겨를을 내지 못하지만, 하루에 십 분이든 이십 분이든 들여 아주 천천히 도서관 꼴을 갖춘다고 느낀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어떠할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날마다 새롭다. 나로서는 우리 집 두 아이 크는 모습이 날마다 새롭고, 우리 도서관 살림새 날마다 말끔해지는 모습이 언제나 기쁘다.


  나는 스스로 얼마나 새롭게 거듭나는 사람일까.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잘 읽는 사람일까. 나는 내 살붙이들 꿈과 사랑을 얼마나 잘 읽는 사람일까.


  책을 읽는다면 사람을 읽고, 책을 좋아한다면 사람을 좋아해야 마땅한 사랑길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이제 찬찬히 숨통을 트면서, 누군가 손님을 불러 도서관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고 아낄 때에 손님도 이곳을 좋아하며 아낄 테지. 내가 우리 살붙이들을 좋아하며 아낄 때에 서로서로 좋아하며 아끼는 우리 집이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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