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 무지개빛과 그림자빛

 


  우리 집 어여쁜 아이를 날마다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는 어떤 뚜렷한 그림을 그리며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어여삐 자라나는 모습을 하루하루 적바림하겠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여쁜 모습을 사진책 하나로 꾸며 주고 싶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는 이 아이 빛깔이 참 좋다고 느껴 절로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나는 날마다 우리 아이들 새롭게 마주하며 새롭게 사진으로 옮기면서 내 ‘사진 손길’을 나날이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엊그제 저녁, 아마 일곱 시 즈음인데,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 멧등성이 너머로 사라집니다. 그래도 마을은 훤합니다. 네 식구 즐겁게 천천히 마실을 나옵니다. 찔레꽃 내음을 맡고 찔레꽃 몇 닢 따먹을 생각으로 마실을 나옵니다. 해가 넘어간 뒤라 사진기로 아이들 모습을 담을 때에 셔터값이 매우 낮습니다. 감도를 400으로 맞추어도 셔터값 1/15초 나오기 빠듯합니다. 이윽고 감도를 800으로 높이지만 셔터값은 1/8초가 됩니다. 그래도 찔레꽃 내음과 빛깔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갓난쟁이를 품에 안고 손떨림 없이 사진을 찍습니다.


  늦저녁 찔레꽃 사진을 찍다가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 나는 첫째 아이를 안고 업고 하면서 인천 골목동네를 여러 시간 누볐습니다. 그때에도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 쥐어 사진을 찍었어요. 나는 일찍부터 ‘한손 사진찍기’를 가다듬은 셈이었을까요. 더 거슬러 헤아립니다. 옆지기를 만나기 훨씬 앞서, 나 혼자 살림을 꾸리던 풋풋한 신문배달 젊은이였을 적, 한손으로 짐자전거를 몰고 다른 한손으로 바구니 신문을 한 장씩 꺼내어 허벅지에 탁탁 튕기어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은 다음 ‘자전거로 골목을 달리는 채’ 신문 한 장 휙 대문 위쪽 빈틈으로 던져 넣어 골목집 문간에 사뿐히 놓이도록 했습니다. 나는 이무렵부터 ‘한손 아이 안고 한손 사진기 들어 찍기’를 갈고닦은 셈이었을까요.


  무지개빛 사진으로 찍다가 까망하양 두 가지 빛깔인 그림자 사진으로 찍습니다. 퍽 오랜만에 그림자 사진을 찍는다고 느낍니다. 새삼스럽고 남다르다 느낍니다.


  그리고, 문득 떠올립니다. 다른 분들이 어떤 낱말을 쓰든 나는 그닥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학자나 전문가나 비평가께서 어떤 낱말로 사진 이야기를 펼치든 나는 딱히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씁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시골마을에서 네 식구 조용히 살아가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삶을 내가 사랑할 만한 작은 사진기로 날마다 즐거이 아로새깁니다. 이리하여, 나는 내 나름대로 ‘사진말’을 갈무리합니다.


  나는 ‘칼라’ 사진이라고 말하기보다 ‘무지개(빛)’ 사진이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칼라(color)’ 또는 ‘컬러’는 영어라 할 수 없습니다. 워낙 널리 쓰는 낱말입니다. ‘color’는 한국말 아닌 외국말이지만, 이 낱말을 외국말로 느끼거나 여기는 젊은이나 어린이는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컬러’이든 ‘칼라’이든 따로 가르치거나 들려주고 싶지 않아요.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영어를 배우며 이 낱말을 익히거나 들으면 모르되, 어버이인 나부터 아이들 앞에서 이 낱말을 읊고 싶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니, 굳이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환하게 떠오릅니다. 나는 “무지개 사진을 찍겠어!” 하고.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든,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든, 숲과 들판을 사진으로 담든,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든, 내 눈으로는 ‘무지개처럼 고운 빛깔’을 봅니다. 이리하여, 나는 으레 ‘무지개(빛)’ 사진을 찍어요.


  엊그제 모처럼 까망과 하양이 어우러지는 사진을 찍으며 새롭게 생각합니다. ‘무지개(빛)’ 사진과 나란히 서는 ‘까망하양’ 사진이라 말할 수 있는데, ‘까망하양’이란 ‘그림자(빛)’라 할 만하구나 싶어요. 햇볕을 받건 형광등을 받건, 사람이든 제비이든 박쥐이든 옷장이든 치마이든 모두 ‘똑같은 빛깔 그림자’입니다. 이른바 ‘흑백(黑白)’이라 일컫는 사진은 ‘그림자빛’을 찍는 셈이라 할 만해요.


  그림자빛은 까망이거나 하양이지 않습니다. 같은 까망이라도 그림자 자리마다 짙기가 다릅니다. 어느 곳은 더 짙고 어느 곳은 더 옅습니다. 같은 하양이라도 그림자 자리마다 더 밝거나 더 어둡습니다.


  깊은 밤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가 그림책 읽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살며시 무지개빛 사진을 찍습니다. 환한 낮 개구지게 뛰놀다가 글씨 쓰기를 익히려고 방바닥에 엎드린 아이가 연필을 놀리는 모습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슬며시 그림자빛 사진을 찍습니다. 참 좋은 하루를 날마다 기쁘게 누립니다. 사진은 나한테 늘 고마우면서 예쁜 삶벗입니다. (4345.5.24.나무.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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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밭 3

 


  마을 할머니들이 ‘새내끼(새끼)’로 마늘을 엮는다. 처음에는 나한테 쇠끈으로 묶도록 이야기하셨는데, 이제 마늘을 크기에 따라 다 고르고 나서 당신들도 마늘엮기를 해야 하다 보니, 손가락과 손바닥이 아플 뿐더러 어깨가 결리는 쇠끈은 안 쓰고 새내끼를 쓴다. 나는 아직 새내끼 쓸 줄 모른다. 그러나 새내끼 엮는 손길을 천천히 떠올리며 나 스스로 한두 차례 해 보면 이내 익숙할 수 있으리라 본다.


  새내끼란 예부터 벼를 거두고 난 짚으로 꼬았다. 마늘엮기를 하자면 먼저 짚을 꼬아 새내끼를 삼아야 한다. 새내끼를 잔뜩 삼아 놓고서 이 새내끼를 알맞게 끊어 마늘을 엮는 셈이다. 시골 흙사람은 짚으로 삼은 신을 신었고, 바나 멜빵이나 질빵도 짚으로 엮어 마련했다.


  쇠끈으로 마늘을 엮으며 생각한다. 쇠끈으로 엮은 마늘을 짐차에 실으며 생각한다. 쇠끈은 아주 세게 조여 준다. 그러나, 쇠끈은 마늘줄기를 짓눌러 갈라지거나 끊어지게 한다. 새내끼도 무척 세게 조여 주지만, 새내끼는 마늘줄기를 갈라지거나 끊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시골사람이 마늘을 장만해서 마늘을 먹는다면, 마늘줄기나 마늘껍질은 흙으로 돌아간다. 도시사람이 마늘을 장만해서 마늘을 먹는다면, 마늘줄기나 마늘껍질은 ‘음식물쓰레기’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짚신은 다 닳으면 밭이나 논에 거름 되어 돌아가고, 바나 멜빵이나 질빵 또한 다 닳으면 밭이랑 논으로 거름 되어 돌아간다.


  쇠끈은 어디로 가야 할까. 비닐봉지는 어디로 가야 하나. 플라스틱과 화학제품은 어디로 가야 하지. (4345.5.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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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밭 2

 


  땡볕을 고스란히 쬐며 마늘밭에서 일한다. 마늘밭에는 햇볕을 가릴 데가 없다. 논이든 밭이든 볕이 잘 들도록 마련하는 만큼 그늘 지는 자리가 없다. 밭둑 한켠에 잎사귀 우거지는 나무 한 그루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하지만, 잎사귀 우거지는 나무 한 그루 있으면 옆 밭이나 논에 그늘을 드리우겠지.


  한 조각이라도 더 논이나 밭으로 삼으려고 애쓴 끝에 나무그늘 없는 논둑과 밭둑이 되었는지 모른다. 먼먼 옛날에는 논둑이나 밭둑에 으레 나무가 줄을 짓고, 논일이나 밭일을 하는 틈틈이 나무그늘에 앉아 시원스레 부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훔쳤을는지 모른다.


  전쟁도 부역도 세금도 없이, 작은 마을 작은 살림집 조용하면서 따사로이 살아갔을 지난날을 돌이킨다. 흙에 깃들며 흙을 먹고 흙을 만지는 사람들한테 얄딱구리한 ‘병’이 생길 까닭이 없다. 따지고 보면, 한겨레 말마디에 ‘병(病)’은 없다. 이 낱말은 중국에서 건너왔고, 한자를 쓰는 임금님이나 권력자와 부자한테만 쓰일 뿐이었다. 흙사람은 때때로 ‘앓이’가 있었고 ‘아프’곤 했다. 정부가 서고 세금이 생기며 전쟁과 부역을 자꾸 일으키니, 수수하고 투박한 흙사람은 ‘일이 고된 나머지’ 앓고 아파야 했다.


  쑥과 마늘을 백 날 동안 먹은 곰은 사람이 되었다 했다. 쑥이며 마늘은 한겨레 삶에서 얼마나 오래된 먹을거리일까. 시골 어른들은 쑥을 그냥 쑥이라 일컫지 않고 ‘약쑥’이라 일컫는다. 그러고 보면, 비료나 항생제나 풀약을 안 쓰고, 나아가 비닐까지 안 쓰며 거두는 마늘이라 한다면 참말 ‘약마늘’이리라 생각한다. 먼먼 옛날, 나라도 정부도 권력자도 부자도 없이, 작은 마을 작은 살림집으로 이루어졌을 흙터에서는 미움도 생채기도 아픔도 전쟁도 없이, 온통 사랑과 꿈과 믿음과 어여쁜 노랫소리 가득했으리라 느낀다. 마늘밭에서 뒹굴던 내 발바닥이 이 흙밭에 서린 옛이야기 한 자락 들려준다. (4345.5.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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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밭 1

 


  이장님 마늘밭 마늘 캐는 일을 거들다. 마을 할머님들이 먼저 바지런히 마늘을 캐셨고, 캔 마늘을 굵기에 따라 큰 녀석과 작은 녀석으로 가른다. 이 다음에 쇠끈이나 새끼줄로 마늘을 쉰 알씩 엮는다. 엮은 마늘은 굵기에 따라 짐차 앞뒤로 나누어 차곡차곡 눌러 싣는다. 마늘을 가르고 솎으며 엮다가 날라서 싣는 일을 하는 틈틈이 땡볕을 쉬려고 나무그늘에 모두 모여 앉는다. 마을 할머님들은 막걸리를 마시고 김치를 자시며 고된 일을 쉰다. 나도 곁에서 막걸리와 김치를 들며 고단한 허리를 쉰다.


  나는 서른여덟 해 살아오며 처음으로 마늘밭 일을 거들었다. 마늘을 캐는 일부터 해 보고 싶었으나, 마늘 캐기는 할머님들이 미리 다 해 놓으셨다. 캔 마늘을 가르고 솎으며 엮다가 날라서 싣는 일만 하는데 참 만만하지 않다. 마늘밭은 얼마나 넓은가. 마늘밭이 몇 백 평이나 몇 천 평이 되는가. 그닥 넓지 않다 할 만한 마늘밭인데, 이만 한 일을 하기에도 만만하지 않다고 느낀다. 아니, 마을 일꾼이 모두 할머니이기 때문에 이처럼 느낄는지 모른다. 마을 일꾼이 젊은 아줌마와 아저씨였다면, 또 마을에 열대여섯 살 푸름이가 얼마쯤 있었다면, 또 마을에 열 살 안팎 아이들이 얼마쯤 있었다면, 이리하여 마을 어느 집에서 마늘을 캔다 할 때에 모두 품앗이를 한다 하면, 모두들 즐거이 일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참을 먹고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는 모두 도시로 가서 돈을 벌 테지. 도시로 가서 돈을 버는 젊은이는 시골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내는 마늘을 느긋하게 먹겠지. 때로는 회사에서 동무들하고 고기집에 마실을 가서 마늘을 먹을 테고, 때로는 식구들과 회집에 나들이 가서 마늘을 먹을 테지.


  마늘을 먹을 때에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 마늘을 캐고 다루어 내다 파는 시골 어버이와, 이 마늘을 사서 까고 다듬어 밥상에 올리는 밥집 일꾼들 땀방울을 생각할 수 있을까.


  따순 봄날 마늘밭 할머니들 손가락은 온통 멍투성이에 핏투성이에 흙투성이.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며 자장노래 부르고 나서 한숨을 돌린 다음 내 손을 들여다보니,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퍽 도톰하게 피고름 하나 맺혔다. (4345.5.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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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책읽기

 


  지난주쯤부터 손톱보다 조금 크다 싶은 하얀 꽃송이 달린 자그마한 찔레나무를 보았다. 하얀 꽃송이가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찔레나무로구나 하고 알아채는 셈이지만, 하얀 꽃송이가 달린 모습을 보면서도 ‘응, 찔레 같은데?’ 하고 생각할 뿐, ‘이야, 찔레로구나!’ 하고 깨닫지 못한다. 네 식구 나란히 들길 마실을 다니면서 이 꽃송이를 바라보며 선뜻 ‘저기 보렴, 찔레꽃이란다!’ 하고 말하지 못한다. 요즈음 시골은 길이든 들이든 이웃을 만나기 어려우니, 막상 ‘찔레로구나 싶은 꽃을 보더라도 여쭈지 못한’다.


  어제 낮, 충북 음성에서 아이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두 분이 하룻밤 주무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라며 집 안팎을 며칠에 걸쳐 바지런히 치우고 쓸고닦았다. 그러나 두 분은 안 주무시고 바로 돌아가신다. 얼마나 서운하고 기운이 빠지는지 온 하루가 고단하고 슬프다. 그래도, 아이들 할머니한테 몇 가지 여쭈었다. 찔레꽃이 크기가 얼마만 하느냐 여쭙고, 요즈막 길에서 흔히 보는 하얀 꽃송이가 무슨 꽃이냐 여쭙는다. 아이들 할머니는 “아니, 찔레도 몰라?” 하면서 “바로 여기에도 있네. 저기에도 가득 폈네.” 하고 말씀하신다.


  어머니, 그럼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에서 찔레꽃을 구경했던 적이 떠오르지 않는걸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골목동네에도 틀림없이 곳곳에 찔레꽃이 흐드러졌을 테지만, 찔레꽃이라 알려준 이웃 어른은 없었거든요.


  아이들 재우며 자장노래로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붙인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모르게 하나둘 따먹었다오.” 하는 노래를 날마다 불렀다. 정작 아이들 어버이로서 ‘얘들아, 우리 찔레잎 따먹을까?’ 하고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새해에는 찔레꽃을 제대로 알아보아야지 하고 다짐하며 이 노래를 늘 불렀다.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금세 돌아가셔서 못내 서운했지만, 이제부터 아이들하고 찔레꽃잎 같이 따먹고, 밥에도 찔레꽃잎 얹어서 먹으려 한다.

 

 ..


  요즈음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며 봄꽃을 기다린다 하지만, 막상 벚꽃이니 진달래이니 개나리이니 하고 말하는 데에서 그친다. 먼먼 옛날부터 여느 시골 사람들하고 살가운 벗이던 찔레꽃 구경하거나 즐기는 일은 거의 생각하지 못하거나 않는다. 아무래도, 요즈음 사람들은 몽땅 도시사람이기 때문일까. 요즈음 사람들은 고작 쉰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이 나라 거의 모두 시골 흙일꾼 딸아들로 태어나 살아온 줄 잊기 때문일까.


  나는 봄을 맞이하며 다른 어느 꽃보다 살구꽃을 기다린다. 살구꽃이 질 무렵이면 딸기꽃을 기다린다. 딸기꽃이 저물 무렵이면 찔레꽃을 기다린다. 찔레꽃이 저물 무렵에는 감꽃을 기다릴까. 감꽃이 저물 무렵이면 어느 꽃을 기다리려나. 들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틔우며 씩씩하게 자라나는 찔레나무가 우리 집 뒤꼍으로도 날아들 수 있기를 빈다.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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