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남기는 삶


 한국에서도 어느 동화쟁이는 백 권이 넘는 동화책을 썼습니다. 누군가는 동화책 한 권을 쓰기조차 버거운데 벌써 백 권이나 썼느냐며 놀랍니다. 그러나 동화책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이 일에만 마음을 쏟으면, 다달이 한 권씩 써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권을 써내면 한 해이면 열두 권, 열 해이면 백스무 권입니다.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어르신 가운데 책을 몇 권 안 남긴 분이 많습니다. 훌륭하다는 이분들이 남긴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좋은 글이 담긴 책이 몇 권 안 되니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들 훌륭한 어르신들은 책을 더 많이 남길 수 없습니다. 훌륭한 삶이란 책만 남기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훌륭하다는 어르신이 남긴 책으로보다, 훌륭하다는 어르신하고 만나거나 마주한 삶을 손꼽으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기 마련입니다.

 책은 재미있어야 읽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훌륭하다는 책일지라도 재미있지 않으면 못 읽는다고 합니다. 훌륭하게 살아간 사람이더라도 재미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재미있게 살아야 하거나, 사람이 글을 써서 책을 이룰 때에는 줄거리와 뜻과 생각이 재미있어야 하는 셈이 될까요.

 재미있을 때에 읽는 책이고, 재미없을 때에는 안 읽거나 못 읽는 책이라 한다면, ‘재미’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재미’하고 ‘즐거움’은 다릅니다. ‘좋아함’하고도 다르며, ‘사랑’하고도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담은 책인 낱말책, 그러니까 국어사전을 들추면 ‘재미-즐거움-좋아함-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없습니다. 말을 담은 책이나 말을 다루는 책을 읽는다 해서 ‘재미’가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어요.

 재미란 확 빠져드는 이야기가 될까요. 즐거움이란 확 빠져들지 않더라도 반가이 여기면서 오래도록 누릴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좋아함이란 재미나 즐거움이 없더라도 내 마음을 쏟아서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사랑이란 재미나 즐거움이나 좋아함이 없을지라도 내가 아낌없이 돌보거나 믿을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책을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있고, 책을 읽는 좋아함이 있습니다. 여기에 책을 읽는 사랑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재미도 즐거움도 좋아함도 사랑도 아닌 지식과 정보와 자격증(또는 졸업증)에 따라 책을 읽습니다. 이를테면,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시험을 앞두고 읽는 교과서와 참고서가 이러한 책읽기입니다. 운전면허증이든 무슨무슨 자격증이든 따려고 치르는 시험 때문에 하는 책읽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금 돌아봅니다. 사람들은 왜 책을 남길까요. 사람들은 왜 책을 쓸까요. 재미있게 읽으라고 하는 책을 쓰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즐겁게 읽으라고 하는 책을 쓰는 사람 마음은 어떠할까요. 좋아하거나 사랑할 만한 이야기를 책으로 담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지식과 정보와 자격증(또는 졸업증)을 거머쥐도록 이끄는 책을 쓰는 사람은 무슨 생각일까요.

 어쩌면,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책을 안 남길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고이 적었을지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재미’라든지 ‘즐거움’이라든지 ‘좋아함’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지식’이라든지 ‘정보’라든지 ‘자격증(또는 졸업증)’에 얽매인다면, 책을 책으로 마주하는 보람이나 뜻이나 기쁨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불 가까이 가지 마.” 하고 말한다든지 “누운 사람 머리 위로 지나가면 안 돼.” 하고 타이르는 까닭이란 재미 때문도 즐거움 때문도 좋아함 때문도 사랑 때문도 지식 때문도 정보 때문도 자격증(또는 졸업증)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온 발자국을 남깁니다. 이 발자국을 스스로 그러모으든 남이 그러모아 주든 하면서 책이 태어납니다.

 재미있다 하든 즐겁다 하든, 또 지식이나 정보에 도움이 된다 하든, 자격증을 따는 데에 힘이 되었다 하든,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갈래라 하든, 어떠한 책이든 읽는 사람이 스스로 따지거나 재거나 나눕니다. 우리는 책을 왜 읽을까요. 우리는 책에 무슨 이야기가 담겼다고 생각을 할까요. 아니, 책에 담긴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는 하는가요. 책을 읽고 난 다음 내 삶은 ‘책을 읽기 앞서’하고 얼마나 다른가요. (4344.2.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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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1 : 사람을 읽는 책


 사람이 읽는 책은 사람을 읽는 책입니다. 사람을 읽지 못한다면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람은 책으로 사람을 읽어야지, 돈을 읽거나 지식을 읽거나 슬기를 읽거나 정보를 읽거나 시험문제를 읽거나 공식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읽자면 읽기는 읽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읽는 사람은 사람다움이 아닌 돈과 지식과 갖가지 정보조각에 파묻혀 허우적댑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읽고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힙니다. 아이들은 책읽기가 놀이입니다. 책으로 읽는 책이라기보다 새로운 삶과 사람과 사랑을 마주하는 만남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은 다음 느낌글을 쓰도록 시킨다든지 무엇을 느꼈느냐고 묻는다든지 합니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그러모아 ‘추천 명작 좋은 책’을 잔뜩 읽히려 합니다.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왜 ‘추천 명작 좋은 책’을 잔뜩 읽히려 하지요? 아이들이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아이들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빕니까? 아이들이 고운 사람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참다운 사람으로 자라기를 꿈꿉니까?

 어른들이 책을 읽습니다. 바빠서 책이란 거들떠보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고, 바쁘기 때문에 살짝 쉴 겨를에 즐겁게 책맛에 빠져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쁠 때에는 틈을 내어 읽는 책입니다. 한갓질 때에는 신나게 즐기는 책입니다. 바쁘다고 밥을 거르거나 잠을 미룰 수 없습니다. 거른 밥은 나중에 곱배기로 먹기 마련이요, 미룬 잠은 나중에 몰아서 자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바쁘다며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나중에 어찌 되나요.

 지식을 얻거나 돈벌 구멍을 찾거나 갖가지 정보조각을 그러모으자며 책을 읽는다면, 이는 책을 읽는다 말할 수 없습니다. 지식읽기·돈읽기·정보읽기입니다. 책읽기가 아닙니다. 사람을 읽을 때에만 책을 읽는다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읽지 않으면서 책을 읽을 수 없고, 사람을 읽지 않는다면 책읽기는 무시무시한 바보짓이 되고 맙니다.

 한 줄을 읽어도 책이고, 열 쪽을 읽어도 책이며, 한 권을 읽든 만 권을 읽든 책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도 사람이며, 만 사람을 만나도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만 사람을 겉훑기로 사귀기보다는 한 사람을 옳으며 가까이 사귀는 일이 아름답다’고 머리로 헤아립니다. 참다운 동무 한 사람이 거짓스러운 동무 만 사람보다 훨씬 나으며 좋은 줄을 머리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참다이 읽는 책 한 권과 어설피 읽는 책 만 권은 어떠한가요. 지식으로만 읽는 백만 권하고 삶으로 읽는 책 한 권은 어떠하나요.

 헌책방에서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문계주 그림,서화 펴냄,1993)을 찾아서 읽습니다. 고등학생 때 벌써 읽은 만화이지만 새삼스럽다 싶어 다시 장만해서 읽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으로 다시 읽기도 하지만, 아예 새로 사서 다시 읽기도 합니다. 읽고픈 책이라면 두 번 세 번 사는 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읽을 만할 뿐 아니라 선물하고픈 책이기에 여러 권 사서 우리 집 책꽂이에 넉넉히 갖추었다가, 틈틈이 만나는 좋은 벗님한테 기쁘게 선물하곤 합니다. 나한테 좋은 책이니까 언제나 새로 장만해서 거듭 읽은 다음 건사하고, 나한테 좋은 사람이니까 늘 새 마음으로 새로운 책을 선물합니다. 《아프리카의 꿈》 85쪽에 “나와 같이 (아프리카로 다시) 가자. 이제 다시는 널 슬프게 하지 않을 거야.” 하고 속으로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버이와 다른 살붙이 모두 잃은 외로운 아이가 아프리카에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는 아프리카 수풀에서 자연스레 하나되어 예쁘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이런 만화나 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4344.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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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셈을 못하는 사람


 어제가 큰보름인지 몰랐다. 그저 달이 참 밝다고 느꼈다. 애 아빠 혼자 서울로 볼일 보러 나와서 서울 종로 뒷골목을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나기에 형한테 전화를 건다. 형은 지난 설날 몸에 아프다면서 음성 부모님 집에 찾아오지 못하고 목포에 혼자 머물었다. 형한테 전화를 걸면, 형은 늘 동생한테 “뭐 필요한 거 없어?” 하고 묻는다. 내가 형이고, 형이 동생이었으면 나도 이렇게 묻지 않았을까. 지난 설날에 어떠했는가 말하고 형은 잘 지내는가를 물으며 둘째가 오월에 태어나니까 그무렵에 한번 놀러오라고 이야기한다. 형이 또 “뭐 필요한 거 없어?” 하고 묻기에, “글쎄, 뭐가 있어야 할까?” 하다가 “그러면 기름 보내 줘.” 하고 말한다. “무슨 기름?” “보일러에 넣는 기름.” “내가 기름을 보내 줄 수는 없고, 기름을 살 수 있는 돈을 보내 줄게.” “지난해 12월에 300리터를 넣을 때에 삼십이만 원인가 들었는데 지난달에 넣을 때에는 삼십오만 원인가 들었어. 아마 이달에는 36만 원쯤 되겠지.” 형은 알았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다가 전화를 끊는다. 잠을 얻어 자려고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간다. 이듬날 시골집으로 돌아갈 찻삯이 없기에 은행에 들른다. 늦은 때라 600원이나 물어야 하지만 돈을 찾기로 한다. 이듬날 아침 일찍 움직이자면 은행 있는 데까지 돌아올 발걸음이 아쉽기 때문이다. 이 발걸음만큼 다른 골목길을 거닐며 사진 한 장을 더 찍고 싶다. 600원은 몹시 쓰리고 아프지만, 사진 한 장 얻는 값을 헤아리면 아무것 아닌 돈이다. 그런데 내 은행계좌에 자그마치 2000리터 넣을 만한 기름값이 들어왔다. 형, 300리터면 된다고 했는데, 형은 왜 이리 셈을 못하시우? 에그. 잠잘 집을 찾아 걸어가면서 조용한 골목 한켠에서 눈물 몇 방울 훔친다. (4344.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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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쓰는 책 

 손으로 글을 쓰면 참말 엉뚱하거나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글은 안 쓰기 마련입니다. 팔이 저려서라도 못 씁니다. 꼭 써야 할 만큼 쓰며, 저린 팔을 버티면서까지 써야겠다 싶은 글을 뼈를 깎으며 내놓습니다. 나는 내 글부터 모두 내 손으로 쓸 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한결같이 내 고운 이웃들이 손으로 썼구나 하고 느끼는 책을 찾아서 고마이 장만하여 읽습니다. (4344.2.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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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려받은 책, 다친 책


 누군가한테 책을 빌려줄 때에는 ‘그냥 준다’고 생각해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냥 주는 셈치고 빌려주어야지, 빌려줄 때 모습 고스란히 돌아오리라 생각하면 안 된다고들 말한다.

 서울사진축전을 하는 자리에 사진책 300권 남짓 빌려주었다. 책은 열여덟 상자에 담겨 돌아온다. 드디어 돌아와 준다. 상자를 하나하나 끌른다. 내 품을 떠나 숱한 사람들 손길을 타던 책을 그립게 어루만진다. 고맙게 거의 다치지 않은 책이 있다. 다치지 않은 책이란, 서울사진축전에 온 사람들이 ‘거의 안 들춘 책’이란 뜻이다. 다칠 까닭이 없는 번듯한 새책이요 나온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책이나 제본이 망가지고 종이가 찢어지며 뒤틀린 책이 있다. 그만큼 많이 들추거나 읽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1960년대 앞에 나왔던 책들은 하나같이 겉장이 떨어지거나 떨어질락 말락 한다.

 누군가한테 빌려준 책이 뜻밖에 나한테 돌아올 때에는 그저 ‘고맙다’고 여겨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 고맙다. 다쳤을지라도 이렇게 돌아와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우면서 반가운가.

 앞겉장과 뒷겉장이 똑 떨어지고 만 1960년대 일본 사진잡지 하나는 큰 비닐에 넣는다. 앞으로 우리 시골 도서관으로 찾아와서 이 사진잡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되리라. 내가 웬만해서는 안 보여줄 테니까. 그런데, 사람들 손을 타는 자리가 아닌 유리 진열장 안쪽에 넣기로 한 책조차 앞뒷 겉장이 똑 하고 떨어졌다. 왜? 1950년대에 나온 한국 사진책 하나 몹시 알뜰히 여겨야 한다고 틀림없이 말했는데, 왜?

 빌려준 사람이 잘못이다. 빌려간 사람 탓을 할 수 없다. 책은 벌써 망가졌으니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이제부터 이 모습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건사해야 한다. 이 책도 크기에 맞는 비닐을 찾아서 곱게 넣어야지.

 내가 그러모은 책으로 내 돈을 들여 도서관을 여는 일이란 참 바보스러운 짓이다. 그냥 나 혼자 조용히 껴안으면 될 노릇인데, 한국 같은 나라에서 개인 도서관을 하는 사람은 다 멍텅구리라 할 수 있다. 한국사람이 책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보는데. 한국사람이 책을 얼마나 엉터리로 보는데. 한국사람이 책을 얼마나 안 사랑하고 안 아끼는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큰 새책방에는 ‘보기책’을 따로 놓기까지 한다. 사람들 손이 너무 거칠기 때문이다. 갓 나와 반들반들한 새책에 손때나 손자국이 묻는다든지 책종이가 접힌다든지 하면 상품으로 팔 수 없다. 그러나, 책방마실을 한다는 사람들은 이러한 책을 함부로 넘기거나 다룬다. ‘값을 치러 사기 앞서’까지는 얌전히 정갈하게 살펴야 할 책인데, 이렇게 하지 않는다. 책방에 마실거리나 먹을거리를 들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까닭을 헤아리지 않는다.

 여느 헌책방에 가 보면, 책방마실을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 적잖은 숫자가 헌책이라고 책을 마구 다룬다. 새책조차 알뜰히 돌보지 않는 한국사람이니까 헌책이라면 아무렇게나 던지거나 집거나 쥐거나 다루어도 되는 줄 알기 일쑤이다.

 책을 아끼는 사람은 헌책이든 새책이든 똑같이 소담스러이 아낀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새책보다 헌책을 훨씬 따사로이 사랑한다. 새책방 새책은 언제든지 다시 찍어서 만날 수 있다. 헌책방 헌책은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많다.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을 헌책이랑 언제라도 다시 찍어서 살 수 있는 새책이 함께 있을 때에, 두 가지 모두 같은 책이니까 같이 아낄 노릇인데, 내 손길은 어떠해야 하며 내 눈길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더 값있다기에 더 아끼거나 사랑해야 하지 않다. 더 값있다는 책이 아니라, 더 다치기 쉬우며 더 망가지기 쉬울 뿐 아니라 다시는 찾아볼 수 없도록 보배스럽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을 쏟아야 할 뿐이다. 두꺼운종이도 얇은종이도 같은 종이인 만큼, 종이로서 알뜰히 여겨야 하는데, 얇은종이는 한결 잘 찢어진다. 얇은종이를 조금 더 마음써서 다룰밖에 없다. 몸 튼튼한 사람과 몸 아프거나 여린 사람이 있다면, 몸 아프거나 여린 사람한테 마땅히 더 마음을 쏟거나 사랑을 나눌밖에 없다. (4344.2.15.불.ㅎㄲㅅㄱ)
 

 

(책을 이 따위로 들고 보니까 다친다. 무거운 책을 요 따위로 들고 보도록 살아오는 한국사람들은 책이 얼마나 아파하는지 알아채지 않는다. 그러나 행사를 마련한 쪽부터, 책이 다치지 않도록 볼 수 있게끔 책걸상을 넉넉히 마련하지 않았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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