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사진 이야기] 5. 인천 아벨서점 2008

 헌책방은 고마운 곳입니다. 갓 나온 책을 때때로 만나기도 하지만, 잊거나 잃고 지나친 책을 새삼스레 만날 수 있으니 몹시 고마운 헌책방입니다. 웃돈을 얹는대서 사라진 책을 장만할 수 있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사라진 책이지만 누군가한테는 스스럼없이 내놓는 책이 헌책방이라는 데에서 빛이 나며 새로 읽힙니다. 이 나라 헌책방치고 널따랗거나 커다란 곳은 드뭅니다. 으레 조그맣거나 조촐합니다. 그런데 이 조그맣거나 조촐한 책쉼터에 수많은 책이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내 눈과 넋과 삶을 아리땁게 여미는 데에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4344.3.20.해.ㅎㄲㅅㄱ)


- 2008년.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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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22 22:43   좋아요 0 | URL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가장 책 정리가 잘된 매장이더군요.책도 많고요^^

숲노래 2011-03-23 07:42   좋아요 0 | URL
책방살림에 마음을 가장 넓고 크게 쓰는 책방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쓰레기터 뒤지기


 어제와 오늘 집안을 치운다. 다 치우지 못한다. 여느 때에 꾸준히 돌보았다면 애써 날을 잡아 집안을 치울 일이 없었을 터이나, 여느 때부터 집안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았으니 날을 잡아 집안을 치운다 하더라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여러 날이 걸리고 만다. 앞으로 며칠 더 치워야 비로소 조금 건드렸다 할 만하리라 느낀다.

 자질구레하며 쓰잘데없는 물건을 치우고, 이곳저곳에 흩어 놓던 물건을 갈무리하면서 생각한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꾼이란 얼마나 대단하며 고마운 사람일까. 밥을 차려 주는 사람과 함께,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참으로 고마우며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새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밥을 하는 일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으레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곧 살림꾼이었다. 나는 집안일을 도맡고는 있으나, 나 스스로 살림꾼이라고는 여기지 못한다. 옆지기도 내가 살림꾼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보기로도 살림을 못하고, 옆지기가 생각하기에도 살림을 ‘안 한’다.

 살림하기란 밥하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밥을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몫을 해야 비로소 살림꾼이다. 그런데, 밥을 해서 차린다 할 때에 얼마나 옳고 좋은 밥을 얼마나 옳고 바르게 차리느냐를 살펴야 한다. 밥으로 차릴 먹을거리는 어떻게 일구거나 얻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고, 밥을 차리고 치울 때에 어떻게 하는가 또한 헤아려야 한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쓰레기터를 뒤진다. 집은 집인데, 틀림없이 살림집은 살림집인데, 살림을 엉망으로 내팽개치듯 살아온 사람이기에 쓰레기터를 뒤지고야 만다. 밤을 잊으면서 쓰레기터를 뒤질까 하다가 그만둔다. 왜냐하면 어찌 되었든 이듬날 또 새 하루를 열어야 하고, 아이와 옆지기와 내가 먹을 밥을 차려야 하며, 이렁저렁 또 하루일을 해야 하니까.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은 건드렸으니, 이쯤에서 몸을 쉬면서, 이듬날에는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어 치우면 좋을까를 곱씹는다. (4344.3.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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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서랍에서 튀어나온 묵은 40만 원


 책상서랍을 갈무리한다. 여러 해 동안 거의 돌보지 않고 이것저것 집어넣기만 한 책상서랍을 갈무리한다. 책상서랍을 쓸 일이 없는 나는 자잘한 물건을 끊임없이 집어넣기만 하니까, 나한테는 튼튼한 종이상자만 있으면 된다. 굳이 책상서랍에 자질구레한 물건을 처박을 까닭이 없다. 서랍 하나는 내 몫으로 남기고 다른 칸은 차근차근 비운다. 옆지기가 책상서랍을 쓸 수 있게끔 비운다.

 책상서랍을 비우다가 돈을 찾는다. 두 가지 돈을 찾는다. 흰봉투에 담긴 돈은 봉투마다 20만 원에서 2∼3만 원쯤 모자란다. 거의 40만 원이 되는 돈이 불쑥 튀어나온다.

 40만 원 가까운 이 돈은 나로서는 허리띠 조르는 살림이면서 뒷날을 손꼽으며 아낀 돈이었을 테지. 돈 만 원이 아쉬운 살림을 벌써 몇 해째 꾸리는가. 돈 만 원이 아니라 돈 천 원 없어 숨막히던 날이 꽤 길었으니까, 이렇게 큰 돈이 책상서랍에서 잠자던 일이란 참 딱하고 안쓰럽다.

 그런데 이 돈이 그때그때 내 손에 쥐어졌더라도 내 살림은 넉넉했을까. 이 돈이 그때그때 내 손에 쥐어졌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책값으로 모조리 날아가지 않았을까. 어려운 살림이면서도 책상서랍에 고이 묻었으니까 오늘까지 남을 수 있지 않았는가.

 이 돈을 언제 얻었는가 곱씹는다. 먼저, 봉투 하나. 이 봉투는 지난해 여름에 우리 살림집을 인천에서 시골로 옮길 때에 받은 돈. 돈도 마땅히 없으며 도서관 책짐을 옮기느라 짐차며 사다리차며 일꾼이며 이백만 원 즈음 써야 했으니, 이 돈 걱정으로 참 빠듯했는데, 우리 식구를 걱정해 준 고마운 이웃 아주머님이 봉투에 이십만 원이나 넣어 주셨다. 이 가운데 이만 원만 빼서 쓰고는 책상서랍에 넣었나 보다.

 다음 봉투 하나. 다음 봉투는 세뱃돈으로 받았던 봉투. 셋째 작은아버지가 몇 해 앞서 설날에 세뱃돈으로 건넨 봉투이다. 언제였을까. 만 원짜리가 새돈으로 바뀌던 해에 받은 봉투인데, 이 봉투에는 만 원짜리 석 장이 빈다. 아마 이십만 원을 주셨을 텐데 3만 원만 빼내어 쓴 듯하다. 만 원짜리 새돈이 갓 나오며 반닥반닥할 뿐더러 돈 번호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열일곱 장이다.

 새돈이 들어오면 손이 떨려 못 쓰는 내 삶을 돌아본다. 내 삶이 이러다 보니, 이 엄청난 세뱃돈을 못 쓰고 서랍에 고이 모셨나 보다. 옆지기하고 함께 살기 앞서부터 책상서랍에서 잠든 돈이다. 앞으로는 이 돈을 쓸 수 있을까. 앞으로는 이 묵은 새돈을 깰 수 있을까.

 나는 책방에서 책을 사며 책값을 치를 때에는 가장 깨끗한 돈을 내민다. 다른 가게에서는 덜 깨끗한 돈을 내민다. 지갑에 만 원짜리이든 오천 원짜리이든 천 원짜리이든 빳빳한 차례에 따라 넣는다. 책값을 치를 때에는 맨 뒤에 놓은 가장 빳빳한 종이돈부터 골라서 내민다. 똑같은 돈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내 마음밭을 살찌울 고마운 책을 장만하는 마당인 만큼, 책값보다 넘치는 돈을 낼 주머니는 못 되고, 모자라나마 가장 깨끗한 돈을 내밀기만 한다.

 그나저나 40만 원에서 5만 원이 빠지는 돈이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는 틀림없이 책을 사려 하겠지. 그동안 침만 바르던 나라밖 훌륭한 사진책을 사려 할 테지.

 그러나, 이러면 안 된다. 이 돈만큼은 내 책을 사는 데에 쓰지 말자. 우리 옆지기가 서너 해 앞서부터 노래를 부르던 리코오더를 사자. 내 국민학교 적 학교 앞 문방구에서 천 원인가 이천 원인가에 팔던 싸구려 플라스틱 리코오더가 아니라, 음계와 화음을 또박또박 잘 잡으며 고즈넉한 소리꽃을 피우는 좋은 리코오더를 장만하자. 그러고 나서 아이 몫으로 조금 남겨야지. 나중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저 하고픈 무언가 있을 때에 쓰라며 얼마쯤 빼서 따로 모아야지. (4344.3.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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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춘천에 자리한 〈경춘서점〉은 한 곳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뿌리를 박았습니다. 마흔 해 넘게 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러다가 2010년 여름날 새 자리로 옮깁니다. 새 자리로 옮긴 줄 아는 사람은 이 헌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뿐일 테지요. 춘천시장이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든 간행물윤리위원회 일꾼이든 헌책방 한 곳이 옮기거나 말거나 알 턱이 없습니다. 예전 자리 사진이든 새 자리 사진이든 찍는 사람이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헌책방처럼 한 자리에 오래도록 뿌리박아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잘 못 알아채는 가게는 참 드뭅니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모르는 채 잘 살아갑니다. 책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기 때문일까요. 우리 삶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기 때문인가요. 책손 한 사람 고맙게 여기며 책 한 권 고마이 다루는 헌책방이 춘천에는 두 군데 있습니다. (4344.3.19.흙.ㅎㄲㅅㄱ)


- 2009.9.7. 강원도 춘천시 경춘서점

 

(옛자리 사진 -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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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은 모두들 비슷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헌책방마다 갖춘 책은 어슷비슷하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저마다 어슷비슷하달 책을 갖추었다고 합니다만, 어느 헌책방에 가든 똑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똑같은 책을 갖추었다지만 다 다른 헌책방이고, 다 다른 사람이 일구는 헌책방이며, 다 다른 이야기가 서린 헌책방입니다. 다 다른 헌책방에서 똑같은 책을 장만하는 동안 다 다른 이야기를 한결같이 받아들입니다. (4344.3.19.흙.ㅎㄲㅅㄱ)


- 2010.10.14. 서울 강동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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