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56 : 다시 읽는 책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라는 책이 2005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쯤부터 더는 나오지 않았는데, 올 2011년 3월에 새판으로 다시 나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말끔한 새옷을 입고 새로 태어납니다. 2005년에 읽은 책이지만 여섯 해 만에 새로 선보이는 새책을 다시 장만해서 다시 읽습니다. 예전 책은 옆에 놓고 새로 나온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밑줄을 긋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다가 예전에 읽던 책을 슬그머니 들춥니다. 어디 견주어 볼까? 오, 웬만한 곳에서 거의 비슷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데에서 밑줄을 긋는다면 내 생각이 바뀐 셈일까요? 예전과 오늘 같은 자리에서 밑줄을 긋거나 별을 그린다면 내 생각이 한결같은 셈일까요? 아니면 내 생각은 예나 이제나 틀에 박힌 채 고인 셈일까요? “이름이 없는 것은 상도 안 준다. 오로지 이름을 붙이는 것만이 관건이다. 읽기와 산수로만 지능이 평가된다. 감수성과 관찰력이 뛰어난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던 적은 언제였던가(66∼67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그으면서 별을 하나 그립니다. 예전 책에는 이 대목에 별을 둘 그렸습니다. 열 해쯤 뒤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 한다면, 그때에는 이 대목에 거듭 밑줄을 긋거나 별을 그릴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그때까지 내 넋이 이와 같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일구는 사람일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라는 책을 서울마실을 하며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 들렀을 때에 장만해서 읽습니다. 책방 〈풀무질〉에서는 이 책을 퍽 잘 보이는 자리에 예쁘장하게 얹어 놓습니다. 널리 보고 얼른 사서 읽으라는 뜻입니다. 제가 이 책을 사면서 〈풀무질〉에 있던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는 다 팔립니다. 〈풀무질〉 일꾼은 책방에서 다 팔린 이 책을 더 주문해서 사람들한테 알릴까요. 이 책이 놓이던 자리에 다른 ‘안 팔리는’ 책을 얹을까요.

 그림을 그리는 강우근 님은 오늘날 도시사람이 눈여겨보지 않는 들꽃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참말 ‘오늘날 도시사람’이 안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은 ‘오늘날 시골사람’이 아닌 ‘오늘날 도시사람’입니다. 오늘날 시골사람은 굳이 이 책을 안 읽어도 들꽃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아니, 들꽃보다는 들풀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먹는 풀인지 살피고, 어떻게 먹는 풀인지 돌아봅니다. 도시사람만 이 책을 읽는다 할 텐데, 도시사람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도시 둘레에 흐드러진 여느 들꽃이나 들풀을 어느 만큼 돌아볼 수 있을까요. 아니, 돌아보기는 할까 모르겠습니다.

 한낱 지식읽기로 그칠 책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도시사람한테 책 좀 그만 읽고 들꽃 좀 들여다보며 당신 삶을 되새기자 하는 이야기를 펼치는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이지만, 막상 이 책은 지식쌓기 책으로 그칠 듯해 무섭습니다.

 그러나 천 사람 만 사람이 속내를 꿰뚫으며 사랑할 수는 없겠지요. 너무 바쁘고 매이며 고달픈 도시살이일 테니까요. 다문 한 사람이라도 도시에서 들꽃이나 들풀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4344.4.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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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5 :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아름답다고도 말합니다. 책을 읽어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아름답습니다. 책을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도 말합니다. 내 마음을 옳고 바르게 가다듬도록 날마다 힘쓰지 않는다면 내 삶은 어느 하루라도 아름답기 어렵습니다.

 책이란 종이에 글을 찍을 때에 책이라 합니다. 종이에 글을 찍어도 얇은 종이에 찍어 날마다(또는 주마다) 내놓으면 신문이라 합니다. 종이에 글을 찍어도 다달이(또는 여러 달에 한 번) 내놓으면 잡지라 합니다.

 책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새기면 ‘글을 모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이야기꾸러미를 글로 담았고, 이렇게 담은 글을 낱권으로 묶어 책이라 하겠지요. 책 가운데에는 얇은 책이 있고 두꺼운 책이 있으며 여러 권짜리 책이 있습니다. 어떠한 모습이어도 책입니다. 글이 없이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으로 이루는 책이 있습니다. 글만 빼곡한 책이 있습니다. 어떠한 모습이든, 글을 담든 그림을 담든 만화를 담든 사진을 담든,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야 비로소 책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을 때에 책이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종이로 묶은 책을 읽기도 하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하고 사귀면서 ‘사람책’을 읽는다고도 합니다. 사람책을 읽기 때문에, 꽃책이나 나무책이나 하늘책이나 바다책을 읽을 수 있겠지요. 봄에는 봄책을 읽고 겨울에는 겨울책을 읽습니다. 비가 오면 비책이요, 눈이 오면 눈책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넋을 살려 사랑책일 테고, 믿음을 건사하는 사람은 믿는 얼을 북돋아서 믿음책일 테지요.

 살림을 하는 사람한테는 살림책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일책입니다. 놀이를 하는 사람한테는 놀이책입니다. 노래를 부르면 노래책이요, 춤을 추면 춤책입니다. 어느 책이 더 나은 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책은 모자라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뜻이 있습니다. 책마다 값이 다릅니다.

 나로서는 내 하루를 아름다이 일구며 어여삐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손에 쥐는 책입니다. 아낌없이 사랑하는 내 삶이기를 바란다면, 나로서는 내 삶을 아낌없이 사랑할 넋을 보듬는 책을 바라봅니다. 심심풀이처럼 시간죽이기를 바란다면 심심풀이를 하는 책이나 시간죽이기를 하는 책을 바라보겠지요. 지식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지식책에 손이 갑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이름값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처세책이나 경영책이나 자기계발책에 손길이 갑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책을 읽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책을 종이책으로만 읽을 수 있고, 책을 사람책이나 삶책이나 자연책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책 하나에 사랑을 담으면서 살아갈 수 있고,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살림집을 아기자기하게 보살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4344.3.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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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가분하게 쓸 글


 글 하나 써 주면 좋겠다는 편지가 그제 왔다. 오늘이나 이듬날 인천으로 마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얼른 일을 끝내야겠다 생각하면서, 새벽녘 편지 하나를 띄운다. 나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글 하나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를 적는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써 볼까? 곧바로 글을 쓴다. 원고지 20∼25장 사이로 글을 쓰면 좋겠다 했고, 한 시간쯤에 걸쳐 원고지 22장짜리 글을 마무리짓는다. 다 쓴 글을 한 번 죽 읽으면서 잘못 적은 곳 하나를 손볼 뿐, 딱히 더 다듬지 않는다. 이 글을 받은 쪽에서 어찌저찌 고쳐 달라 한다면, 그때에는 새로 써야지. 나는 예전부터 글을 고쳐서 쓰지 못한다. 어느 대목 하나 고쳐 달라 하면, 그쪽에서 알아서 고치라 하거나, 나 스스로 아예 새글을 쓴다. 좀 모자라거나 아쉬울 글이든 퍽 괜찮거나 좋다 싶은 글이든 나로서는 다 내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쓴 글이든 저렇게 쓴 글이든 나중에 낱권책으로 묶으려고 생각할 때에는 통째로 고쳐쓰기 일쑤이다. 마음이 바뀌기 때문일까. 글쎄, 이는 아니라고 느낀다. 예전에 옆지기한테 제대로 말을 못했는데, 제대로 말을 못한 까닭은 나 스스로 아직 제대로 깨닫거나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잡지사나 신문사 같은 데에 보내는 글은 새로 하나 쓰되 글을 다듬거나 고치지 않으면서 낱권책 글만큼은 고쳐서 쓰는 까닭이란, 신문이나 잡지에 싣는 글은 ‘꼭 이때까지 느낀 대로 써서 꼭 이때에만 읽고 새기는 글’이다. 낱권책에 싣는 글은 ‘낱권책이 나오는 어느 한때로 그치는 글’이 아니라, 적어도 열 해나 스무 해를 웃도는 글이 된다. 그래서 낱권책을 낸다 할 때에는 내가 앞으로 살아갈 열 해나 스무 해 앞날까지 돌아보면서 더 가다듬거나 추스른다. 그런데, 낱권책에 실을 글을 이렇게 가다듬거나 추스른다면, 여느 때에 쓰는 글도 이렇게 해야 옳지 않을까. 여느 때에도 열 해나 스무 해 앞서를 헤아리며 조금 더 알뜰히 여미어야 하지 않을까. 찬찬히 생각해 본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느 때에는 여느 때대로 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마음과 몸에 걸맞게만 이야기를 풀고 싶다. 오늘은 오늘 느낌과 삶 그대로만 쓴다. 오늘 하루가 모여 내 삶이 되고, 내 삶은 내 글로 태어난다. 낱권책은 내 삶이라기보다 내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이다. 선물과 삶은 다르다고 느낀다. 내가 꾸리는 삶으로 오늘 하루를 살거나 살림을 돌본다. 오늘 하루를 살거나 살림을 돌보며 틈틈이 아이 몫을 떼어서 남긴다. 글은 늘 홀가분하게 쓴다. 낱권책 또한 홀가분하게 내 글을 고친다. 아직 엉성한 텃밭이지만, 우리 텃밭에 들이는 땀은 그날그날 들일 뿐 더 들이지 못한다. 날마다 힘닿는 대로만 힘을 들인다. 이듬날 줄 거름을 오늘 줄 수 없다. 다음달 뽑을 풀을 오늘 어찌 뽑겠나. 오늘은 오늘 이야기만을 쓴다. 아직 아이는 깨지 않았으나, 곧 깰 듯하다. 오늘 글쓰기도 이제 곧 마쳐야 할 듯하다. (4344.4.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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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 이야기] 10. 부산 대영서점 2010.9.11.


 어느 헌책방에 찾아가서 책을 고르고 나서 사진을 찍든, 헌책방 일꾼더러 사진으로 곱게 찍혀 주십사 하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따로 모델 사진을 찍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애써 헌책방 일꾼 얼굴이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어야 ‘헌책방 사진’이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일꾼 아무개가 손질하거나 만진 책인 줄을 알아야 어느 책 하나를 더 알차게 읽을 수 있지 않습니다. 그저 고마운 책 하나라고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주 드물게 헌책방 일꾼 모습을 두 눈으로 서로 마주보면서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 주면 좋겠다” 하는 말씀을 들을 때면 이처럼 찍습니다. 여느 때 여느 모습을 여느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퍽 홀가분한데, 다소곳하게 앉아 다소곳한 모습을 다소곳한 매무새로 사진으로 찍자면 진땀이 흐릅니다. 이러면서도 헌책방 일꾼 두 눈과 얼굴을 사진기로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어 고맙기도 합니다. 언제나 책 앞에서 바르게 살아온 얼굴입니다. (4344.4.6.물.ㅎㄲㅅㄱ)


- 2010.9.11. 부산 보수동 대영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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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아침 열한 시 오십 분에 읍내에서 나오는 시골버스는 열두 시 오 분 무렵 광벌 큰길가 느티나무 버스역으로 들어오고, 네 식구 장마당 마실을 하고 난 다음 낮 한 시 사십 분 시골버스를 타고 한 시 오십오 분에 광벌 큰길사 느티나무 버스역에 닿아,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안고 걷다 보니, 아이는 어느새 잠이 조금씩 깬다.

 아이가 그대로 잠들어 아이를 안은 채 집으로 왔다면 아이는 낮잠을 조금 잤을 테고, 아버지도 낮잠을 조금 자고 나서 저녁을 먹었겠지. 그러나 아이가 졸립고 힘들면서 잠들지 않는 바람에 장마당에서 사온 딸기랑 아침에 남은 밥이랑 허둥지둥 주워먹고는 이내 곯아떨어진다. 오늘 몫 빨래는 이듬날로 미루기로 한다.

 저녁 열한 시가 가까워 잠에서 깬다. 아이도 잠에서 깬다. 아이한테 일어날래 하고 묻는데 그냥 눕는다. 쉬 마려우면 일어나라 하는데 그대로 눕더니 기저귀에 쉬를 하고서 일어난다. 그냥 일어나서 쉬를 하면 덧나니. 왜 기저귀에 쉬를 한 다음에 일어나니.

 곯아떨어지기 앞서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넷째 권을 다 읽었다. 만화책 《피아노의 숲》 열아홉째 권도 다 읽었다. 만화책 《요츠바랑!》 열째 권은 읽다가 말았다. 몸이 꽤 무거워 눈이 게슴츠레 감길 때에는 만화책이 그럭저럭 읽힌다.

 그러나 몸이 힘들 때라 해서 모든 만화책이 잘 읽힐 수 없다. 만화책이라 잘 읽힌다기보다 여느 책으로서 훌륭하거나 여느 이야기로서 돋보일 때에 몸이 힘들면서도 눈에 더 힘을 주면서 읽는다. 《씨앗의 희망》이든 《숨겨진 풍경》이든 《초원의 집》이든, 언제나 저녁 무렵 온몸이 욱씬욱씬 쑤시며 고단하게 드러눕는 잠자리에서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잠을 미루며 읽었으니까.

 새벽에 맑은 넋으로 책을 읽는다. 저녁에 고단한 넋으로 책을 읽는다. 아침에 기쁜 넋으로 책을 읽는다. 낮에 어수선하고 바쁜 넋으로 책을 읽는다. (4344.4.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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