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기저귀 빨래 책읽기

 


  첫째 아이가 태어난 2008년 8월 16일부터 내 삶에서 ‘빨래’는 아주 진득하게 자리잡았다. 이와 함께 ‘밥하기’라든지 여러 갈래 집일이 단단히 자리잡았다. 첫째 아이가 스스로 똥오줌 다 가리고부터 이제 ‘빨래’ 일이 많이 줄어들까 하고 생각했으나, 첫째 아이가 밤오줌을 다 가리고 나서 곧장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내 삶에서 ‘빨래’는 앞으로도 몇 해 진득하게 이어가리라 느낀다.


  갓난쟁이는 언제 똥이나 오줌을 눌 지 알 수 없다. 식구들이 밥먹는 자리에서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자다가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함께 나들이를 가는 길에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번쩍 안아서 예쁘다 말할 때에도 똥이나 오줌을 눈다. 그러니까, 아이들 빨래는 언제나 한다. 아침에도 밤에도 낮에도 새벽에도 언제나 한다. 똥기저귀나 똥바지 빨래라면 더더욱 언제나 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 아버지로서 날마다 빨래를 한다. 아이들 아버지로서 날마다 빨래를 한 지 여러 해 되었다.


  문득 생각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빨래하는 아버지’는 몇이나 될까. ‘날마다 빨래하는 아버지’는 이 가운데 몇이나 될까. ‘날마다 똥을 주물럭거리며 빨래하는 아버지’는 이 가운데 몇쯤 될까.


  내가 국민학생이던 어린 날, 내 할아버지는 당신 몸을 쓰지 못해 으레 누워 지냈다. 내 어머니는 내 할아버지 똥오줌을 날마다 여러 차례 받았고, 이불이며 옷가지이며 으레 손으로 빨래를 했다. 빨래기계가 마땅히 없던 무렵이기도 했으나, 빨래기계가 있대서 똥이불이나 똥옷을 기계로 빨지 못한다. 손으로 빨아야 한다.


  나는 참 여러 해에 걸쳐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할아버지 똥옷을 빨래한 적은 없었지만, 똥이불을 빨래할 때에 어머니 곁에서 발로 밟는 일은 으레 거들었다. 그런데 내 어머니는 똥을 주무르면서 무어라 싫어하거나 꺼려한 적이 없었다고 느낀다. 그저 늘 하는 일이요,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삶이었다.


  아이들 똥을 날마다 숱하게 주무르기에 내 손과 몸에는 아이들 똥내음이 밴다. 내 옷가지에는 아이들 침내음이랑 오줌내음이랑 땀내음이 밴다. 이 삶이 싫다거나 이 삶이 못마땅하거나 이 삶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느 때였나, 꽤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우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꽤 크게 놀랐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운 적 없다는 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크게 놀랐다.


  아이가 눈 똥을 치운 적 없는 아버지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눈 똥을 치운 적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못 치우지 않을까? 옆지기가 눈 똥은 치울 수 있을까? 살붙이가 게운 것을 치울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벗이 몸져 누우며 내놓은 똥오줌을 치울 수 있을까? 예쁘장한 아가씨들 젖가슴이나 엉덩이는 주무를 수 있어도,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똥은 주무를 수 없을까?


  똥을 주무르지 못하는 사내라면, 거름을 주무르지 못하겠지. 거름을 주무르지 못한다면 흙을 만지지 못하겠지. 흙을 만지지 못한다면 사랑을 아끼지 못하겠지.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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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5-30 00:02   좋아요 0 | URL
아기 똥기저귀를 빠는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요?
우리집 애 아빠도 아이들 키울 때 큰거 싸놓으면 나를 불렀죠.ㅜㅜ

숲노래 2012-05-30 00:29   좋아요 0 | URL
아버지들은... 스스로 아이였을 적 제 똥을
누가 어떻게 치웠을까쯤이라도 생각해야지
비로소 철들리라 느껴요...
 

사진찍기
― 아버지 좀 찍어 주어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가 거의 없는 탓에 시골마을 어른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할 적에 논밭을 뒹굴거나 가로지르며 뛰노는 아이들이 참말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어디에서나 거의 혼자 뒹굴거나 뛰어놉니다. 마늘을 캐고 엮어 경운기에 실은 마늘밭은 차츰 넓어지지만, 이 덩그러니 드러난 흙밭을 뒹굴 놀이동무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는 놀이동무가 딱히 없지만, 스스로 놀이동무를 찾습니다. 나무하고 놀고, 풀이랑 놉니다. 고욤나무 밑에서 고욤꽃송이 주워 놉니다. 고추꽃을 바라보고, 돌 틈 마삭줄에 맺힌 하얀 바람개비꽃을 들여다봅니다.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부릅니다. “아버지 일하는 모습 좀 찍어 주어.” 다섯 살 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들고 마늘밭 귀퉁이에서 사진 여러 장 찍습니다. 꼭 여섯 장 찍고는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잘 찍어 주었나. 잘 찍었겠지, 하고 믿으며 하던 일을 마저 합니다.


  이윽고 이웃집 마늘밭 일손 거들기를 마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는 이내 아버지 손을 놓고 먼저 저 앞으로 힘차게 달음박질을 합니다. 달리고 또 달려도, 뛰고 또 뛰어도 기운이 넘칩니다. 좋구나, 좋은 삶이고 사랑이구나, 하고 느끼며 아이 뒷모습을 기쁘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아이 뒷모습을 참 자주 찍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 뒷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씩씩하게 달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꽃밭이나 풀밭에 옹크리고 앉아 꽃이랑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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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욤꽃 책읽기

 


  감꽃하고 고욤꽃은 다르게 생겼다. 고욤이 있기에 감나무가 있다. 감은 언제부터 감이었을까. 가지를 이어붙여 감나무를 이룬다는데, 감나무를 맨 처음 이룬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주 어릴 적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도, 또 이무렵 충청남도에 있는 시골집에 나들이를 할 적에도, 어른들은 으레 ‘감나무는 가지 이어붙이기를 해서 얻는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어른은 가지 이어붙이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스스로 이렇게 해 보라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우리 네 식구는 전남 고흥 시골집에서 살아가고, 우리 집 뒤꼍에 감나무랑 고욤나무가 나란히 있다. 어쩌면, 이 시골집 옛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몸소 가지 이어붙이기를 해서 감나무를 얻지 않았을까. 가지를 이어붙인 고욤나무는 한쪽 구석에 두고, 집 앞에 감나무를 예쁘게 심어 키우지 않았을까.


  봄맞이 감꽃이 피었다가 천천히 진다. 봄맞이 고욤꽃이 피었다가 살며시 진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으레 감꽃을 말하고 감꽃을 먹으며 감꽃을 노래한다. 돌이키면, 나 또한 감꽃을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느꼈을 뿐, 막상 고욤꽃을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맞아들이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못했다.


  자그맣게 열매를 맺는 고욤이기에, 고욤나무 고욤꽃은 촘촘히 달린다. 자그마한 풀딸랑이 줄지어 달린다. 나무그늘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풀딸랑이 딸랑딸랑 바람결에 흔들리며 어여쁜 풀노래 들려주는 소리를 누린다. 아이는 흙바닥에 떨어진 고욤꽃을 손바닥 가득 주워서 아버지한테 보여준다. “아버지 이거 뭐예예요?” 다섯 살 아이는 “뭐예요?” 하고 말해야 하는 줄 아직 모르고, “‘뭐예’예요?” 하고 말한다. “이게 뭘까? 생각해 봐.” 하고 이르고는, 곧이어 “고욤꽃이야.” 하고 붙인다. “고임꽃?” “고욤꽃.” “아, 고염꽃.” (4345.5.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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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꿈치 책읽기

 


  키가 아직 작은 첫째 아이는 작은 걸상 받치고 올라선다. 처음에는 작은 걸상 하나만 받치더니, 이제 작은 걸상 둘을 알맞게 세워 받치고 올라선다. 꽤 높은 자리에 놓은 것을 제 마음대로 집어서 갖고 논다. 아이 손 안 닿는 데에 올려놓는다 했더니, 아이는 높은 데로 손을 뻗는 길을 스스로 찾는다. 높은 데 두건 낮은 데 두건 언제나 마찬가지가 되는구나. 네 몸도 네 마음도 네 생각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해 주렴. 씩씩하고 즐겁게 하루하루 누리면서 잘 자라려무나. (4345.5.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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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버스 뒷거울 사진찍기

 


  아이들과 읍내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길입니다. 옆지기와 아이 하나씩 안고 헐레벌떡 오릅니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겨우 잡아탑니다. 마침 자리가 둘 비어, 두 사람은 자리 하나씩 아이를 안고 앉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무릎에 앉은 아이를 토닥이는데, 고단한 아이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듭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깨지 않도록 가슴을 새삼 토닥토닥 하며 건너편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한참 달리던 버스에서 문득 운전사 뒷거울을 봅니다. 운전사가 버스 안쪽을 살피는 뒷거울에 두 사람 모습이 비칩니다. 어, 건너편에 앉은 우리 식구가 보이네. 내 무릎 아이가 깨지 않게끔 살살 사진기를 쥡니다. 목걸이처럼 목에 건 사진기를 슬그머니 한손으로 쥡니다. 왼손은 아이 머리를 받칩니다. 오른손으로 덜덜 떨며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퍽 어렵습니다. 운전사 뒷거울로 보이는 두 식구 모습이 어여쁘다 싶을 때에는 버스가 덜덜 떨려 사진기 단추를 누르기 힘들고, 누군가 내리는 사람 있어 버스가 멎을 때에는 두 식구 바깥을 내다 보며 고개가 저쪽으로 갑니다.


  몇 차례 흔들리거나 심심하다 싶은 사진을 찍고서 한 장쯤 얻습니다. 나는 이 한 장 얻으면서 좋습니다. 사진으로 드러나는 두 식구 모습이 그렇게까지 ‘대단히 돋보이’지 않으나 좋습니다. 우리들이 마실을 다니던 발자국 하나를 사진으로 곱게 갈무리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자가용 없는 우리 살림이기에 늘 버스나 기차를 탑니다. 늘 버스나 기차를 타니, 네 식구는 언제나 서로 바라보고 서로 얘기합니다. 나는 자가용 손잡이를 붙잡을 일 없으니 으레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있습니다.


  꼭 사진을 찍을 마음으로 자가용을 안 몰지는 않습니다만, 내가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로 살아간다면, 사랑스러운 우리 살붙이들 고운 삶 한 자락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하며 지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사진을 못 찍는 만큼 몸은 한결 느긋하게 더 멀리 나다니겠지요. 그저, 사진을 못 찍는다뿐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에 가방 묵직하게 땀흘리며 나들이할 일이 없겠지요.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기 때문에 아이 하나를 품에 안으며 사진기는 목에 걸 수 있습니다.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는 만큼 짐 가득 실은 가방을 멘 채 땀 뻘뻘 흘리지만, 우리 아이들은 신나게 땅을 박차며 뛰놀고, 이렇게 뛰노는 모습을 언제라도 기쁘게 사진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 살붙이 삶자락을 사진책으로 묶어도 참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로 사진책을 묶지 않더라도 언제나 새롭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적바림(기록)하는 사진은 아닙니다. 노상 서로 마주볼 수 있는 사진입니다. 조잘조잘 떠들듯 찰칵찰칵 찍습니다. 도란도란 어우러지듯 슬쩍슬쩍 찍습니다. (4345.5.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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