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등불 하나 없는 고요한 멧길을 아이 손을 잡고 옆지기와 함께 내려옵니다. 보름달이 아니요 반달조차 아닌 날씬한 초승달인데, 이 초승달은 우리들 머리 위쪽에서 밝은 빛을 뿌리며 그림자를 베풀어 줍니다. 올망졸망 멧길을 걸어 내려오는 시골집 세 식구는 달그림자를 밟으며 노래노래 부릅니다. 달그림자 없이 살아가야 하는 서울사람들이 딱하다 싶지만, 서울사람한테는 달그림자가 없어도 돈그림자가 있겠지요. 달그림자 어리는 책을 알아보거나 느끼지 못할 테지만, 돈을 얻거나 이름을 드날리는 처세책과 경영책을 많이 만나거나 즐겁게 읽을 테지요. 도시사람은 달그림자 없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테니까요. 도시에 깃든 회사는 달그림자로 굴러가지 않을 테니까요. 도시에서 펴내어 도시에서 읽는 신문은 달그림자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 테니까요. 아파트에는 달그림자가 나타날 수 없을 테니까요. (4344.2.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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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0 : 사람이 읽는 책


 충청북도 신니면 광월리에 자리한 부용산 멧기슭에는 이오덕 님 뜻과 넋을 기리는 멧골학교인 이오덕자유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은 일곱∼아홉 살 어린이부터 들어와서 다닐 수 있는 배움터이고, 나이가 더 든 어린이나 푸름이는 사이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어린 나날부터 멧자락에서 숲과 들을 쏘다니면서 제 먹을거리를 손수 흙을 일구어 마련하도록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를 쓰지 않고 교재 또한 쓰지 않으며 정규 교과과정이나 학사과정을 밟은 사람이 교사가 되지 못합니다. 책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고, 책으로 가르치는 데가 아니라 사람으로 가르치는 데이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가르치는 어른이 될 수 있으나 아무나 배우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배움마당인데, 2011년 2월 9일에 새 학기를 여는 날부터 이곳 어린이와 푸름이하고 ‘책이야기’를 날마다 한 시간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교과서가 없고 교재를 안 쓰니까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까를 저 스스로 살펴야 하는데,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책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야 알맞습니다.

 날마다 새로 맞이하는 새벽부터 낮까지 시골집에서 우리 살붙이들이랑 복닥이던 삶을 돌아보면서 이 이야기를 어린 벗님하고 함께 나눕니다. 아버지가 손톱을 깎으니 옆에 붙어서 제 손톱도 깎아 달라는 아이 손톱이랑 발톱을 깎다 보니 아이는 사르르 잠들고, 잠든 아이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채워 눕히고 나서, 아버지는 오른손 손톱을 마저 깎아야 하는 줄 깜빡 잊고 하루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시골집은 지난 12월부터 어느덧 석 달째 물이 얼어 못 쓰는 터라 학교 씻는방으로 빨래감을 들고 와서 빨래한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빗대어 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누가 책을 쓰는가를 살핍니다. 나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듯이 적바림한 책 하나를 들고 와서 어린 벗님하고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어제는 《남쪽의 초원 순난앵》(마루벌,2006)이라는 그림책을 함께 읽었고, 다음주에는 《그리운 순난앵》을 함께 읽을 생각입니다. 두 가지 순난앵 그림책은 모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을 바탕으로 빚은 그림책으로, 순난앵이라는 마을에서 따사롭게 살아가던 아이들이 가난하고 메마른 터전에서 여러 해에 걸쳐 힘겹게 굶주리며 고된 일에 시달리다가 다시금 따사로우며 사랑스러운 순난앵을 찾아서 포근하게 쉰다는 줄거리입니다. 아마, 굶주리던 아이들은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하늘나라에 있을 순난앵 마을’로 가서 넉넉한 어머니 품에 안겼겠지요.

 이오덕학교 벗님들은 순난앵을 그리다가 마침내 순난앵으로 들어간 두 아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도 하고 슬프다고도 하지만 ‘죽음으로 들어선’ 줄은 깨닫지 못합니다. 어쩌면, 순난앵을 그리워하며 찾아간 아이들 또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살며시 눈을 감을 때에는 ‘죽음’이 아닌 ‘새터’로 간다고 여겼을 테지요. 그러니까, 죽음이란 꼭 슬프지만 않고 얄궂지만 않아요. 내가 살기에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이 고운 목숨을 나누어 주고, 내가 죽기에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은 새 목숨을 거두어들이며 새 거름으로 삼습니다. 사람은 책을 읽고, 흙은 삶과 사람과 사랑을 읽습니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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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찍기 책읽기 그림그리기


 사진기가 있으니 사진을 찍고, 책이 있으니 책을 읽으며, 종이가 있으니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좋아한다면 사진을 찍을 테고, 책을 좋아한다면 책을 읽을 테며,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림을 그릴 테지요.

 자전거가 있으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전거를 탑니다. 공깃돌이 있거나 작은 돌이 있으면 공기놀이 좋아하는 사람은 공기놀이를 합니다. 새봄이 찾아와 온 들과 숲에 새잎 돋는 새풀이 나면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물을 캐거나 뜯으러 멧길을 오르내립니다. 봄에 나서 봄나물이고, 멧자락에서 나니까 멧나물입니다. 예부터 멧토끼요 멧돼지라 했지만, 이제는 ‘메’ 같은 낱말은 잘 안 쓰니 ‘산토끼-산돼지-산나물-산자락’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지만, 멧골짜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른 데 사람들이 어떤 말을 쓰든, 이곳에서는 ‘메’를 앞에 붙이는 이름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말도 저마다 좋아하는 말을 즐겁게 씁니다.

 사진기가 있어도 사진을 찍고, 사진기가 없어도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이란 종이에 뽑아서 벽에 거는 작품만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서 서른두 달을 함께 살아온 아이는 ‘망가져서 못 쓰는’ 사진기로도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저도 어린 날 두 손 두 손가락을 네모낳게 만들어 사진놀이를 했습니다. 내 마음에 살포시 담으면 얼마든지 사진찍기가 됩니다.

 책이 있으니 책을 읽지만, 책이 없어도 책을 읽습니다. 책에 적힌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새롭게 배우거나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겪은 이야기입니다. 저마다 배우거나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겪은 이야기를 ‘글로 담을’ 때에 책으로 묶습니다. 그러니까, 따로 글로 안 쓰고 입으로 말을 주고받을 때에는 이렇게 입말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책인 셈입니다. 종이에 이야기를 적으면 종이책이고, 동무나 이웃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책입니다.

 종이가 있을 때에 그림을 그린다지만, 종이가 없을 때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이나 볼펜을 쥐어 종이에 그림을 그려도 즐겁고, 나뭇가지나 손가락이나 돌멩이로 흙땅에 죽죽 금을 그으며 그림을 그려도 즐겁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에 대고 빙빙 돌리며 그림을 그려도 즐겁습니다.

 꼭 어떻게 해야만 사진찍기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찌저찌 해야만 책읽기이지 않습니다. 어김없이 요리조리 해야만 그림그리기이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 나름대로 받아들여 즐길 때에 사진찍기도 되고 책읽기도 되며 그림그리기도 됩니다.

 글을 쓰는 동화작가나 소설가라든지,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라든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든지, 이런 이름이 붙어야만 대단하지 않습니다. ‘작가’나 ‘화가’라고 한자로 지은 이름을 붙여야만 이러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글을 쓰니까 ‘글쟁이’나 ‘글꾼’이나 ‘글사람’이라 하면 되고, 그림을 그리기에 ‘그림쟁이’나 ‘그림꾼’이나 ‘그림사람’이라 하면 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을 ‘농사꾼’이라 하니까 모두들 ‘-꾼’으로 맞출 수 있고, 그저 즐긴다는 뜻으로 ‘즐김이’ 같은 이름을 달아 ‘글 즐김이’나 ‘그림 즐김이’처럼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나타나거나 남다르게 보이거나 겉보기로 꽤 그럴듯해야 사진이거나 책이거나 그림이거나 글이라고 알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이나 그림을 보거나 책이나 글을 읽거나, 내가 즐겁게 보거나 읽어야 나한테 좋은 사진이거나 그림이거나 책이거나 글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알뜰히 즐기면서 알차게 받아들이고 아름다이 보듬으면 좋을 여러 가지입니다.

 밥 한 그릇 고맙게 받아서 먹습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고맙게 눈을 감습니다. 틈틈이 낯과 손발을 씻거나 물을 마시면서 물이 고맙습니다. 파란하늘 하얀구름 올려다보며 바람이 반갑습니다. 내 삶을 이루는 고마운 여러 가지가 내가 즐기는 사진이 되고 책이 되며 그림이 됩니다. (4344.2.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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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책은 슬프지 않다


 사라지는 책은 슬프지 않습니다. 덜 읽히거나 안 읽히는 책 또한 안타깝지 않습니다. 잊히거나 밀리는 책도 가엾지 않습니다.

 책은 만들거나 파는 사람 몫이 아닙니다. 책은 읽는 사람 몫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을 만들면서 숱하게 되읽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책을 파는 사람은 책을 맞아들여 책시렁에 꽂으면서 찬찬히 읽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 이 책들을 알아보지 못하면,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 ‘숱하게 되읽는 즐거움’이나 ‘찬찬히 읽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딱한 쪽은 책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고운 빛 드리우는 책이 어떠한 고운 빛을 드리우는가를 읽을 때에 비로소 책도 사람도 살겠지요. 사랑스러운 손길 감도는 책이 어떠한 사랑스러운 손길이 감도는가를 헤아릴 때에 바야흐로 책이며 사람이며 살찌겠지요.

 어디까지나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이 책을 잘 읽을 노릇입니다. 언제나 책을 장만하여 읽을 사람이 책을 잘 새길 노릇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을 잘 못 만들 수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 가운데 돈바라기에 매인 나머지 돈내음 물씬 나게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따숩고 넉넉한 마음결로 살포시 보듬으면 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알차고 알뜰하며 아리따운 넋을 고이 담았달지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면, 이러한 넋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을 만드는 동안 책넋을 고이 담았으니 뿌듯합니다. 보람차겠지요. 뿌듯함과 보람참은 돈이 아니요 돈값으로 따지지 못합니다. 100만 권이 팔려야 뿌듯함에 값하겠습니까. 천만 권이 팔릴 때에 보람참에 값하려나요.

 제대로 읽으며 올바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을 때에 흐뭇하게 웃습니다. 찬찬히 읽어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기쁘게 춤춥니다.

 사라지는 책이 슬플 까닭이 없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에서 열 해 스무 해 조용히 먼지를 먹다가 사라지는 책이 슬플 까닭이 없습니다. 새책방 책시렁에서 그만 밀려나 판이 끊어진들, 도서관 책시렁에서 ‘대출 실적 0’이라서 버려진들, 헌책방 책시렁에서마저 찾아드는 이가 없어 그만 사라진들, 책은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들 사람이 슬픕니다. 바쁘고 힘들며 팍팍한 사람이 슬픕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이름을 더 날려야 하며 힘을 더 거머쥐어야 하는 사람이 슬픕니다. (4344.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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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10 15:02   좋아요 0 | URL
하지만 알팔려서 파지 공장으로 사라지는 책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ㅡ.ㅜ

숲노래 2011-02-11 03:56   좋아요 0 | URL
옳게 읽어 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삶이 더 슬프답니다... ㅠ.ㅜ
 


 설날 집일 안 하기


 설날을 맞이해서 집을 떠나 여러 날째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닌다. 집에 머물지 않으니 집일을 안 하며 지낸다. 여러 어른들 만나뵈러 찾아다니는데, 어른들마다 아이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아이하고 즐거이 어울리며 놀라 주신다. 아이는 아이대로 귀엽다 해 주는 분이 많고 어울릴 사람이 많다 보니 아버지나 어머니 품에 있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주 모처럼 홀가분하게 지낸다. 게다가 손수 밥을 차려 식구들 먹이지 않으니 하루 내내 할 일이란 없다. 그저 자리에 앉아 밥상 고맙게 받아먹으며 입만 나불나불거릴 뿐.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니, 집을 치운다거나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참말 집일에 마음쓰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아이 옷가지를 빨래하지만, 집에 머물 때처럼 이 빨래 저 빨래를 하지 않는다. 설밥은 올해에도 어머니가 혼자서 다 하고 말았으니 도울 겨를이 없이 자잘한 일만 거들며 일마무리만 조금 돕는다. 올해에는 설밥을 함께 마련하고 싶었으나, 어머니는 밤새 혼자서 다 하셨단다.

 집일을 안 하고 아이랑 놀지 않는데, 정작 조용히 책을 읽지는 못한다. 마땅한 일이겠지. 어른들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인천마실을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동네 분이랑 사진벗이랑 이야기마당을 마련한다. 종이책은 읽지 않으나 사람책은 읽는다. 종이책을 들출 겨를이 없으나 사람책하고 내내 어우러진다.

 시골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헌책방 한두 군데쯤 들를 수 있으려나. 인천에서도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겨우 맛보기만 했는데, 서울을 거치며 헌책방마실을 해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책 구경은 못하더라도 헌책방 사진은 한두 장이라도 찍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옆지기가 둘째를 낳기 앞서 옆지기네 어르신들 만날 수 있는 일로도 고맙구나 해야지. 헌책방마실은 다음에도 할 수 있고, 아이를 낳기 앞서 첫째랑 아빠랑 둘이서 얼마든지 할 수 있지. (4344.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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